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4
제64화. 변경이니까
“이봐.”
골목의 끝이 보이자, 암살자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조용히 따라붙던 것을 멈추고 인기척을 보인 것이다. 몇 걸음만 더 나아가면 큰길이었으니, 사람을 처치하기에는 좁고 어두운 곳이 유리했다.
“이안?”
“나를 아시는가?”
쉬익!
목표를 확인하자마자, 작당들은 검을 빼 들고 뛰어들었다. 까만 후드로 얼굴과 몸을 꽁꽁 가리고 있어, 그림자가 덤벼드는 것만 같다.
채앵! 챙!
베릭이 반사적으로 검을 빼 들고 맞섰다. 어찌나 날카롭게 부딪혔던지, 칼날에서 순식간에 불꽃이 튀어 오를 정도였다. 상대가 온 힘을 다했다는 방증이었다.
쉬익!
그리고 그 말은, 이미 베릭의 실력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격에 그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가능성이 없다는 걸 잘 아는 거지.
서너 명이 베릭을 견제하면, 남은 한 명이 검을 꽂아 넣는 식으로 공격이 이어졌다. 뺨과 목덜미, 옆구리로 적들의 공격이 끊임없었다.
“어쭈?”
검과 검이 맞붙으며 밀어내려는 싸움이 붙었다. 마검사의 힘을 개방하진 않았지만, 상대는 꽤 힘 있게 밀어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이안은 뒤로 물러서며 상황을 주시했다. 검을 잡는 자세하며 상대와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 등이 예사롭지 않았다. 뒷골목에서 배운 날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자의 몸짓이다.
상황으로 보아, 몰린과 직접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베릭! 그자! 그래, 그자는 죽이지 말거라!”
“안 죽이면? 팔만 자를까?”
“알아서 잘…….”
“으아아악!”
베릭은 그렇게 물으며 잔챙이 한 놈의 허벅다리에 검을 쑤셔 넣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베릭의 실력을 알고 있다면 동시에 내가 마력운용자라는 것도 알고 있을 터인데.’
이안에게는 덤비는 자가 없다. 마력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몰린이라면, 당연히 목표물이자 걸림돌인 이안을 그냥 둘리 없다.
스윽.
그 순간. 이안의 뒤로 수많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대로변에서 열댓 명이 넘는 무장 괴한들이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하. 그럼 그렇지.”
생각보다 많군. 준비를 단단히 했어.
이안은 눈대중으로 적을 가늠하려 했으나, 어두워서 녹록지 않았다. 그들이 검을 꺼내 들자 이안은 물러서며 씩 웃기만 했다.
“다들 밤중에 고생이 많아.”
“허튼소리 하지 마라. 이안, 맞지?”
“그래. 내가 이안이다.”
암살 계획에서 실행까지, 시간이 좀 걸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을 모으느라 그런 것이다.
지이잉.
이안은 금안을 열었다. 마력이 휘몰아치며 미묘한 온도의 바람을 만들어냈고, 난생처음 마법사를 본 자들은 놀라서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압도적인 수세를 믿고서 가까이 다가왔다.
“다들 두렵지 않나?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지?”
“시끄러워! 닥치고 목숨이나 내놓아라.”
“네놈 몸뚱어리에 돈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아?”
사실 수련을 거듭해 마법사라는 호칭을 받기까지, 마력운용자가 쓸만한 마법은 거의 없었다. 마력과 마력이 감응할 뿐, 생전 세상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칭송받던 그 영광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
“죽어!”
쉬이익!
챙!
맨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먼저 달려들었다. 이안 역시 검을 뽑아 들었고, 팔을 크게 휘둘러 공격을 옆으로 쳐냈다. 동시에 왼쪽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붙잡았다.
“뭐-”
지이잉!
그리고 있는 힘껏 마력을 쏟아냈다. 훈련장에서 베릭에게 했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내면으로 쏟아졌다.
“커, 커헉…….”
남자가 비틀대며 뒤로 물러서자, 괴한들 역시 잠깐 멈칫거렸다. 눈, 코, 입, 귀.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모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굴을 닦아낸 남자는 당황해서 손을 달달 떨어댔다.
‘안 되는군.’
이안은 제 손을 내려다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자주 쓰던 건 아니지만, 쉬운 축에 속하는 공격 마법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머리가 터져 나갔어야 정상일 텐데.
“이, 이게 대체-”
“등신아. 바로 쑤실 것이지 왜 주춤거리고 지랄!”
“네놈들끼리는 잘 아는 사이인가 보구나.”
“곧 죽을 새끼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천박하고 거친 언사로 보아 황궁에서 온 자들은 아닌 것 같다. 평민인 것 같은데, 브라츠 사람인가?
이안이 고민하는 동안, 괴한들은 피범벅 된 남자를 뒤로하고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야아앗!”
촤아아악!
순식간에 그들 앞에서 번쩍이는 칼날. 베릭이었다. 그에게 달라붙던 놈들을 그새 때려눕히고는 달려온 것이다. 베릭의 머리칼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로 홍수가 났다. 모두 괴한들이 쏟아낸 것들이다.
“졸려 죽겠는데, X발 새끼들이 달밤에 운동을 하게 만들어?”
“베릭, 죽였나?”
“몰라. 걍 쑤셨어.”
“…베릭. 혹시 모르니 한 놈은 살려두어라. 제발.”
브라츠 영지민이 아니면 어디서 온 자들인지 알아두어야 했다. 몰린에게 협조한다는 것은 곧 이안에게 걸림돌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지이잉.
이안은 그렇게 명령하며 베릭의 어깨를 붙잡았다. 피에 절은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살랑이고, 베릭의 생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흩어지며, 사위가 조금씩 밝아졌다.
“하아…. 피곤해서 그런가? 오늘 약빨 죽인다.”
“표현을 해도, 꼭 그리 하느냐.”
“비켜!! X발!!”
파앗!
피곤에 절었던 베릭의 목소리가 찢어지게 울렸다. 동시에 나가떨어지는 누군가의 머리통.
촤아아악!
너무 순식간이라, 그의 목에서 피가 솟아오름에도 괴한들은 멍하니 서 있었다. 현실이라 전혀 느낄 수 없는 속도였기에.
“으, 으, 으아아악!”
“주, 죽여라!”
“앞으로, 앞으로!”
“밀지 마, 젠장!”
벽을 짚고 차오르며 검을 휘두르는 베릭. 궤를 따라 누구의 것인지로 모를 비명이 사방으로 흐트러졌다. 그를 피해 이안에게 닿으려는 자들이 있었으나, 방어 태세를 취하던 이안이 검으로 받아쳤다.
촤아악!
인간의 몸놀림이 아닌 것 같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칼날 세례에 스치기만 할 뿐,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쳐내고, 찌르고, 자르고…….
“으아아악!”
“젠장! 아아악!”
좁디좁은 골목. 그건 분명 베릭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한 여건이었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조금만 휘둘러도 누군가의 급소가 닿는 거리, 베릭에게 골목이란 그런 의미였다.
“하아…….”
그리고 잠시 후.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흥건한 핏물. 베릭 역시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죄다 시뻘건 상태였다.
“한 놈은 살리라니까.”
“여기 살아있어. 움찔움찔거리네.”
베릭이 칼끝으로 누군가의 뒤통수를 툭툭 두드려댔다. 그리고 이내 씨익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으아! 기분 조오타!”
강한 상대를 꺾는 것과 또 다른 쾌감이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오는 살육의 느낌. 가끔은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 대신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불량식품 같은 칼맛, 베릭은 딱 그만한 기쁨을 만끽했다.
“유쾌! 상쾌! 통쾌! 으하하하!”
‘미친놈일세.’
이안은 발광하는 베릭을 내버려 둔 채, 먼저 접근했던 무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나씩 후드를 벗겨 얼굴을 확인했다.
개중 신음을 흘리는 남자. 이안이 살려두라 하였던 남자였다. 상체를 더듬어보니, 잘 짜인 근육이 확신을 주었다. 몸으로 살아가는 자다.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나도 봐봐.”
“오가다 본 것 같지 않으냐?”
“으음. 모르겠는데. 일단 못생김.”
사내는 끙끙대며 왼손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내 제 뺨을 가리듯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이안은 그것이 다 죽어가는 자의 의미 없는 발버둥이라 여겼다.
그저, 얼굴을 가리려는 수작인 줄 알았는데…….
“으아아아악!”
“뭐, 뭐야. 얘 왜 이래?”
“젠장!”
남자의 왼쪽 중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자결용으로 독침이 내장된 도구였던 모양이다.
사내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이안은 반사적으로 팔을 저지했으나, 이미 늦었다. 임시방편으로 사내의 입에 천을 쑤셔 넣을 수밖에.
“끄윽…….”
“으엑, 진짜 얼굴 맛 갔는데?”
어지간하면 꼼짝 않는 베릭이 뒷걸음질 치며 중얼거렸다. 독침 찔린 곳을 중심으로 괴사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살점이 흘러내리며 형체가 끔찍하게 변했다. 아마 이자의 부모가 온다 한들, 알아보지 못하리라.
“거기 생존자 한 명이랑 이자를 저택으로 옮길 것이다. 가서 사람을 불러오거라.”
얼굴을 망가트려 본인의 신원을 완전히 숨길 속셈이었다. 그 말은, 사내가 주동적으로 이 일을 진행했다는 뜻이다. 사내의 신원이 미궁으로 빠지면 몰린이 안전하다는 거니까.
그때, 베릭이 발로 놈의 옆구리를 툭툭 쳐댔다.
“내가 들고 갈까? 대신 무거우니까 좀 잘라내고.”
“베릭.”
“농담이다. 농담.”
대로변으로 나가는 방향은 시체 더미로 발 디딜 공간이 없었다. 베릭은 슬쩍슬쩍 시체를 헤치고 나아갔고, 이내 며칠간 의도적으로 꺼져있던 경비대의 등불에 불이 들어왔다.
* * *
“처치했을까?”
초조하게 창밖을 보던 맥이 참지 못하고 와인을 들이마셨다. 입가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술을 무시한 채.
“열 명이 넘어. 그 좁은 골목에서, 한 번씩만 스쳐도 자상이 열댓 번 넘게 생기는 거라고. 무사할 리가 없지 않나.”
소파에 앉아서 침묵하던 드고르가 대꾸했다. 혹여 실패한다고 한들, 그들의 부하인 페트레이오는 절대 뒤처리를 엉망으로 하지 않는 자였다. 얼굴을 바로 녹여 버리는 독침을 소지하였으니, 그들과 몰린 일행의 연관성은 영원히 침묵 속으로 잠길 것이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맥. 자네는 너무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어.”
“이건 대책을 세우는 거야!”
콰앙!
맥이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몰린이 자중하라는 뜻으로 그를 노려봤다.
“사용인들을 다 깨울 셈이구나.”
“죄, 죄송합니다. 선생님.”
“페트레이오는 실력이 뛰어난 자다. 나이를 먹긴 했지만, 황궁에서 황자 저하의 직속 경호대 부대장이었던 적도 있고, 무엇보다 신의가 있는 자이니 뒤탈이 없다. 그건 나도 알고 너도 알지 않느냐.”
고작 애송이 두 명.
베릭이 뛰어난 실력자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왔으나, 몰린은 그저 건너 듣기만 했다. 이안 역시 마력운용자이긴 하나, 이제 고작 열여섯. 그 한계가 뚜렷하지 않나.
“마력을 쏟아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열댓이나 되는 장정을 상대하려면 제가 먼저 나가떨어질 게다.”
“그리고 혹여, 정말 혹여나 실패한다고 한들 증거 없이 우리를 쉬이 건들 수 있겠는가. 우리가 죽으면 조사단이 또 내려올 것인데.”
그건 그들이 제일 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맥은 그제야 좀 진정되는지, 사과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네. 내가, 내가 좀 흥분했던 것 같군.”
그때였다.
쿵쿵! 쿵쿵쿵!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세 남자 모두 딱딱하게 굳어서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야심한 밤, 그들을 찾아올 자라면 딱 두 명뿐이다.
임무에 성공한 페트레이오.
아니면…….
“누, 누구…….”
끼익.
문틈으로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 피를 뒤집어쓴 것인지, 살가죽이 벗겨진 것처럼 전신이 새빨갰다. 베릭은 얼굴을 스윽 닦으며 웃었다.
“…페트레이오라는 자를 기다렸나?”
“대체…….”
몰린 역시 놀라서 저도 모르게 일어섰다.
“다들 그대로 따라 나와.”
“이, 이게 무슨 무례인가!”
스릉.
그들의 외침에 베릭은 검을 빼 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러곤 드고르의 목을 겨누었고, 당장이라도 벨 것처럼 가까이 다가갔다.
“이안이 베고 싶으면 베라고 했다.”
“천한 것이! 우리는 황궁에서 내려온…….”
“알아. 근데 여기는 변경이니까.”
변경.
참으로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장소.
“변경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대. 이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