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15
제615화. 뜻밖의 접선
칼라마트 성안으로 들어선 바리엘 병사들이 고개를 높게 쳐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왕궁의 높이가 어마어마하지 않나. 마치 하늘에 닿으려는 듯, 가파른 경사 위에 웅장이 세워져 있었다. 외세의 침입은 물론이고, 국민의 발걸음조차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히이잉!
“밀어! 더 세게 밀어라!”
“짐을 조금 나눠서 올라가는 게 좋겠습니다!”
“뒤쪽에서 계속 올라오는 중이다! 멈추면 안 된다!”
왕궁으로 올라가는 길목. 병사들은 마차 뒤쪽을 받친 채 뻘뻘거리며 밀어댔다. 대체 버고스 왕궁은 물자 수급을 어떻게 한 것인가? 말 두 마리가 끄는 짐마차가 위태롭게 덜그덕거리며 한 걸음씩 움직였다.
“하아.”
“에이린, 괜찮아?”
“예, 버틸 만합니다.”
등으로 마차를 받치고 선 에이린이 발아래 펼쳐진 칼라마트 전경을 한눈에 담았다. 숨이 탁 트이는 것과 별개로, 감상은 한 마디로 충분했다.
‘척박해.’
바싹 말라버린 시커먼 넝쿨이 어지러이 얽혀 있는 것 같았다. 죽지는 않았으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생명의 기운. 처음 성문으로 들어섰을 때부터 느껴지던 게, 눈으로 보니 더욱 확연해졌다.
“다몬 새끼, 성격 지랄 맞다 싶더니… 이런 데 살아서 그렇네. 평소에 밖에 나오기나 해봤겠어?”
“아코렐라 대장, 그만 구시렁대고 힘 좀 더 써보십시오. 그쪽만 자꾸 기울잖아요.”
“마차가 무거운 걸 어떡해?”
“대장 마력으로 충분히 옮깁니다. 그걸 말이라고.”
“베릭! 베릭아! 고깃값 좀 해라! 저기 뭐 굴러간다!”
“내가 개새낀 줄 알아? 아래에 있는 놈이 주워 와!”
“떽! 어서!”
“어차피 아래쪽에 두는 물건들도 있잖아! 거기 끼워두라고 해!”
대형 마차와 중요 물품은 마법사와 마검사들이 옮기는 중이었다. 어째서 다니트 부인과 왕당파 간부들이 칼라마트 외곽지에 주둔지를 두었던 것인지 알 만했다. 마법사들이 아닌 이상, 오가는 길에 너무 많은 수고가 든다.
하늘에서 전체적인 대열을 확인하던 이안이 인기척에 고개를 틀었다. 왕궁 정문이 좌우로 활짝 열린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왕당파 간부들이 직접 마중 나와 바리엘 병사들을 맞이했다. 평지에 들어선 자들은 안도하며 땀을 닦아냈고, 고지를 눈앞에 둔 자들은 이를 꽉 깨물며 밧줄을 끌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올라오고 계십니다만, 그 전에 먼저 안쪽을 살피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황궁친위대, 앞으로.”
왕궁 내 구조 파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터. 이안의 손짓에 친위대원들이 발 빠르게 왕궁 안으로 들어섰다.
그중엔 베릭도 끼어 있었다.
“앗싸!”
“베릭, 이 미친놈아! 무거워!”
들고 있던 걸 내팽개치며 달려나가는 베릭에게, 온갖 핀잔이 쏟아졌다.
휘이익.
마법사들 또한 혹시 모를 함정이나 위험이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마검사들을 따라 날아들었다.
드넓은 연회장. 바닥과 벽, 천장 등이 모두 대리석이라 그런지 한기가 도는 느낌이다. 깔끔함을 넘어선 허전함. 어떠한 장식물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덧붙이자면, 내전 중에도 왕궁 보존은 잘 된 편입니다.”
왕당파의 수장, 호르헤가 덧붙였다. 약탈당한 것 없이 10년이라는 세월만 짊어졌다며 말이다. 이어서 그는, 텅 빈 곳에서 오는 미학은 런크비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취향이라고 덧붙였다.
이안은 벽면에 걸린 왕들의 초상화를 보며 천천히 걸었다. 맨 끝, 꽤 앳된 모습을 한 다몬 런크비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황제 폐하께서 도착하시면 주위를 잠시 정리했다가 회담을 소집할 것입니다.”
바리엘 마탑에서 보았던 다몬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이안은 초상화 속 오묘한 보랏빛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제일 먼저 의논될 사안은 마력석 유통 건에 관한 것입니다.”
“마력석 유통 말씀입니까?”
뜻밖의 사안에 호르헤가 되물었다.
바리엘이 버고스의 수도인 칼라마트를 무혈 점령했고, 모두가 새로이 세워질 왕조에 대하여 날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력석이라니? 대체 어째서 첫 회담 주제를 그것으로 잡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마법부 별채 건축 사업에 대해 아십니까?”
“예, 뭐.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황제가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법부 별채 건설을 주도한다는 소문은 들은 적 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듯 주워들은 불확실한 정보였다.
“황제 폐하는 물론이고, 마법부 장관인 저도 10년 가까이 매달려온 대업입니다. 그런데 버고스 내전으로 마력석 거래가 중단되어, 현재는 공사가 멈춘 상태지요.”
가만히 듣던 호르헤가 눈빛을 반짝였다. 지금 마법부 장관이 왕당파 쪽으로 유의미한 언질을 주고 있노라 여긴 것이다.
바리엘에서 버고스에 요구하는 그 첫 번째가 바로 마력석이라니. 호르헤는 잠시 고민하더니 일렀다.
“내전 탓에 채굴이 멈춘 탓도 있지만, 광산지 소유권에 대한 정립도 새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칼라마트 인근의 광산지는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장병들이 오갔으니 말입니다. 일단, 저희 쪽에서 광산지를 소유한 자들에게 언질해 놓겠습니다. 마력석이라…. 정확히 어떤 종류가 필요하십니까?”
“아코렐라.”
“네에! 네! 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아코렐라가 귀신같이 알아 듣고 곧장 날아왔다. 그러고는 품에서 서너 장 정도 되는 종이 뭉치를 꺼내 줄줄 읊기 시작했다.
“먼저 등급별로 간단히 이르자면, 상급 희소성 1종이 제일 급하긴 하거든요? 채굴 과정이 까다로워서 시간이 좀 걸리는 깜찍이라, 이쪽을 먼저 확인하는 게 좋겠네요. 이름은 에렉토시아 12.1이라고, 원래 12였는데 버고스에서 나오는 애들은 원래 애들보다 가열성이-”
“이리 주시게.”
호르헤는 아코렐라의 말이 길어질 것이라는 걸 예감했는지, 종이를 뺏어 들었다. 그러고는 마력석 명칭이 아닌, 매장지를 우선적으로 확인했다.
“중급 마력석 중 1종은 제 영지 내 매장되어 있군요.”
“그래요? 잘됐네! 당장 캐러 갑시다아!”
“그리고 상급 마력석은… 흐음.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현재 폐지(廢地) 상태로 방치되어 있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몇 년 전, 그쪽 인근에서 산사태가 났었는데 아직 복구하지 못했거든요.”
“회담 때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또 알아둘 것이 있습니까?”
아코렐라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러자 생기 넘쳤던 아코렐라의 눈빛이 점차 희번덕희번덕 변해갔다.
때아닌 극대노 신호에, 그녀의 부하들이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왔다. 혹여나 무슨 일 생기면 말려야 하니까.
“마력석 사안 외, 폐하께서 특별히 전하신 말씀은 없습니다. 회담 전에 정해지면 다시 일러드리지요.”
“예, 알겠습니다. 저희는 동관(東館)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니, 일이 있다면 그리 일러주십시오.”
“한데 말입니다.”
호르헤가 멈칫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칼라마트 주민들의 반발은 어떻습니까?”
“반발이요?”
이안의 물음에 호르헤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전에도 그러했듯,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영지에서 빌어먹고 사는 자들이 해일과도 같은 역사의 흐름에 어찌 관여할 수 있겠는가? 그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경 쓰실 일 없습니다. 그럼, 이만.”
스윽.
아코렐라는 여전히 반짝이는 눈으로 호르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후, 그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마자 잇새로 속삭였다.
“싸가지 밥 말아 처드셨네요. 그리고 좀 멍청한 듯요.”
바리엘이 버고스에 전쟁을 선포한 명분이 무엇이었는가? 반왕당파의 중심인 러더포드의 처단이다. 바리엘은 성공적으로 그걸 이루었고, 빠르게 북쪽 지대를 정리, 수도에 입성했다.
“북쪽의 반왕당파 잔당들을 어떻게 할 건지, 또 그로 인한 도적 떼 범람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회의하는 게 먼저 아닙니까? 그것까지 마무리해야 나라를 재건하든지 말든지 하지요. 등신.”
“러더포드 처단권에 대해 발언했던 것으로 보아 영 생각이 없는 자 같지는 않은데. 방금 말한 것으로 보면 구심점 없는 민중은 힘이 없다 여기는 듯싶다.”
“그래도요. 눈치도 드럽게 없고. 상사 없이 지낸 지 꽤 돼서 그런가?”
“아코렐라 대장도 이안 님 없을 때 저랬던 거 같은데.”
“콱 씨! 닥쳐라. 죽는다.”
다른 중요한 일을 제쳐두고서 마력석을 먼저 언급한 건, 어차피 그들이 죽어 없어질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매장지의 소유자나 채굴 현황 같은 건 간부들을 통해 파악하는 게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니까.
“이안 님,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말입니다. 차라리 저런 띨띨이가 버고스 왕이 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국경 맞대고 있는데, 훗날 버고스가 너무 커지면 문제 되잖아요.”
“그리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둔한 것도 정도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도, 상대도 모르는 자가 권력을 쥐면 도리어 피곤해지는 법.”
황제가 버고스를 떠나고 바리엘의 시선이 토올룬 쪽으로 올라가면, 저치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될 터. 차라리 처지를 잘 알며 바리엘에 가족을 두고 있는 홀린 가문이 적임자라는 판단이다.
이안은 무언가 더 있을까 싶어 서재 서랍을 하나씩 열어 살폈으나, 하나같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이안 님. 곧 황제 폐하께서 입궁하십니다.”
“알겠다. 마지막으로 점검하지. 왕궁 설계도는 받았는가?”
“예, 입궁하자마자 얻어 면밀히 살펴보았습니다. 문제없습니다.”
“두 조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라. 분명히 비밀 통로나 공간이 있을 것이다. 아코렐라는 주변을 정리하라.”
“알겠습니다아! 짜식들아, 일 잘하고 있어!”
“우우우. 대장은 그런 말 하시면 안 됩니다.”
곧 왕궁 안쪽으로 황제의 병사들이 밀려 들어왔다. 시아오시는 이안에게 가볍게 묵례했고, 이안은 수고하라는 듯 눈짓으로 그를 매만지며 스쳐 지나갔다.
타닥타닥!
이내 시아오시와 그 부하들은 왕당파 간부들이 주둔한 동관을 중심으로 내부 구조 파악에 나섰다.
“샅샅이 뒤져라.”
“예! 시아오시 님!”
분주히 움직이는 병사들 사이로, 시아오시는 천천히 응접실 쪽으로 걸었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히자, 소파에 앉아 궐련을 태우던 왕당파 간부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무, 무슨 일인가?”
“…….”
심하게 당황하는 것으로 보아, 바리엘과 관련된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시아오시는 응접실 안에 있는 사내들 얼굴을 재빨리 눈에 익혔다. 하나, 둘, 셋, 넷. 나머지는 어디 있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점검 중입니다. 송구했습니다.”
“크흠. 아니, 이보게. 여기에 숨겨둘 병력 따위가 어디 있다고, 원. 다음부터는 인기척 좀 내주게!”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잘은 모르네만 동관 어딘가에 계시겠지. 그나저나, 직책이 어떻게 되시는가?”
“…실례했습니다. 쉬십시오.”
“저, 저-!”
시아오시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문을 닫았다. 몇몇이 불쾌한 낯을 숨기지 않았지만, 뭐, 어쩔 방도가 없다.
“간부가 총 일곱이라고 들었는데, 셋이 보이지 않는다. 확인해라.”
“예, 시아오시 님.”
동관 어딘가에 있다고.
시아오시는 인기척을 찾아 동관 아래로 내려갔고, 이내 물자 옮기는 한 무리의 병사들을 발견했다. 막 그들을 지나치려는데-
“잠깐만요. 지나갈게요.”
클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클로이는 팔짱을 낀 채로 조심조심 몸을 틀어 비좁은 공간을 지나갔고, 그 의아한 몸짓이 시아오시의 시선을 꽉 잡아챘다.
이전부터 참 신경 쓰이는 자다. 시아오시는 바로 클로이의 뒤를 쫓았고, 오래지 않아 그녀가 누군가와 접선하는 걸 포착했다.
‘…저자는.’
“오! 뭐예요?”
“잠시, 저 좀…….”
“오케이! 난 언제나 도전 정신 있는 사람을 좋아해. 이쪽으로 와봐요.”
뜻밖에도 아코렐라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