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19
제619화. 피의 연회
쿠웅! 쿵! 쿵!
만찬을 앞두고서 포도주 따르던 마법사들이 멈칫거렸다. 성 아래에서 무언가 크고 강한 울림이 들려온 것이다. 이안 역시 느꼈는지 헤일에게 고갯짓했고, 그는 품에서 궐련을 꺼내 물며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이에 마법사들은 건포도를 입에 톡톡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래?”
“그러게. 수납장 엎어지는 소리 같은데.”
“참나, 그게 여기까지 어떻게 들려?”
“그렇겠지? 집어서 던지는 거면 몰라도.”
끼이익!
그때, 연회장 입구가 좌우로 젖혀졌다. 다니트 홀린 부인이 도착한 것이다. 그사이 말끔하게 올린 머리칼과 깔끔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모습이다. 카일라는 당연히 몸 상태가 좋지 못하여 함께하지 못했다.
“어서 오십시오, 부인.”
“이안 장관님. 먼저 와 계셨군요.”
“물론입니다. 폐하께서 함께하실 자리이니, 부족한 점이 없는지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이안은 싱긋 웃으며 부인에게 식전주를 건네주었다. 황제가 만찬을 즐기는 자리이니, 혹시 모를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함을 이르는 것이다.
실제로, 마법사들이 건포도를 까먹으며 시시덕거리는 것 같아도 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금안으로 바뀐 상태였다.
“크흠.”
이어서 왕당파가 도착했다. 중추인 호르헤를 선두로 하여 그 뒤를 따라 간부들이 들어왔다. 다니트 부인은 인사하지 않은 채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고, 왕당파도 애써 말 붙이지 않으며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
연회장엔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마법사들은 시선만 주고받으며 눈썹을 까딱거렸고, 다니트와 호르헤는 적대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으며 날을 세워댔다.
한쪽은 제 딸아이를 사지로 내몬 자였고, 한쪽은 뒤통수를 거하게 친 배신자이지 않나? 서로의 살기로 인해 공기가 차가웠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모두 일어나십시오.”
황제의 입장.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진이 모두에게 손짓하며 자리에 앉으라 일렀다. 그제야 맞물렸던 살기가 겨우 풀어지며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기념비적인 밤이오. 다니트 홀린 부인, 그리고 호르헤 경. 우선 식사하도록 하지.”
“예, 폐하. 말씀하신 것과 같이 참으로 역사적인 밤입니다. 대제국 바리엘의 황제 폐하께서 버고스 왕궁에 드신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지 않습니까.”
“다 그대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진이 겉치레로 대충 대꾸했다.
바리엘 처지에서 보자면 참으로 다행인 일이지만, 저들은 결과적으로 제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었다. 적군에게 성문을 열어주고, 권력을 위해 적군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행색이었으니. 자신이 만약 다몬이었으면, 바리엘보다 저치들을 더욱 용서하지 않았으리라.
“폐하.”
호르헤는 진의 심기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하여, 식전주로 입 축이는 진 앞에 고이 접은 종이를 내밀었다.
“아까 마법부 장관이 전언한 내용의 답입니다. 마력석 공급에 대해 우려하고 계시다고요.”
“알겠지만, 내전으로 인해 폐쇄된 광산이 하나가 아니지 않나. 황궁에서 건설 중인 마법부 별채가 있는데, 공급이 중단된 지 벌써 수년째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광산 활성화를 바리엘이 도맡아서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 ‘좋겠는데’지, 사실상 광산 전부를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하나 새 왕조를 개창할 수만 있다면 그깟 광산이 문제겠는가? 호르헤는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요 광산 위치는 총 세 곳으로 추렸습니다. 그중 마법부가 가장 원하는 건 이쯤에 있고요. 에렉토시아라는 상급 마력석이지요.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알아본 바로는 역시 산사태 피해가 여전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입구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라 합니다. 대략적인 위치는 있지만, 잔해를 파헤치며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골치 좀 아프겠군. 일반인을 인력으로 사용하면 만만찮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마력석 광산이니 마법부에서 인력을 차출해야 할 것이었다. 안 그래도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이지만, 마법부 별채 관련 건이라 방도가 없다.
“가는 애들 고생 좀 하겠는데?”
“그러니까. 매몰지 파는 일인 데다, 아코렐라 대장이 감독할 거 아녀. 돌아버리지. 난 절대 안 가고 싶다.”
“그게 마음대로 되면 걱정도 안 해요.”
마법사들은 곧 다가올 극한의 외근을 감지하곤 속닥거렸다.
“그리고 제 영지에 중급 마력석이 있습니다. 나머지 마력석들은 굳이 버고스가 아니더라도 수급하시는 데 문제없을 만한 것들이지만, 원하신다면 채굴권을 내어드리겠습니다. 다행히도, 모두 여기 모인 자들의 영지 내 광산들입니다.”
호르헤의 말에 왕당파 간부들이 희게 웃음을 흘렸다. 우연의 일치? 절대 그럴 리 없었다. 광산이 들어가 있는 요지는 모두 왕당파 간부가 나눠 먹었던 것이니까.
이를 아는 다니트 부인이 눈을 흘기며 입가를 비릿하게 비틀었다.
“호르헤 경.”
“예, 폐하.”
“그대는 자식이 있는가?”
“자식이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호르헤가 멈칫거렸다. 그건 왜 물으시는가? 당최 짐작조차 안 되지만, 호르헤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이 있습니다.”
“그렇군. 그대들은?”
“아, 여기 남작 제외 모두 기혼자입니다. 자식도 있고요.”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후사를 두고 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안이 냅킨으로 입가를 툭툭 두드렸다. 진은 핏물이 잔뜩 묻은 나이프를 옆으로 치워 두더니, 웃으며 왕당파에게 제안했다.
“광산 채굴권을 바리엘에 넘겨준다 해도, 바리엘 인력들이 그 지역에 들어가 먹고 일하며 일생의 꽤 긴 시간을 바치게 될 것이다. 동의하는가?”
“예? 아, 예예. 그렇겠지요.”
“하여, 나는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싶어. 그대들의 영지 일부분을 떼어내어 내어주면 의식주를 모두 간단히 해결할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나?”
광산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영지 자체를 통으로 넘기라는 말이었다.
겉으로는 상당히 가벼운 제안처럼 느껴졌지만, 이는 보이지 않은 칼을 품고 있었다. 빈틈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망설임 없이 목을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
“폐하. 그 일에 대해 논의하기 전, 먼저 나눌 사안이 있습니다.”
호르헤는 당황해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며 덧붙였다. 그의 시선은 다니트 부인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새로운 왕조의 주인이 누가 되는지에 따라 왕당파가 선택할 길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버고스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만 있다면 그깟 영지 몇 토막이 대수겠나? 미련 없이 모두 넘겨주고, 그들은 칼라마트 인근의 노른자 땅만을 소유하면 될 일.
“왜 나에게 고갯짓하십니까?”
“다니트 부인은 바리엘에서 내어준 무기 사업권으로 버고스와 거래를 텄지만, 저급 무기를 납품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내전 중 저희는 버고스 왕조의 존립을 위해 부단히 싸워왔기에, 이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폐하.”
다니트 부인의 단독 행동으로 인지하겠다는 일종의 통보였다. 왕당파는 바리엘에 어떠한 이의 제기도 하지 않을 터이니, 홀린 가문만 꺾을 수 있게 허락해달라 읍소하는 것이다.
올 것이 왔다는 듯, 다니트 부인은 포도주로 입술을 축인 다음 되받아쳤다.
“저급 무기에 대해 소명한 것 하나 없으면서, 끝까지 억지를 부리십니다. 전수조사 하자는 제안도 거절하였으면서 대체 무엇을 근거로 홀린 가문을 몰아가십니까? 폐하. 이는 홀린 가문에 대한 모욕이자, 공식적으로 사업권을 내어준 황궁에도 불경한 태도입니다.”
“황제 폐하가 계십니다. 험한 말 하게 하지 마십시오, 부인. 우리는 지금 참고 있어요.”
“저를 위해 참는 것입니까? 본인들을 위해 참고 있는 거면서, 허튼소리 마십시오.”
“이보세요, 부인!”
“그만.”
진이 더는 듣기 싫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결정 난 사안이거늘, 앞에서 시끄럽게 논쟁할 의미가 있는가?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고, 진이 냅킨을 내려놓으며 일어났다.
“왕당파가 먼저 작성하라. 채굴권 양도와 영지 헌납에 동의한다고.”
“하지만, 폐하!”
“피를 보이지 않아서 모르는가? 그대들은 항복한 입장이다. 무언가를 받기 전에 먼저 내어놓는 것이 마땅한 일임을 잊지 말게.”
진이 단호하게 일갈하자, 호르헤가 난감하다는 듯이 멈칫거렸다. 하지만 황제의 태도는 분명했고, 연회장 안을 가득 채운 금안의 마법사들이 호르헤와 왕당파를 압박하고 있었다.
고민하는 것도 잠시, 호르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종이와 펜, 잉크를 그 앞에 내려놓았다.
슥슥.
연회장엔 종이 긁는 펜촉 소리만이 기분 좋게 울렸다. 진은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는 것을 보고서 말없이 등을 돌렸고, 이안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
이에 호르헤와 왕당파가 어리둥절한 낯으로 앞과 뒤를 번갈아 살폈다.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폐, 폐하?”
“잠시 실례하지.”
복도로 나온 진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인영과 마주했다. 시아오시였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눈빛은 형형했으며, 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시아오시, 준비는?”
“되었습니다. 별관에 있던 왕당파 병력들 모두 제압, 처리했습니다.”
“고생했다. 마무리 짓자.”
“예, 폐하.”
진이 시아오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했다.
“왕당파가 쓴 서신은 다니트 부인이 보관할 것이다.”
“인지하고 있겠습니다.”
왕당파를 처단한 건 대외적으로 홀린 가문이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짊어지고 감당할 무게였고, 바리엘이 홀린을 앞세워 버고스에 말을 세워두는 이유였으니.
나중에 왕당파의 혈족이 채굴권 양도 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홀린 가문이 나서서 서류를 들이밀 것이다.
타닥타닥!
시아오시의 눈짓에, 병사들이 연회장과 이어진 복도로 줄지어 달려갔다.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등불이 하나씩 꺼졌고, 이내 안쪽은 어둠과 적막으로 물들었다.
“끝나면 보고하겠습니다.”
시아오시 또한 그 말을 남긴 채 부하들을 뒤따랐다.
그때, 저 멀리, 헤일이 아코렐라와 함께 모습을 보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코렐라의 목덜미를 꽉 붙든 헤일의 등장이다.
“이안 님. 아래층 소란 원인, 확인했습니다. 아코렐라 대장이 자리 비운 사이, 클로이 영애가 지하로 내려간 것으로 파악됩니다. 사라진 왕당파 잔당들을 모두 색출하여 처단했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진동이었습니다.”
이안은 반파된 기둥과 금 간 대리석 바닥을 떠올렸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클로이 영애가 엮인 것이라면 이해된다.
“아, 폐하. 그리고 하나 알아두실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클로이 영애의 부작용 중 하나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시아오시 경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아코렐라 대장이 보고하더군요.”
“뭐라고?”
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보자, 아코렐라가 눈을 반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으로 가득 찬 낯빛이다.
“부작용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합니다. 클로이 영애, 시아오시 경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제가! 해냈답니다!”
진은 방금 막 뒤쪽으로 사라진 시아오시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이 인상을 풀지 않자, 이안이 덧붙였다.
“당장 클로이 영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부작용치고는 다행입니다. 다비온가에서도 무어라 말할 게 안 될 일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무엇보다 클로이 영애의 마음이 시아오시에게 있다면, 폐하께도 도움 되지요.”
다비온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벌였던가? 하지만 시아오시와 클로이가 엮인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힘의 흡수로 이어질 것이다.
“…별론데.”
하지만 진은 팔짱만 낀 채 중얼거렸다. 어렸을 적 이안 경에게 혼담이 들어왔을 때와 굉장히 유사한 기분이다. 클로이 다비온? 아름답긴 하나, 글쎄.
“모르겠다.”
“폐하, 정확히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코렐라는 황제의 분위기를 가만 살피다가 조심히 끼어들었다.
“그, 폐하. 영애가 굉장히 바리엘에 도움 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더라고요. 혹여 그런 게 좀 그렇다 하시면, 광산에 가보라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저도 갈 거고요. 영애, 아주 힘이 남아돌아서 큰 도움 될 것 같은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