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28
제628화. 금안(金眼)
“이안아, 여기일까?”
이안과 베릭은 어둠 속에서 빨랫줄이 걸려 있는 건물을 하나씩 살폈다. 사용 흔적이 없거나, 지하가 없거나, 그것도 아니면 통로가 없어 허탕 치기 일쑤였다.
두 사람은 시장에서 제일 높은 건물 꼭대기에 올라서 주위를 둘러봤다.
“이안아. 아니면 우리 내일 아침에 다시 올래? 아니면 헤일이랑 어금니 데리고 올까? 둘이서 하려니까 좀 그런데. 왜, 어금니는 분신술도 쓰잖아.”
“잠깐.”
이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베릭에게 손짓했다. 동시에, 코를 킁킁거리는 베릭.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다.
“어라. 이거, 아까 그 냄새인데.”
격투장 피 냄새.
“…베릭, 저기 뛰어가는 남자 보이지.”
“어. 당연히 보이지.”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난간 아래로 뛰어내릴 듯 자세를 취하며 베릭에게 일렀다.
“격투장 소식을 들은 도적 일행일 수 있다. 베릭. 저자를 쫓아보자.”
* * *
“이안 히엘로? 바리엘 마법부 장관이라고?”
“예, 그, 그렇다고 하는데요.”
“이런, 미친!”
절단귀들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자, 통역을 맡았던 소년이 몸을 움찔거렸다. 바리엘어 통역 일이 있다고 해서 왔건만, 이럴 줄 알았으면 거절할 걸 그랬다.
의뢰인은 저잣거리에서 수배 중인 절단귀고, 그 대상은 바리엘 마법부 장관의 어머니라니. 소년이 긴장하자, 필리아가 조심스레 그 손등을 잡아주었다.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정신 나간 것들이 왕궁 소속이면서 왜 깃발을 안 달았대? 죽은 놈들, 궁중 인형술사라는 거잖아.”
“비밀리에 움직였으니까 그랬겠지. 이제 좀 이해가 되네. 바리엘로 가서 마법부 장관 어미 납치해 나오는데, ‘나 토올룬 왕궁 소속이오’ 떠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법부 장관이 미소년이라는 소문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그래. 어미 얼굴을 보니 알 만하군.”
“지금 그런 헛소리 할 때요? 일이 개 같이 꼬였는데.”
“이름이 필리아라고 했지? 혹시 모르니까 바리엘 쪽으로 수소문해볼까?”
필리아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어라 괄괄하게 떠들어대는 말을 알아들을 순 없다만,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건 분명했으니까.
“확인은 지랄. 이미 왕궁에서 시장 폐쇄까지 했다잖아. 그럼 말 다했지, 뭐. 시장에서 만났던 그 상인!”
“마야?”
”걔는 분명히 알고 있었어. 바리엘 말 잘 하더만.”
“맞아. 필리아 정체를 알고 있으니 금화를 그렇게 불러댄 거였어. 아오, 콱 씨!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까? 진작 바리엘어 할 줄 아는 애 있었으면 토올룬으로 안 돌아왔지!”
“누굴 탓해. 너는 모국어도 제대로 못 하면서.”
“자자, 진정하고, 이제 상황 좀 정리해보자.”
왕궁이 절단귀에게 비공식 수배령을 내렸다. 노예 시장을 폐쇄했으니 밥줄 막힌 상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서 그들의 흔적을 찾고 있을 터.
“필리아를 왕궁에 넘기면 일단 돈은 못 받는다고 보면 돼. 궁중 인형술사들 목숨값으로 퉁 치는 수밖에 없다고. 그것도 잘 쳐줘서 말이지.”
“맞아. 왕궁이 필리아를 가져오라고만 했지, 그 뒷수습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가 없잖아. 저거 넘겼다가는 우리 다 뒈지는 수가 있어.”
“왕궁에서 바리엘 장관 어미를 납치한 게 보통 일은 아니지. 우리는 그걸 아는 극소수의 일반인이라는 뜻이고. 내 생각에는 우리 죽는다.”
“그러면 역시 제일은 바리엘 쪽으로 보내는 건가?”
도적들이 동시에 필리아를 쳐다봤다.
“…쉽지 않은데.”
“그러니까. 국경수비대 강화되었을 건데, 쟤를 데리고 어떻게 바리엘까지 가? 바리엘로 가서 필리아 넘겨주고 대금 받았다고 쳐. 토올룬으로는 못 돌아와.”
“뭐 같긴 해도, 바리엘 쪽보단 여기가 살 만하지. 다들 바리엘어 한마디도 못 하잖아.”
“추격대 붙어서 토벌당하는 수도 있지. 차라리 협상 여지가 있을 때 먼저 왕궁 쪽으로 굽히고 들어가는 게 낫다고 본다.”
도적들이 의견을 굽히지 않고 저마다 떠들어대자, 필리아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지금 토올룬으로 붙자는 쪽과 바리엘로 가자는 쪽이 대립하고 있는 게다.
‘토올룬 왕궁과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바리엘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도적들은 그걸 선택하겠지.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이 뭔지 모르겠어.’
현명한 길이 있을 것인데, 이안이라면 이럴 때 어떤 식으로 저자들을 회유했을까? 깊게 고민하던 필리아가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콰앙!
“크, 큰일 났다!”
밖에서 도적 일행이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문을 크게 열어젖힌 것이다. 다들 놀라서 쏘아붙이려 했으나, 이내 들려오는 정보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마르니의 격투장이 폐쇄되었대.”
“…뭐?”
“무,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라, 격투장에서 수도 경비대장이 죽었다는 거다. 열댓에 달하는 경비대와 함께.”
“마르니가 경비대장을 죽였다는 뜻인가? 그럴 리가. 걔는 우리와 달라. 지킬 게 많은 놈이라고.”
“그러니까! 이게 뭘 뜻하는지 모르겠어? 왕궁에서 덫을 놓은 거라고! 왕궁으로 잡혀들어간 마르니가 어떻게 할 것 같은데? 네 말마따나, 지킬 게 많은 그놈이!”
절단귀에 대한 정보를 불지 않으면 경비대 살인을 말미암아 반역죄를 물을 게 분명했다. 그 말인즉, 비밀 소굴인 이곳에 대한 정보가 왕궁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뜻이다.
상황을 이해한 도적들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 난색을 보였다.
“시, 시발 그럼 이제 어떡해?”
“왕궁에 연락하자. 필리아 넘겨준다고!”
“왕궁이 마르니 잡으려고 기름칠했다잖아. 이런 상황에서 그게 먹힐 것 같아? 고민할 거 없어. 짐 챙겨. 바리엘로 간다.”
“미친놈들아!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거 몰라?”
“도망치다 잡히면 진짜 개죽음이라고!”
도적들이 격앙되어 소리치자, 필리아가 통역 소년을 가까이 끌며 붙잡았다.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퍼억!
“꺄아아!”
싸움이 터졌다. 도적 한 명이 필리아의 어깨를 잡아끌자, 다른 도적이 주먹을 휘두르며 떼어낸 것이다.
필리아의 몸이 크게 휘청였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는 자가 없었다. 그저 제 의견에 반대하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주먹을 내지를 뿐.
“물건 이리 내놔!”
“새끼가, 처돌았나!”
“죽고 싶으면 너나 죽어!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왕궁으로 가는 게 사는 길이라고, 몇 번을 말해?”
“마법부 장관이 X으로 보이냐? 금화 300닢, 아니, 그 이상도 가능해! 일생일대의 기회인 걸 모르겠어?”
빠악! 퍼어억!
도적들을 결집하는 우두머리가 없기에 생긴 갈등이자, 최후였다. 필리아는 소년과 함께 구석으로 몸을 피했고, 이내 한껏 웅크린 채 머리를 보호했다.
“젠장, 이리 와!”
그때, 코와 입 부근이 터진 남자가 필리아를 발견하고는 거칠게 끌었다. 필리아로서는 이자가 왕궁 쪽 사람인지, 아니면 바리엘 쪽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필리아가 당황해하며 버티자, 통역 소년이 대신 일러줬다.
“필리아! 그 사람 왕궁으로 가자는 쪽이에요.”
“아, 시, 싫어! 이거 놔!”
필리아가 격렬하게 반항하자, 사내가 그녀의 머리칼을 한 움큼 크게 휘어잡았다. 물건을 손에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소년이 달라붙으며 말렸지만, 덩치 차이가 엄청난지라 소용없었다.
쿠웅!
바깥에서 둔탁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였으나, 도적들은 치고받느라 흥분하여 알아채지 못했다.
쿠웅!
그리고 다시 한번. 이번에는 몇몇 도적이 눈치채고서 고개를 틀었으나, 그것이 그들의 소굴 입구 걸쇠가 부러지는 소리라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끼이익.
조심스럽게 열리는 나무 문. 그 틈으로는 오로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적들은 그제야 서로 다투던 것을 멈추곤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불안했다. 한평생 쫓고 쫓기던 자들인지라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와…….”
왕궁인가? 벌써 여기까지 밀고 들어왔다고?
그들이 그리 생각하자마자 너 나 할 것 없이 필리아를 중심으로 주위를 감쌌다. 그녀를 지키고자 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고자 함이다.
“바, 밖에 누구냐!”
“정체를 밝히고 거리를 유지해! 그렇지 않으면 물건은 시체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필리아는 달달 떨면서 어둠 속 복도를 지켜봤다. 왕궁으로 끌려간다면, 자신은 대체 어떤 일을 겪게 되는 걸까? 이안에게 그리고 바리엘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래, 여기서 도적들과 운명을 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 모르겠구나.
필리아는 이안과 로엘, 네르사른 그리고 친애하던 모든 이들을 떠올렸다.
스윽.
“이, 미친!”
그러고는 자신을 겨누고 있던 도적의 단검을 손으로 그러쥐었다. 스스로 목을 찌르기 위해 힘주자, 도리어 도적이 놀라서 검을 옆으로 치웠다.
그 순간.
촤아악!
창문 따위 없는 지하 밀실.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며 그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당황한 도적이 멈칫거리는 것도 잠시. 그들은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금안을 보았다.
“……!”
짐승의 것과 같이 빛나는 안광이라니. 시선의 주인을 감히 그려낼 수 없었다. 사람인가? 아니면, 마물?
도적들이 놀라움에 굳어버린 것과 달리, 필리아는 가슴 밑에서 차오르는 감격에 젖어 숨을 들이쉬었다.
“엎드리세요.”
미색의 음성은 바리엘어를 말하고 있었다. 필리아는 자신의 어깨를 단단히 쥔 사내를 밀쳐내었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눈 감았다. 바리엘어를 알아들은 통역 소년 또한 반사적으로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 가 몸을 숨겼다.
“어, 어어?”
필리아가 갑자기 엎드리자, 도적들이 엉거주춤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 상태로, 갑작스러운 불빛과 마주했다.
「구겸(鉤鎌)」.
서늘하고, 거대한 낫이다. 돌풍이 일 듯 빠르게 일직선으로 나아간 낫은 도적 떼의 목과 몸채를 그대로 베어버렸다.
촤아악!
“커어억!”
“으억!”
필리아는 머리 위에서 흘러내리는 뜨끈한 무언가를 애써 무시하며 귀를 막았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주위가 일순 조용해졌으나, 필리아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스윽.
이내 그녀의 등에 닿는 작은 손길. 필리아가 놀라서 흠칫 돌아보자, 별처럼 반짝이는 금안과 마주했다. 이안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빛나는 내 아들.
필리아는 의지와 다르게 떨리는 몸을 애써 일으켜 이안의 목에 팔을 감았다.
“아…….”
“괜찮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이, 이안아…….”
“예, 어머니.”
“이안아, 이안아…….”
안심한 필리아가 눈물을 터트리자, 이안이 그녀의 등을 연신 다독거렸다.
“미안해. 내가 그날 밤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작정하고서 바리엘로 간 자들이니 어머니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 여긴 어떻게 찾았어? 혼자 왔어?”
기분 탓인지 이안이 조금 야위어 보였다. 버고스와의 전쟁이 고되었나 보다.
제 상태가 더 처참하여 말이 아닌 것도 모른 채, 필리아는 연신 제 아들만을 살피며 안타깝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안아아아!”
콰앙!
“여기 맞나? 피 냄새가 좀 나는데. 반대쪽 건물에는 사람이 없더, 어라! 필리아!”
“베릭!”
문짝을 발로 차대던 베릭이 필리아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도 있는 힘껏 껴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누렸고, 이안은 도적 떼의 시체들을 잠시 둘러본 다음 베릭에게 고갯짓했다. 필리아를 데리고 나가라는 듯이 말이다.
“필리아, 이쪽으로.”
“이안아, 너는?”
“뒷정리하겠습니다. 나가 계세요.”
지이이잉!
촤아악!
베릭이 필리아의 어깨를 감싸며 밖으로 나가자마자, 이안은 마력으로 작은 불씨를 만들어냈다. 흔적을 모두 지울 수는 없지만, 이곳을 추격하는 왕궁에게 혼란을 선사해줄 순 있다.
끼이익.
등유를 엎은 다음 그 위에 마력을 흘리자, 불길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안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잠시 후, 불길이 천장에 닿을 때쯤. 책상 아래 숨어 있던 소년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무도 없다. 그리고 불길은 거세진다.
타닥타닥!
촤아악!
“…으잇!”
소년은 절단된 시체들을 밟으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고민도 없이 경비대 건물 쪽으로 내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