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34
제634화. 황궁의 불청객
토올룬 왕궁은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어수선했다. 바깥은 바깥대로, 안쪽은 안쪽대로 말이다.
정령술사들의 힘으로 바닥은 온통 물바다였으며, 상아색의 기둥에는 그을림이 남았다. 바누사는 바삐 움직이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분노에 찬 걸음을 옮겼다.
콰앙!
그녀는 시종의 안내를 무시하며 손수 대회의장 문을 열어젖혔다. 나름 비상이랍시고 수상과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제일 위쪽, 베일에 가려진 채 앉아 있는 자신의 왕까지.
바누사는 수상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 설명 좀 해보십시오!”
“무엇을? 바리엘에서 습격자를 보낸 것에 대하여 내가 무슨 설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필리아!”
이번에는 무엄하게 왕 쪽을 바라보며 그 이름을 외쳤다. 베일로 은근히 보이는 실루엣은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는 듯.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대체 왕궁에서는 무슨 목적으로 제국 마법부 장관 어미를 납치하신 것입니까?”
“납치라니, 말조심하게. 그것은 저쪽의 일방적인 주장이거늘. 왕궁 소속 정령술사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네.”
“제발! 수습하기 위해서는 털어놓으세요. 내부에서도 말이 각자 도는데, 어찌 바리엘에 대적하여 난관을 해결하겠습니까? 전하!”
마침 불의 정령술사 아르도가 뒤늦게 도착하여 상황을 살폈다. 대신들이 인상을 찌푸리자, 아르도는 어쩔 도리가 없다며 두 손을 들었다. 지금 바누사의 분노는 정당했고, 자신 또한 뜻을 모으려는 바였으니까.
“바누사.”
청명한 아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단조로움 속에서, 바누사는 왕의 분노를 감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너덧에 불과한 자들에게 왕궁이 농락당하지 않았던가?
쿠마샤는 바르사베에게 분신술이라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분신술을 만나면 어떻게 발현되는지도.
“그리 궁금하면 마산타르 신전에 다녀오게.”
“…마산타르 신전이요?”
“그래. 그리하면 그대의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르도.”
“예, 전하.”
“소방은 바누사의 가문에서 담당하는 바이지만, 왕궁 경비는 그대 가문에서 주도하고 있지 않나? 왕성 앞까지 침입한 적을 그리 보낸 것은 분명한 실책이다.”
쿠마샤의 질책에 아르도가 고개를 숙였다. 물론 왕궁에는 왕궁방위부가 있고, 그들 산하에서 움직이는 병사들 또한 많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마법사와 마검사. 대적할 수 있는 자가 토올룬 왕궁에서는 술사에 한정되니, 당연지사 그 책임도 아르도의 몫이다.
“송구합니다. 도망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사태로 토올룬 왕궁의 수비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되었소. 방위부 부서 증설과 병력 확대에 집중하고, 아르도를 선두로 하여 정령술사들은 용병 마법사를 모집하시오.”
마법사에게 대적하기 위해서는 마법사가 분명히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인형술사들을 꺼리다 못해 두려워했다. 엮였다가 언제, 어느 틈에 의지를 잃을지 모를 일이니까.
그러니 토올룬 왕궁이 전면으로 나설 게 아니라, 정령술사 가문이 전담하여 용병 마법사들을 ‘꾀어’ 오라는 뜻이었다.
“수가 적어도 상관없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였겠지.”
아르도는 난감해하며 대답을 미루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명령이 번복되는 것도 아니다. 쿠마샤는 베일 너머로 자신을 노려보는 바누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누사.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떠나도 좋다. 그런 게 아니라면 제자리로 복귀해. 그대가 베릭에게 틈을 흘리는 바람에 바깥의 상황이 어수선하다.”
모두 보고 들었던 게다. 인형술사의 감각은 그들의 영역 안에서 신의 그것과 같았으니. 아르도가 알았던 것처럼, 쿠마샤 또한 바누사가 실언한 것을 안 것이다.
바누사는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다면 토올룬 수도의 소방 체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요, 농업지에도 타격이 갈 것이었다.
‘그걸 감수할 수 있을지 묻고 있는 거지.’
끝까지 정확한 얘기는 해주지 않는구나. 바누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볍게 인사했다.
“예. 알겠습니다. 직접 다녀오지요. 당장이라도 떠날 채비를 하겠습니다.”
“뜻대로.”
바누사가 그리 이르자, 쿠마샤가 대답했다. 살짝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럼, 이만.”
바누사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며칠간 수도를 떠나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지금 왕궁의 목적을 알지 못하면 토올룬은 더 큰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작은 희생은 필수적이다.
“늦지 않게 돌아와.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리움에 못 이겨 그대와 닮은 인형을 찾고 말 것이니.”
의미를 알아챈 자들이 멈칫거렸다.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정령술사와 연결된 인형을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바누사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애써 무시하며 대답했다.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전하.”
* * *
“마산타르 신전?”
“그렇습니다. 다몬의 형제자매들이 러더포드에 의해 이동된 장소입니다. 토올룬 안에 있는 것이니 왕궁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고, 분명히 바리엘을 위협할 만한 것이 존재하겠지요.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병사 모집이 우선이겠지만,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쪽을 파고들 것입니다.”
이안의 보고에 수상이 안경을 가볍게 올렸다. 그들 앞에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황궁 관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풍경만 본다면 전쟁 전, 일상과 다를 바가 없다.
“흐음. 일리가 있는 말이오, 장관.”
“그러면 우선 필리아 부인의 납치에 대해서는 카티마코 술사의 증언이 꼭 필요한 부분이군. 이 내용을 담은 공식 서신을 아스타나로 보내도록 하지요. 황제 폐하께 직접 보고하여 주십시오.”
“예, 물론입니다. 폐하께서는 아마 아스타나의 증언이 확보되면 바로 토올룬으로 이동하시고자 할 것입니다. 황궁에서는 동쪽, 하완과 루스웨나의 정세를 더욱 주시해주십시오.”
사락.
이안이 보고서를 넘기자 관료들도 따라서 보고서를 살폈다. 필리아의 증언도 확보했고, 토올룬에서 일어난 일 등이 한 번에 공유되니 사안이 명백해졌다. 전서구로 주고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지 않나.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부인.”
“염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수상의 환대에 필리아가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실종으로 사방팔방 찾아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참으로 면구했다.
“아닙니다. 일단 이안 장관, 전체적인 사안은 파악했소. 그러면 바로 버고스로 돌아갈 것인가?”
“예, 복귀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수상의 물음에 이안이 대답했다. 필리아와 로만드로가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미 그들은 지난밤 회포를 나누지 않았던가? 베릭과 헤일, 바르사베는 아무래도 좋다는 눈치였다.
수상은 서류를 탁탁 치며 알겠노라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고스로 돌아가는 포탈은 부디 최대한 작게 만들어주시게. 어제 하루 동안 중앙이 발칵 뒤집혔다네.”
“송구합니다.”
“참, 그리고 다몬 왕은 어찌할 것인가?”
마탑에 가둬 놓은 다몬 왕도 데리고 돌아갈 것인지를 묻는 말이었다.
버고스에서 왕당파의 내부 분열이 홀린 가문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하였으니, 다몬 왕의 존재는 그들을 결집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고려해 볼 필요는 있었다.
“마탑은 마법부의 소관이니, 장관 그대가 원한다면 결정을 내리시게.”
“다몬 왕의 도움 없이도 카일라 영애는 잘 해낼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다몬 왕이 살아서 버고스 땅을 밟게 하고 싶지 않다는 황제 폐하의 뜻을 먼저 따를까 합니다.”
“흐음. 알겠네. 카일라 영애가 그리된 것도 참으로 유감이지. 내 조만간 홀린 공작을 따로 만나서 얘기를 나누도록 하겠네.”
다리를 영 못 쓰게 되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클로이마저 조금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참, 수상님.”
“이르시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이안이 무언가 생각한 듯 덧붙였다.
“말씀하신 대로, 돌아가는 포탈은 최대한 작고 은밀히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때에는 외교에 이를 적절히 이용하십시오.”
하완과 루스웨나의 격전 불똥이 바리엘로 튈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황제도 없고 마법사들도 죄다 버고스 쪽으로 가 있으니, 적군이 보자면 지금처럼 적기일 때가 없을 테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이안이 바리엘에 남아 있는 것처럼 상대를 속여도 좋다는 뜻이다.
“제가 중앙으로 돌아왔다는 건 이미 소문이 퍼졌으니, 다시 출정했다는 얘기가 새어 나가지 않는 이상 루스웨나는 감히 바리엘 쪽으로 고개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안 그래도 그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어제 들어온 정보 중엔 하완의 왕이 죽었다는 얘기도 있어. 정권을 잡은 샤티마 수상이 처형식을 거행한 듯하네. 정확한 건 아니네만, 사실이라면 루스웨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안일세.”
수상이 손을 내밀자 이안이 정중히 맞잡았다. 이제 마법부로 가서 짐을 대충 챙기고 다시 출정할 일만 남았다.
마법부로 향하는 복도. 헤일은 기억을 더듬으며 아코렐라가 노래를 불렀던 마력석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냈다. 지금쯤 광산에 가 있겠지만, 뭐. 일단 챙기면 언제든 잘 이용해 먹겠지.
“헤일. 너는 짐을 챙겨 나와라.”
“이안 님, 포탈 수식 쓰십니까?”
“그래. 창공에 띄우면 아니 되니 대지에 새로이 열 것이다. 마법부 뒤뜰이 좋겠군.”
“알겠습니다. 금방 챙겨서 뒤뜰로 나오겠습니다. 먼저 하고 계십시오.”
“헤일, 도와줄까?”
“로만드로 님. 괜찮습니다. 그런데 마법부가 이다지도 조용한 곳이었군요.”
“난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것 같은데.”
헤일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마법부 안으로 들어갔다. 이안은 평평한 바닥을 골라 손으로 쓸어내렸고, 이내 손끝으로 마법진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안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리를 세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았다.
“이안아, 왜 그래? 문제 있어?”
“그런 것 같은데.”
“뭐?! 진짜? 뭔데!”
대충 드러누워 있던 베릭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이안은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바닥만 살피며 걸었다. 오른쪽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다시 앞으로…….
스윽.
이안이 멈춘 곳은 커다란 버드나무 앞이었다. 베릭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안이 고갯짓했다.
“베릭. 여기 찔러봐.”
“찔러보라고? 뭐를? 나무를?”
“이안, 왜, 왜 그래. 무섭게.”
“로만드로 님은 어머니와 함께 잠시 물러나 계십시오. 저쪽, 차양 아래 서 계시면 좋겠군요.”
영문을 모르겠다만, 뭐, 하라면 해야지. 로만드로는 필리아를 부축하여 뒤쪽으로 물러났고, 베릭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코만 긁어댔다.
“뭐 해, 어서 찔러.”
“에, 그러니까… 여기 그림자 말하는 거지?”
“그래. 하나, 둘, 셋 외치면 찌르는 거다. 혹여 검이 잘 들지 않는다면 마력을 개방해도 좋다.”
“마력까지 개방해? 나 원 참. 오케이! 까라면 까야지!”
베릭은 팔을 걷어붙이고서 검을 두 손으로 쥐었다.
“간다! 하나, 둘, 세엣-!”
그리고 곧장 있는 힘껏 내려치려는 순간-
“잠까아안!”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놀란 베릭이 눈을 끔뻑였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잘 꾸며진, 광활한 뒤뜰 풍경뿐.
이안은 이럴 줄 알았다며 미간을 찌푸린 채 쪼그려 앉았다.
“모습을 보여라. 그림자 부족, 나탄이여. 그렇지 않으면 죽일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