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27
제627화. 건물의 표식
“음?”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졌다. 불이 한 번에 나간 것이다. 경비대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라이터가 어디에 있을 건데…….
촤아악!
그때, 뒤쪽에서 서늘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검이 살을 벨 때 들리는 소리다. 경비대장이 당황해서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무슨 문제 있나?”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밝힐 수 있는 걸 모두 꺼내. 마르니, 그대는 잠시 대기하고.”
촤아악!
“어억…….”
또다. 다시 검날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작은 신음이 흩어졌다. 경비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려는 순간-
“……!”
누군가 뒤에서 자신의 팔을 잡더니 목 쪽으로 검날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이어서 망설임 없이 강한 힘을 실어 울대를 끊어버리는 것 아닌가.
경비대장이 반격하기 위해 몸을 돌리려고 했으나, 그의 목에서는 이미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뜨끈한 감각만이 그의 죽음을 예고할 뿐.
“이, 이런 젠, 으윽.”
“대장님? 무슨, 어억!”
“누구냐! 거기!”
“나, 나? 나 여기 가만히 있었는데.”
“불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
“흐익! 여, 옆에 있다! 옆에 누가 지나갔어!”
치이익!
누군가 라이터를 켜자 작은 불빛이 주위를 일순 밝혔다. 하지만 아주 짧은 찰나다. 온기를 느낀 바르사베가 사내의 손에서 불을 빼앗은 것이다. 이어서 그 또한 일격에 피를 토하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쿠웅!
“흐, 흐익!”
“뭐, 뭔가 있다! 바, 밖으로 나가!”
“어디가 앞인지 모르겠어.”
“꺼져! 꺼지란 말이다! 다가오지 마!”
“으윽, 나, 나라고. 방금 그건 나였어.”
“마르니 님! 엎드리십시오!”
“젠장, 이게 무슨 일인데!”
시각을 상실한 자들이 두려움에 떨어 검을 다잡았고, 제 옆에 있는 동료들을 베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마르니가 바닥에 엎드려 몸을 웅크리자, 호위들이 그 위를 몸으로 덮으며 보호했다. 달려드는 자가 있다면 무엇이든 찔러버릴 태세를 하고서 말이다.
촤아악!
푸욱! 푹!
“으윽!”
“잠깐, 나, 나는 아닌데.”
한차례 광기 섞인 피바람이 사그라들자, 몸을 사리고 있던 바르사베가 인기척을 감각적으로 느꼈다. 흐느끼는 신음을 더듬더듬 따라가 적들의 마지막 숨통을 베어낸 것이다. 비릿한 피 냄새와 죽음만이 도사리는 공간에서, 바르사베는 마르니 일당 외 모두가 죽었음을 확신했다.
“정리되었습니다.”
“여, 여자다.”
바르사베의 부름에 마르니 일당이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바로 제 입을 틀어막았지만 말이다.
이안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안으로 진입했고, 바르사베가 마중 나와 그 손을 잡아주었다.
“바닥에 시체가 많습니다.”
“고맙군. 마르니, 듣고 있는가?”
“누, 누구시오!”
어둠 속 만남이라. 마르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불가했다. 왕궁 소속 경비대를 건드리는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거두절미하고 묻겠다. 절단귀를 만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겠는가?”
“이, 이 뭔, 몰라! 나 진짜 모른다고!”
마르니가 어이없어하며 버럭 소리쳤다. 혹시, 왕궁의 함정인가? 불이 켜지면 짜잔, 하고 모두 숨죽인 채 웃고 있는 것 아닐까?
아니지. 미치지 않고서야 왕궁에서 그런 체통 없는 짓거리를 할 리 없다. 게다가 코끝에서 비릿하게 느껴지는 피비린내…. 이것은 진짜다. 한두 명으로는 어림없을 만큼, 진득한 죽음의 냄새다.
“절단귀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찾아갈 만한 단서나 흔적을 내어라.”
“미, 미치겠네, 진짜. 정체부터 밝히시오!”
“잘 생각해봄이 좋을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해 끼칠 생각이 없어. 곧 있으면 경비대원들이 수상함을 눈치채고 이쪽으로 몰려오겠지. 그럼 그대를 어찌할 것 같은가? 우리는 어둠을 틈타 이미 사라지고 난 이후일 터인데.”
‘마르니가 반발 끝에 경비대를 죽였다.’
여지가 없었다. 그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이고, 왕궁은 더더욱 확신을 가진 채 마르니를 잡아들이려 할 터.
경비대, 그것도 경비대장까지 말살한 죄는 중죄 중의 중죄였다. 목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자신의 가족들까지 모두 갈가리 찢겨 거리에 내걸릴지도 모른다. 도망? 수도 밖으로 달아나기는커녕, 당장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나 있을까?
“나한테 왜 이래, 이 시발 것들아아!”
“마, 마르니 님. 진정하십시오.”
상대를 자극하면 안 된다. 호위들이 안절부절못하며 바들바들 떨리는 팔을 잡았다. 어둠 속 전투 능력을 보아하니 길바닥 출신 검사는 아니다. 분명, 호언장담한 것과 같이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질 수 있는 자들이다. 그리하면 뒷감당은 오롯이 마르니 일당의 책임.
“하아, 알겠다. 이제 좀 알겠어. 왕궁에서 보낸 거지? 응? 지금 나, 거기에 아주 제대로 걸려들었고.”
마르니는 숨을 격하게 들이쉬더니, 이내 결론 내렸다. 이는 왕궁에서 자신을 잡아들이기 위한 덫이라고. 그렇지 않고서, 감히 누가 토올룬에서 경비대장을 거리낌 없이 처치하겠는가.
“그놈의 물건이 뭐길래, 젠장!”
왕궁이 찾고, 절단귀가 데리고 있는 노예 한 명 때문에 생긴 사달이다. 당최 얼마나 값어치 있는 물건인지 몰라도, 재수 단단히 털렸다.
이안은 마르니의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은 채 덧붙여 물었다.
“…마지막 물음이다. 대답하지 않으면 그대로 물러나겠다. 하나 유용한 답을 내어주면 경비대의 죽음에 그대가 관여하지 않았노라 공표하지.”
“내가 뭘 믿고? 이대로 입 싹 닫으면 그대로 개죽음인데!”
“선택지가 없지 않나? 어찌 되었든 개죽음이거늘.”
“하아, 진짜. 개 미친 새끼들. 내가 세금을 시발, 저번 달에도, 크윽.”
격투장을 지키기 위해 내놓은 것이 많나 보다.
이안은 속으로 초를 세며 시간의 흐름을 가늠했다. 말했듯이,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었다. 바깥에 있던 경비대원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니까.
“…자나이 시장 안쪽에 연청색의 천이 널린 건물이 있다. 밖에서 보면 빨랫감으로 오인하지만, 일종의 표식이지.”
드디어, 마르니가 입을 열었다.
“건물 지하에 놈들 근거지와 이어진 비밀통로가 있어. 하아, 근데 내가 말했다는 게 알려지면 난 배신자로 낙인찍혀 죽은 목숨이라고. 성실하게 잘 살던 사람을, 이렇게 나락으로 보내도 되는 건가?”
“의가 깊었나?”
“깊었지! 당장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내가 왕궁 안 들어가려고 개짓거리를…….”
마르니가 말끝을 흐렸다. 의문의 상대가 어찌저찌 비밀로 해준다 한들 자신의 호위들이 듣지 않았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하지만 언제고 들통날 사실이었다. 자신이 절단귀의 근거지를 불어버렸다는 걸.
“안타깝게 되었군. 그러면 어찌해줄까? 그대들의 호위도 어둠 속에 묻어주면 되겠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이안이 넌지시 제안하자, 마르니가 펄쩍 뛰었다.
“절대!”
“흠. 알겠다.”
놀라서 멈칫거리던 호위들이 마르니의 옷깃을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 마르니가 배반한 것을 자신들이 목격했으니 자신들이 죽는 게 마르니에게는 안전한 일. 하지만 주인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호위들을 죽이지 말라 하였으니 이는 무의식적으로 결속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호위를 죽여달라 하면 그것으로도 마르니에게는 안전이요, 하지만 이를 거절하는 것으로 결속이 단단해졌으니 그 또한 저자에게 안전이다. 단 한 마디로, 역시다. 베릭 똥개 놈은 저런 분을 보고도 배우는 게 없단 말이지.’
바르사베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검날에 묻은 피를 웃옷으로 닦아냈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경비대의 죽음이 알려지면 수도 분위기가 뒤숭숭해질 터. 차라리 객실로 돌아가기 전, 자나이 시장을 돌아보는 게 나으려나?
스윽.
이안이 바르사베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나가자는 신호다. 그들은 어떠한 기척도 없이 어둠 속에 스며들어 사라졌고, 마르니 일당은 알아채지 못한 채 계속 침묵을 유지했다.
“이, 이보시오? 무어라 말을 좀 해보시오.”
“가, 간 거 아닐까요?”
“이봐요! 갔어요?”
허공에 대고 소리쳤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이 더듬거리며 바닥을 살폈고, 이내 멀리 가지 않아 널브러진 시체들을 발견했다.
“벼, 벽 짚고 천천히 나가봐. 기어서. 걸어가면 넘어진다.”
“마르니 님. 뒤에 단단히 붙으십시오.”
“아이고, 미친 것들 진짜.”
타닥타닥!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수많은 발소리. 갑자기 불빛이 확 켜지더니, 주위가 훤해졌다. 격투장에서 경비대장을 기다리던 경비대였다. 시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이 없자 온 것인데…….
“헉!”
충격적이었다. 경비대원들이 모두 바닥에 널브러진 채 죽어 있었으니. 대부분 목이 그어진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피를 뒤집어쓴 채 벽에 딱 붙어 있는 마르니 일당. 기어 다니다 여기저기서 묻은 모양이다. 그들도 놀라서 경비대를 쳐다봤다.
“이게 대체 무슨! 체포하라!”
“아니, 잠깐만 말 좀 들어봐요. 우리가 그런 게 아니라, 참나. 믿을 수 없겠지만, 나도 몰라요. 이게 그쪽 윗선에서 지시한 건지, 아닌지…….”
“제정신이 아니군. 끌고 가! 그리고 지원 요청!”
“지원 요청! 알겠습니다.”
“격투장은 폐쇄한다.”
“아니라고, 우리도 피해자라고! 여자였어. 죽인 건 여자였다니까?”
경비대는 마르니 일당이 무어라 떠들든 손목을 묶은 채로 연행했다. 경비대는 예리하게 베인 시체들의 목덜미를 보며 소름 끼친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주르륵.
한편, 격투장 바깥으로 몸을 피한 이안과 세 사람. 바르사베가 목덜미를 보이며 허리를 숙이자, 베릭이 물통을 들어 부어줬다. 핏물이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이안 님, 어떻게 할까요? 바로 시장으로 갈까요?”
“그래. 해가 뜨면 거리의 경비대 순찰이 강화될 것이다. 자나이 시장이라고 그랬지? 헤일, 지도.”
“여기 있습니다. 바르사베 대원. 다친 곳은 없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다만 옷을 새로 구해가는 게 좋겠네요. 피가 너무 묻어서 이대로 돌아다니긴 힘들 것 같아요.”
이안은 지도를 통해 노예 시장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 옆에서 베릭이 고개를 들이밀자, 이를 본 헤일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좌우 구분도 못 하는 처지에 지도는 무슨.
“그럼 헤일이 바르사베를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는 게 좋겠군. 가서 옷 갈아입고 몸을 숨기고 있도록. 나는 베릭과 함께 시장을 둘러보겠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헤일이 바르사베와 함께 모퉁이를 돌아 달려갔다. 대로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점차 술렁거리는 것으로 보아, 슬슬 경비대장의 죽음이 알려지는 듯했다.
“베릭. 이쪽이다.”
“오케이, 가자! 근데 진짜 우리가 죽였다고 말하게?”
“약조한 것은 지켜야지.”
마르니가 잡혀 들어가서 조사를 받게 되면, 왕궁은 제삼자가 개입했단 걸 눈치챌 것이다. 그 전에 필리아를 구해내는 게 목표다. 그 후 포탈을 열어 돌아가기 전에 진실을 알리면 될 일.
타닥타닥!
이안과 베릭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내달렸다. 자나이 시장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떡하니 세워져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연청색 천? 그런 건 안 보이는데.”
그 어디를 돌아다녀도 마르니가 일러준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이안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빨랫감으로 위장한다 하였으니, 시간이 되면 걸리고 걷히나 보다.”
“헐. 지랄 맞게 세세하네. 그럼 어떡해?”
한밤중, 주거지역이 아닌 곳에 빨랫감이 널려 있는 건 조금 이상하니까 말이다. 베릭이 팔짱을 끼며 묻자, 이안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낮에 다시 오는 수밖에. 아니면-”
“아니면?”
“네가 냄새라도 맡든가.”
“에엥? 해도 해도 취급이 너무하네.”
베릭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연신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