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37
제637화. 광산의 영애
“클로이 영애!”
“네에!”
아코렐라의 부름에 클로이가 고개를 휙 돌렸다. 대충 틀어 올린 머리칼과 덕지덕지 묻어 있는 숯 검댕이. 아코렐라가 ‘영애’라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 누구도 그녀의 신분을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아코렐라 역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클로이에게 손짓했다.
“저쪽, 큰 돌덩이 보여요? 왼쪽에서 두 번째. 저거 바로 옮겨주시면 되거든요. 저기만 들어 올리면 입구 찾을 수 있대요.”
“그래요? 알겠어요!”
클로이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서 성큼성큼 뛰어갔다. 광산에 가기 싫다고 울었던 영애는 어디 가고, 지금은 현장을 휘젓는 특등급 인부만 남아 있다. 아마 클로이가 없었더라면 이모저모로 작업이 더뎠을 것이다.
그녀가 거대한 바위를 단숨에 들어 올리자, 작업 인부들이 감탄하며 박수를 쳐댔다.
“오오, 세상에. 역시 바리엘에는 별별 희한한 사람이 많군요. 영애도 마법을 쓰시는 것입니까?”
“비슷하긴 한데, 아니요. 이거 어디에 둘까요?”
“이쪽으로 내려오십시오. 발 조심하시고요.”
클로이는 한쪽 어깨에 바위를 가볍게 걸치고 비탈길을 내려왔다. 마법으로 인한 부작용인지는 모르겠는데, 보급품을 관리하던 일보다 이것이 훨씬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에게 대단하다 칭찬받는 것이 기분을 정말 좋게 만들었다.
쿠웅!
“또 어디로 가면 될까요?!”
클로이가 눈을 반짝거리자, 아코렐라는 작은 수첩을 꺼내 그녀의 상태를 기록했다. 감정의 변화가 인격의 변화도 가져오는 것일까? 그녀가 펜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입구가 분주해졌다.
“아코렐라 님. 또 영지민들인 것 같은데요.”
“어어. 그래. 하여간 홀린 가문은 뭐 하고 있나 몰라. 빠릿빠릿하게 처리 좀 해줄 것이지.”
영지의 주인이 중앙에서 숙청당했다는 것으로도 모자라, 광산 채굴권까지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기야, 처지 바꿔 생각해 보면 당연지사이긴 하다만.
아니, 그런데 뭐 어쩌라고? 아니꼬우면 지들이 광산 매몰된 거 정리하든가. 아코렐라가 입을 비죽거리자, 마법사가 덧붙여 속삭였다.
“그리고 이안 님 돌아오셨답니다.”
“뭐? 벌써? 왜?”
기한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아코렐라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마법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 처리가 좀 빠르셨던 것 같아요.”
“돌아버려. 애들 쉬지도 못했겠네.”
“중간에 바리엘을 들르셨는데, 아코렐라 대장 연구실을 그대로 옮겨왔다 하던데요?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헤일 대장이 그러했다 하니 맞겠지요.”
“뭐?! 내 연구실을?! 어떻게?!”
“모른다니까요.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아코렐라는 눈동자를 가볍게 돌리더니, 수첩을 품에 넣었다. 마침 필요한 재료들이 있었는데 헤일이 그걸 가져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미친 수염 같으니라고! 진짜 대견하다, 대견해.
“나 잠시 칼라마트 다녀올게.”
“예? 왜요?”
“왜긴, 물건 가지러. 한두 시간이면 되겠네. 슬슬 쉴 시간이기도 하고. 네가 여기 감독하고 있어라. 클로이 영애!”
“네에?!”
아코렐라의 부름에 클로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저 지금 칼라마트 가서 뭐 좀 가져올 거거든요? 그게 부작용 해독제에 꼭 필요한 거라서 급히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 없을 때는 힘쓰지 말고, 저기 가서 쉬고 있어요.”
“얼마나 걸리는데요?”
“얼마 안 걸려요. 단 것도 좀 챙겨 드시고, 그 예쁜 얼굴도 좀 터시고. 그럼, 다녀올게요!”
지이잉! 타앗!
아코렐라는 클로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발돋움하여 날아올랐다. 인부들은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고, 클로이는 손등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쉬고 있으라 하니 일단 구석으로 가긴 가는데…….
“어이고, 끙차! 같이 좀 들어!”
“들고 있는데? 우리 둘로는 안 돼. 사람 더 불러.”
“여기! 이쪽 좀 도와줘! 제대로 박혔네!”
“마법사님, 여기! 여기요!”
“기다리세요. 이쪽 먼저입니다.”
끙끙대며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미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이 도우면 금방 끝날 일을 장정 서넛이 들러붙어서 애를 먹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클로이는 아코렐라의 당부를 떠올리며 냉큼 자세를 바로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은 점점 현장 쪽으로 기울어졌다. 누군가 부르기만 한다면 금방 튀어 나갈 것처럼.
“저기, 영애님.”
“네!”
결국, 한 인부가 도움을 청해왔다. 클로이는 기다렸다며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달려갔고, 이내 집채만큼 거대한 바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까보다 좀 무겁긴 한데, 이만하면 문제없다!
“저기로 옮길까요?”
“고맙습니다. 쉬시는데 미안해요.”
“괜찮아요.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였어요. 클로이가 그리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어깨에 짊어진 바위가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뭐지? 기분 탓인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탈길을 내려가려 했다.
“……!”
쿠웅!
거대한 충격에 클로이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거대한 주먹이 위에서 바위를 내려치는 듯한 충격이다. 클로이는 그때 깨닫고 말았다. 바위가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힘이 빠지고 있음을.
“아!”
“영애?”
힘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클로이는 바위를 앞으로 던져버리려 했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다. 그저 버티고 서 있는 것만이 최선인 상황.
“던져요, 내릴 수 없겠어요?”
“크, 크기가 워낙 커서, 원. 자세가 안 나오나 본데.”
“받쳐줄 수도 없고, 어, 어쩌지?”
“영애, 저쪽까지만 가면 언덕이 있어서 내려놓을 수 있거든요? 걸을 수 있어요?”
인부들이 당황하여 그녀 주위를 맴돌자, 클로이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비키세요! 옆에서 떨어져요!”
쿠웅! 콰아아앙!
이어서 거대한 굉음이 광산에 울려 퍼졌고, 갱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먼지로 그득해졌다.
* * *
“홍뇽뇽. 냥냥.”
아코렐라는 쪼그려 앉은 채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연구실을 통째로 옮겨왔다기에 말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진짜 필요한 건 모두 칼라마트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연신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어대며 당장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했다.
“아코렐라 대장, 왜 여기 있어요?”
“어, 헤일 대장이 선물 준다고 해서. 이안 님은?”
“폐하 알현 중입니다. 조금 늦네요.”
“그래?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고? 필리아 님도 찾았다며? 진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미치셨나 봐.”
“예. 아주 멀쩡하십니다. 하아, 그런데 뭔가 이러고 있으니까 며칠 전이랑 똑같네요. 이안 님만 돌아오셨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대장까지 이러고 있어서-”
“좋지? 알아, 인마.”
“네. 참으로 좋습니다. 좋아서 미치겠습니다.”
아코렐라는 다 안다며 마법사의 어깨를 두드린 다음, 물건들을 챙겨 들었다.
그때, 위쪽 계단에서 내려오는 이안이 보였다. 막 황제 폐하와의 알현을 마쳤나 보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매일 얼굴 보던 사이라 그런가 애틋하니 반갑다.
“이안 님, 방가요.”
“아코렐라, 어찌 여기 있는가?”
“마침 필요한 게 있었는데 헤일 대장이 갖고 왔다고 그래서요. 잘 다녀오셨다는 말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알아둘 사안은 없죠?”
이안은 기다리라며 잠시 손짓하더니 시종에게 종이와 펜을 요청했다. 그러고는 계단 난간을 받침 삼아 무언가를 작성했다. 이안은 그걸 곱게 접은 다음, 아코렐라 쪽으로 투욱 떨어트렸다.
“우앗.”
두 손으로 겨우 받아낸 아코렐라가 의아한 눈으로 이안을 올려다봤다.
“이게 뭡니까? 사랑 고백?”
“정확히 시일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보름 안쪽. 마법사들은 본진보다 먼저 토올룬으로 출정할 예정이니, 그때까지 ‘그걸’ 만들어 다오.”
“에, 잠깐만요. 이게 메뉴판에 있는 건가요?”
아코렐라는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이내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재밌네요.”
“가능한가?”
이안이 난간에 상체를 걸친 채 묻자, 아코렐라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흠. 이거 좀 까다롭긴 한데, 가능은 하지요. 세계에서 제일가는 천재 마법사 아코렐라가 아니면 또 누가 하겠어요? 일단, 납품 기한부터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군.”
“별말씀을. 진정한 따까리의 자세로 모시겠습니다.”
그녀가 장난스레 귀족식 인사를 올리자, 이안이 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몸을 돌려 마법부 산하 부서들과 연결된 통로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안을 배웅한 아코렐라는 쪽지를 고이 접어 품속에 넣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한 마법사가 은근슬쩍 물었다.
“대장, 뭔데요?”
“어허. 애들은 몰라도 돼. 어서 가서 일이나 해라.”
“…대장, 제가 한 살 더 많습니다.”
“그래? 그럼 늙은이는 가서 일이나 하시오.”
실험 재료도 완벽하게 얻었겠다, 이안이 공식적으로 물약 주문도 했겠다, 이제 그녀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코렐라가 낑낑거리며 가방을 둘러메려는 순간, 광산에서 현장 감독하던 마법사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콰앙!
“으앗, 놀래라!”
“뭐, 뭔데? 네가 왜 여기로 와?”
“대, 대장 큰일 났습니다. 크, 클로이 영애가-”
엥? 아코렐라는 무거운 가방을 천천히 내려놓았고, 이내 입을 천천히 벌렸다. 오메, 시발, 설마…….
“클로이 영애가 왜?”
“갑자기 부작용이 사라졌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짊어지고 있을 때였는데, 하필이면 저도 다른 쪽 현장을 살핀다고 바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이게 뭔 소리래. 부작용이 바로 사라졌다고?”
“예,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모,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서둘러 가보심이…….”
“이런 씨, 젠장! 야! 너 그거 우리 쪽으로 옮겨.”
“예? 아, 네넵. 알겠습니다!”
아코렐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날아갔다.
순식간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마법사. 그는 가방을 슬쩍 잡아당겨 보더니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베릭 정도면 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한 번 부리려면 밥 사라, 술 사라, 난리를 쳐대니 가성비가 떨어졌다.
‘가방이를 찾아볼까.’
나부 뭐시기라는 나탄족 말이다. 헤일 대장이 챙겨서 어디론가 데려가던데, 일을 맡겼으려나?
마법사가 팔짱을 낀 채 짐 더미를 노려보자,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시아오시 경. 알현 끝나고 나오시는 길입니까? 방금 이안 님도 나오셨던데.”
“예.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아아, 별건 아니고요. 아코렐라 대장이 이것 좀 광산으로 옮겨달라고 하는데, 누굴 부릴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베릭이 제일 만만하긴 하지요?”
시아오시는 가방을 힐끔거리더니 인정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이라. 아코렐라 대장을 만나러 가면 분명…….
“근데 대장은 이걸 어떻게 들고 가려고 했는지 모르겠네. 연락 아니었으면 자기가 들고 갔을 것 같은데. 흐음.”
“연락이라니요?”
“아, 클로이 영애 말입니다. 갑자기 부작용이 사라졌나 봐요.”
마법사는 꿍얼거리며 짐을 챙기느라 시아오시의 미묘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뭐, 문제가 생긴 것 같더라고요. 바위가 뭐 어쩌고저쩌고….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그것 때문에 현장 감독하던 애가 날아와서 소란 좀 있었습니다.”
“…….”
“시아오시 경?”
왜 대답이 없어? 마법사가 돌아보자, 시아오시는 혼이 나간 것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더니 반사적으로 마법사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괜찮다면, 짐 옮기는 걸 도와도 되겠습니까?”
“예?”
“꼭 좀, 부탁합니다. 부탁해 주십시오.”
시아오시가 이렇게 말을 길게 하는 건 처음 봤다. 마법사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위아래로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쩜 이놈의 황궁에는 이리도 정상이 없는지, 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