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10
제610화. 다니트 부인
“아, 아가씨.”
자신을 부르는 하인의 목소리다. 카일라는 대답 없이 문 쪽만 바라봤다.
어쩐지 평소와 다른 듯한 음정. 혹여 바리엘군을 만나러 간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지만, 시간상 그건 불가했다.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무슨 일인가?”
아니지. 혹여 올라가는 길목에서 도적 떼라도 만나셨나? 그렇다면 문제일 수 있는데.
무심코 문고리를 잡는 순간, 본능적으로 경계가 바짝 섰다. 이유는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도적 떼가 무언가 불쾌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으나,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기 힘들었다.
카일라는 문고리를 소리 안 나게 쥐며 바깥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나오심이 좋겠습니다. 손님들이 뵙고자 하셔서요.”
하인의 목소리가 문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그 거리만큼 누군가 차지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그 멍청한 왕당파 놈들이 자신을 처리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일까? 하나 도움 될 것 없는 선택일 터인데?
카일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히 뒷걸음질 쳤다.
“알겠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일러줘. 옷을 벗고 있거든.”
“알겠습니다. 아가씨.”
카일라는 즉시 창틈으로 바깥 곳곳을 살폈다. 어둑한 거리. 왕당파 간부들 마차 사이, 칼라마트 경비대 깃발을 내건 말 한 마리가 보였다. 전언하기 위해 막 당도한 듯한 낌새다.
‘뭔지 몰라도, 저것이 도착하여 나를 보고자 한 것이다. 젠장. 뭔지 알아야 대응을 할 터인데.’
별것 아닌 일에 섣불리 도망쳤다간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이고, 방심했다간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모른다.
카일라는 이마를 짚은 채로 계속 창밖을 쳐다봤다. 자신에게 단서를 줄 만한 무언가가 있을 터. 제발, 제발…….
“아.”
그때, 캄캄한 골목 한구석에서 왕당파 경호들이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얘기하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허리춤에 찬 검을 빼 들더니,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 아닌가.
카일라는 바로 확신했다.
‘걸렸구나.’
저급 무기 납품 건이 들통난 게다.
이렇게 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반대다. 바리엘 귀족이니 런크비스 방계 혈통이니, 협상이고 나발이고 왕당파로서는 당장이라도 자신과 어머니의 목을 비틀어 처단하고자 할 터.
전시에 군수품을 가지고 장난쳤다는 건, 용서받을 수 없는 반역죄였다. 물론 카일라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지만, 알 바겠는가?
끼익.
카일라는 잇새로 욕설을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긴 할 건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벽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간 뒤 옆 건물을 통해 벗어날 것인지, 아니면 바로 내려가서 말을 훔쳐 타 달아날 것인지.
그녀는 창틀을 붙잡고서 잠시 고민했다.
‘아래로 간다.’
카일라는 장검을 등에 멘 채 창틀에 올라섰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발을 디뎌 맞은편 나무줄기를 붙들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왕당파 경호 작자들이 고개를 틀었지만, 무성한 이파리 덕에 카일라는 모습을 숨길 수 있었다.
촤아악!
그녀는 가볍게 착지, 마차 뒤쪽으로 몸을 숨긴 뒤 주변을 살폈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자는 열 명 정도. 모두 무장했으며 간부의 호위를 담당하는 만큼 실력자들일 게 분명했다. 전면으로 나섰다가는 승산이 없다.
쿠웅! 쿵!
그때, 위쪽에서 둔탁한 소란이 들려왔다. 카일라의 대꾸가 없자, 문을 부수는 소리였다.
바깥의 사내들은 이게 뭔 난리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올렸고, 카일라는 그 틈을 이용해 단검을 꺼내 말고삐를 모두 잘라냈다.
‘시간이 없다.’
자신이 밖으로 나온 걸 알게 되면, 수색 인원이 근방으로 쏟아질 터. 차라리 그 전에 정면 돌파하는 게 나았다.
카일라는 가까이 있는 말에 올라탔고, 단검을 좌우 말들에게 내던졌다.
히이잉!
“갑자기 왜 저래?”
“어? 줄? 줄 풀렸다!”
“거기! 어어! 홀린 영애다! 이봐! 여기다!”
“밖에 있는데 머저리들은 대체 뭘-!”
“쫓아! 쫓아!”
다들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놀란 말들이 여기저기 날뛰자 섣불리 접근하지 못한 채 소리만 쳤다. 카일라는 안장 위로 몸을 바짝 눕힌 다음 고삐를 세게 잡아끌었다.
“이럇!”
앞발을 들어 세우며 위협하던 말이 곧장 힘차게 달려 나갔다. 그저 발 닿는 대로, 바람을 가르며 말이다.
방향을 지시하고 싶지만, 이곳은 칼라마트의 외곽. 길을 몰랐다. 그저 자연스럽게 난 길목을 따라 달릴 뿐.
“잡아라! 잡아!”
“첩자다! 잡아서 죽여!”
타닥타닥!
아니나 다를까, 추격대가 금방 따라붙었다. 그들은 등 뒤에서 화살을 쏘아댔고, 카일라는 되는 대로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것들을 쳐냈다. 팔이나 넓적다리쯤은 맞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혹여나 말이 다치면…….
히이잉!
“으앗!”
우려하기가 무섭게, 누군가의 화살이 말 허벅지에 꽂혔다. 말이 멈춰 서며 몸을 크게 흔들었고, 카일라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댔다. 가자! 제발 좀, 가자!
피잉! 촤악!
하지만 계속 뒤에서 날아드는 화살 탓에 결국 카일라는 낙마하고 말았다. 말은 절뚝거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 젠장.’
“잡았다!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
“그간 우리 등쳐 먹어서 재미 좀 봤지? 각오하는 게 좋아. 우리도 재미 좀 볼 거거든.”
“도망 못 가게 묶어. 발목 잘려도 상관없으니까, 꽉.”
사내들이 킬킬거리며 다가오자, 카일라가 자세를 바로 하며 공격 태세를 취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형형한 눈빛이 유독 또렷해 보였다.
“와봐.”
“귀족이라고 허세 부리는 것 좀 보게? 역시 다르다 달라, 응?”
“공작저 뒤뜰에서 칼싸움 좀 했다고 자신 있나 본데, 내가 다 민망해서 다리가 떨려. 크하하핫!”
“칼싸움인지 뭔지는 베여보면 알겠지. 올 수 있으면 와봐.”
카일라는 긴장을 숨기기 위해 눈매에 힘을 줬지만, 여기까지인가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하지만 순순히 붙잡힐 마음은 없다.
“여기서 한 놈은 무조건 죽인다.”
“뭐?”
“…무조건. 나는 혼자 손해 보는 짓 안 해.”
카일라의 경고에 사내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체격에서나 경험에서나 봐줄 것 없는 여인인데, 배포 하나만큼은 어디 훈련장의 개뼈다귀만큼은 하는 듯했다.
한 사내가 검을 보란 듯이 내리며 가까이 다가와 도발했다. 너 같은 건 무기 하나 없이 맨손으로도 잡을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콱, 씨. 첩자 주제에 체면만 살아서는.”
“오면 죽인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멈추는 게 맞나? 크하핫!”
그가 뒤쪽의 동료들을 돌아보며 조롱하자, 카일라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잘 벼려진 검날이 단번에 사내의 목덜미를 베어냈다.
촤아악!
핏물이 솟구치며 사내가 목덜미를 움켜쥔 채 앞으로 고꾸라지자, 카일라가 나지막이 제 말을 정정했다.
“한 놈 말고 두 놈. 죽는다.”
“이, 이 망할 바리엘 종자 같으니!”
“봐줄 필요 없어! 죽여!”
카일라는 정신을 집중하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검날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나하나 피하는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영애’라 하면 무릇 뒤뜰에서 찻잔이나 기울이는 작자들 아닌가? 사내들이 놀란 것도 잠시, 카일라의 검 끝에서 다시 한번 피가 터졌다.
“으아아악!”
얼굴을 베어낸 것이었다.
그녀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 손에 피가 묻을수록 점차 물러설 곳이 좁아지고 있었다. 나름 각오는 하고 왔는데, 막상 현실이 눈앞에 닥치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심에 몸이 떨려왔다.
‘괜찮아.’
두려워도 괜찮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카일라가 기합을 넣으며 다시 덤벼들자, 이번에는 사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맞서 달려왔다. 제대로 맞부딪친 카일라의 검이 날아갔고, 놈들의 것은 반으로 부러졌다.
“씨발. 설탕 가루도 아니고, 뭐 이렇게 쉽게 부러져?”
저급 무기가 맞긴 맞네. 사내들은 카일라의 머리채를 붙잡아 올렸고, 이내 그녀의 볼을 거칠게 후려쳤다.
짜아악!
몇 번 이어진 폭행. 눈앞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카일라는 결국 실신하고 말았다.
* * *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니트는 급하게 드레스 자락을 쥐며 무릎을 굽혔다.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은 벌어지는 법 아니겠는가?
다니트는 지난 10여 년간 혼란스러운 버고스에서 별별 일을 다 겪었다. 이안의 말대로 조심해서 나쁠 것 없었으니, 서둘러 황제의 전언을 담아 돌아가는 게 안심될 것 같았다.
“카일라를 데리고서 다시 황제 폐하께 인사 올리지요. 그때는 왕당파의 명분 해체를 비롯하여, 칼라마트 주둔군 와해 소식을 폐하께 선물로 올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황제께서도 여유 부리지 마시고 서둘러 칼라마트 가까이 내려와 달라, 다니트는 그리 이르고 있었다.
“영 가능성 없는 말이 아니었나 봅니다.”
“도적 떼 말씀입니까? 희박하지만, 언제나 조심하여 나쁠 것 없지요.”
“예, 부인께서 걱정되신다면 마법사에게 명하여 칼라마트까지 모시도록 하지요. 어떠십니까?”
부인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호의가 아니다. 단언하건대, 카일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자’하는 의도였다. 왕당파에서 그녀의 신변을 인질로 잡으면 다니트의 선택지에도 변화가 생길 터이니, 그걸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게다.
“그리해 주신다면 감사하지요.”
다니트는 싱긋 웃으며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지금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하는 게 좋았다. 혹여 카일라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면, 마법사가 큰 도움 되지 않겠나?
“헤일.”
“예, 이안 님.”
“부인을 모시어 칼라마트 인근까지 다녀오도록.”
“알겠습니다. 나키나와 함께하겠습니다.”
이안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법사들 틈에서 나키나가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다니트 부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다리 밑에 손을 넣어 품에 안아 들었다.
“어머!”
“실례합니다, 부인. 드레스 잘 잡으세요. 뒤집히면 쪽팔리니까.”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지이잉! 지잉!
헤일과 나키나가 마력을 발동시키며 창공으로 날아들자, 샹데트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지금 자신 혼자 바리엘 진영에 내버려 두고, 저대로 가는 건가?
“나, 나는! 부인!”
샹데트의 외침은 힘없이 흩어졌고, 마법사들은 ‘아, 쟤도 있었지.’ 싶은 눈빛으로 그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안과 진, 트웰러, 누구도 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다니트 부인이 가져온 ‘인질’이니, 손에 쥐고 있는 게 맞는다는 판단이었다.
“샹데트 경께서는 우리와 함께 움직이시오. 선발대와 함께 앞장서서 길을 터 주면 좋겠군.”
“아, 예예. 알겠습니다. 마법부 장관님.”
“그럼, 준비하도록 하지. 다들, 움직여라!”
잠깐 멈췄던 바리엘 대군의 진격이 다시 시작됐다. 이대로 가다간 아마 오늘 밤 중으로는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휘이익!
“읏!”
한편, 나키나의 목을 단단히 붙잡은 채로 하늘을 날던 다니트 부인. 너무 빠른 속도에 놀라서 눈이 뒤집히는 것도 잠시, 마법사들이 이동 수단으로 참 훌륭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걸로 어떻게 돈벌이를 할 만한 게 없을까?
그리 생각하는데, 나키나가 고갯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저기 보이십니까, 부인.”
“뭐가요?”
“절뚝거리는 말 한 마리요. 인근에 인가는 없는 것 같은데.”
“어…….”
뭔가 불길했다. 그렇게 조금 더 날아가니, 길목 한가운데 피가 흥건히 고여 있는 것 아닌가? 자국이 두 개인 것으로 보아 사람 둘이 죽어나간 흔적 같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빨리 가줘요.”
“예, 지금도 최대치긴 한데.”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아. 헤일 대장!”
지이잉! 퍼엉!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는 힘. 다니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들이 머물던 작은 저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 저기!”
“마법사다! 마법사!”
“다니트 부인인가? 이봐! 다니트 부인이 돌아왔는데.”
그녀는 헤일과 나키나의 호위를 받으며 정원에 착지했다. 한껏 무장한 채로 그녀와 마주 선 병사들. 다니트는 드레스 자락을 꽉 잡으며 차분하게 일렀다.
“황제 폐하의 전언을 가져왔다. 왕당파 손님들은 아직 머물고 계신가?”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소. 할 말 있지?”
“…카일라는?”
“카일라? 네 딸년?”
“글쎄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
사내들이 킬킬거리며 웃자, 다니트의 눈매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녀는 제일 가까운 사내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바로 따귀를 올려붙였다.
짜아악!
“잡것들이, 말귀를 못 알아 처들어? 내 딸 어디 있는지 물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