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25
제625화. 절단귀를 찾아서
“어서 오십시오.”
토올룬 수도의 고급 호텔 [랑데르>.
지배인이 손수 문을 열어주며 손님들을 빠르게 살폈다. 중후한 멋이 배어 있는 셔츠 깃. 고풍스럽지만 꽤 낡은 것으로 보아, 현직에서 활동하는 자는 아닌 듯싶다.
지배인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뒤따라오는 자들을 연이어 살폈다. 흠, 수중에 하인들이 별로 없군.
“방이 있나?”
“물론입니다. 어떤 방을 원하십니까?”
“깔끔하고 깨끗한 방으로 세 개. 될 수 있으면 1층. 딸아이 몸이 불편해서.”
“아, 그러시군요. 신분증 좀 부탁드립니다.”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딸아인가 보다. 몸이 불편한 것치고는 자세가 굉장히 올바른데? 지배인이 그리 생각하며 신분증을 살피려 하자, 옆의 아이가 여인의 손을 맞잡으며 한쪽으로 안내했다.
“누이. 옆에 장식물이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눈이 안 보이는구나. 쯧쯧. 젊어 보이는데 어쩌다 저리됐을까.
지배인은 신분증에 찍혀 있는 국경수비대 인장을 확인했다. 분류 번호가 009-11…. 바리엘 출신 몰락 귀족이라는 뜻이다. 지배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사내에게 열쇠를 건넸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옮겨드릴 짐은 있으실까요?”
“아니. 마차째로 맡기었으니 되었소.”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토올룬은 처음이시고요?”
세 가족을 따르는 붉은 머리칼의 검사.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눈에 힘 딱 주고서 인상을 찌푸려댔다. 지배인은 모퉁이를 돈 다음 복도를 가리켰다.
“여기 방 세 개를 자유롭게 쓰시면 됩니다. 청소, 목욕, 식사 등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 저기.”
“예, 선생님.”
사내는 품에서 금화 한 닢을 꺼내어 팁으로 건네주었다. 몰락 귀족이라도 역시 귀족은 귀족이로구나. 지배인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금화를 받았다.
“딸아이 때문에 그런데, 혹시 옆에서 계속 시중들 여인이 있을까?”
“하루 종일 말씀이십니까? 송구하지만 당장은 사람이 없습니다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하네. 될 수 있으면 바리엘어에 능통했으면 좋겠어. 딸아이가 가이아 공용어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반대쪽 객실은 모두 비어 있답니다.”
“고맙네.”
지배인이 인사를 하고 물러나자, 바르사베가 비틀비틀 걸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서둘러 굽 높은 구두를 벗어 던졌다.
“와, 이거 살인 무기 아닙니까.”
“맞네. 발 냄새 개오짐.”
“까분다. 발 씻기라고 명령하기 전에 닥쳐.”
헤일도 겉옷을 가볍게 풀어 헤치며 주위를 둘러봤다. 날씨가 생각보다 습하고 더웠다.
반면, 이안은 단추 하나 풀지 않은 채 벽간을 어루만지며 마법을 시전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끔 하는 주문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부터 움직이도록 하지. 헤일 대장은 왕궁 정보 쪽으로 접근하고, 나와 베릭 그리고 바르사베가 노예 시장 쪽을 수소문하도록 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왕궁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돈, 그저 돈을 많이 쓰기만 하면 된다. 초호화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고, 커피를 마신 다음, 가볍게 카드 게임 두어 판 즐기면 자연스레 옆에서 대화하고 있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곳의 지출 수준을 고려한다면 그는 필시 왕궁 관계자거나 토올룬을 경로로 삼은 상단주 또는 타국 귀족들일 터. 그 누가 되었든 정보를 얻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호강하겠네. 좋겠수다, 대장. 나도 그쪽으로 가면 안 되나? 혼자 움직이면 좀 그렇잖아? 명색이 귀족인데.”
“시종 하나는 따로 사서 둘 것이다. 베릭, 너와 나 그리고 바르사베는 왕궁 관계자들 눈에 띄면 좋지 않아. 토올룬 왕은 이미 바르사베의 눈으로 그날 많은 것을 보았다.”
특히 황궁친위대인 두 사람은 외형적으로도 개성이 있었고, 이안이야 워낙 눈에 띄는 외모 아니던가.
바르사베는 짓눌린 발을 이리저리 돌리며 덧붙였다.
“그리고 솔직히 네가 거기 어울릴 수준은 아니잖아? 노예 시장 쪽이 잘 어울리지.”
“반박할 수는 없는데 좀 재수 없네.”
“바르사베, 혹여 지배인이 바리엘어 가능한 시종을 데리고 온다면?”
이안이 드디어 겉옷을 벗었다. 그가 시험하듯 묻자, 바르사베가 자세를 바로 한 다음 대답했다. 이미 모든 상황에 대한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꼬투리를 잡아서 돌려보냅니다. 노예 쪽으로 유도하도록요.”
자유민 신분의 시종으로는 바르사베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인식을 주면, 자연스레 노예 상인을 소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똑똑.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네 사람이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르사베는 후다닥 구두를 구겨 신고서 소파로 이동했고, 헤일은 그 맞은편에 앉아 궐련을 꺼내 물었다.
베릭이 멀뚱멀뚱 서 있자, 이안이 눈짓했다. 문 안 열고 뭐 하냐는 듯.
“아, 맞다. 내가 따까리였지. 누구쇼!”
“실례합니다. 지배인입니다.”
“들어오시게.”
지배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 방금 수소문했는데, 바리엘어 사용 가능한 시종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토올룬은 바리엘과 교류가 거의 없어서요.”
“오래 걸리는가?”
오히려 좋다. 헤일이 수염을 슥슥 문지르며 묻자, 지배인은 송구스럽다며 허리를 굽혔다.
“예, 그래서 사실 자금에 여유가 되신다면 노예상이라도 소개해드릴까 했습니다만-”
했습니다만? 네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그게, 오늘 왕궁에서 노예 시장을 폐쇄했습니다.”
“폐쇄? 왕궁에서? 대체 무엇 때문에?”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심각한 건 아니라서요. 저도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왕궁으로 들어가야 할 노예 하나가 도적 떼에 의해 강탈당했다고 하더군요. 근데 그게 시장 물건으로 나오는 바람에 회수한다고 임시 조치한 것 같습니다.”
헤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안을 주시했다. 왕궁, 도적 떼의 습격, 노예? 필리아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상당했다. 헤일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갔다.
“귀한 물건인가 보군. 도적 떼가 감히 왕궁 물건을 탐내고.”
“예,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소문은 들었는데, 도적 떼도 모르고서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버젓이 시장에 내어놓을 수 없지요.”
“그럼 왕궁이 도적 떼를 소탕하려는 것인가?”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절단귀라고, 도적 떼가 일대에서 유명한 놈들이라서 말입니다. 괜히 소탕한답시고 뒤집어 잡으면 서로 피해가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말만 들으면 악명이 높아 보여.”
“하핫. 예, 그렇지요, 뭐. 떠돌이 용병들이 모인 집단이긴 하나 실력이 하나같이 뛰어난지라 다들 꺼립니다. 그리고 또 경우가 막 없는 놈들은 아니라서요. 돈만 합당하게 쥐여주면 일 처리도 깔끔하다 들었습니다.”
“그래? 주둔지가 따로 있나?”
“아니요. 그걸 알면 왕궁에서도 시장 폐쇄 안 했겠지요. 찾아내려면 시간 좀 걸릴 것입니다. 절단귀 놈들도 몸 사리면서 상황 보겠지요. 아무튼, 그래서 시종을 구하는 데는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상황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지.”
티잉!
헤일은 다시 금화 한 닢을 지배인에게 튕겨주며 덧붙였다.
“내일까지는 푹 쉬고 싶어서. 시종들도 들지 말라 전하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노예 시장이 멀리 있나? 보다시피 나는 호위가 하나인데.”
“조금 가깝습니다만, 걱정하실 것 하나 없습니다. 여기 [랑데르>는 토올룬 최고의 경비를 자랑하니까요. 감히 장담하겠습니다. 그저 푹 쉬십시오.”
그거면 되었다 헤일이 손짓하자, 지배인이 허리를 깊게 숙이고는 물러났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헤일, 베릭, 바르사베가 짐 가방에서 단검을 챙겨 허리에 묶었다.
“이안 님. 지금이 적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회인 건 분명합니다. 필리아 님을 데리고 있는 건 절단귀라는 도적 떼, 왕궁보다 먼저 찾아내면 필리아 님을 안전히 구할 수 있습니다.”
“예, 그리고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필리아 님을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라면 관리에도 신경 썼을 것입니다. 필리아 님, 무사하실 확률이 높습니다.”
“시발, 잘됐네. 나 여기 더워서 별로였는데.”
노예 시장 거래가 막혔다고 하니, 절단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두 개였다. 왕궁으로 넘기든, 아니면 다른 나라로 가 거래를 하든.
어느 쪽이든 돈 되는 쪽을 선택할 것 같은데, 필리아가 이안의 어미인 것을 알게 되면 당연지사 값어치는 후자가 더 높다.
‘하지만 왕궁과 척지게 될 경우 감내해야 할 수고비까지 생각하면, 적당한 선에서 필리아를 왕궁에 넘길 수도 있다. 요지는, 왕궁과 도적 떼 사이의 거래를 끊어내는 것. 당장 대금을 지불할 우리가 토올룬에 와 있다는 걸, 왕궁 몰래 접선해서 알리는 수밖에 없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낯선 남의 나라에서 왕궁보다 발 빠르게 수색, 도적들을 찾아야 한다니.
“노예 시장 거래 막은 걸로 봐선 합의가 쉽지 않았던 것 같긴 합니다.”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 왕궁에서는 빼앗긴 것이니 되찾으려 할 것이고, 도적들은 제값을 받고자 할 터. 돈만 보고 움직인다면 필리아를 바리엘로 보내는 게 이득인데, 그러기에는 왕궁의 압박이 너무 거센 것이겠지.”
이안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이었는데, 침묵을 느낀 바르사베가 발언했다.
“이안 님. 사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있습니다.”
“무엇이지?”
“절단귀 놈들은 전부 용병 출신이고, 희생자의 귀를 잘라 간다는 것이요. 그거, 지하 격투장 애들 사이에 있는 관습 같은데 말입니다.”
용병 출신이니 먹고 살기 위해 지하 격투장으로 흘러 들어 갔었던 건 자연스러운 흐름. 참가자들의 돈이 걸려 있는 경기들인지라, 선수들은 죽음을 불사하며 싸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경기에서 진 자들은 일종의 ‘표식’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것이었다.
“귀는 아물기만 하면 격투에 지장 없는 부위라서 많이들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쪽부터 시작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잘 찾아보면 놈들과 연 있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듯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헤일과 바르사베가 방 안의 촛불을 모두 불어 껐다.
“위치는 내가 물어올게. 주인 놈들 다 잔다고, 격투장 좀 보고 오겠다 하면 되겠지?”
“밖에서 만나자.”
“오케이. 내 로브도 챙겨.”
드르륵!
베릭이 나가자, 세 사람은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창밖을 살폈다.
인기척이 드물어지자, 베릭이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신호했다. 그들은 곧장 창문을 넘어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타닥타닥!
“명심해라. 소란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정체가 들켜서도 아니 된다.”
“예, 이안 님.”
“그런데 베릭 놈이 앞장서는 거 맞습니까?”
“위치 내가 알고 있으니까! 왜? 불만 있냐?”
“당연하지. 너 오른쪽 왼쪽 구분도 잘 못 하잖아.”
“아니거든!”
“쉬잇. 베릭, 지배인이 무어라 일러주던가?”
“나가서 왼쪽 골목으로 쭉 간 다음에 잡화점 나오면 그거 끼고서 쭉 가라고.”
그의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멍청아. 우리 오른쪽 골목으로 왔잖아.”
“엥?”
배릭이 오른쪽, 왼쪽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멈추어 서자, 헤일이 말없이 그의 멱살을 붙들고는 질질 끌며 움직였다.
시간이 없었다. 어둠은 짧고, 알아낼 것들은 많았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