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35
제635화. 가방
이안과 베릭 그리고 로만드로는 함께 쪼그려 앉은 채로 나탄족 사내를 내려다봤다. 그림자에 반쯤 걸쳐 얼굴을 보인 그는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이안, 그러니까 이게 누구라고?”
“나탄족이요. 북쪽 소수민족 중 하나입니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자인데, 마법진 파동 덕에 알아챘습니다. 대체 여기 왜 있는지는 저도 의문이군요.”
“인마, 이안이가 의문이라잖아. 대답.”
베릭은 나탄족 사내의 머리채를 가볍게 잡아 흔들었다. 이 미친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있었단 말인가?
로만드로도 혀를 끌끌 차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법부의 주된 임무 중 하나가 황궁 경비였기에, 여차했다간 말이 돌 수 있었다.
“그, 그게, 제가 여기 오래 있었거든요, 크흑. 제, 제 이름은 나부실라타쿠라니투입니다.”
“나부… 뭐라는 거야? 안 물어봤거든? 왜 여기 있냐고.”
“…다, 다몬 왕을 처치하러 왔는데 일이 잘못되어서요.”
다몬 왕을 언급하자 로만드로의 눈이 동그래졌다. 일전에 있었던 다몬 왕 습격 사건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적의 황궁 침입 경로를 찾지 못해 흐지부지 사건이 마무리되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그림자를 타고 들어온 것인가?”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황궁에 식료품 납품하는 자의 도움을 받아 마차 타고 들어왔습니다.”
“뭐라고?!”
꽤액! 로만드로가 놀라서 소리치자, 멀리 있던 필리아가 흠칫거렸다. 한 보따리 짐 챙겨서 나오던 헤일도 상황 파악을 위해 잠시 멈췄다. 로만드로는 나무 열매를 털 듯 나부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어느 망할 놈이 감히 황궁에 그런 짓을 했어?”
“으아, 흐, 흔들지 말아주십시오. 어지럽습니다.”
“말해! 어느 업체인지!”
“저, 저도 자세히는 모르고, 마부가 알카엔? 뭐 그런 비슷한 이름이었던 것 같아요.”
로만드로가 씩씩거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안 일행이 버고스로 넘어가면 중앙을 싹 다 뒤져서라도 그놈을 찾아내어 벌하고 말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러고 있냐? 집 없냐?”
투욱. 베릭이 나부의 이마를 툭툭 치며 물었다. 악의 없는, 정말 순수한 물음이었다. 그때가 아마 아기아르 공성전 즈음인 것 같은데, 아직도 왜 황궁에 남아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다몬 또 죽이려고 기회 보고 있었어?”
“…….”
“와, 이안아. 이 새끼 거짓말은 못 하네. 입 꾹 다문 거 봐. 줘 패고 싶다.”
“아닙니다! 기회만 엿본 건 아닙니다! 그날 이후 황궁 경비가 강화되어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애당초 마법 결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면 민간 마차를 타고 들어오지도 않았겠지요!”
“아하, 다시 타고 나갈 마차가 없으셨다?”
“기다려도 안 오는 걸로 봐서… 예. 뭔가 문제가 단단히 생겼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뭐, 기다리다 보면 다른 지시가 내려올 것 같기도 했고요.”
“음. 등신 같지만 솔직해서 마음에 드는군.”
이안은 작게 한숨 쉬었다. 드넓은 황궁 그림자 어딘가에 이런 자가 숨어있으리라 그 누가 짐작했겠는가? 인기척 없는 곳을 찾아 들어오다 보니 텅 빈 마법부 옆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 때문에 이안에게 걸렸지만.
“황궁에 침입하여 소란을 일으킨 죄는 중죄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숨어 지냈죠.”
“너 뭐 먹고 지냈는데? 마법부 식당 털어먹었어? 하여간, 여기 주방장 은근히 허술하다니까? 창고 따는 법만 알면 사실 배 터지게 먹지. 암, 내가 알아.”
베릭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로만드로가 주방장을 애도했다. 악연도 그런 악연이 없지. 하도 음식 훔쳐 먹는 베릭 때문에 주방장은 검술까지 새로이 배웠다. 꽤 수준급으로.
“아니요. 건물 안에 들어가는 건 시도도 못 했습니다. 여기 안에 저장해둔 것들이 있어서, 그거 조금씩 아껴 먹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안에? 어디?”
베릭이 그림자 쪽으로 고개를 쭉 들이밀었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풀밭에 부딪혔다.
“보, 보여주기 싫은데요.”
“뭐?! 왜?!”
“제, 제 마음입니다.”
“이게 미쳤나.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으아아악!”
베릭이 다시금 나부의 머리채를 뜯을 듯이 잡아 흔들었다. 로만드로도 ‘이놈, 괘씸하다!’라며, 옆에서 베릭을 응원했다.
“이공간 같은 것인가?”
이안은 손끝으로 그림자를 매만졌다. 나무 그림자와 섞여 그 경계를 느낄 수 없었다. 이전에 나탄족과 전투할 때도 느꼈지만, 참으로 신기한 능력이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자르고, 붙이며, 전용 공간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들어가지?”
“개인마다 다른데, 저, 저는 장정 스무 명 정도는 무리 없이 들어갑니다.”
“사람이 안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나탄족이 아닌 인간이라면, 길게 잡아도 한 시간 정도요.”
“공기가 차단되어 그런가 보군.”
“그, 그렇습니다만… 왜요?”
왜요? 침입자 주제에 어디서 건방지게! 베릭이 재차 나부의 목덜미를 잡아 흔들려고 하자, 그가 죄송하다며 손을 싹싹 빌어댔다. 사서 매를 버는 놈이다.
“선택해라. 우리는 지금 버고스로 들어갈 것인데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죗값을 치를 것인지.”
“죄, 죗값이라 하시면?”
“사형이다.”
“커억!”
나부가 제 목을 틀어쥐며 경악했다. 얼마 없는 음식 쪼개 먹으며 근근이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죽으라고?
“당연히, 당연히! 버고스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네 그림자를 사용하고 싶은데, 이를 이해하겠나?”
“예! …예?”
지금 저 말은 자신이 부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기한 이안의 가방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나부의 입이 살짝 벌어지자, 이안이 싱긋 웃었다.
“이해했구나.”
“저기… 언제까지?”
“알 수 없다. 적어도 토올룬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하나 짚을 점은, 토올룬 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부가 당황해하며 멈칫거리자, 베릭이 검을 다잡았다.
“싫어? 싫으면 관두고.”
“잠깐만요! 아니요! 잠시만요!”
“우리도 싫은 사람 붙잡고 그런 거 안 해.”
“아니라니까요! 하, 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선택지가 따로 없었다. 저쪽을 따라가지 않으면 당장 죽을 목숨이니까. 이안은 잘 생각했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차피 지금은 부족으로 돌아가지 못한단다. 러더포드가 몰락하면서 협조하였던 북쪽 부족민들이 전부 자취를 감추었거든. 찾아가려면 시일이 걸릴 터. 하나 이쪽에서 일을 봐준다면, 언제고 나탄족을 사면해주도록 하지.”
“러, 러더포드가 몰락했습니까? 어쩌다가요?”
“뭘 어쩌다가여? 우리가 이겼으니까지. 이안아, 이 새끼 띨빵해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그냥 죽이면 안 됨?”
“빠릿하게 잘 할게요! 잘 할 수 있습니다아앗!”
나부가 살려달라 부르짖자, 로만드로가 베릭의 옆구리를 쿡 찌른 다음 은밀히 엄지를 들어 올렸다. 이에 베릭은 영문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진심으로 죽여도 상관없을 것 같아 한 말이니, 그럴 수밖에.
“혹시 모르니 안전장치는 해두는 것이 좋겠지.”
“음, 아! 이보게!”
로만드로가 황궁에 남아 있는 마법사 한 명을 불렀다. 계약 마법을 맺고자 함이다. 상황을 전해 들은 마법사가 제 손바닥에 마법진을 그려냈고, 이어서 나부에게 악수를 청했다.
“잡으면 계약으로 묶이는 것이다. 바리엘에 절대적으로 협조할 것. 그 기한은 정세에 따라 우리가 결정한다. 혹여 반하는 짓을 했다간, 신의 힘이 그대의 심장을 찢을 것이다. 동의하는가?”
“동의는 안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오, 역시 뚫린 입. 근데 너 냄새가 좀 심하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나부가 그리 중얼거리며 마법사의 손을 맞잡았다. 동심원을 그리던 마법진이 길게 펼쳐지며 그들의 손목을 단단히 묶고는 사라졌다.
“자아, 그럼 준비하도록 하지. 헤일, 물건은 다 챙겼나?”
“예, 이안 님. 아무래도 다 챙기지는 못했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헤일 대장이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멈칫거렸다. 마침 좋은 가방 하나가 생겼음을 인지한 것이다.
이안은 유용하게 사용하라며 손짓했고, 헤일은 짐을 내려놓은 다음 다시 연구실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연구실을 통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로만드로 님. 나탄족에 대한 것은 대외비로 해두시되, 진상 조사는 철저히 부탁드립니다. 보고서 올려주세요.”
“응! 걱정하지 마시게. 내가 아주 요절을 내버릴 것이니!”
안 그래도 일전 황궁 침입 당시 보안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외부인이 숨어 살았다는 게 알려지면 상당한 혼란이 올 터. 수상을 비롯한 책임자들만 알고 있는 편이 나았다.
“마법부 인력이 모자란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힘내다오. 지금처럼 보안에 더욱 신경 쓰도록.”
“예, 이안 님. 맡겨주십시오. 정신 바짝 차리겠습니다.”
이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필리아는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는 걸 알고서 슬며시 아들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안아. 부디 몸조심하고.”
“예, 어머니도 건강하게 계십시오.”
“…고마워.”
길게 나누지 않아도 충분했다. 필리아는 이안을 껴안으며 마지막 아쉬움을 털어냈고, 이어 작게 속삭였다.
“기도할게. 매일매일 신께 기도할게. 네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이안은 필리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답인사를 대신했다.
때마침 연구실에서 나온 헤일이 거대한 짐 보따리 다섯 개 정도를 철퍼덕 내려놓자, 베릭이 나부의 등을 밀었다.
“여! 처리해, 나부!”
“나, 나부실라타쿠라니투…….”
“닥쳐. 너는 앞으로 나부다.”
터덜터덜, 나부는 맥 빠진 걸음으로 헤일에게 다가가 짐을 제 그림자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구멍이 생긴 것처럼 쏘옥 들어가는 것 아닌가. 참으로 신기한 광경에 헤일이 가볍게 손뼉 쳤다. 무겁게 들 필요 없어서 좋긴 하다.
지이잉. 지잉.
이안은 나부 때문에 멈췄던 포탈 마법진을 다시 발동했다. 외부에 들키지 않게끔, 이번에는 검은 달이 바닥에 떴다. 마치 나부의 그림자처럼.
“그럼, 다시 가겠습니다.”
“잘 가시게, 이안! 보고서 금방 올리지!”
“이안아, 잘 가! 조심히!”
“베릭이랑 헤일 대장 그리고 바르사베 대원도 몸조심하시게! 곧 보자고! 돌아오면 내 술 한잔 거하게 사겠네! 베릭이 빼고!”
“난 왜 빼!”
“넌 너무 많이 먹어!”
부엑. 베릭이 혀를 내밀며 나부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러고는 제일 먼저 검은 달로 뛰어들었다. 이어서 바르사베, 헤일까지.
이안은 고개를 까딱이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고, 이내 그들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 * *
“하아.”
버고스 칼라마트 왕궁. 마법사들은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안 님은 잘 지내고 계실까?”
“베릭이 같이 갔으니까 심심하지는 않으시겠지.”
“간 지 며칠 안 됐는데, 참 이게 뭐랄까…….”
“좋지?”
나키나가 끼어들며 묻자, 마법사들이 묘하게 웃었다. 이 감정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안이 없어서 정말 아쉽고, 그립지만 한편으로는 몸이 너무 편했던 것이다.
완벽주의 일 중독인 상사가 출장 가니, 하루가 이렇게 느긋할 수 없다. 그들은 이안을 정말 사랑했지만 이런 자유는 너무 달콤했다.
“크흑. 이게 얼마 만에 점심시간인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아까부터 기쁨의 눈물 흘렸음. 점심시간에 책상이 아니라 밖에서! 그것도 햇볕을 쬐며 먹는 식사라니. 이게 사람 사는 거지, 하아.”
“미치도록 행복하다…. 하지만 그리워. 그러나 조금 늦게 오셨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목적은 수월하게 이루셨으면 좋겠고, 그럼에도 서두르지는 않으셨으면…….”
“어라?”
“푸흡-!”
커피를 한 모금 쪼오옥 마시던 마법사가 멈칫거렸다. 갑작스레 창공에 검은 달이 뜬 것이다. 그들은 먹던 것을 뿜으며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들었다. 확연하게 느껴지는 기운.
“이, 이안 님 아닌가?”
“서, 설마…….”
“왜, 왜 벌써 오셨지?”
상관이 돌아왔다. 그것도 너무 빨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