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17
제617화. 일몰이 다가온다
“제국기는?”
“새로이 달았습니다. 폐하께서 입궁하시면 제일 높은 곳까지 올리겠습니다.”
“아직 올라오지 못한 물건이 있다면 서두르라. 곧 있으면 해가 질 것이니, 그 전에 마무리하는 게 좋다.”
“예, 이안 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차하면 저희가 직접 옮기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전서구도 확보했습니다. 버고스 왕궁에서 쓰던 것 같은데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이참에 로만드로 님께 서신 한 장 작성할까 하는데요.”
이안은 종이를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도 아닌, 버고스 수도의 왕궁이다. 황제의 입성은 종전과도 같은 의미였으니, 보다 확인하고 챙겨야 할 거리가 많았다.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의견을 듣던 도중, 저 멀리서 누군가 이안을 찾았다.
“저기, 이안 장관님 계십니까? 실례합니다.”
“여기 있다. 누구지?”
이안이 고개를 돌리자, 마법사들이 몸을 좌우로 비켜주며 길을 터주었다. 병사 한 명이 그 틈으로 다급히 뛰어왔다.
“제국방위부 시아오시 장교님의 전언입니다. 무, 문제가 생겨서 그러한데, 급히 와주시면 좋겠다 하십니다.”
“시아오시 경이? 지금?”
이안은 보고서를 덮으며 의아하게 되물었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왕궁 구조 파악과 왕당파 신병 확보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걸 보았지 않나? 그런데 문제 생길 것이 무엇 있지?
진은 아직 왕궁으로 들어서지 않았으니 그쪽과 관련된 사안은 아닐 것이고…….
“앞장서라.”
시아오시는 트웰러 장관의 직속 부하였다. 한데 그가 아닌 이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마법부와 얽힌 문제라는 게다.
이안이 병사에게 고갯짓하자, 마법사들이 따라붙으며 물었다.
“이안 님, 하면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라 이를까요?”
“그래. 도중에 문제 생기면 다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련지, 원.”
“어라, 저기…….”
이안을 포함하여 마법사들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별관으로 이어지는 바깥 복도의 기둥 하나가 박살 나 있었던 게다.
잔해 속 엎드려서 훌쩍이는 한 여인과, 그걸 난감한 낯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아오시. 그리고-
“아코렐라 대장?”
“대장! 거, 거기서 뭐 해요?”
“어? 다들 왔어? 허헛.”
당황스러운 웃음만 흘리는 아코렐라 대장이다.
마법사들은 본능적으로 저 미친 마법사가 무언가 사고 쳤다는 걸 알아챘다. 그들은 이안보다 먼저 달려가 그녀의 어깨와 멱살 따위를 붙잡았다. 아코렐라는 여전히 싱글생글, 웃기만 했다.
“아, 아니죠? 네?”
“데헷, 뭐가아?”
“제발 대장은 관련 없다고 말해줘요.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다고요!”
“어, 맞아. 사실 지나가는 길이었음.”
“거짓말! 으아악!”
“안 믿을 거면서 뭘 그렇게 말해달래? 웃겨.”
마법사들이 절규하며 아코렐라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동안, 이안은 엎드려 있는 여인을 살폈다. 난색만 보이던 시아오시가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했다.
“클로이 다비온 영애입니다. 아코렐라 대장과 모종의 거래를 한 듯한데,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클로이 다비온?”
“뭐라고요? 다비온 영애라고요?”
아코렐라를 쥐어뜯던 마법사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얽혀 있는 다비온이다. 바리엘에서 여기까지 물자 지원을 해주고 있는 그 다비온이라고!
“미친 마법사 같으니라고!”
“대장! 진짜 돌았습니까?”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먼저 하자고 한 거 아니다? 영애가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시니, 거절할 수 있나? 그래서 이렇게 각서까지 받았다고!”
“그래도요! 할 게 따로 있지요!”
아코렐라가 각서를 보여주며 항변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이때다 싶어 그녀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머리를 깨물며, 등짝을 때려댔다.
“영애, 괜찮으십니까?”
이안은 소란을 뒤로하고 먼저 클로이의 몸 상태를 살폈다. 엎드린 채 연신 훌쩍이는 클로이. 그녀가 고개를 슬쩍 돌려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
“많이 안 좋으신가요?”
“흐윽, 저, 어, 어떡해요.”
“자세한 증상을 말씀해주시면 치유 마법사들이 조치할 것입니다. 우선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클로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볍게 바닥을 내려쳤다. 토옥, 하는 아주 연약한 손짓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쩌억!
콰지지직!
대리석 바닥에 수 미터에 달하는 금이 그어지는 것 아닌가? 아코렐라가 그런 클로이의 모습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이내 환호했다.
“그렇지! 그거지!”
“대, 대장. 대체 뭐, 뭘 먹인 거예요?”
“와, 생각보다 효과가 훨씬 좋네. 클로이 영애, 한번 제자리에서 뛰어봐요. 신체 능력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한번 봅시다.”
“제발 입 좀 다물어요, 입, 입! 이놈의 주둥아리.”
“주둥아리? 뒤지고 싶어?”
“가만히 안 있으면 아코렐라 님이 뒤지실 겁니다.”
“눈치 챙겨요, 미친 대장아.”
마법사들이 아코렐라에게 속삭이며 이안 쪽을 쳐다봤다. 이안은 어떠한 변화도 없이 담담한 낯으로 클로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와 눈 마주친 아코렐라. 그녀는 흠칫 놀라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맞네. 지금 애들한테 쳐맞는 게 싸게 치이는 방법이다. 그녀는 허접한 복화술로 지시했다.
“더 때려. 나 더 때려.”
“때리는 건 둘째 치고 가만히 있어요, 좀.”
“이안 님! 미친 대장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아주 작살을 내버리겠습니다!”
이안은 대꾸 없이 클로이 영애만을 뚫어져라 살폈다. 그녀는 연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증얼거렸다.
“힘이 세지고 싶었던 건 맞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아까도 처음 물약 마시고… 가슴이 막 뛰면서 머리가 어지럽길래 기둥을 붙잡았거든요? 그, 그런데 갑자기 그게 부서지는 거예요…….”
“진정하십시오, 영애. 혼란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영애께 더욱 큰 피해가 올 수 있습니다.”
“그, 그럴게요. 일단 진정할게요. 근데 가슴이 자꾸 콩닥콩닥 뛰어서 주체를 못 하겠어요.”
“이 또한 부작용인가, 아코렐라?”
“아! 네! 사실대로 말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예상한 부분은 아니라서요.”
산산이 부서진 기둥과 쩌억 금이 간 바닥. 이안은 미간을 꾹꾹 눌러댔다. 영애가 원했다고 하니 나중에 다비온 쪽에서 이의 제기는 못 할 것 같다만, 이런 괴력의 소유자를 왕궁 안에 두는 건 위험했다. 혹여 이성을 잃고서 날뛰다가 성이라도 무너트리면 어찌하겠는가? 황제의 안위를 위하여, 클로이는 특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코렐라.”
“네, 이안 님!”
“그대가 저지른 일이니 그대가 수습하라. 당분간 클로이 다비온 영애 곁에서 함께하며 안전상의 문제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해.”
“물론입니다! 정량보다 적은 양이라 효과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수습할게요!”
안 그래도 가까이서 관찰‧기록할 생각이었는데 잘 됐지, 뭐! 아코렐라가 경례를 붙이며 웃자, 이안의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당장 한 소리 하고 싶다만, 부하들이 보고 있으니 참는다는 눈치다.
“영애,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장관님의 손을 다치게 하면 어쩌죠?”
“마력으로 보호할 것이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럼, 잠시…….”
지이이잉! 지잉!
클로이가 이안의 손을 잡고서 겨우 일어났다. 그렇게 겨우 한숨 돌리며 고개를 트는 순간, 시아오시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아!”
“왜 그러십니까?”
쿵쿵쿵. 클로이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슴 밑바닥부터 강하게 올라오는, 난생처음 느끼는 고통.
“심장이 너무 이상해요.”
“어떤 식으로요? 의사도 불러와라.”
“아, 네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쉬, 쉴 새 없이 울리는데… 간질간질한 느낌도 듭니다. 무엇보다, 이상하게 열이 올라요.”
“영애…….”
“네?”
“코피도 나십니다.”
주르륵. 오른쪽 콧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클로이는 손끝으로 콧등을 더듬거리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는 옆으로 쓰러졌다.
창피해서 기절한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물약의 부작용 중 하나라 생각할 뿐.
투욱.
이안이 왼팔을 붙잡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반대편에 서 있던 시아오시가 얼떨결에 덮쳐오는 영애의 몸을 그대로 받아냈다.
“아코렐라.”
“예, 이안 님!”
“영애를 별관으로 모셔라. 그리고 옆을 지켜. 곧 있으면 폐하가 입궁하실 것이니, 안전상 어떠한 문제도 있어서는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손 묶어놔도 됩니까?”
“알아서 판단해.”
“이안 님. 화났어요?”
“그것 또한 알아서 판단.”
이안은 그리 이르며 클로이를 넘겨주었고, 마법사들에게 눈짓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할 일을 하자는 신호다. 마법사들은 질겁하며 아코렐라에게 속삭였다.
“대장 큰일 났네요.”
“큰일은 무슨. 내가 알아서 판단하라시잖아. 나는 이안 님이 화 안 난 것으로 생각하겠어. 음하하핫!”
“세상 살기 편해서 좋겠다, 참.”
“가서 사고 치지 말고 가만있어요. 수습하고 갈게요.”
지이잉! 지잉!
아코렐라는 눈을 찡긋거리며 마법사들에게 어서 가라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고는 기절한 클로이를 마법으로 둥둥 띄워 옮겼다. 지나가던 병사들이 그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봤으나, 가까이 다가오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스윽.
복도에 홀로 남은 시아오시.
그는 시계를 확인하다가, 손등이 반짝이고 있음을 알아챘다. 문질러 보니 아직 축축했다. 아마도 클로이를 부축하다가 묻어난 눈물 자국인 듯싶었다.
“…….”
그는 말없이 소매를 당겨 손등을 고이 덮고는, 몸을 돌렸다. 사라진 왕당파 잔당들을 찾으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으니.
잠시 눈물을 뚝뚝 흘리는 클로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으나, 시아오시는 방금 일어난 소란 탓이라 치부하고 말았다.
* * *
“클로이 다비온 영애가?”
보고를 전달받은 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까맣게 잊고 있던 존재다. 조용히 있다 바리엘로 돌아갈 것이라 여겼는데, 갑작스레 폭탄과 같은 소식을 전해왔으니 놀라울 만하다. 그 내용 또한 경악스럽고.
“어쩌다가?”
“그대로 기절하는 바람에 자세한 경위는 듣지 못했지만, 아코렐라 대장에게 이르기를, 강한 힘을 원한다고 하였다 합니다. 아무래도 카일라 영애의 활약을 듣고서 다급했던 것 같습니다.”
“…어리석군.”
카일라가 황후 자리를 포기한다는 건 못 듣고, 버고스의 왕위를 노린다는 것만 들었나? 가만히 있었다면 반사이익으로 기회가 갔을 터인데, 애꿎은 소란을 만들어 제 무덤 판 꼴이다.
“마침 잘 되었군. 물약 효과가 사라지면 다비온가에 연락하여 영애를 데리고 가라 일러라.”
홀린 가문이 경쟁에서 발 빼면 다비온 쪽에서 득세할 것이라 고민 많았는데, 이렇게 사고를 쳐주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진의 명령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코렐라 대장이 수습할 일이라, 보고가 올라오는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저녁 만찬은?”
“준비되었습니다. 여덟 시에, 세 명을 제외한 왕당파 간부들 전원이 모일 것입니다.”
“세 명?”
“예, 눈치채고 도망친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인 불가합니다만,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아오시 경이 계속해서 추적하고 있습니다. 마력석 관리 사안만 의견을 나누시면, 그가 밤중 어둠을 틈타 처리할 것입니다.”
“알겠다. 수고하였어. 물러나도록.”
“쉬십시오, 폐하.”
이안은 진에게 고개를 숙인 다음, 복도로 나왔다. 바리엘보다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나라다. 이제 겨우 여섯 시를 지나가는데,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타닥타닥!
“이안 님, 이안 님!”
“아코렐라.”
그때, 아코렐라가 복도 끝에서 절뚝거리며 빠르게 달려왔다. 설마 또 무슨 일을 벌인 건가? 이안이 의아한 낯으로 눈매를 날카롭게 하자, 아코렐라가 더듬거리며 내질렀다.
“사, 사랑!”
“……?”
“사랑인 것 같습니다.”
“……!”
그러자 마법사들이 입을 떡 벌리며 굳어버렸다. 아코렐라가 지금 뭐라고? 사랑? 이안 님을? 그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꺄아아악!”
“안 돼요오오! 미쳤나 봐, 진짜!”
“며칠 전에 먹은 물약 부작용이 분명합니다. 아코렐라 님. 그냥 나가서 뒤지십시오.”
“아니, 미친놈들아! 나 말고! 클로이 영애!”
“예?”
아코렐라가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덧붙였다.
“클로이 영애,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