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2
제62화. 기회를 노리다
“오늘따라 저택이 분주하네요. 무슨 일 있습니까?”
나무를 팔러온 나무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자문관의 부하는 돈 계산을 하던 와중, 슬쩍 시선을 들어 그를 쳐다봤다.
“아니. 평소랑 똑같은데.”
“그렇습니까? 하하…….”
거짓말. 나무꾼은 어색하게 웃으며 코를 긁적거렸다. 전 백작이 죽고 나서는 사용인 수가 확 줄어들어 저택은 언제나 조용했다. 자문관과 그 일행이 합류한 이후에도 저택 불이 모두 켜진 날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뭐가 좀 달랐다.
“이건 좀 젖었는데?”
“새벽이슬에 젖은 것입니다. 이런 건 아침 해 뜨면 바로 마릅니다.”
“다 해서 동화 세 닢.”
“감사합니다.”
부하는 영수증을 끊듯 뭔가를 적더니, 주머니에서 동화 세 닢을 꺼내주었다. 나무꾼이 꾸벅 인사하고 나가려는 참이었다.
“잠깐.”
“네?”
“시간 좀 있나? 지금 정원 정비를 하고 있는데, 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나무가 있어. 오래된 거면 내버려 두고, 아니면 베려고 하네만.”
“아아. 그럼요. 맡겨만 주십쇼!”
“따라오게.”
부하의 말에 나무꾼이 주머니를 매만졌다. 바로 내려가서 술 한잔하려고 했는데, 뭐. 상관없겠지. 오히려 수고비를 더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저택이 정신없었구나.’
어쩐지. 평소에는 있나 싶을 정도로 안 보이던 사용인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라.
나무꾼은 부하의 뒤를 따라 저택을 끼고 돌았다. 잡초에서 잔디로 바뀌는 바닥. 일평생 브라츠에서 살았지만, 이 경계를 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쪽이네.”
‘헉!’
나무꾼은 꺾어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정원에 숨을 들이켰다. 꽃과 수풀, 나무 따위가 아름답게 어우러졌을 거라 예상했던 것이 단박에 부서졌다.
농장을 차린 것처럼 일렬로 쭉 심겨 있는 풀떼기.
굴라 모집 때 한몫 톡톡히 챙긴 나무꾼은 그게 뭔지 바로 알아챘다.
‘…굴라를 기르고 있잖아? 그것도 온실까지 세워서.’
진짜다. 시중에서 나도는 소문들이 진짜였다. 부하가 종이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뭣하나?”
“아. 죄, 죄송합니다. 어떤 나무죠?”
“이걸세.”
나무꾼은 부하의 질문에 상세히 대답하면서도, 뒤쪽 굴라 밭에 정신이 뺏겨있었다. 한편, 복도에서 창문으로 그걸 내려다보던 이안이 물었다.
“몇 명이지?”
“식료품 떼오는 상인들 다섯에, 나무꾼은 두 명째고, 의상실이랑 저기… 어디더라? 아무튼, 뭐 열 명은 넉넉히 보고 갔지.”
“식량 보급은?”
“말한 대로 줄였어. 절반으로.”
“수고했다.”
오찬에서 이안이 말했던 보급 방법은 두 가지였다.
소문을 이용하는 것.
그리고 허술한 경비를 세워두는 것.
귀한 걸 탐내는 인간의 욕심을 자극하는 게 핵심이었다. 나눠 주던 보급까지 줄였으니, 굴라에 대한 갈망은 더욱 짙어지게 될 터.
“이제 대충 어중이떠중이 하나 세워두면 되나?”
“아니. 로만드로의 부하들에게 불침번을 서가며 지키라 해. 완벽하게 무장을 한 채로.”
저번에 말했던 것과 조금 다른 지시였다. 정원을 내려다보던 베릭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으나, 이안은 그 시선을 느끼며 웃을 뿐이다.
“다른 영지나 중앙에서는 그런 방법을 써도 된다. 하지만 여기는 아직 공식 집권자가 없는 빈 영지지. 도둑과 약탈이 횡횡하게 되면 그건 곧 치안으로 직결되며 저들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그건 곧 영지의 질을 떨어트리는 것과 같아.”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특히 저택이 털리면 그자들은 도둑질을 쉬이 생각하여 제 이웃의 집 역시 드나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떡하라고? 진짜 구경만 시키게?”
“베릭. 네 걱정이나 하거라. 당분간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까.”
“엥? 나? 나는 왜?”
베릭의 물음에 이안은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톡톡, 창문을 두드리고 집무실로 올라갔다.
* * *
“이쪽이 맞나?”
“맞는다니까!”
“자네 목소리 좀 죽이게. 경비 오겠어!”
새벽의 어둠을 틈타 저택으로 접근하는 두 남자.
보급이 줄어 먹을 게 똑 떨어진 마당에 저택에는 굴라 천지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어둠을 틈타 숨어들 수밖에.
“끄응.”
“아이고, 더럽게 무거워라.”
“빨리 좀 올려봐.”
높다란 저택 담을 겨우겨우 넘은 도둑들. 듣기로는 건물 안쪽이 아니라 바깥 정원에 굴라 밭이 있다 하였다. 귀한 것이니 몇 개만 훔쳐 중앙으로 나르더라도,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낼 수 있으리라.
“여, 여기인가?”
도둑들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정원 쪽을 살폈다. 온통 어두컴컴하지만, 바닥에 뭔가가 잔뜩 심겨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조심스럽게 서리를 시작했다.
“세상 참, 이게 금덩어리인 줄도 모르고 저택에 갖다 바쳤다니. 쯧쯧.”
“입 좀 닥치고 담게나.”
“한 자루 더 들고 올 걸 그랬어.”
속닥속닥, 도둑들이 낄낄대며 굴라를 뽑아내는 동안, 로만드로의 부하들은 한숨을 내쉬며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한 놈 잡아서 지하 감옥에 처넣고 오는 길인데, 나오니까 또 잡것들이 있네?
“어이-!”
“히이익!”
“으아아악!”
부하가 담뱃불을 붙이며 소리치자, 도둑들은 기겁하며 뒤집혔다. 굴라를 공중으로 던지며 정원을 내달렸다.
“어딜 가? 사람들 다 깨겠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누가 들으면 내가 침입한 줄 알겠어?”
하지만 어쩌겠는가? 얼마 못 가 목덜미가 붙잡힌 도둑들은 무릎 꿇고서 미친 듯이 손을 빌어댔다. 부하 둘이 밧줄로 도둑 팔을 묶고 있을 때였다.
“다들 고생이 많군.”
“아. 이안 님.”
이안이 베릭과 함께 후드를 걸친 채로 나타났다. 도둑들은 딸꾹질해 대며 그를 올려다봤다. 어둠에도 가려지지 않는 저 금안은 무엇인가?
“도둑질하러 온 것인가?”
“아, 저기 그게…….”
“잘못했습니다! 밥! 밥 빌어먹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것이…….”
이안은 도둑들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조금 기다릴 것이지. 어찌 그러하였나.”
“네?”
“이자들을 지하 감옥에 가두어라.”
“네. 이안 님. 오늘도 호위는 따로 안 가십니까?”
“그래. 베릭 하나면 충분하다.”
이안과 저택의 부하들은 당최 알 수 없는 대화만 나누었다. 어리둥절한 도둑이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는 동안, 이안은 베릭과 함께 저택 정문을 나섰다.
벌써 이틀째 이어지는 외출이었다.
“하아암.”
“낮잠 좀 자두라니까.”
베릭은 대답 대신 등에 진 굴라 자루를 두드렸다. 이안 만큼이나 저도 바빴다는 걸 티 내는 것이다.
잠시 후, 둘이 도착한 곳은 외곽의 민가였다.
“저쪽 집이 다둥이네라던데.”
“그래? 그러면 저쪽 먼저 가지.”
어둑한 시간인지라, 불을 꺼져있었다. 이안은 마당으로 들어서서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두드렸다.
똑똑.
“있는가?”
반응이 없자, 다시 한번.
똑똑.
“좀 나와 보시게나.”
그러자 창문으로 희미한 불빛이 켜졌다. 이내 푹 잠긴 목소리의 남자가 물어왔다.
“뉘시오?”
“이안일세.”
“…누구?”
“이안.”
끼이익.
비몽사몽 한 터라,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나 보다. 문 열리는 속도가 한참이나 늦다. 끔뻑끔뻑, 이안을 보던 남자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움찔거렸다.
“이안 님?”
“쉬이. 자식들 깨겠네.”
“어, 어쩐 일이십니까?”
그는 이안을 알고 있었으나, 이안이 그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그저 평범한 영지민이었으니까. 친분 없는 자가 자식들을 논하니 놀랄 수밖에.
“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러니 자연스럽게 불안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남자의 얼굴이 두려움이 얼핏 지나자, 이안은 말없이 베릭의 포댓자루를 헤집었다.
스윽.
“무, 무엇입니까?”
“굴라일세.”
“네?”
굴라 씨앗 한 자루였다.
“소문처럼 명약은 아니지만, 자문관님이 즐겨 드시는 것도 사실이고 맛과 영양이 좋은 것도 사실이네. 지금은 엄격하게 저택에서 통제하고 있지만 내 곧 이것을 영지에 자유로이 풀 것일세. 자문관님께 계속 건의하고 있어. 그때까지 잘 버티고, 혹여 이웃이 원한다면 넉넉히 베풀게나.”
“이, 이안 님!”
“자식이 다둥이라 하여 먼저 내주는 것일세. 그대 말고 갈 집이 산더미이니 오래 못 있겠어. 씨앗만 먹는 것은 알고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영지에서 이제 그것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요.”
“맛만 조금 보고 나머지는 심게나. 씨앗 하나에서 열 개 이상의 굴라가 난다네.”
이게 무슨 오밤중의 선물이란 말인가! 남자는 감격해서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이안이 어깨를 툭툭 치며 마당을 나서자, 따라 나와 연신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옆집 다 깨겠어.”
흡! 이안의 말에 남자는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이안이 사라지자,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렴풋했던 등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이안. 너는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너를 잘 알겠는데. 당장이라도 눕고 싶다는 표정이구나.”
베릭은 피곤하다는 듯 눈가를 매만졌다. 굴라 나눠주는 것 따위를 오밤중에, 그것도 직접 이리 돌아다니며 하다니. 이안은 베릭이 이해 못 하는 것을 이해했다.
“황궁 사자들이 굴라를 독식하고 재배하는 동안, 보급품은 줄어들지, 당장 겨울의 혹독함을 걱정하는 밤이었을 게다. 그런데 내가 이리 굴라를 나눠주면 그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겠느냐?”
신이 보내준 은총이라 느껴지겠지. 그렇다면 이내 감사를 느낄 것이고, 그것은 곧 이안에 대한 지지를 가져오게 될 터다.
“아아아. 피곤하다구.”
“어서 움직이거라. 다음은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원래 소문은 애들이 잘 내거든.”
다둥이네 집처럼 홀로 사는 주택도 있지만, 이안의 어미 필리아가 살았던 사창가 밀집 구역은 그 경계가 모호했다.
“무슨 일이야? 밤에 잠도 안 자니?”
“엄마, 엄마. 이안 님이 왔다는데?”
“뭐? 이안이 왜?”
“굴라를 나눠주신대! 굴라!”
낮과 밤이 바뀌어 사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른 곳보다 훨씬 시끌벅적했다. 이안은 가져온 굴라를 나눠주며 아이들에게 한껏 경고하듯 속삭였다.
“브라츠 사람들 먹기에도 모자란 것이니 외지인에게는 절대 주면 안 된다. 알겠지?”
“네! 저 지금 먹어도 돼요?”
“나도 먹을래!”
“그래. 줄을 서거라. 더 주마.”
이안은 굴라를 타가는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이안과 베릭을 은밀히 따라붙던 한 남자.
스윽.
남자는 새벽달이 질 때, 그들이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시간 차를 두고서 그 역시 저택으로 들어갔는데, 당도한 곳은 별채의 몰린 일행 방이었다.
끼익.
“왔는가?”
“그래.”
남자는 드고르였다. 그는 후드를 침대에 벗어던지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기다린 맥이 채근했다.
“밤중에 나가서 무얼 하던가?”
“굴라를 나눠주더군. 그것도 아주 대놓고.”
“뭐?”
드고르의 말에 맥이 와인을 홀짝거렸다. 창가에 앉아 있던 몰린 역시 웃음을 흘렸다.
“그놈 참…. 맹랑한 구석이 있다.”
분명 로만드로는 굴라의 발견에 이안의 이름을 빼놓지 않았을 것이다. 황궁의 치하는 치하대로 다 챙기고, 영지 영지민들의 지지도 역시 빠짐없이 챙기는 행태라.
“보아하니 당분간 새벽에 베릭과 둘이서만 나설 것 같습니다.”
드고르의 말에 몰린이 푹 꺼진 눈을 돌렸다. 어둠을 틈타 이안의 목을 노리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