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30
제630화. 이안의 실험
데에엥! 데엥!
타닥타닥!
여명이 터오자, 토올룬 곳곳에 경종이 울렸다. 밤중으로 난 큰 화재 때문에 날밤 새운 주민들이 퀭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뜨거운 열기는 가시고 차가운 새벽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그을린 시체들. 주민들은 저 멀리 바삐 움직이는 자들을 쳐다봤다. 귀 떨어진 시체는 여기 있는데, 다들 어딜 그리 바삐 움직이는 것인지, 원.
콰앙!
경비대는 토올룬 수도 안의 모든 숙박 시설을 급습했다. 당연히 고급 호텔인 [랑데르>도 포함이었다. 갑작스러운 경비대의 방문에, 지배인이 화들짝 놀라며 데스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숙박 이용객 중 버고스나 바리엘 출신인 자가 있는가?”
물었으면 대답이나 들을 것이지, 그들은 지배인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호텔 직원들이 자중해달라 그들 앞을 막아섰지만, 돌아오는 것은 험악한 시선. 직원들은 난감하다는 듯 지배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예. 마침 어제 체크인 한 바리엘 손님들이 계십니다. 왜 그러시는지 재차 묻겠습니다.”
“이름은? 이것이 장부인가?”
“이보시오! 이러면 곤란합니다. 여긴 [랑데르>라고요. 토올룬에서 제일가는 고급 호텔을 이런 식으로-”
처억.
지배인의 호소에 경비대가 서신을 펼쳤다. 왕궁 직인이 찍힌 수색확인증이다. 동시에 자신들을 방해했다간 누구라도 잡혀 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장이었다.
지배인은 알겠다며 두 손을 들었고, 이내 그들에게 비키라 손짓하며 앞장서서 걸었다. 적어도 경비대가 무작정 객실 문을 여는 일 따위 없어야 했으니까.
똑똑.
“실례합니다. 기침하셨습니까?”
하지만 안쪽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지배인이 목을 가다듬으며 옆방을 두드렸으나 이번에도 마찬가지. 호위가 한 명 있으니 응답할 만한데, 나오는 자가 없다.
아 참, 어제 격투장 가서 돌아오긴 했나?
잠깐만, 격투장?
“마스터키를 가져와라.”
“지배인님.”
“괜찮아. 어서.”
지난밤, 경비대장의 죽음 소식은 빠르게 퍼져갔다. 밤중에 계속 깨어 있던 지배인 역시 그 소식을 듣긴 했다. 다만 그것과 손님이 데리고 온 호위를 연관 짓지 못했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지배인은 심호흡하며 객실 문을 열었다.
철컥!
“헉!”
지배인이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남겨진 짐 하나 없이 깔끔하게 비어 있었던 게다. 간이 테이블 위, 냅킨과 금화 하나만을 제외하고.
“냅킨에 뭐가 적혀 있습니다만.”
“공용어로군. 지배인!”
“아, 네네.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니까, 음. ‘잘 쉬다 가오. 혹여 경비대가 우리를 찾는다면 친히 일러주게. 바로 우리가 그대들이 찾는 자가 맞는다고.’ …겨, 경비대장을 죽인 게 그 호위 검사입니까? 세상에!”
지배인이 놀라서 되물었으나, 경비대는 미간만 찌푸리며 냅킨을 뺏어 들었다. 핵심 증거물이다.
“총 몇 명이었지? 인상착의는?”
“네 명이었지요. 가주로 보이는 중년과 그 자식 둘. 남매로 보였는데 누이가 앞을 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호위는 붉은 머리칼의 우락부락한 사내였고요.”
“그자들이 마법사인 건 알고 있었나?”
“마법사요? 모두 다 말입니까?”
“모른다. 개중 일부 혹은 전부가 바리엘에서 온 첩자이며, 동시에 마법사라는 것만 전해 들었거든. 노예 시장 폐쇄된 거 알지?”
“예예. 모를 리가요.”
“어젯밤 절단귀를 처치하고서 물건을 채간 것 같은데, 크흠. 자세한 건 따로 설명하지. 따라와서 추가 목격 증언을 해주게.”
“예예, 알겠습니다! 아 참, 마차! 그들이 타고 왔던 마차는 저희가 보관 중입니다. 그것도 옮기시지요.”
경비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 보관소로 몸을 돌렸다. 수배자들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니 당분간 [랑데르>의 영업도 정지다.
한편, 지배인은 경비대로 들어가는 마차 안에서 네 사람의 인상착의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흐음. 그러니까-’
갈색 머리칼에 수염이 있었던 중년 남자, 흰 피부에 금발이 아름다웠던 소년,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자세가 유독 꼿꼿하여 인상적이던 여인. 그리고 못생기고 머리칼이 붉었던 호위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의아한 조합이긴 했다.
“전하께 직접 올라갈 것이니, 최대한 성실이 작성하시오. 그림 실력이 좀 있다면 좋겠군.”
“오오, 다행히 그림을 그릴 줄 압니다. [랑데르>를 운영하려면 기본적인 교양은 갖춰야 하지요.”
“재수 없기는. 잘난 척 그만하고, 그려내기나 해.”
지배인은 연필을 잡고서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심사숙고하여 선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 * *
“그래서 이게 그 초상화라고?”
“예, 전하.”
쿠마샤는 턱을 괴고서 종이 끄트머리를 집어 들었다. 조잡한 그림 옆에는 머리 색이나 지배인의 느낌 따위의 부가 설명이 빼곡했다. 썩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이는 내용을 천천히 살피며 중얼거렸다.
“여기, 얼굴을 보이지 않은 여인은 바르사베 대원일까? 머리 색을 보았다고 하던가?”
“아니요, 베일을 쓰고 있었다 합니다.”
“흐음. 토올룬, 그것도 왕궁 근처로 진입하는데, 굳이 앞도 못 보는 대원을 데려왔다는 게 의아하면서도, 또 생각해보면 적절한 선택인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같은 여인이니 필리아를 찾는 데 도움될 것이고, 여차하면 시각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은가?”
대답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 정리하고 이해하기 위해 이르는 말이었다.
절단귀 은신처에서 살아남은 통역 아이의 제보에 따르면, 필리아를 데리고 나간 것은 분명히 이안 히엘로다. 서로를 어머니와 아들이라고 칭했으니까. 그리고 이는 둘이 바리엘 본국에서 온 게 아니라, 버고스에서 일행을 꾸려 들어왔다는 뜻.
“이안 히엘로 그리고 바르사베. 이쪽은 이름이 뭐더라? 아아, 베릭! 맞아. 이안 히엘로가 그리 불렀던 게 기억 난다.”
쿠마샤가 종이를 깊게 살피며 희미한 기억을 더듬었다. 바르사베를 통하여 보았던 아기아르 성 안 쪽, 성질머리가 좀 지독해 보이는 사내였다. 정체는 마검사. 역시 황궁친위대 소속이겠지.
“나머지 한 명이 누군지 모르겠네.”
아이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사인가, 마검사인가? 아니면 다른 능력자인가? 아이가 침묵하며 고민하자, 옆에 앉아 있던 수상이 조심스레 물었다.
“한데, 전하. 어젯밤 그 소란의 주인이 이안 히엘로가 맞는다면, 벌써 토올룬을 벗어나지 않았겠습니까.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으니 더 머무를 이유가 없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전해 들은 바로는 마법사들의 포탈이 꼭 하늘에 걸리는 법은 없다고 합니다. 조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마법부 장관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어디든 문제없겠지요. 지난밤 어둠을 틈타 돌아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 남아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일이 좀 지나면 바리엘에서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전쟁의 불씨를 태울 것이니, 그에 앞서 대비하는 게 옳다 여겨집니다. 버고스에서 여기 직접 온 것은, 그들이 왕궁 소행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필리아 본인도 알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토올룬어를 좀 할 줄 안다면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절단귀 놈들이 통역을 세운 것으로 보아 아닐 것 같습니다.”
수상은 잠시 손을 들어 대신들을 진정시켰다. 다 좋다. 다 좋은데, 지금 중요하게 논의될 사안은 따로 있었다. 바로 토올룬의 방어 체계.
“마법사가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토올룬으로 들어올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왕궁은 술사들이 보호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 결이 다른 초월적 능력 아닙니까.”
“용병 마법사를 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수도에 남아 있는 자들이 다섯 정도 되지요?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노예 시장 폐쇄를 풀고, 상인들에게 일감을 주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절단귀도 전부 죽었겠다, 더는 필리아를 찾을 수 없으니 시장 폐쇄는 무의미합니다.”
“동의합니다. 수소문해 보도록 하지요.”
“참, 그리고…….”
쿠마샤의 눈이 가늘어졌다. 왕의 침묵은 덕목이라 칭하며, 저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아 사안을 정하는 게 참으로 같잖다.
아이는 손끝을 까딱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신들이 당황해했으나, 수상은 괜찮다며 눈짓하고서 아이를 따라나섰다.
“잠시 쉬고들 계시오.”
“어허, 참 나. 중대사를 앞두고서.”
“크흠. 차나 한잔 드시지요.”
끼이익.
쿠마샤는 인형이 잔뜩 모여 있는 공간을 열었다. 산더미처럼 널려 있는 것 중, 아이는 익숙하게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바르사베와 이어져 있던 인형이다. 여전히 시각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바르사베 쪽에서 한 시도 안대를 풀지 않았던 터라 한쪽으로 치워둔 지 오래였다.
쿠마샤는 손을 가볍게 모으고는 인형과 자신을 연결했다.
“전하.”
“쉬잇. 믿고 맡기어 자리를 뜬 것인데, 어찌 그러시오. 집중에 방해되니 조용히 해주어. 바르사베의 눈을 빌리는 중이다.”
쿠마샤라면 본디 감정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 법이거늘. 수상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어린 왕의 미간이 작게 움직였다.
“음?”
여전히 어둠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어둠의 결. 눈을 가리던 천이 바뀌었는지 빛이 조금 새어 들어왔다.
“……!”
아이가 놀라서 멈칫거렸다. 이내 시야가 천천히 걷히더니, 앞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앞에는 베릭이 서 있었다. 그는 쿠마샤가 들여다보고 있는 걸 알고 있는지, 진중한 낯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꼿꼿이 들어 보이는 가운뎃손가락. 혀까지 내밀며 조롱을 선사했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아직이다.”
“예?”
“이것들, 아직 토올룬에 있어.”
바르사베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종이에 또박또박 적힌 토올룬어를 보여줬다.
-죽음을 각오해라.
타앗!
다음 순간, 빠르게 시야가 흔들렸다.
쿠마샤의 눈동자도 주위를 파악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토올룬 풍의 건물이 분명했다. 저긴 어디지? 왜 갑자기 달리는 거지? 죽음을 각오하라니, 설마 나에게 보내는 경고인가?
“수상! 지하로!”
“왜 그러십니까, 전하.”
“이안 히엘로 일행이 움직였다! 이동하고 있어!”
그 말에 수상의 안색이 희게 변했다.
“밖에 아무도 없는가? 전하를 지하로 모셔라!”
아이는 계속 미간을 찌푸린 채 집중했다. 위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놈들이 어디 있는지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심장을 꿰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토올룬 수도는 벗어났나? 설마-
“와, 왕궁?”
바르사베의 시선에 왕궁이 보였다. 그녀는 초인적인 속도로 내달리는 게 분명했다. 주위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정체를 드러낸 상태로 그저 있는 힘껏 대로변을 내달리며 왕궁으로 달려드는 중이다.
“젠장!”
이대로 가면 지하로 이동하기 전, 바르사베가 왕궁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물론 왕궁에도 수비를 담당하는 술사들이 있지만, 황궁친위대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 불가기 때문에 상황을 짐작할 수 없었다.
쿠마샤는 바르사베 인형을 집어 던진 다음, 책상으로 다가가 단검을 꺼냈다.
‘접근하면, 죽인다.’
아이는 바르사베가 내달리던 길 등을 떠올리며, 제2의 눈으로 왕궁 주위를 살폈다. 어디지? 어딜까? 바르사베!
촤아악!
그때, 시선에 들어오는 푸른색 머리칼. 그녀는 왕궁 담을 넘기 위해 도약한 듯싶었다.
표적을 감지한 쿠마샤가 있는 힘껏 단검으로 인형을 찔렀다.
푸욱!
책상 바닥까지 박힐 정도로 강하게 말이다.
쿠마샤가 쿵쿵 뛰는 심장을 느끼며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창밖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그저 방 안의 사람들만이 형체 없는 공포를 느끼며 쿠마샤를 지켜보고 있을 뿐.
“…밖에, 바르사베 시체 있는지 확인해 봐.”
한편, 그 시각. 이안이 망원경을 거두었다. 바르사베 역시 숨을 토해내며 벽을 짚었고, 필리아가 걱정스레 그녀를 안아주었다.
“괜찮아요? 바르사베?”
“예, 괜찮습니다.”
바르사베는 대자로 뻗은 채 그들을 지키고 있는 보호막을 올려다봤다. 눈속임용 분신을 본체처럼 움직이느라 마력 소모가 상당했다.
그래도 원하는 바는 알아낸 듯싶다. 이안이 지도에 무언가를 기록하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왕이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범위는 왕궁에 국한되어 있다. 토올룬 수도 전체에 영향력을 끼치려면 물리적 또는 시간적인 조건이 필요한 듯하니. 만약 수도 전체만큼의 무대를 만들어 두었다면, 그곳은 필시 거주하는 왕궁 내부는 아닐 터.”
규모가 상당할 것이니 말이다. 단, 왕궁 지하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마검사가 왕궁에 접근할 때까지 별다른 경계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마력을 사용하는 자도 없는 것 같고.
‘마법사들이 침입했다는 걸 알았으니, 바리엘에 대항하여 보안과 경비를 강화할 게다. 그 전에, 저들의 본 전력을 파악하는 게 좋아.’
결론을 내린 이안은, 베릭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베릭. 이젠 네 차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