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26
제626화. 어둠 속 전투
“가자! 이번엔 크게 걸었다고!”
“짜식아, 거기서 원투! 원투! 답답하네, 정말!”
“오늘 밤. 무패 연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페르도리안 시합이 열립니다. 지금 게임에 참가하면 수수료 없어요. 참고로 현재 모인 금액은 금화 여든일곱 닢하고 은화 다섯 닢입니다.”
“오랜만에 많이 모였네. 이봐, 나도 걸게.”
“간만에 큰 경기 아닙니까. 여기요. 감사합니다.”
“이겨라! 이겨라! 지면 내가 너 죽인다!”
“와아아! 찢어! 귀를 찢어!”
비린내와 정체 모를 악취가 진동하는 지하의 격투장. 이안과 세 사람은 후드를 단단히 뒤집어쓰고서 아래를 훑어봤다.
지하 2층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정식 경기가 열리는 무대는 오로지 하나. 그 외에는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경계를 만드는 것으로 길바닥 무대가 세워졌다.
퍼어억! 퍼억!
“좋아,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무릎으로 찍어!”
“정신 차려, 너한테 내가 얼마를 걸었는데!”
군중 속에는 웃옷을 헐벗은 자들이 땀과 피로 점철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특히 개중 한 쌍이 눈에 띄었는데,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눈빛이 반쯤 맛 간 상태다.
“으아아악!”
한쪽은 노예였고, 한쪽은 지하 격투에서 빌어먹고 사는 비인기 선수였다. 선수의 귀 한 짝이 이미 떨어진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지면 다음부터는 누구도 그에게 돈을 걸지 않으리라. 생계가 달린 만큼, 선수는 몸을 비틀거리며 자세를 다시 취했다.
반면, 노예는?
“명심해라. 이번 판 지면 죽어.”
“쟤 얼마에 샀는데?”
“금화 두 닢. 근데 본전은 벌어서 괜찮아.”
말 그대로 패배는 곧 죽음이다. 노예가 몸을 부들대며 달려들자, 사람들의 환호가 터졌다.
노예 시장과 격투장이 인접하면, 그 어느 곳보다 뜨겁고 잔인하며 처절한 격투가 벌어지는 법 아니겠나? 그게 바로 이곳이 토올룬 수도에서 제일 인기 있는 이유였다.
“지랄들 났네. 오, 쟤는 좀 치는 듯?”
“이안 님. 밑으로 내려가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안과 세 사람은 위층 난간에서 혼돈 그 자체인 아래층을 내려다봤다. 돈을 걸고 받는 사람, 귀가 잘린 채 업혀 가는 사람, 은근슬쩍 돈을 훔치려다 걸린 사람…. 개미 떼가 따로 없다.
이안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굳이 내려갈 필요 없다. 저런 자들에게 무언가를 알아내기에는 무리지.”
“아까 큰 경기가 열린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규모가 상당하다면 필시 관리자도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그나마 한산한 위층 중심으로 수색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따로 찢어져서 움직일까요?”
“아니, 무조건 함께 이동한다.”
바르사베의 상태도 그렇고, 베릭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같이 움직이는 게 안전했다. 무엇보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즉시 대응하기 어렵지 않겠나.
이안은 로브가 벗어지지 않게끔 아래쪽을 단단히 잡고서 몸을 돌렸다.
“사실 돈만 좀 풀면 관리직 찾는 건 문제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다. 눈에 띄지 않는 게 우선이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안 일행처럼 얼굴 가린 자들이 주위에 많다는 것이다. 장소 특성상, 수배에 걸렸거나 신분을 숨겨야 하는 자들이 주로 모인 덕이었다.
이안 일행이 안쪽을 살피며 흐름을 확인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둔탁하고 묵직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쿠우웅! 쿵! 쿵!
그와 동시에 강물처럼 한쪽으로 움직이는 관중들. 아까 떠들어대던 경기가 시작하려는 듯싶었다. 이안 무리도 자연스레 섞여들어 무대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 있을까.’
최고 관리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모르는 백지상태다. 그들의 시선은 무대 주위를 바삐 움직이는 자들을 쫓아 움직였고, 거의 동시에 고정되었다.
“이안 님.”
“그래.”
광택이 흐르는 비단옷과 걸칠 수 있는 곳이라면 죄다금붙이를 주렁주렁 걸친 자가, 경기장 제일 앞쪽 자리에 앉은 것이다.
베릭이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이봐, 저기 앞에 앉은 사람 누군데?”
`“이방인인가? 마르니를 모르고.”
“마르니? 여기 사장임?”
“어. 경기장 주인이지. 혹여 금붙이에 눈 돌아가서 물어본 거라면 관두시게. 저래 보여도 호위들이 다 용병대 출신이거든. 와아아! 페르도리안!”
베릭에게 설명하던 남자가 돌연 환호하기 시작했다. 선수가 입장한 것이었다.
이에 헤일은 마르니의 주위에 서 있는 호위들의 머릿수를 가늠했다. 다해서 일곱 정도. 베릭 선에서 정리 가능할 듯싶다.
“경기 끝나면 접근한다.”
“예, 알겠습니다.”
절단귀와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강력히 의심된다. 그 역시 한쪽 귀가 잘려 있었고, 곁에 둔 자들이 용병대 출신이라 하니, 길거리의 어중이떠중이보다 그럴듯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겠나? 잘만 하면 저자를 통해 바로 절단귀와 접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어어어!”
선수가 포효하며 녹슨 철창을 흔드는 순간이었다.
콰앙! 쾅!
“우앗!”
위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사람 하나가 쿠웅 떨어지는 것 아닌가.
대부분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터라 어지간해서는 신경 쓰지 않을 터인데, 몇 명이 동시에 나뒹구니 고개를 드는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잖아?”
“경비대가 여긴 왜 왔지?”
“어어? 움직인다!”
황토색의 옷을 입은 토올룬 수도 경비대였다. 그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위층을 점령했고, 술에 취했거나 반항하는 자들을 아래로 떨어트리며 길을 트고 있었다.
타닥타닥!
쿠웅!
“비켜라!”
“으, 으억!”
“떨어진다. 미친놈들아! 아래층에 사람 있어!”
“뭔데? 무슨 일인데?”
다들 어리둥절한 낯으로 경비대원들이 내달리는 걸 지켜봤다. 불법 업체는 아닌지라 도망가거나 소란스러워하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지레 겁 먹은 몇몇 수배자들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느라 질서가 흐트러지긴 했지만.
“이안 님. 마르니도 움직입니다.”
방금 막 자리에 앉아 있던 마르니가 일어나서 호위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더니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경기가 취소되려는 것인가? 관중들이 술렁이자, 다른 관계자가 크게 소리치며 악단에게 손짓했다.
“경비대에서 잠시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경기는 계속되니까요! 자자,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 밤, 진정한 승리자는 누가 될까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선수에게 베팅하세요!”
두두둥! 둥둥!
다시금 긴박감 흐르는 음악이 흐르자, 사람들이 소리치며 경기장 쪽으로 돈을 던져댔다.
이안은 마르니가 떠나간 쪽으로 움직이며 경비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저자들도 마르니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서 급히 발걸음을 트는 분위기다.
“이안아, 어떡해? 우리 튈까? 들키면 X 된다며.”
“괜찮다. 수비대의 목적은 마르니인 것 같은데, 이는 왕궁에서도 마르니가 절단귀와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한 방증이다. 쫓자.”
‘쫓자’라는 말 한마디에 베릭이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인파가 엄청났지만, 덩치에 맞지 않게 유려한 발걸음으로 물 흐르듯 달려갔다.
바르사베 또한 이안의 곁을 지키며 어렵지 않게 따라붙었다.
“한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와서 만나려 했을까요?”
“마르니가 왕궁의 부름에 불응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업장을 운영하는 자라면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터.”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업장 없다. 마르니는 자신이 왕궁 사람과 만나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걸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사업적 이익이거나, 아니면 절단귀와의 인연.
무엇이 되었든, 경비대가 마르니를 쫓는 건 이안에게 큰 단서이자 이정표였다. 절단귀를 찾아갈 수 있다는, 화살표 말이다.
“잘 되었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왕궁보다 먼저 정보를 알아내어 움직이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왕궁의 움직임을 따라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먼저 손 뻗으면 됩니다.”
마르니의 모습이 안 보이기 시작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들은 경비대를 따라 더욱 깊은 지하로 내려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헤일은 입에 물고 있던 궐련을 대중 던져버렸다. 아주 좁고, 어두운 곳이다. 마치 개미굴처럼 이리저리 연결된 공간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인기척이 드물긴 하지만 완전히 폐쇄된 곳은 아닌 것 같은데…….
“이안 님. 저쪽입니다.”
“그래.”
멀리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여 대화 내용의 식별이 가능한 곳까지 접근했다. 싸구려 전등 아래, 경비대원들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었다.
“참나, 이런 식으로 무작정 찾아오시면 어쩝니까?”
“면담 요청을 해도 무시하시니, 방도가 있나요. 오늘은 꼭 격투장에 나올 것 같아서 밤잠 줄여가며 마중 나왔습니다. 마르니 사장. 그러니까 진작 응했으면 서로 편하고 좋잖아요.”
“아니,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는데요. 요즘 일정이 바쁘니까 시일 좀 달라고. 제가 어디 도망갑니까, 뭘 합니까? 비상구 떡하니 막아놓고서, 사람 몰아넣으니 좋아요?”
“그게 한 달 후였죠? 왕궁에서 왜 부르시는지 아시면서 너무하십니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함께 가서 면담하시지요. 미리 막아놓은 비상구는 원복해 놓겠습니다.”
“와나, 돌겠네. 나 진짜 모른다고요. 절단귀 걔들이랑은 연락 안 한 지 꽤 됐다니까?”
“그 말도 가셔서 직접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부한다면?”
마르니의 물음에 경비대장이 뒷짐 졌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내일부로 격투장은 폐쇄입니다. 그리고 마르니 사장, 당신은 남은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겠지요.”
“미쳤나, 이것들이! 내가 내는 세금이 얼만데!”
“방금 말을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마르니가 이를 박박 갈아대며 경비대장을 노려봤다. 그때, 호위인 용병이 우드득거리며 막힌 문짝 하나를 뜯어냈다. 기어서 도망치려면 칠 수 있을 것인데, 그래봤자 잡히는 건 시간 문제고, 자칫 왕궁에서 강압적으로 나오면 버티기 힘들었다.
“아오, 씨발!”
콰앙!
마르니가 뜯어진 문짝을 발길질하며 욕설을 뱉어댔지만,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헤일이 작게 속삭였다.
“이안 님. 마르니가 이대로 경비대를 따라가면 다음부터는 조금 곤란해집니다.”
왕궁은 절단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이고, 이안은 그걸 따라갈 방도가 사라진다.
이안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경비대를 처치하고 마르니만 생포하여 접선하는 것이 최선이다만…….
“다른 상대도 아니고 경비대다. 절단귀를 노리는 제삼자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필시 바리엘 쪽 세력을 의심하겠지.”
베릭과 바르사베의 전투를 본 자라면 분명히 마검사임을 알아챌 것이고, 이는 그들이 토올룬에 와 있다는 단서만 제공할 뿐이다.
“경비대 애들, 싹 다 죽이면 되지 않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잖아.”
“베릭. 마르니가 보고 있잖아. 저자가 절단귀와 연관되어 있다는 건 현재 추측이다. 우리가 먼저 모습을 보였는데 허탕이라도 치면, 도리어 일이 복잡해져.”
그리고 설령 절단귀와 연관 있다 한들, 순순히 다리를 놓아줄지도 의문이고.
“복잡할 거 있나? 걍 마르니도 죽여.”
“…경비대와 격투장 주인이 몰살되어 발견되면 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까 나오기 전, 네가 지배인에게 무어라 물었지?”
“격투장 어딨냐고.”
“그래. 네가 격투장 온 걸 지배인이 알고 있어. 뭐가 문제인지 알겠지?”
“그럼 지배인도 죽-”
퍼억!
바르사베가 입 닥치라는 뜻으로 베릭의 턱주가리를 가볍게 날렸다. 그러고는 로브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는 게 아닌가. 절대 풀리지 않게끔, 그녀의 눈 쪽에 검은색 천이 묶여 있다.
“…바르사베?”
“이안 님. 주위에 불빛을 밝히는 게 있습니까?”
“등이 있다.”
“마법으로 은밀히 깨주십시오. 모두 한 번에 나가면 마법이라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안은 바르사베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챈 것이다. 완전한 어둠. 적과 아군의 구별이 불가할 정도로 짙고 검은 세상이 필요했다. 그 속에서 자신 있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건, 바르사베밖에 없었으니까.
“바르사베. 가능하겠는가?”
아주 좋은 수였다. 경비대가 죽되 마르니가 이쪽을 모른다면, 그에게 들이밀 수 있는 협상 카드가 생기는 것이니.
“물론입니다. 지하이니 달빛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바르사베는 손끝으로 검 손잡이를 느끼며 바로 쥐었다. 시각을 제외한 온 감각이 살아 숨 쉬듯 날카롭게 움직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