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29
제629화. 토올룬에 마법사가 있다
“불이야! 불!”
“자나이 시장에 불이 났다! 물을 길어와라!”
“아닌 밤중에 대체 무슨 일이래?”
“몰라! 남는 모래 전부 가져와!”
해가 지면 상인들이 모두 퇴근하여 적막에 잠기는 자나이 시장. 그 한가운데 있는 낡은 건물이 거센 화마에 휩싸였다. 깜깜했던 밤이 느닷없이 밝아진 것이다.
인근에 살던 주민들이 모두 몰려와 물동이와 모래주머니를 실어 날랐고, 소방대원들 또한 긴 호스를 끌고 와 자나이 시장을 가로질렀다.
“서둘러라! 어서!”
“불길이 옮겨붙으면 안 된다!”
“비키시오! 다들 비키시오!”
히이잉!
우왕좌왕 급하게 움직이던 사람들 틈을 마차 한 대가 비집으며 나타났다. 토올룬 국기가 걸린 왕궁 소속 마차다. 그 안에서 한 여자가 내리더니, 활활 불타고 있는 3층 짜리 건물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정령술사님이다!”
“되었다! 다들 뒤로 물러나!”
황토색 정복을 입고 반듯하게 머리 묶은 여인이 두 손을 모으자, 그 틈으로 몽글몽글한 푸른빛 알갱이들이 만들어졌다.
토옥.
손끝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물 한 방울. 그곳에서 거대한 인어 형태의 정령이 나타나더니, 건물을 크게 휘감았다. 거센 불길과 인어의 손길이 만나는 곳마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촤아악!
정령술사는 이를 꽉 깨물었고, 그 의지를 느낀 인어가 제 몸을 희생하여 건물을 완전히 덮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그라든 불길. 그을린 흔적과 젖은 바닥 그리고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와, 가, 감사합니다! 역시 정령술사 님이셔.”
“대단하네, 응. 참으로 대단해!”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지만, 그녀는 인상만 찌푸리며 뒤돌았다. 화마(火魔)에서 은근한 마력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소방대장.”
“예, 바누사 님. 잔불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
“바누사 님!”
소방대장에게 뒷수습을 지시하려 하는데, 저 멀리서 임시 경비대장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왔다. 굉장히 초췌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모습. 토올룬에서 나고 자라 온갖 일을 다 겪어 보았지만, 그들에게 오늘 밤은 너무 혼란스럽고 고된 날이었다.
“임시 경비대장인가?”
“예, 지금 제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건물 화재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확인을 요청합니다. 이봐!”
임시 경비대장의 손짓에 부하들이 한 소년을 앞으로 끌고 왔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아이였는데, 그가 이르는 말은 심히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러니까, 건물 지하가 절단귀들의 근거지였다?”
“예, 잔해를 파헤치면 분명히 시체가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처리한 뒤 불을 낸 건 필리아의 아들입니다.”
“필리아?”
처음 듣는 이름에 바누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임시 경비대장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왕궁과 관련된 사안입니다. 바누사 님. 바리엘에서 데려오던 여인인데, 중간에 절단귀 놈들과 엮여서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그 아들도 함께였나?”
“아니요. 그, 자세한 건 모르지만, 여인의 아들이 바리엘 제국 마법부 장관이라 전해 들었습니다.”
마법부 장관? 바누사의 눈이 조금 커지더니, 어린 소년을 내려다봤다. 왕궁에서 필시 무언가 일을 꾸미었던 게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마법부 장관이 엮여 들었다고 가정하면, 화마에서 느껴지던 마력도 설명 가능했다.
‘안타깝게도, 너무 많은 걸 알게 되었구나.’
왕궁이 마법부 장관의 어미를 납치하려 했던 것, 바리엘의 마법사가 이곳, 토올룬에 와 있다는 것 등등.
바누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경비대장에게 눈짓했다. 정보를 취합한 다음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이다. 경비대장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알겠노라 경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이전 책임자가 죽었고, 화재가 크게 일어났다. 왕궁의 심기가 어지럽다는 게 확실했다.
“…이만 데려가라.”
경비대장이 아이를 돌려보내자, 바누사가 손수건으로 젖은 손을 닦아내며 일렀다.
“사령술사들을 호출하라. 긴급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경비대장과 소방대장은 회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전달할 터이니, 그 전까지 현장에서 대기하시오.”
“기, 긴급회의라 하시면?”
“일반적인 화재가 아니다. 마력의 기운이 깃들어 있으니, 바리엘에서 여인을 구하기 위해 마법사를 보냈다 의심할 수 있겠지. 아직 그들이 토올룬에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여 있다면-”
바누사의 눈동자가 그을린 잿더미를 그대로 담아냈다.
“수비대장 측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오.”
“아, 예옛!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네.”
처억!
두 대장이 바누사의 뒤쪽에 대고서 경례했다. 안 그래도 바리엘과 버고스의 전쟁 소식을 전해 들은 이래 언젠가 토올룬도 일상이 깨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미 깨져 있었군.’
바리엘 마법사가 토올룬에 있다라. 그렇다면 혹시, 이전 경비대장의 죽음도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바누사는 마차에 탄 다음, 손바닥을 펼쳐 자신의 작은 정령을 불러댔다.
사사삭!
건물을 휘감을 정도로 거대했던 인어는 사라지고, 대신 손바닥을 헤엄칠 만큼 작은 것이 꼬리를 흔들어댔다. 불길을 직접 마주해 힘이 약해진 것이다.
정령술사에게 정령이란 인생을 함께하는 가족이자 친우. 이것이 죽어버리면 그녀의 능력도 사라질 터.
“미안하다. 고생했어.”
바누사는 조심스럽게 인어를 쓰다듬은 다음, 창밖을 쳐다봤다. 대체 왕궁에서는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다른 자도 아니고 마법부 장관의 어미를 납치하여 토올룬으로 데려온 게 밝혀지면, 이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그것도 명분을 고스란히 내어주게 되어, 인근국의 어떠한 지지도 얻을 수 없는 외로운 전쟁.
“젠장.”
토올룬에는 4원소를 다루는 가문이 존재했다. 통틀어 많은 술사가 있었지만, 개중에서도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바누사의 가문. 그들은 토올룬 곳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지금처럼 줄곧 맨 처음 나서 해결하곤 했다.
한데 나라에 도움 따위 되지 않는 인형술사가 권력을 잡고 있으니, 꼴이 말이 아니다.
‘왕궁에서도 곧 알아채겠지.’
마르니의 증언과 경비대장의 보고로 바리엘 마법사들의 존재를 인지할 터. 그리되면 바로 사령술사들이 소집될 것이다.
결국 그 전에 그들끼리 먼저 모여 사안을 파악한 뒤, 대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서둘러라. 밤이 끝나기 전에.”
“예, 알겠습니다.”
바누사의 재촉에 마부가 채찍을 크게 휘둘렀다. 토올룬 중심가와 멀어질수록, 적요한 밤은 깊어졌다.
* * *
드르륵!
헤일은 창문을 닫고서 좌우를 살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들이 접한 도로에는 가로등이 꺼져 있었다.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헤일이 커튼을 친 다음, 초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세상에, 바르사베 대원?”
“필리아 님.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눈이 왜 그래요?”
“괜찮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가려둔 것이라서요. 일단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혹, 시장하십니까?”
필리아의 옷에 불쾌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최상급 물건 취급을 해주었다 하더라도, 일상과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을 터. 헤일은 호텔 측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과일과 빵 따위를 잘라 건네주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시고요?”
“네, 덕분에요. 이안이가 아주 적절할 때 와줬어요.”
“이안 님. 솔직히 조금 놀랍습니다. 바로 찾으실지는 몰랐거든요.”
이안 역시 피 묻은 가죽 장갑을 대충 벗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베릭이 필리아의 음식에 눈독 들이는 것 같았지만, 그는 참을성 있게 옆에 앉아 ‘쳐다만’ 봤다.
“그래. 갔는데 연청색 천이 안 보이더군. 한데 어둠 속에서 급히 지나가는 남자를 보았어. 쫓으니 격투장 소식을 들은 도적 떼 일원이었다. 운이 좋았지.”
필리아는 빵을 조금 떼어 베릭에게 건넸고, 베릭은 소파에 벌러덩 누워 우걱우걱 씹어댔다. 일 끝내고 먹는 식사라! 아주 꿀맛이다.
“그럼 이제 우리, 돌아가면 되는 건가? 마법부 애들 졸라 좋아하겠네. 이안이 너 걱정한다고 별별 난리를 다 떨었잖아.”
제일 큰 목표를 달성하긴 했다. 필리아를 구해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서둘러 바리엘로 돌아가 네르사른과 연락이 닿아야 했다. 그렇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늦으면 하완과 루스웨나 그리고 클리포포드와의 전쟁 속에서, 천려가 자리를 비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버고스로 함께 이동한 다음, 필리아 님을 바리엘로 보내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헤일은 그리 이르며 바르사베를 힐끔거렸다. 여기서 철수하게 되면 왕궁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더하여, 바르사베의 시각에 대한 단서도.
물론, 언젠가 토올룬과 공식으로 전쟁을 치르게 되면 그녀는 세상을 되찾을 터지만, 기약이 없지 않나?
“예, 저도 동의합니다. 필리아 님의 안위가 우선이니, 철수하시지요.”
하지만 바르사베는 미련 없이 헤일의 의견에 동의했다. 검을 다루는 데 있어 보이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녀의 조국은 바리엘이니까.
“나도 좋아. 근데 굳이 버고스로 갈 필요 있나? 우리는 이동 속도가 빠르니까 차라리 바리엘로 넘어가서 필리아 내려주고, 다시 버고스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인간적으로다가 사람 밥 좀 먹이고 가자.”
베릭이 오랜만에 일리 있는 의견을 내놓았다. 필리아는 어색한 손짓으로 우물거리고 있는 입가를 가렸고, 헤일은 그런 그녀에게 우유를 따라주었다.
“천천히 드십시오. 이동은 언제든지 가능하니까요. 안심하시고요.”
“고맙습니다, 헤일 대장.”
필리아가 목을 축이며 고개를 숙였다.
“다들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저를 처음 납치한 건 토올룬 왕궁인 것 같아요. 왕궁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적들이 얘기하던 내용으로 보아 상당히 높은 자인 것 같더라고요.”
“잠깐만요, 어머니.”
필리아의 말을 듣던 이안이 가볍게 저지했다.
“도적들이 얘기하던 내용이라니요? 어머니, 토올룬어가 가능하십니까?”
도적들이 바리엘어에 능통했을 리는 없다. 그랬다면 토올룬으로 들어오지 않고 바리엘로 돌아가 그녀의 몸값을 받아냈을 터.
“아니. 토올룬 사람들, 바리엘어를 하는 사람이 정말 없더라고. 커다란 시장에서 소리쳤는데도 딱 한 명 알아들었어. 아까는 도적들이 통역해줄 소년을 데리고 왔었거든? 서툴긴 해도 의사소통은 잘돼 알아들었지.”
“소년이요?”
이안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 중 소년으로 보이는 자는 없었다. 아마, 엎드리라는 이안의 경고를 알아듣고서 책상 아래 숨었던 듯싶다.
“왜 그러십니까, 이안 님?”
“무슨 문제라도…….”
“문제는 아니고, 내가 놓친 게 있다.”
아이가 살아 있다면, 필시 경비대를 통하여 왕궁 쪽으로 정보가 들어갔을 것이다. 필리아를 구한 ‘마법사’가 지금 토올룬에 있노라고.
“뭐? 이안이 네가 놓친 게 있어? 미친! 대박!”
“베릭, 신나 보인다. 자중해.”
“헤일 대장도 궁금한 눈치구만, 뭐. 뭔데?”
“지금쯤이면… 토올룬 왕이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럼 큰일 아닌가? 서둘러 도망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베릭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낯을 보였으나, 이안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빙긋 웃기만 했다.
“토올룬을 떠나기 전, 할 일이 조금 더 생긴 것 같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