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11
제611화. 회피와 제안
“첩자 주제에 어디서 감히-!”
귀싸대기를 올려 맞은 사내가 두 눈을 부라렸다.
다니트 부인은 ‘첩자’라는 단어에서 단서를 얻었는데, 왕당파가 저급 무기에 대해 알아챈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카일라의 신변을 위협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
사내가 피식거리며 그녀를 내려다보자, 다니트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그자의 반대쪽 볼을 쳤다.
짜악!
“어디서 감히 망발을 지껄여. 첩자? 지금껏 네놈들 목숨 줄 이어준 게 누군데 감히 이딴 식으로 나와?”
“미쳤나, 이게!”
한 번은 넘어갈 수 있어도 두 번은 못 참았다. 사내가 다니트 부인의 머리채를 잡아채려는 순간이었다.
“어허. 말로 하자, 말로.”
나키나가 사내의 팔을 단단히 붙잡아 저지했다.
이는 다니트 부인이 마음 놓고 큰소리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수십 명이 덤벼봤자 마법사 한 명을 이기지 못할 터인데, 지금 그녀의 뒤에는 마법부 대장이라는 자까지 함께였다. 홀린 공작가의 안주인이자 버고스 무기 사업을 담당한 자로서, 그녀의 안위를 지켜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게다.
헤일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궐련을 느슨히 문 채 주위를 둘러봤다.
“말로? 말로 하자고? 지금 내가 두 대나 맞았는데?”
“지나간 일은 지나가게 두고, 앞으로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 카일라 영애는? 여기 있는 거 맞나?”
“아니, 씨발. 근데 넌 뭔데 아까부터 반말을 지껄여?”
타앗!
사내는 나키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반대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나키나는 그자의 이마에 손가락 두 개를 ‘가볍게’ 올렸고-
“딱밤 처맞고 싶니?”
지이잉! 지잉! 퍼엉!
마찬가지로 ‘가볍게’ 마력을 터트렸다.
“으악!”
육중한 사내가 정신을 잃으며 나뒹굴었지만, 나키나로서는 그저 경고한 것일 뿐.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이를 본 장병들이 무기를 단단히 쥔 채 세 사람을 둘러싸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경계를 강화했다.
“소란이 인다 싶었더니, 부인께서 돌아오신 것이로구먼.”
그때, 저택 안쪽에서 왕당파 간부들이 모습을 보였다. 혹여 카일라도 함께 있는 것일까? 다니트 부인의 시선이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딸아이는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자세히 좀 들어볼까?”
“들어보고 말고 할 게 무엇 있는가. 그대가 잘 알 터인데.”
왕당파 간부는 그리 이르며 다니트 부인 앞에 검 한 자루를 내던졌다. 홀린가가 납품한 저급 무기였다.
부인은 차가운 눈빛을 서서히 들어 올렸고, 왕당파 역시 그녀를 마주 노려보았다. 개중 중심 역할을 하던 늙은 간부가 나키나와 헤일을 돌아봤다.
“마법사들은 이번 일에서 빠지시오. 그대들은 홀린가가 아닌 황제의 사람들 아닌가? 이는 버고스를 농간한 한 귀족의 문제. 그대들이 얽히면 이것은 곧 황궁의 뜻이었노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 런크비스 정통성을 지키려는 버고스 국민들을 사지로 밀어 넣으려 함이, 진정 황제의 뜻인가?”
황제의 뜻 맞는다. 그리고 이는 왕당파 쪽도 알고 있었다. 홀린가와 버고스가 무기를 거래한 지 어언 10년. 전쟁과 맞물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필시 황궁의 개입이 있었노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직접 입 밖으로 뱉어 공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왕당파는 바리엘에 대적할 수 없다는 판단을 이미 내렸다. 그러니 문제가 생긴 홀린 가문이라도 잡아 쳐내겠다는 뜻. 홀린 가문은 바리엘에서 제일가는 공작가이니, 그쪽을 잡는다면 황궁 쪽에 대적할 만한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헤일은 궐련을 앞니로 잘근잘근 짓이기며 나키나를 돌아봤다.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홀린 가문에서 왕당파를 발판으로 삼아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것처럼, 왕당파도 홀린 가문을 발치로 끌고 와 황궁과의 협상을 노린다? 이게 맞나요?’
‘과정은 어찌 될지 모르겠다만, 목적은 맞는다.’
‘저희는 어떻게 하면 좋나요, 대장?’
왕당파 간부의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여기서 홀린 부인을 순순히 넘겨주면 칼라마트 점령에 있어 협상 여지를 내어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불필요한 출혈을 제하고 순순히 성문을 열어 서로의 전쟁 피로를 덜 여지 말이다.
이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묻고 싶지만, 묻는 즉시 다니트 부인의 안위는 위험해진다.
“잠깐만.”
헤일과 나키나가 고민하여 머리를 굴리는 사이, 다니트 부인은 기류를 알아채고는 부채를 펼쳤다 접었다. 그 손짓은 마치 왕당파와 마법사들 간의 결탁을 끊어내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자꾸 나를 첩자라고 칭하는데, 굉장히 불쾌하네요. 대체 무기가 뭐 어쨌기에 이런 사달인지 들어나 봅시다.”
“무어라?”
“그 잘난 주둥이로 지껄여 보란 말이오.”
부인의 모르쇠 태도가 참으로 황당했다. 이미 카일라가 잡혀 있지 않나? 어떤 식으로 자백이 이루어졌을지 모를 일이거늘. 헤일과 나키나는 저것이 통할까 싶었지만, 간부 한 명의 눈매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다니트 부인. 뻔뻔스럽기가 아주 가증스럽습니다. 저 저급하고 부실한 무기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겁니까?”
“저급? 부실? 하! 웃기는 소리. 잊으셨나 모르겠는데, 바리엘에서 여기까지 무기를 운반한 건 왕당파 그대들의 부하입니다. 망할 것들이 전쟁터에 맨손으로 나갈 것을 구제해 주었더니, 뭐?”
스윽.
다니트는 바닥에 널브러진 검을 집어 들었다.
“물품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와 관련된 자들을 모두 색출하여 잘못을 명명백백 밝히는 게 우선 아닙니까? 나는 버고스와 10년을 거래했습니다. 장장 10년이요! 한데, 무기를 운반한 저자들은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
갑작스럽게 지목당한 보급 담당관이 화들짝 두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미친년이 주둥이 터는 겁니다.”
“모두 알고 있지 않나요? 군 내부에 보급품을 외부로 빼돌려 이득을 취하는 자가 있다는 걸요. 그것이 크든 작든 말입니다. 전시인 지금이야 군 전체 사기에 영향을 주기에 쉬쉬하며 넘어갔지만, 실제로 재작년에는 관련자가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 기억하실 터인데요? 칼라마트 성문에 걸렸던 시체 다섯 구를 말입니다.”
작게는 보급받은 물건을 팔아 집에 보태어 주거나, 외부인과 물물교환하여 필요한 것을 얻곤 하였다. 가족이 있는 병사라면 모두가 그러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궤짝 단위로 한 상자씩 물건을 빼돌려 이득을 취했는데, 다니트 부인의 말대로 그때 적발된 자들이 군법에 따라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홀린가의 무기를 뒤로 빼돌린 다음,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왔는지 모를 저급품으로 채웠을지 누가 압니까? 진정 그리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다니트 부인이 강경하게 나오자, 왕당파 귀족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연기는 그만하시오, 부인. 체면도 없군요. 애초에 보급 담당관이 손을 쓴 것이라면 그대들이 눈치채지 않았겠소? 맨 처음 칼라마트에 도착하여 품질을 검사한 자가 바로 그대와 그대의 딸임을 잊었소?”
“그때 우리가 확인한 무기는 분명히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리 말하는 것이지요. 마법부 대장, 이걸 내쳐주시오.”
다니트는 바닥에서 주워든 검을 헤일에게 건넸고, 어서 해보라는 듯 고갯짓했다. 헤일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벽에다 대고 검을 내려쳤다.
채앵! 쨍!
몇 번이고 세게 힘을 주었으나 검은 쉽게 부러지지 않았다. 저급 무기 사이에 극소량 섞여 있던 상급 무기였다. 다니트는 보란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와 딸아이가 확인한 무기는 분명히 상등품이었소.”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그 와중에 또 제대로 된 검을 발견했나 보군. 계속 발악해봤자 빠져나갈 수는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시지.”
“그래! 그리고 정녕 첩자질을 한 게 아니라면, 카일라는 어째서 도망간 것이겠는가?”
“시인했으니 그대도 속히 버고스 앞에 무릎 꿇어 사죄하라. 그리하면 옛정을 생각해 목숨만은 살려주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진 못해도, 놈들의 눈은 가릴 수 있다. 다니트는 부채를 시원하게 펼친 다음 바람을 살랑거리며 머리칼을 넘겨댔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시인했다고?”
“그래.”
“그럼 어디, 내 앞에 데려와서 보이시오.”
자백? 웃기지 말라 그러지. 카일라는 절대, 절대로 시인할 아이가 아니었다. 다니트는 잘 걸렸다는 듯 부채로 가리키며 일렀다.
“데려와서 카일라가 시인하는 걸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소. 그런 일이 없는데 대체 뭘 시인했다고 하는 건지, 원! 모함도 이런 모함이 없군!”
카일라를 눈앞으로 데리고 오면 모든 게 수월해진다. 안위 확인은 물론이고, 마법사를 통해 구출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 물론 마법사는 망설이고 있는 것 같긴 하다만, 저자들을 설득하는 건 자신 있다. 그러니 어서 내 눈앞에 딸아이를 보여라. 다니트는 눈빛을 번득이며 왕당파 간부들을 노려봤다.
그들은 부인의 속셈을 눈치챘는지, 서로 귓속말하며 무언가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크흠. 그리할 수는 없다.”
“어째서? 시인했다 하지 않았는가? 그대들이 증거도 없이 나를, 아니, 홀린 가문을 의심한다면 이는 사업권을 허락해준 황궁에도 결례를 범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상기해주지. 나는 방금 대제국 바리엘의 황제 폐하를 뵙고 오는 길이다.”
다니트가 당당히 소리치자, 왕당파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마법사들은 맨 처음 이른 대로 한마디도 첨언하지 않은 채 관망 중이다. 한데, 버고스가 모함을 일으켜 홀린 가문을 쳐내려 한다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면? 이를 황제가 어떤 식으로 해석하겠는가?
“고작 검 한 자루 가지고서 아주 요란하오, 부인.”
“억울하니 요란할 수밖에. 그러지 않으면 대체 누가 목소리를 들어준단 말인가?”
“저급 무기 중 정상적인 게 섞여 있긴 했나 보지. 하지만 이미 여기 있는 병사들 무기의 상당수에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칼라마트 성문 안쪽에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속속들이 들어오는 중간 보고에 따르면 다니트 부인, 벌써 천 자루가 넘어.”
헤일과 나키나가 부인을 힐끔거렸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다니트가 만들어가는 ‘판’이 꽤 유용해 보였다. 그러니까, 버고스 왕당파가 작정하고서 모함 중이라는 저 발언 말이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쓸모가 있다는 것이겠지.
‘우선 부인과 왕당파 귀족들을 함께 데리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안 님이 적당히 찜 쪄 먹을 것 같은데요.’
‘동감한다.’
왕당파의 반발 없이 다니트 부인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다니트 부인이 부채로 왕당파 간부를 가리켰다.
“천 자루가 넘는다고요?”
“그렇다. 이것도 발뺌할 수는 없겠지.”
“애초에 발뺌할 생각은 없습니다. 홀린 가문의 잘못으로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응당 대가를 치르는 게 맞지요.”
이것 봐라? 이건 또 무슨 수작인가? 왕당파 간부가 인상을 찌푸리자, 다니트 부인이 재빨리 덧붙여 소리쳤다.
“그게 ‘홀린 가문’에서 납품한 무기가 맞는다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홀린 가문은 독자적인 기술로 모든 무기를 손수 제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본다면 그것이 운송 과정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아니면 홀린 가문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확인 가능합니다.”
부인은 부채를 가볍게 돌리며 지시했다.
“전수조사 하겠습니다. 무기를 ‘모두 회수하여’ 다시 가져오세요. 그러면 제가 확인 후 책임지겠습니다. 왕당파, 그대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말입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