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36
제636화. 상관의 복귀
“시아오시.”
“…예, 폐하.”
아주 미묘하게, 평소보다 조금 느린 대답이었다.
서류를 확인하던 진이 시아오시를 돌아봤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덤덤한 낯으로 주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진은 그 눈빛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몸이 안 좋은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칼라마트 성 내부에 공간이 충분치 않으니 병사들의 훈련장을 바깥에 둘까 하는데. 이에 관해서 트웰러 장관이 보고서를 올리기로 했다. 아직인가?”
“아, 그 건은 오후 중으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시아오시. 무언가 불편해 보이네만.”
진이 결국 펜을 내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리자, 문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의아한 시선을 나누었다. 시아오시 경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언제나처럼 느릿하고, 묵직한 태도이지 않나? 시종들이 황제의 심기를 헤아리며 허리를 숙였고, 시아오시는 잠시 침묵했다.
“말해 보아. 문제가 있나?”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데. 내 눈은 못 속이네.”
“…그저, 버고스 지방 영지 관리에 관한 생각 중이었습니다.”
어허? 이것 보아라? 진이 어이없어하며 팔짱을 끼었다. 말로는 영지 관리를 논하고 있지만, 그 깊은 내면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바로 알아챈 게다. 바로, 클로이 영애.
미쳐도 한참 미쳤지. 진은 안 되겠다며 의자 하나를 끌어와 툭툭 두드렸다.
“이리 앉아보게.”
클로이 영애는 시아오시의 반려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성정인지는 훤히 보이지 않나? 사교계에서 들려오던 소문들은 차치하더라도, 황후 자리를 위하여 독극물에 가까운 아코렐라의 물약을 단숨에 들이켠 것만 보아도 시아오시에게 어울리는 자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에게는 보다 참한 영애가 적합할 터.
똑똑!
“실례합니다, 폐하. 이안 히엘로 장관이 급히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바깥에서 갑작스러운 기별이 들려왔다. 토올룬으로 떠난 지 고작 며칠밖에 안 되었건만, 벌써? 진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고, 시아오시 또한 표정을 굳혔다. 혹여 불미스러운 일로 돌아온 것일까 봐.
“이안 경이? 지금 어디 있나?”
“마법부와 함께 있습니다.”
“앞장서라.”
타닥타닥!
진이 시종을 다그치며 내달리듯 걸었다. 저 멀리, 왕궁 중앙 홀에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우려와 달리 아주 멀쩡해 보이는 이안도.
“이, 이안 님. 어쩌다가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아니, 무사히 돌아오셔서 너무 좋은데. 예, 진짜 좋은데… 조금 당황해서 그렇습니다.”
“아닌데? 이안아! 지금 얘들 땡땡이치려다가 못 쳐서 실망한 눈친데?”
“닥쳐, 베릭. 네가 뭘 알아?!”
“그래! 네가 뭘, 뭘 알아, 이 새끼야아! 지는 매일 놀고먹는 주제에! 네가 우리의 고충을 알아? 어? 밥도 제일 많이 처먹으면서!”
“어~! 발끈하면 인정하는 거지, 딱 걸렸지~!”
“내가 오늘 저 새끼, 반쯤 죽인다.”
“네가 참아. 미친개랑 싸우면 이겨도 본전이니까.”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운, 그러나 익숙한 분위기. 오랜만에 홀이 어수선함으로 그득해졌다. 이안만이 아니라 베릭, 헤일, 바르사베 또한 별다른 부상 없이 복귀한 게다.
“그런데 이안 님, 저건 뭡니까?”
마법사 한 명이 뒤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낯선 얼굴을 가리켰다. 꼴을 보아하니, 저번에 보았던 북쪽 소수민족 출신인 것 같은데, 어찌하여 이안과 함께 포탈을 타고 온 건지 모르겠다.
“사정이 있어 그리되었다.”
“쟤 이름은 나부. 황궁에 숨어 있길래 잡아 왔음. 앞으로 가방처럼 쓰면 됨. 아코렐라 실험실도 잔뜩 털어 왔지롱,”
“네? 이안 님, 바리엘에서 오신 것입니까?”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영문을 모르겠다. 토올룬으로 간 상관이 어찌하여 바리엘에서 온 것인지, 그리고 나부인지 뭔지 하는 나부랭이는 무슨 수로 황궁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이안은 별다른 대꾸 없이 위쪽을 올려다봤고, 이내 난간 틈으로 진을 발견했다.
“폐하.”
“이안 경. 어찌하여 이리 일찍 돌아왔어?”
“어머니를 구출하여 바리엘로 모신 다음 돌아오는 길입니다. 자세한 것은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안은 헤일에게 뒷정리를 부탁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마법사들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이안이지만, 가끔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며칠 만에 낯선 토올룬 땅에서 필리아 님을 구하고서 바리엘로 모셨다고…….”
그들은 그게 사실이냐며, 헤일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봤다.
이에 헤일은 보면 모르냐며, 그러고 있지 말고 짐이나 옮기라며 궐련을 문 채 나부를 향하여 고갯짓했다.
* * *
“그래서, 필리아는 무사하다고?”
“예, 다행히도 말입니다.”
진은 감탄을 금치 못한 채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 짧은 사이, 토올룬에서는 정말 폭풍과 같은 사달이 일어났던 게다.
더하여 이안이 어느 정도 외교적 문제 사안을 던져 놓고 왔으니, 그게 잘 여물기만 한다면 앞으론 북진할 일만 남았다. 말 그대로 판이 깔린 셈이다.
“황궁에서도 현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다만 지금 바리엘은 하완과 루스웨나 측의 정세를 살피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이쪽에서 주도하여 성명을 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카티마코 측과 필리아의 증언을 토대로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도록 하지.”
“아마 토올룬에서는 모든 사안에 대해 전면 부인할 것입니다. 특히 카티마코의 경우엔 아스타나 출신인지라.”
아스타나는 북쪽의 소수민족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그런 자의 증언을 토올룬이 신뢰할 리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건 허울에 불과한 과정. 결국 두 나라 사이에 피어나는 것은 전쟁뿐이었다. 신의 뜻을 짊어진 전쟁.
“상황은 잘 알겠네. 바로 토올룬 쪽으로 공식 서신을 보내도록 하지. 황제 직인을 찍으려면 아마 보름 이상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황제의 명은 지엄하여 전서구가 짊어질 수 없었다. 하여 지금까지 바리엘에 내렸던 모든 명은 제국방위부나 마법부의 보고서 형식으로 전한 것이다. 바리엘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것은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지만.
“어찌, 시일은 넉넉하겠는가?”
“황제의 명 앞에 시일은 언제나 넉넉합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 또한 되어 있습니다. 다만-”
“다만?”
“홀린 가문의 요청만 아니었더라면 말이지요. 홀린 모녀는 어찌하고 있습니까?”
버고스에서 기반을 잡을 때까지만이라도 바리엘 병사들을 주둔시켜 달라는 요청 말이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바로 토올룬으로 출정해도 될 만큼 바리엘 병사들의 상태는 훌륭했다. 사기도 충만하고, 굶거나 다친 곳 없이 최상의 몸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온 가시밭길은 대부분 마법부가 앞장서서 헤쳤으니.
“카일라 영애는 성안에서 업무를 보는 것 같았고, 다니트 부인은 중앙 귀족들을 포섭하느라 바빠 보였네. 아무래도 선택지가 없는 터라 대부분은 홀린 가문 쪽으로 지지를 보내는 듯했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중앙 귀족들을 결집시킨 다음 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게 정석적인 방법이다. 마침 아코렐라가 광산 개발을 위해 먼저 출발했으니, 지방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라올 터. 이안은 잘 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심은 어떻습니까?”
“홀린 가문을 버고스와 바리엘의 연결 고리로 보는 자들이 많아. 맨 처음에는 부정적인 듯싶었다가도 지원을 약속하니 돌아선 것 같네. 아무래도 긴 전쟁의 여파가 힘겹긴 하겠지.”
홀린 가문은 런크비스 왕가의 방계이니 백성들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일 터, 전쟁을 끝내고 나라를 정상화하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환호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홀린 가문이 버고스에서 자립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다.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토올룬을 주시하여 관망토록 하겠습니다. 상황을 계속 살피며 출정 날짜를 잡으면 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안 경, 잠시 이것 좀 보아.”
진이 시종에게 손을 탁탁 튕겼다. 그러자 시종이 낡은 보관함에서 잘 말린 문서를 내왔다. 툭 하고 건드리면 바스러질 것 같은 종이다. 세월의 흔적을 가늠할 수 없었다.
“무엇입니까?”
“칼라마트 성 지하 기록 보관소 맨 아래쪽에 잠들어 있던 것일세. 고대 신전에 관한 내용인데, 낯설면서도 무언가 익숙한 것이 의아해. 이안 경이라면 이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말이지.”
글자가 먼지에 쓸려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고대 버고스어. 진은 그 옆에 해석본을 함께 내밀었다. 칼라마트 내 고고학자 도움을 받아 간단하게 해석한 것이다.
-…사방에 마물이 날뛰고 있다. 매일 죽음을 그리며 살고 있건만, 신께서는 어찌하여 응답이 없으신가?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울부짖고 있건만, 신께서는 듣지 못하시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한 기도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리 큰 외침도 듣지 못하는 신에게, 우리는 대체 무엇을 빌었단 말인가. 신께서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다 한들 우리를 보지 않으신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신을 신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안이 멈칫거렸다. 진의 말대로 아주 익숙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안은 뒷장을 넘겨 출처를 확인했다. 소재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동남쪽의 작은 신전, 팔라캄이다. 그리고 발언의 주체는…….
“라주 신관?”
“뭔가 좀 알겠나?”
“폐하. 라주 신관이라 하면, 바리엘의 기록에도 남아 있는 자입니다.”
“바리엘에서도?”
“예, 하망메르 신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라주 신관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아르센에게 그림자가 없을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진에게 그것은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일이었지만, 이안에게는 얼마 전의 일이었다. 기억의 선명함이 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자인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름이 같은 우연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기록된 내용이 실로 비슷하니 조사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고고학자에 따르면, 당시 버고스에는 마물의 피해가 극심하여 팔라캄 외 많은 신전에서 이처럼 불경스러운 기록이 남았다고 하네. 역사의 한 부분이라 반발심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하더군. 국교 결정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이것은 바리엘과 다른 부분이다. 바리엘에서는 라주 신관의 발언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하여 바로 처형하였지만, 버고스에서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여론으로 형성된 것이다.
‘…신의 축복을 가른 시발점.’
신에게 선택받은 바리엘과 그렇지 않은 버고스와의 차이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이안은 고심하며 턱을 매만졌다. 의문의 라주 신관이 동일인이라면, 이것은 러더포드가 말했던 ‘검은 씨앗’의 일부다. 조용히 뿌리내려 바리엘을 옭아매어 죽이려는 신의 그림자.
“우습군.”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폐하.”
“라주 신관이 바리엘을 위협하고자 했던 그림자의 수작이라면, 그로 인해 아르센을 축출할 수 있었으니 우스운 일 아닌가. 저들끼리 찌른 셈이다.”
“그렇습니다. 어리석음의 극치이지요.”
이안은 설핏 웃었다. 진의 뜻을 알아채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센을 언급하는 진의 태도가 참으로 대견스러워서. 그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덤덤히 이르는 것이, 그에게 아르센은 이미 빛바랜 과거가 되었음을 일러주는 셈이었으니까.
“아무튼, 현재로서는 토올룬을 견제하여 살피는 게 우선인데, 이번 사달로 인하여 병력을 증강하고자 할 터. 이에 관해서는 어쩌면 좋겠는가?”
그 물음에 이안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서는 증강할 여력이 없어 보였습니다. 왕궁 수비를 담당하는 정령술사들은 마법사들과 비교하면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러니 용병을 구하거나, ‘그 신전’을 통하여 일을 꾸미려 하겠지요.”
전면으로 대적할 수 없으니, 뒤에서 공작을 펼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이안은 으스러질 것 같은 문서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하여, 생각해둔 방법이 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