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20
제621화. 가이아 정세
“로만드로 님.”
“커헉.”
마법사의 부름에 로만드로가 몸을 움찔거렸다. 볼에 선명히 찍혀 있는 잉크 자국으로 보아, 꽤 오랜 시간 존 게 분명했다.
마법사는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살펴보며 보고서를 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벌써 며칠째 집에 안 들어가셨잖아요. 앉아서 졸지 마시고, 당직실이라도 가서 주무십시오. 그러다 허리 나가요.”
“어어, 아니. 되었어. 또 조금 있으면 잠 깨.”
“비비안나 님도 걱정 많으신 것 같던데.”
“괜찮대도. 보고서는 뭐지? 필리아 님 관련된 것인가?”
로만드로는 소매 끝으로 눈가를 슥슥 문지르더니, 마법사의 손에서 보고서를 가져왔다.
필리아가 사라지고 난 이후, 마법부는 비공식적으로 비상사태였다. 바리엘 제국 마법부 장관의 친모이자, 히엘로령의 안주인이지 않나?
특히 로만드로는 그날 자신이 조금만 더 조심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여기며, 자책감을 떨치지 못했다.
“아, 네. 국경수비대에서 보내온 소식인데요. 아스타나의 카티마코가 막 입국했답니다. 필리아 님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바리엘 중앙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이안 님께 보낸 전서구가 무사히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국경수비대? 허어, 그쪽에서 다른 말은 없고?”
“예. 여인이라면 외형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살펴보고 있다 하는데, 감감무소식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미 국경선을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이리 단서가 없을 수는 없지요.”
“그래.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네만…….”
“혹시 몰라서 그러신 것이지요?”
로만드로가 울상인 채로 웃자, 마법사도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무사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점차 시간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절망에 다다르기 전, 서둘러 작은 단서라도 찾는 게 믿음을 지키는 길이었다. 필리아를 위해서, 그리고 나아가 이안과 바리엘을 위해서 말이다. 전쟁을 주도하는 이안에게 조금의 혼란이라도 가해지는 걸 막는 게 그들의 사명이다.
‘반면, 필리아 님을 데려간 놈들은 그걸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로만드로가 머리칼을 이리저리 헝클이자,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마법부 직원이었다.
“실례합니다, 마법사님. 아스타나 지원군 소식 들으셨습니까?”
“어, 방금. 카티마코 님 말하는 거지? 안 그래도 로만드로 님께 보고 올렸다.”
“마중 나가시나요?”
“가면 좋긴 한데, 지금 마법부에 마법사가 딱 두 명밖에 없어서 자리 못 비울 것 같은데. 왜?”
“안 그래도 외교부에서 공문 내려왔습니다. 현재 하완국과 루스웨나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해서요.”
올 것이 왔구나. 로만드로는 공문을 재빨리 살피며 내용을 파악했다. 하완국의 수상이 드디어 반란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황제와 바리엘군이 버고스에 가 있는 동안엔 루스웨나 쪽을 견제할 수 없는지라, 클리포포드와 하완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하완에서 치열한 내전이 일어나고 있다 합니다.”
“참나, 바리엘 오른쪽 왼쪽으로 아주 난리구먼.”
“루스웨나의 참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외교부도 주목하고 있다 하는데요.”
“하완의 수상이 권력을 쥐게 되면 그쪽 인근 나라는 모두 바리엘과 길을 함께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루스웨나 혼자선 상대할 수 없겠지요. 버고스도 저리된 마당에.”
“예, 참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문제는 시기인데, 루스웨나가 하완국의 내전에 참전하면 클리포포드도 북쪽으로 치고 올라갈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마법사는 수도에 남아 황궁을 지키라, 이 말이군.”
하완, 루스웨나, 클리포포드. 이자들이 지지고 볶는 동안 바리엘은 텅 빈 황궁을 품에 안은 채로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여차했다간 바리엘도 개입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토올룬으로 가려는 바리엘 본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카티마코 님의 동행으로 추정되는 자들의 인적 사항입니다. 아스타나 출신들로, 마법부에서 확인해달라고 하시던데요.”
“아까 명단은 받았는데, 또?”
“뒷장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허, 잠깐만.”
마법사는 대수롭지 않게 뒷장을 넘기다가 멈칫거렸다. 그러고는 참으로 놀랍다는 듯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로만드로는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길게 빼내어 문서를 훔쳐봤다.
“아스타나 출신 외 다른 한 명이 섞여 있네요.”
“어디 출신지인데?”
“미상입니다. 북쪽 소수민족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스타나와 긴밀히 교류하는 자인가 봅니다. 기억을 읽는 능력을 지녔다 적혀 있어요.”
“기억을 읽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어디 보자…. ‘특정 공간에서의 시간 흐름을 읽어낸다’고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아하! 필리아 님이 사라진 날짜는 분명하게 알고 있으니, 로만드로 님 저택 주위를 수색하다 보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겠는데요?”
마법사가 용하다는 뜻으로 연신 감탄했다. 술사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어디서 저런 자들을 찾아 데려오는지 모르겠다. 맨 처음 카티마코만 바리엘에 들어선다고 하였을 때, 솔직히 그가 무엇을 어쩔 수 있겠나 싶은 마음이었건만. 이리 데려온 자를 보아하니 이안이 사람을 제대로 본 것 같다.
“아, 이러면 마중 가고 싶어지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포탈 열 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할 만하지요. 문제는 제가 그걸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고요.”
“흐음. 아코렐라 대장이 두고 간 건 없나?”
“마력증폭제요? 있긴 있어요. 저기, 실험실에 한가득 쌓여 있지요. 그런데 전부 예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마음 놓고 사용하기엔 불안정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최신 것 또한 불안정하긴 마찬가지지만.
마법사는 턱 밑을 살살 긁더니, 이내 생각을 바로 고쳤다. 별다른 수가 있나? 지금으로서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도 마시는 게 낫겠지요? 필리아 님 흔적 빨리 찾으려면. 그리고 어차피 시간 끌면 끌수록 더 못 나갈 겁니다.”
“응.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리하는 게 좋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 잠깐 다녀올게요. 로만드로 님, 쉬고 계시라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되면 그것도 안 되겠네요. 죄송하지만 대기해 주십시오.”
“물론이지!”
로만드로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새로운 편지지를 꺼냈다. 마법부에 황궁 현 상황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애틋한 인사말을 적어 내렸다.
* * *
“…이안 장관님. 여기는 마법부입니다. 모두 잘 지내고 계십니까?”
헤일은 로만드로가 보낸 서신의 첫 문장을 소리내어 읽고는, 고개를 들어 마법사들을 돌아봤다. 꾀죄죄하지만, 그래도 왕궁에서 며칠 보냈다고 다들 때깔이 좋다.
마법사들이 집무실 곳곳에 자유로이 퍼질러 누운 채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럼요, 잘 지내고 있지요.”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뭐. 전쟁 통에 이 정도면 호사 아니겠습니까?”
“아아, 쉬는 시간 10분 남았뜨아.”
“로만드로 님은 잘 지내신대요? 보고서라 그런 말은 없으려나?”
이안은 펜대를 계속 움직이며 헤일을 쳐다봤다. 계속 읽으라는 눈짓이다.
헤일은 마른 궐련을 잇새로 붙든 채, 전언했다.
“현재 하완에서 수상을 중심으로 반란, 내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클리포포드와 루스웨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이에 관한 보고는 계속 올리겠다고 하네요. 중요 사안이라 행정부에서도 황제 폐하께 따로 전서구를 보낸다 합니다.”
“하완 수상이라면, 샤티마 말씀입니까?”
“거의 유배 형식으로 바리엘 왔다가 간신히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내전이라. 대단하군요.”
“살기 위해서지. 살기 위해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안이 되물었다.
“에리카 언급은 없나?”
“네. 황궁조사단 출신 버티 에리카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없습니다.”
헤일은 글자를 꼼꼼하게 살피며 그에 관한 전언이 없다는 걸 재차 확인했다. 사달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그런 것 같다.
사실 하완의 내전 소식도 하완에서 공식으로 발표한 게 아니라, 클리포포드를 비롯해 바리엘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보였으니까.
“그리고-”
헤일은 뒷장을 넘기며 말끝을 흐렸다. 마법사들이 무슨 문제 있는가 싶어 그를 쳐다봤다.
“카티마코와 그 일행이 중앙에 당도하여 필리아 님 실종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합니다.”
“그래요? 뭐래요?”
“근데 조사를 뭐 어떻게 하는데요?”
“무생물의 기억을 읽는 술사라 합니다. 로만드로 님 저택 인근을 조사한 결과, 멀지 않은 골목길에서 인형술사의 습격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합니다.”
인형술사의 습격. 어렴풋이 예상은 했다만, 실제로 듣는 충격은 또 다른 것이었다.
마법사들이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고, 보고서를 작성하던 이안이 펜을 내려놓았다.
“습격?”
“필리아 님이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하는군요. 현재 카티마코 일행이 행적을 뒤쫓으며 계속 조사하고 있다 전언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빨라도 결국은 뒤를 쫓는 것이기에,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합니다. 다음 장은 필리아 님을 납치한 자의 초상화입니다.”
그 말에 마법사들이 벌떡 일어나 헤일 옆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누구의 것처럼 일차원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아니었다. 길쭉길쭉한 얼굴이 인상적인지라, 여차하면 지나가다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형술사면 토올룬 아닙니까. 이거 바로 항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법부 장관 어머니를 납치했는데! 의도가 훤합니다!”
“맞습니다! 생긴 것도 지랄 맞게 생겼네요!”
“바리엘에서는 수배령 내린다고 하나요?”
“신원 파악에 나섰다고, 로만드로 님이 덧붙이셨다.”
이안 또한 초상화를 가만 들여다보더니, 헤일에게 다시 돌려주며 명령했다.
“칼라마트 내의 화가들을 모두 불러 모아 복사하도록 하라. 버고스 북쪽 지대를 중심으로 수배령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필리아 초상화도 함께.”
“예, 알겠습니다.”
토올룬 출신인 게 확실해졌고, 그들의 목적지 또한 토올룬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 인근에 수배를 내리면 어떤 정보가 걸려들지 모른다.
이안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로만드로의 서신을 건네받아 살폈다.
“왜 그러십니까?”
“그 내용이 없군.”
“어떤…….”
“네르사른.”
아내인 필리아가 사라진 것을 알고 있다면 필시 중앙으로 올라왔을 터인데, 그에 관한 언급이 없다.
하완에서 내전이 터진 이상,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메렐로프와 히엘로가 바리엘 국경 수비를 담당하게 될 터인데. 이런 상황에서 천려가 자리를 비우고 중앙으로 올라오면 일에 차질이 생긴다.
‘설마, 로엘인가?’
로엘이 어미의 실종을 알리지 말아달라 부탁한 것이라면, 일리 있다.
하지만 이것도 무기한은 아니다. 필리아에게 연락이 계속 닿지 않으면, 결국 네르사른이 직접 움직일 것이다. 하완에서 터지는 폭발을 뒤로 한 채.
“황궁이 아닌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의 이름으로, 토올룬에 전서를 보내겠다.”
톡톡, 이안은 서신 준비를 해달라는 듯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렸고, 이내 한참이나 고민했다.
‘토올룬이라.’
외교적으로 인연이 엮여 있지 않은 나라다. 맨 처음 물꼬를 트는 것인 만큼 상당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안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보내는 이 서신이, 바리엘과 토올룬 사이의 격전 시작이 되리라는 것을. 그러니 명분을 먼저 쌓는 게 중요했다.
-안녕하십니까. 대제국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입니다. 갑작스러운 서신, 송구합니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최대한 애매모호하고 중의적인 문장을 골라 적어 내렸다.
-현재 토올룬 출신의 신원 미상인 자가 바리엘에서 소란을 일으켰고, 현재 생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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