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13
제613화. 카일라의 선택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헤일과 나키나는 어렵지 않게 오두막 한 채를 발견했다. 저택의 생필품을 모아두는 창고 같았는데, 앞을 지키고 있던 사병 대여섯이 인기척을 알아채곤 위쪽을 올려다봤다.
“카일라 영애가 이곳에 있나?”
“마, 마법사? 마법사가 여긴 왜-”
“그대들의 주인이 카일라 영애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곧 있으면 사람들이 도착할 터. 그 전에 영애의 몸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자 한다.”
헤일이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나키나는 성큼성큼 오두막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젖혔다. 썩은 나무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도 잠시, 그녀는 결박당한 채 구석에 쓰러져 있는 카일라를 발견했다.
“영애. 괜찮으십니까? 마법부 소속 나키나입니다.”
“으…….”
카일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신음만 흘려댔다. 검은색 머리칼이 끈적거렸다. 핏물이 굳어 엉킨 것이다. 다른 곳은? 피부는 온통 멍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살갗에는 날붙이에 베인 상처가 그득했다. 고문 흔적이다.
“영애, 정신 좀 차려보십시오. 일어날 수 있습니까?”
“…발목이 부러졌습니다.”
“발목이요? 어느 쪽이요?”
“두 쪽 다.”
나키나는 바짓단을 걷어냈고, 이내 놀라서 숨을 멈췄다. 발목이 기이한 각도로 돌아가 있었던 게다.
그때, 장병들이 짐을 챙기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고, 변명하듯 덧붙였다.
“아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두 번이나 도망치려고 해서, 크흠.”
“도망치면 부러뜨린다고 경고도 해줬어! 그렇지?”
“맞아. 근데 무시한 건 저쪽이라고. 별수 있나?”
“…아가리 싸물어.”
나키나가 입 닥치라 일갈하자, 그들은 연신 헛기침만 해대며 두 마법사의 눈치를 살폈다. 당최 위쪽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자백 못 받았으니, 질책하시려나?’
‘몰라. 마법사들이 왔으니까 바리엘 쪽이랑 뭔가 합의를 봤겠지. 설마 뭐라 하겠어?’
‘아이씨, 그러니까 내가 그랬잖아. 딱 봐도 독한 년 같으니까 살 찢고 베는 거로는 부족하다고.’
‘너 잘났다. 위에서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데, 그럼 뭐 어떡하리?’
장병들이 눈빛으로 욕을 주고받는 와중,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말을 타고 내달렸던 다니트 부인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안으로 달려오더니, 끔찍한 오두막 광경을 눈으로 담았다. 핏물이 흥건한 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날붙이, 그리고 나키나의 품에 안겨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딸…….
“카일라!”
“아…….”
다니트는 절규하듯 딸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놀란 카일라는 어미 품에 스르르 안겼고, 두 사람은 한참이나 그렇게 서로를 붙든 채 깊은 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다니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일라의 두 볼을 감싸며 물었다.
“…괜찮니?”
“예, 어머니. 괜찮아요.”
“정말로? 정말, 괜찮아?”
“네. 저 무사해요.”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카일라는 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트 부인은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다시 한번 딸아이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이내 뒤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장병들을 노려보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검을 집어 들려고 했다. 자신의 딸이 피를 보였으니, 놈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하겠노라고.
“어머니.”
하지만 그녀의 팔을 붙잡은 것은 카일라였다. 한 시라도 빠르게 오두막을 나가고 싶다 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며 속삭였다.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조금 복잡하게 되었다.”
“그렇습니까. 우선 나가요. 저, 조금 힘듭니다.”
다니트 부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더니, 검 대신 카일라의 손을 붙잡았다.
“마법사님. 부탁합니다.”
“예, 영애. 업히십시오. 바로 바리엘 진영으로 갈 것입니다. 치유 마법사가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면 됩니다. 헤일 대장!”
“그래. 먼저 가라. 난 여길 정리하마.”
“다니트 부인. 부인도 제 팔을 붙잡으세요.”
나키나가 모녀를 단단히 끌어안으며 하늘로 날아들자, 헤일은 뒤돌아 장병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머뭇머뭇, 두 손을 들어 보이며 항복의 뜻을 내비쳤다.
“저, 저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예, 뭐. 빌어먹고 사는 주제에 별수 있나요.”
“그, 그래도 솔직히 많이 봐줬습니다. 저 여자 잡을 때, 동료가 둘이나 죽었거든요. 예. 그런 것치고는 신사답게 대했지요. 어디 잘라먹은 것도 아니고…….”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헤일은 새 궐련을 꺼내 잇새로 물며 그들을 둘러봤다.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는 게다.
사내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만 긁적일 때,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여러 개 겹쳐 들려왔다.
타닥타닥!
히이잉!
왕당파에서 보낸 자들이다.
장병들은 화색을 띠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이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방금 마법사가 여자를-! 컥!”
“커헉! 끅!”
반가워하며 달려든 자들에게, 왕당파 병사들은 주저없이 검을 휘둘렀다. 홀린 가문의 죄를 명백히 밝힐 수 없는 지금, 영애를 고문했다는 사실 자체가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염려하여 꼬리 자르기를 행하는 것이다.
“마법사님. 괜찮으십니까? 악도나 다름없는 자들인지라, 정리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여긴 버고스 왕가의 소유지이니, 이제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영애를 보셨다면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마법사님의 상관이신 마법부 장관님도 돌아가셨습니다. 별다른 언질은 없으셨습니다.”
“실례합니다. 잠시.”
장병들은 피 분수가 터지는 목덜미를 움켜잡고서 앞으로 고꾸라졌고, 헤일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궐련 맛 떨어진다는 듯이.
* * *
“영애. 아- 해보십시오.”
바리엘 진영에 합류한 카일라 곁으로 치유 마법사 두 명과 군의관 서넛이 붙었다. 카일라가 입을 벌리자, 마법사가 안쓰러워하며 혀를 쯧쯧 차댔다.
“치아가 다 나갔네요. 둔기로 맞으셨습니까? 혀 안쪽에 상처도 심합니다.”
“복면 때문에 보진 못했습니다만…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시각은요?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을 번갈아 떠보십시오. 잘 보이십니까?”
“…오른쪽이 안 보입니다.”
평생 검을 가까이하며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카일라지만, 이번에 겪은 악몽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였고, 죽을 만큼 얻어맞았다. 치욕스럽고 무자비한 폭력은 그녀가 깨달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다니트 부인은 벽에 기대선 손끝만 딱딱 뜯어대며 딸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제가 마력을 넣을 터이니, 상처를 꿰매십시오, 오른팔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영애, 긴장하지 마세요. 마력이 고통을 잊게 해줄 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수십 차례 살이 찢어졌는데, 꿰매는 것 정도가 무엇 아프겠나. 카일라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럴수록 다니트 부인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지이잉. 지잉.
다행히 치료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장기 쪽 손상도 확인되었으나, 목숨이 위급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을 두고서 치료를 이어가면 될 터.
“…저기, 거의 마무리되었습니까?”
“예? 예예. 그렇습니다만, 더 불편한 곳 있으신지요?”
“죄송하지만, 잠시 어머니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습니다. 자리 좀 비켜주세요.”
카일라의 부탁에 마법사들과 군의관들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을 나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다니트는 침대에 누워 있는 딸아이 옆에 무릎 끓고는 눈높이를 맞췄다.
“무슨 일이니, 카일라?”
“어머니. 저, 드릴 말씀과 부탁이 있습니다.”
“뭐든지, 뭐든지 말하렴. 내가 다 들어주마. 너를 이렇게 만든 놈들은 사지를 찢어서 버고스 곳곳에 버려두마. 짐승들이 먹어 치워 없애도록, 내가 그렇게 하마.”
다니트는 카일라의 오른손을 붙잡고서 제 이마에 가져다 댔다. 복수를 맹세하듯 말이다.
카일라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뗐다.
“분명하게도, 저는 이번에 겪었던 일을 절대 잊지 못한 채 살아갈 것입니다. 마음 깊이 그들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았어요.”
“오, 카일라…….”
“저는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채 살아가고 싶지 않아요. 옭아매는 그 어떤 것도 없이, 저는 저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가르침이기도 했어요. 그렇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구나.”
“확신이 듭니다. 마음 깊이 자리한 두려움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증오하는 모든 것을 제 손으로 처단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요.”
증오의 대상이 과연, 자신에게 고통을 직접 가했던 오두막의 그자들일까? 아니었다. 그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던 왕당파의 간부들이 근원적인 지점이다.
“어머니, 저 바리엘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 남아서 왕당파를 몰살시키고, 저들에게 제가 겪었던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요. 나아가 저들이 존재하는 의의까지 파괴하고 싶습니다.”
다니트 부인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잠시 침묵했다. 카일라에게는 카일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았던가?
자신이 런크비스 방계의 자격을 앞세워 버고스의 중심이 되면, 카일라는 바리엘의 황후가 되어 두 나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될 터였다.
버고스에서나 바리엘에서나, 그 어느 때보다 빛날 홀린 가문의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거늘.
“카일라. 바리엘의 황후가 되어도 네가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단다.”
“아니요. 불가합니다. 바리엘의 황후는 버고스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들이 원하던 버고스의 주인 자리를 얻고, 저들이 원하던 버고스와 다른 방향의 미래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것이 저들을 진정으로 파괴하여, 제 마음속 두려움을 지우는 유일한 길입니다.”
단호했다. 어두컴컴한 오두막에서 수없이 많은 고통을 겪어내는 동안,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내용이었으니까.
다니트 부인은 착잡한 낯으로 이마를 짚었고, 뒤이어 두 눈을 감았다. 카일라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황후 자리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제 배로 낳은 딸아이가 더 있는 것도 아니고…….
“카일라. 지금은 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시간을 두고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떻겠니?”
다니트는 달래듯 딸아이의 머리칼을 매만졌고, 카일라는 그런 그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번복은 없다는 뜻이다. 이에 부인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럴 때 보면, 자신과 참 많이 닮아 있지 않나.
“저는 감정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뜨거워지든 식어 내리든, 제 선택에는 변함이 없어요.”
“하아. 너, 황제 폐하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였잖니. 버고스로 넘어와 이 위험을 겪은 건 단순히 홀린 가문을 살리고자 한 선택이 아니었어. 황후 자리를 떠올릴 때, 난 보았단다. 네 눈이 정말 아름답게 반짝이는 걸.”
다니트 부인의 끈질긴 설득에 카일라가 설핏 웃음을 터트렸다.
“예, 어머니. 그건 부정할 수 없겠지요. 저는 폐하를 흠모합니다. 그래서 위험을 선택했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자신이 선택했듯, 지금의 자신도 선택하려는 것이다. ‘지금’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저는 저를 더 사랑합니다. 폐하를 위하는 마음보다 저를 위하는 마음이 커요. 그러니, 바리엘 대신 버고스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