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12
제612화. 조율
다니트의 제안에 왕당파 간부 모두 어이없는 낯빛이 되었다. 전수조사라니? 그것도 무기 전체를? 당장 바리엘 대군이 코앞까지 쳐들어온 마당에, 무기를 회수하라는 말인가?
버고스 입장에서 이처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발언은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트 부인은 물러서지 않고서 계속 일관된 주장을 밀어붙였다.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뭐 이런-”
“제가 억지를 부린다고 하셨지요? 뻔뻔하다고? 이는 그쪽에 더 잘 어울리는 말일 것입니다. 무기에 문제가 있다면서 나와 딸아이를 위협하였지만, 정작 그 증거가 되는 물건은 내어줄 수 없다라? 그쪽이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십시오!”
물건에 문제가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이는 명백한 버고스의 모함이라 주장하겠다는 태도다.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더욱 답답한 것은 이를 적당히 파훼할 만한 명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다.
전수조사를 거절하면서도 홀린 가문의 배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길? 오직 하나였다.
‘카일라의 자백.’
관련자가 직접 이실직고하지 않는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왕당파 간부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무언가를 속닥거렸고, 다니트 부인은 긴장한 채로 그들을 노려봤다. 드레스 자락 사이로 숨겨진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궁지에 몰린 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유일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잠깐 실례하지.”
“거절합니다. 즉답을 내리십시오.”
왕당파가 자리를 비우려 하자 다니트가 부채를 들어 올리며 저지했다. 어딘가 감금되어 있는 카일라에게 가려는 게 분명했으니까. 자백을 받아내고자 딸아이에게 더욱 심한 고문을 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부인은 헤일과 나키나 쪽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
“대제국 바리엘의 마법사로서 발언해 주십시오. 여기서 카일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저 또한 이제껏 했던 발언을 모두 철회하겠습니다.”
전수조사. 왕당파 쪽이 받아들일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상대는 맨손으로 바리엘군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홀린 가문의 죄를 증명하지 못할 터. 이는 왕당파를 지원한 황궁의 배려를 모욕한 것과 같으니, 이 또한 성문을 부수고 들어갈 또 다른 명분이다.
헤일은 입에 문 궐련을 느릿느릿 씹었다. 꺼질락 말락 하는 촛불과도 같은 지금 상황을, 황제와 이안에게 온전히 가져가는 게 중요했다.
“왕당파 간부, 이름이?”
헤일은 개중 나이가 제일 많은 자에게 고갯짓하며 물었다.
“…호르헤.”
“호르헤. 좋다. 전수조사를 거절할 것이라면 카일라 영애를 무사히 돌려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바리엘을 침략자 취급한 것으로 받아들여 황제 폐하께 보고를 올리겠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무기를 내놓으라니!”
“누가 가져간다고 하였소? 물품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한 후 돌려줄 것이니, 걱정 따위 집어치우시오.”
“닥쳐라! 망할 것 같으니라고! 혓바닥을 놀릴수록 네년 딸아이의 비명이 짙어질 것이다.”
“어디 해봐!”
차근차근 받아치던 다니트가 바락 소리쳤다. 어찌나 크고 묵직한 경고이던지, 나키나가 흠칫 놀랄 정도였다.
다니트 부인은 살벌하게 호르헤를 노려봤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동공 역시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 한번 해보라고. 우리 애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렀다가는, 네놈의 사지를 찢어버릴 거니까. 궁금하지? 내가 진짜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다니트 부인이 왕당파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저 부채 든 여인에 불과하건만,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부인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난 이루고자 하는 걸 모두 이뤘어. 그건 너희들이 직접 눈으로 보았을 건데?”
“크, 크흑…….”
“카일라 데리고 와. 내 눈앞에, 당장.”
다니트 부인이 호르헤의 멱살을 붙잡으려고 하자, 사병들이 일제히 다가와 저지했고, 헤일과 나키나 역시 그들로부터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 가까이 붙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나키나의 눈동자가 금안으로 물들려는 순간이었다.
“늦다 싶어 와봤더니-”
분명 조용한 중얼거림이었으나,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기에는 충분했다. 이안이 창공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게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른 마법사에게 매달려 있는 베릭.
헤일과 나키나는 어서 오라는 듯 손짓했고, 왕당파 쪽은 새로운 마법사의 합류에 긴장하며 검을 다잡았다.
“송구합니다. 일이 좀 생겨서.”
“이안 님! 어서 와보세요. 여기 개판입니다.”
“어, 딱 그래 보인다! 다들 느려터져서는.”
“베릭! 개판이라고 너까지 개소리할 필요는 없어.”
처억. 나키나와 베릭이 가운뎃손가락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이안이 착지했다.
왕당파 간부들은 느닷없는 소년의 등장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헤일과 나키나가 존대하는 것으로 그의 정체를 짐작했다.
“…마, 마법부 장관이다.”
젠장! 마법부 장관까지 들이닥쳤으니 이제는 진짜 끝인가? 차라리 여기가 아니라 칼라마트 성문 안쪽에서 다니트를 기다릴 걸 그랬다.
“무슨 일인가?”
“아, 그게-”
헤일은 이안에게 귓속말을 속닥거리며 이제껏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전했다.
그러는 와중, 베릭은 어디 쓸 만한 상대가 있을까 싶어 버고스 장병들을 하나씩 훑으며 걸었고, 다니트는 흐트러진 옷매를 다잡았다.
“흐음.”
상황을 전해 들은 이안의 눈썹이 만족에 젖어 들썩였다. 다니트 부인의 예상 밖 변수였을 것인데, 주도권을 지키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안은 잘 알겠다는 듯, 그들에게 다가가 손짓했다. 무기를 모두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뭐, 뭐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하지만 장병들은 우물쭈물 왕당파 간부들의 눈치만 보았고, 베릭은 ‘이놈, 잘 걸렸다’며 바로 멱살 잡아채 박치기를 시전했다.
빠악!
“크허어억!”
“이안이가 무기 내려놓으라고 하잖아! 평화, 대화, 그리고 씨발, 합리적인 선택!”
단 한 방에 코가 으스러졌다. 몸집은 비슷해 보였는데, 타격에서 오는 힘의 차이가 확실했다. 성격이 개지랄 맞은 것으로 보아, 마검사인가? 지켜보는 모두가 그리 추측하며 잔뜩 움츠러들었다.
한편, 이안은 천천히 부인과 왕당파 사이를 거닐며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우선 현 상황은 잘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떠한 합의점에도 이르지 못할 것 같으니, 마법부 장관으로서 제안합니다. 먼저 왕당파.”
바리엘이 왕당파에 원하는 것은 딱 하나다.
복종과 협조.
수도인 칼라마트를 점령하고 있는 데다, 왕조의 정통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결집한 자들이었다. 이자들이 성문을 열어 바리엘에 우호적인 자세를 널리 보여준다면, 더욱 수월하게 문화적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을 터였다.
“자치권에 대해서는 황제 폐하께서 당장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십니다. 지난 10년간 바리엘의 지원을 받아 여기까지 왔으면서, 아기아르가 함락되니 바로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까? 이에 폐하가 안타까워하시니, 좀 더 지켜본 후에 결정하시겠다 하였습니다.”
“이보시게, 미안하지만 이제 버고스 국민들도 서서히 알아채고 있다네. 버고스의 내전이 진정으로 어디서부터 시작된 재앙이었는지!”
“그건 무능한 런크비스 왕조와 그를 보좌하였던 자들의 실책이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겝니까?”
북쪽과 남쪽의 내전을 바리엘이 조율하며 길게 끌고 갔던 것? 근본적인 원인은 나라를 망쳐버린 윗사람들에게 있지 않겠나? 이안이 의아하게 웃으며 되묻자, 왕당파들은 입매를 꾹 다물었다.
“아무튼, 현재 홀린가의 잘못이 명명백백 밝혀지지 않은 이상 카일라 영애의 구속은 상당히 과한 처사이고, 실수입니다. 무엇보다 그녀 또한 엄연한 제국민, 무고한 이를 증거도 없이 무단으로 억류할 수는 없겠지요.”
“원하는 게 무엇이오?”
“영애를 바리엘로 환송하시오. 그리하면 폐하께 말씀을 잘 드려보겠습니다.”
“카일라를 돌려주는 것이 황제의 마음을 돌릴 만큼 큰 가치를 지녔다는 말이오? 수많은 귀족 영애 중 한 명이올시다. 겁도 없이 타국에서 뒤통수나 쳐대는 것으로 보아, 성정 하나만큼은 특별한 것 같지만.”
“예, 물론 가치가 있지요.”
이안은 친절하게 덧붙여줬다.
“설마 자치권을, 바리엘과의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이 그대들에게 내어주길 바랐단 말입니까?”
런크비스의 피가 다니트와 카일라에게 흐르고 있지 않은가. 자치권을 허락한다 한들, 홀린 가문을 통하여 중재하는 쪽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걸 시사하는 말이었다.
그리 이르며, 이안은 다니트 부인을 돌아봤다.
“대신 부인께서는 카일라 영애를 되찾는 즉시, 의혹받은 무기에 대하여 소명하십시오. 황궁에서 허가한 사업에 문제가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시면 됩니다. 홀린 가문에서요.”
황궁에서 주도하여 모의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홀린 가문 홀로 짊어지고 갈 사안이라는 뜻이다.
이는 왕당파 쪽에 책잡히지 않으려는 황궁의 의지이자, 나아가 혹시 있을지 모를 변제 과정에서 황궁을 면책, 홀린 가문을 견제하려는 장치다. 런크비스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버고스 자치권의 중심이 된다면, 언젠가 바리엘의 영향력 밖으로 자라날 터이니.
‘가문을 팔아 변제하든, 아니면 홀린 가문에서 목숨 한두 개를 내어놓든.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하십시오. 런크비스 방계 혈통이라 하여 판에 초대해 주었으니, 알아서 살아남으셔야지요.’
다니트는 이안의 침묵에서 뜻을 읽어냈다. 어이없지만, 예상 못 했던 바는 아니었다. 황궁 족속들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카일라를 무사히 되찾는 것이고, 딸아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훗날의 위험은 감수할 수 있었다.
“책임지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서로 합의점에 이른 것 같은데. 아직 부족하십니까?”
이안이 호르헤를 바라보며 묻자, 그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만족스레 그의 어깨를 치며 격려했다.
“옳은 판단입니다. 수많은 버고스 국민들의 목숨이 바로 여기 달려 있음을 잊지 마세요. 그럼, 칼라마트 성곽 안쪽으로 전언하십시오. 오늘 중으로 바리엘군이 당도할 것이니, 황제 폐하를 영광스럽게 맞이하라고 말입니다. 참, 덧붙일 것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내전을 통해 버고스 정통성을 지킨 게 모두 바리엘의 지원 덕이었노라고, 버고스 국민들이 참담한 10년의 과정에서 그나마 먹고살았던 것 또한 바리엘 덕이었노라고, 왕당파가 정리하지 못한 북쪽의 반군 세력을 바리엘이 처치하였고, 다몬 런크비스를 이을 새로운 런크비스의 등장이 곧 있을 예정이노라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버고스 국민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것이고, 그 등 뒤에는 여전히 바리엘이 건재할 것이라고.
“아시겠습니까?”
이안의 물음에, 호르헤가 결정을 내렸다.
당장은 홀린 가문에 뒤처진 것 같지만, 황궁은 자신들에게 검을 쥐여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급 무기 납품 건이라는 무기 말이다.
자치권 일부가 홀린 쪽을 통해 왕당파로 넘어오면, 그때 저들을 솎아내면 된다. 런크비스의 핏줄이면서 왕당파에 부실 무기를 납품한 자들에게, 국민들이 환호할 일은 없을 터이니.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영애는?”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오두막이 하나 있습니다.”
다니트 부인은 그 말을 듣고서 곧장 말에 올라탔고, 헤일과 나키나는 먼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안은 호르헤에게 되물었다.
“영애의 상태는 괜찮은 것입니까?”
“…예, 뭐.”
“…그렇군요. 그대들은 서둘러 칼라마트 안쪽으로 전언하시오. 곧 황제 폐하께서 당도하실 것입니다.”
이안은 그리 이르며 모녀가 지냈던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카일라의 상태가 어떨지 짐작은 되었다만, 그것이 가져올 새로운 파란은 미처 짐작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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