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1
제61화. 소문
“…얘길 나눴었다고?”
“기억 안 나십니까? ‘소문을 이용할 것입니다.’라는 말이요.”
이안의 의미심장한 말에, 몰린은 이안과 두 번째 오찬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기아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먹거리라도 고마운 일이라며, 인식 개선을 위한 보급 방식 따위도 서로 나누었다.
“……!”
혹, 그때부터 이 순간을 염두해 둔 걸까?
이안이 덤덤한 얼굴로 말을 돌렸다.
“굴라를 모으는 건 바로 황궁에서 내려온 로만드로 님이십니다.”
모두의 시선이 로만드로를 향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황궁에서, 황제를 받들며 일하는 자들이였다. 솔선수범하여 굴라를 먹거리로 인정한다면, 인식 개선은 문제가 안 될 것이다.
“조금 시나리오를 써 보지요. 황궁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대체 작물 연구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굴라는 독성이 강하지만 씨앗만큼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맛도 좋다는 걸 알아내지요. 로만드로 님께서는 이런 정보를 선점하여 굴라를 모은 것입니다.”
“자네, 그래도 되겠나?”
“무엇을요?”
“아니…….”
“뭐 어떻습니까. 말만 그런 건데. 브라츠의 소문은 황궁까지 닿지 않습니다. 두 분의 펜을 통해서만 전달되지요. 아시지 않나요?”
로만드로는 멋쩍게 웃으며 턱을 긁적였다. 그날 말한 대로, 보고서에는 이안의 공치사를 정확히 짚되, 영지민들에게 낼 소문만 그리하라는 뜻이다.
“그것만 소문만 내면 되겠나?”
“그럴 리가요. 연구 결과도 살짝 첨가해야 합니다. 무엇이 좋을까요? 피부와 머릿결이 좋아지고, 무병장수에 효과적이라 덧붙일까요?”
“하하하! 그거 너무 허무맹랑하네.”
“뭐인들 어떻습니까. 원래 상대를 유혹하려면 몸집을 부풀리는 법입니다. 그리고 로만드로 님과 몰린 경은 시간을 내어 자주 바깥에서 식사하십시오. 보란 듯이, 굴라로 만든 요리를요. 그리하면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이안의 말에 몰린이 테이블을 가볍게 내려쳤다. 자신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는 거절의 몸짓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소문에 황궁을 이용하는 것은 당치도 않아. 폐하의 존엄과 관련된 일일세.”
하지도 않은 연구 운운하며 굴라를 보급했다가 후에 문제라도 생기면, 저들은 황궁을 원망할 것 아닌가? 나름 타당한 이유였으나, 이안은 공감하지 않았다.
“…분명 그때의 몰린 경은 기근 해결을 지도자의 숙명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리 자잘한 이유로 반대하실 분이 아니었거든요.”
“자잘하다니, 자잘하다니! 황궁의 명예가 자잘하다 하였는가?”
“당장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사소합니다!”
거의 처음이었다. 이안이 이리 맞붙어 언성을 높인 것이. 항상 실실 웃으며 되받아칠 뿐이었는데 말이다. 몰린이 주춤하여 입을 벙긋거리는 동안, 이안은 냅킨을 내려놓았다.
“몰린 경.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지금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거절 따위는 거절한다는, 그런 일방적인 통보.
“반대하여 방해할 것이라면 당장 영지를 떠나십시오. 전사들에게 명하여 안내하라 이를 것입니다.”
“…이 무슨 무례인가!”
“맥 경. 처지를 확실히 보세요. 지금 누가 무례를 저지르고 있습니까?”
영지를,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방안을 내놓은 이안과 그저 황궁 사자라는 이유로 주둔하면서 반대하는 몰린 일행.
처지를 확실히 보라는 모욕적인 말에 맥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공작, 백작에 비견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귀족 자제 출신이었다. 어디서도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로만드로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슬쩍 끼어들었다.
“크흠. 진정하시지요들. 그, 몰린 경. 제가 먹어봤는데, 맛이 상당하덥니다. 생각보다 요리법이 다양해서 식탁이 다채로워질 것입니다.”
그때, 식당으로 슬쩍 들어오는 베릭. 왼쪽 눈을 찡긋거리며 은근하게 신호를 보냈다. 마력석을 회수했다는 뜻이다.
“제 뜻은 전부 밝혔습니다. 중요한 일이니 훼방만큼은 용서치 않겠습니다.”
“이안, 자네 어찌 그리 건방을!”
“그럼, 다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저는 이만.”
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로만드로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복도로 나온 베릭이 그의 손에 마력석을 쥐여주었다.
“근데 이안, 너 참 말 곱게 한다.”
“무엇이?”
“사람들 앞에서 똥 씹는 것처럼 처먹으면 죽여버린다는 걸 ‘용서치 않겠다’로 표현했잖아. 고상하다. 고상해.”
베릭이 감탄하며 혀를 끌끌 차자, 이안은 피식 웃고 말았다.
둘은 데르가가 썼던 집무실로 향했다. 조사단이 종이란 종이는 죄다 쓸어갔지만, 마력 용액은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안은 데르가가 했던 것처럼 유리병에 용액을 가득 붓고 마력석을 떨어트렸다.
퐁!
붉은 보석이 빛을 발하며 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한 귀로 들으며 올라온 보고서를 읽어 넘겼고, 베릭은 소파에 벌러덩 누워서는 구룻잎을 씹어댔다.
조금은 평화로운 휴식 시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 성격에 일이… 이렇게 넘어가면… 어찌 나올지는, 나는 감히… 예상할 수도 없네.]사각사각.
웅웅 울리는 세 남자의 말 사이로 이안의 필기음만 조용히 들려왔다.
[앞을 막아선 자가… 비킬 생각이 없고, 돌아갈 수도 없으며, 다른… 길도 없다면 어찌… 할 것인가?]그때였다. 상당히 거슬리는 내용인지라, 이안이 펜을 멈추었다. 반쯤 눈을 감고 있던 베릭 역시 마찬가지. 씹던 것을 멈추고 슬쩍 고개를 들었다.
“방금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쉿.”
[막아선 자를 치우고… 갈 수밖에.] […선생님.] [언제나 방법은 있다네.]이안이 재밌다는 듯 펜촉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가까이 온 베릭이 엄지를 뒤집어서는 목 긋는 시늉을 했다.
“이거 너 죽이겠다는 말 아님?”
“아아. 그래. 뭐. 나쁜 수는 아니지.”
이안이 저들의 입장이었어도 고려했을 선택지였다. 사실 제일 좋은 것은 브라츠 영지를 포기하는 것인데, 몇 달 동안 공들인 이곳을 놓는 것보다 이안의 숨통을 끊는 게 쉽고 편할 터다.
무엇보다 미래를 생각하면 그게 안전하고.
“어떡할까? 따?”
베릭은 담담하게 검집을 들었다. 마치 들꽃을 따겠다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말투였다.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일하느라 혼자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베릭과 함께인 것은 둘째치고, 수면 시간 역시 들쭉날쭉하여 낮에 잠깐씩 눈 붙이는 게 다였으니까.
“따? 말아?”
“말아라. 기다려. 이것은 증거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면박을 좀 더 주는 건데.”
이안은 웃음을 흘리며 마력석을 꺼냈다. 식당에서의 몰린 일행 얼굴이 더욱 뚜렷하게 떠올랐다. 수치와 굴욕으로 점철된 고귀하신 나으리들의 분노라.
아마 오늘 밤이라도 암살자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뭐가 그리 웃겨?”
“아아. 아니, 좀…. 옛 생각이 나서.”
그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황제는 황제였으니.
감히 말하건대, 밤중 처소가 얼마나 어두운지와 커튼을 타고 오르는 독전갈의 발소리, 단검을 빼 들고 뛰어드는 자의 눈빛 따위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베릭. 정신을 똑바로 차려줘야겠어.”
“난 언제나 제정신인데?”
“조금 더. 말똥말똥하게.”
이안은 베릭의 볼을 툭툭 두드리며 경호를 빈틈없이 해달라 부탁했다. 물론, 몰린 일행에게 붙일 눈과 귀 역시 빼놓지 않았다.
* * *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 부지. 로만드로는 부하들과 함께 건축 상황을 확인하며 재건을 진행하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뜬지라, 부하가 넌지시 점심을 물었다.
“오전 일은 여기까지 하시죠.”
“그럴까?”
“로만드로 님! 참나무 남은 것은 어찌합니까?”
“일렬로 모아 길샘마을 입구로 옮기거라. 거기 출렁다리가 끊어졌다 하지 않았나? 아예 고가 다리를 세울 것이니, 게다 쓸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로만드로 님!”
“잠깐 기다리게. 밥은 좀 먹고 하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좀 급해서요. 치우라 하셨던 거대 바위 말입니다. 수소문해 보니 이자 아비의 무덤이라 합니다.”
“뭐? 미치겠군.”
로만드로는 머리를 쥐어 싸며 부하에게 손짓했다. 어서 안내하라는 뜻이었다. 점심 식사를 놓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이내 뭔가를 한주먹 쥐어 입에 털어 넣었다.
“방금 봤어?”
그걸 흰자로 훔쳐보던 영지민들이 속닥거렸다.
“일할 때마다 자꾸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드시네.”
“그러게. 뭔지 물어도 안 알려주시고.”
“쯧쯧. 자네들, 아직 못 들었나?”
숙덕숙덕, 한 남자가 아는 체를 하며 끼어들었다.
“굴라 씨앗 아닌가. 굴라 씨앗.”
“으에엑? 개똥 같은 소리. 자문관님이 그런 걸 왜?”
“진짜 모르나 보네. 왜, 저번에 저택에서 굴라를 돈 주고 모으지 않았나.”
“그랬지.”
모집 기간이 끝나서 더 이상 받지 않았지만, 사실 받는다 하더라도 방도가 없었다. 주위에 굴라 씨가 말라버린 탓이다. 아무리 숲 깊이 들어가도 굴라 이파리 하나 볼 수가 없었다.
“그거, 사실은 로만드로 님이 먹으려고 그랬대!”
“미친, 거 말이라도 되는 소리여야 맞장구를 치지!”
“아니, 진짜야. 여기는 변방이라 소식이 늦어져서 그래. 중앙 사람들은 이미 굴라 씨앗을 저기, 땅콩처럼 까먹는다 하더라.”
“저거, 굴라 처먹은 거 아녀? 독 때문에 머리가 회까닥한 것 같은데?”
“굴라가 겉에는 독인데, 씨앗은 맛이 아주 좋대. 그, 피부가 탱탱해지고 희어진다 하더만. 중앙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다카더라!”
그쯤 하자, 모여있던 사람들이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못 믿겠으면 자문관님께 가서 물어봐. 주머니에 넣고 드시는 게 뭐냐고. 절대 안 알려주지. 저들 먹기 바쁜데, 알려주겠어?”
“그래서 그 돈 주고 굴라를 모으게 했다고?”
“아니면 이유가 뭐 따로 있나? 윗분들이 돈 허투루 쓰는 거 봤어?”
남자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이라 하면 피 빨아 먹듯 쭉쭉, 아주 남김없이 잡수시는 분들 아닌가. 그럴 리가 없지.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을 터.
“이안이 천려족에게 팔아먹으려고 했던 게 아니란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 천려족은 곧 있으면 추워서 여기 있지도 못해. 지금도 죄다 빠져서 족장이랑 네르. 네르 그 뭐시기랑 몇몇만 남아있구먼. 거기 부족장이 오늘내일한다지?”
입에서 입을 타고 퍼지는 소문은 한번 옮겨질 때마다 크게 부풀어갔다. 곳곳에 눈과 귀를 은밀히 심어두었던 이안은 드디어 ‘그 소문’까지 돌자, 이제 됐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알아? ‘황제가 영생을 위해 먹는다’ 하더라. 이게 말이야, 방구야.”
“하하! 그래. 말이면 어떠하고 방구면 어떠하겠나? 됐다. 그만하면 됐어. 베릭. 슬슬 다음을 준비하자.”
굴라에 대한 호기심이 정점을 찍었다 판단한 이안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