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40
제640화. 지금 대사막에서는
히엘로의 끝자락, 사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르사른은 매가 고도를 낮추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쿠실레의 고삐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저 멀리, 국경을 가르는 거대한 바위 두 개가 보였다.
그는 문득 이안과 함께 ‘브라츠’로 돌아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안은 여전했고, 베릭 또한 다른 의미로 여전했다. 배에 구멍 난 채, 쿠실레에 실려 오던 게 엊그제 같거늘…….
스윽.
네르사른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모래 위로 말발굽이 찍혀 있었다. 바람에 거의 지워진 상태지만 흔적은 분명했다. 적어도 세 마리 이상.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이지?’
인근에 말을 타고 여기까지 올 자들은 많지 않았다. 천려족은 쿠실레를 이용하며, 히엘로 영지민들은 정세가 어지러운 걸 알고 있기에 국경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생활 반경이 아닌지라 올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영지민들이 말을 이용할 때는 대부분 마차를 연결했다.
‘그런데 여기 이것은… 바퀴 자국이 없다.’
게다가 평소와 다른 매의 움직임. 필시 낯선 자의 침입이다. 네르사른은 쿠실레에 올라 말을 흔적을 계속 쫓았다. 모래 산이 즐비했지만, 높이 올라서면 분명 시야 확보가 가능할 거란 생각이었다.
‘이상하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침입자라면, 그들은 대사막을 가로질러 바리엘로 들어왔다는 소리다.
대사막은 거대하고 인가가 드물기 때문에 횡단하는 자들은 무조건 무리를 이루어 움직여야 한다. 이는 사막에 사는 천려족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고작 셋이라니,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게다가 히엘로로 들어오지 않은 채 다시금 말 머리를 돌려 나간 듯 보이니, 네르사른은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솨아아아!
대사막의 바람은 언제나처럼 뜨겁고 강렬했다. 네르사른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다. 더 멀리 갈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돌아갈 생각도 없다.
‘흔적이 지워졌다.’
아주 짧은 시간, 바람이 모래를 운반하며 침입자의 자취를 가려버렸다. 낭패다. 네르사른이 혀를 차려는 순간, 비릿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휘이익!
네르사른이 휘파람을 불어 매에게 신호했다. 혹여 보이는 게 있다면 매가 몸을 옆으로 눕혀 날 것이다.
“……!”
신호가 왔다. 네르사른은 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비행하는 매를 따라, 쿠실레를 재촉하여 내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렴풋이 모래에 묻힌 무언가가 보였다.
네르사른은 긴장하며 천천히 다가갔고, 이내 정체를 알아채고서 경악했다.
“…샬라이!”
천려의 가족이다. 어째서 그가 쿠실레 없이 홀로 사막에 쓰러져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네르사른은 황급히 그의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드러난 배 한복판. 거기엔 큼지막한 자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샬라이. 정신 차리게.”
몇 번이고 몸을 흔들어봤으나, 대답이 없다. 숨을 거둔 것이다. 피부가 따뜻한 것으로 보아 불과 얼마 전이었다.
네르사른은 당황하여 그를 안은 채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벼락처럼 내려치는 깨달음.
‘침입자와 관련이 있다.’
침입자가 히엘로로 들어오지 않고 사막 경계선에서 머물다 떠난 것은 무언가를 찾기 위함이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샬라이. 천려에 있어야 할 샬라이가 여기 와 있는 것은…….
피잉!
네르사른은 갑자기 날아드는 화살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적중하지 못한 화살은 허공에서 파훼하여 빛으로 사라졌으니, 이는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네르사른은 샬라이의 시체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대가 네르사른인가? 히엘로의 계부라는.”
로브를 뒤집어쓴 세 사람이 말을 탄 채 네르사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뒤를 잡혔다. 샬라이의 시신 때문에 방심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들의 실력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네르사른은 혹시 몰라 쿠실레를 멀리 보내며 그들과 마주했다.
“…네놈들이 샬라이를 죽였나?”
“……,”
“천려는 어떻게 되었나.”
“강한 자들이더군.”
네르사른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천려가 습격을 받은 게다. 오랜 세월 대사막을 수호하고 존경하던 자신의 천려가, 정체도 모르는 이방인에게 당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꽈악.
침입자 중 가운데 있던 자가 거대한 활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화살도 없이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것 아닌가. 로브 아래로 보이는 입가는 유려한 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네르사른은 확신했다.
“루스웨나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하완일 수도 있잖아?”
이내 당겨진 활시위가 반짝였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화살이 빛을 발하며 생성된 것이다. 네르사른은 자세를 낮추어 바람의 변화를 감지했고, 이어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하완에는 마법사가 없다. 그리고 그쪽은 천려를 고려할 만큼 여유 있지 않아.”
호오. 활을 든 자가 웃으며 활시위를 놓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무형의 화살이 네르사른의 심장 부근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퍼엉!
화살은 네르사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며, 사막 한가운데 처박혔다. 구덩이가 파이고, 모래비가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이에 침입자들은 당최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의 마른 모래들.
“네르사른, 그대를 여기서 만난 게 잘된 일인지는 모르겠어.”
히엘로 전력 대부분은 천려가 담당하고 있었다. 아니지. 메렐로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니, 사실상 바리엘의 동쪽 국경선을 모두 수호하는 셈이었다.
그러니 루스웨나 입장에서는 그들을 먼저 정리하는 게 순서였다. 천려는 바리엘 국경 밖에 있었고, 소수민족이었으며, 바리엘과 정식 수교를 맺은 자들이 아니었으니-
“우리 계획이 조금 어긋났거든. 그자 이름이 샬라이인가?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게 대단해. 그 의지에는 박수를 보내지.”
그래서 바리엘 몰래 천려만 먼저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물론 네르사른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대처하진 못했다. 하완의 정세가 너무 어지러웠기에.
하지만 어찌 됐든, 일은 이미 벌어졌다.
“……!”
“……?”
모래 먼지가 걷히고 나자, 침입자들은 믿을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네르사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탓이다. 숨은 건가? 모래밖에 없는 이곳에 숨을 곳이 어디 있다고?
퍼억!
그때,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네르사른이 주먹을 크게 뻗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가히 짐승의 것이라 하여도 위화감 없을 정도로 말이다.
좌우에 있던 마법사가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생성했고, 가운데 있던 자는 화살을 만들어냈다. 표적에 가까워졌으니 오히려 잘 되었다. 빗나가는 일 없이 바로…….
콰지지직!
네르사른의 주먹에 의해 보호막이 깨졌다. 말도 안 된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법사들이 주춤거리며 입을 벌리자, 네르사른이 주먹을 펼쳐 보이며 중얼거렸다. 이드갈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우리 아들이 이런 거 만들거든.”
타앗!
그러고는 재정비할 틈 없이 바로 마법사들에게 바짝 붙었다. 기동력이 상당한 이들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들을 죽이고 살아남는 것 또한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마력을 파훼할 수 있는 이드갈, 천려의 복수, 전사의 자긍심 등이 네르사른의 전투 욕구를 뜨겁게 달구었다. 한낮에 내리쬐는 햇볕보다 강하고, 세차게!
“아둔한-!”
마법사들이 미친놈 보듯 눈살을 찌푸렸다. 제아무리 인외에 가까운 천려라 하더라도, 마법사 셋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지이잉! 지잉!
퍼어엉! 콰앙! 쾅!
네르사른을 죽이기 위해 쏘아진 마력 덩어리가 하늘에서 빗발쳤지만, 그는 가볍게 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피했다.
이어서 꼿꼿이 고정된 시선. 한 놈만이라도 데려가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그득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은 기세는 수사자와 같다.
“뭐 해?!”
가운데 있던 자가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력으로는 비교가 안 되는데, 기세에서 밀리는 게 말이나 되냐는 뜻이다.
곧 마법사들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재차 마력을 모았고, 네르사른은 죽음을 각오하며 덤벼들었다.
‘필리아, 로엘, 이안.’
거대한 빛이 눈앞에서 번쩍이는 순간, 네르사른은 세 사람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러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이는… 자신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더 이 세상에 남아 그들을 그릴 수 있기를. 신께서 지켜보고 있다면 그 작은 소원을 허락해주시길.
촤아아악!
콰앙!
마법사의 공격이 네르사른을 직격했다. 그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고, 수십 미터를 저항 없이 날아갔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고통이다. 천려족으로 태어나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패배의 아픔.
‘쿠실레를 보냈으니, 히엘로령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이자들이 곧바로 움직인다면 피해가 크겠지만…….’
네르사른은 문득, 생각을 멈추었다. 죽음을 앞둔 자신에게 그런 걱정은 사치임을 깨달은 것이다.
사치는 천려답지 않다. 천려는 소박한, 그리고 사사로운 것을 위해 살고, 싸우며, 죽는다. 그리고 네르사른에게 있어 그것은 바로-
‘필리아…….’
가족이다.
…아쉽다. 마지막으로 필리아의 얼굴을 보고 싶다. 손을 잡고, 따뜻한 포옹으로 온기를 나누고 싶다…. 네르사른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핏물과 모래 먼지로 범벅이 된 몸뚱이. 의식이 점차 침잠되어 간다.
그때, 청명하던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갑자기, 뭐지?”
“사막은 원래 기후가 제멋대로입니다.”
쿠르르릉! 콰앙!
지랄 맞군. 마법사들은 하늘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점점 옅어지는 의식 속, 네르사른도 어렴풋이 자연의 변화를 인지했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을 나는 자신의 매, 뱐.
몸을 옆으로 기울인 채 날고 있다.
부우우-!
부우!
두두두두! 두두!
거센 바람 소리 틈으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높고 맑은 바리엘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는…….
‘천려의 것이다.’
“데모샤!”
“데모샤아아! 구룬 투!”
모래 언덕 위로 쿠실레를 탄 천려 전사들이 모습을 보였다. 모두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하나같이 맹수와 같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나타난 카칸. 족장은 팔 한쪽을 잃은 상태였으나,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저 칩입자를 끝까지 쫓아 올 수 있었음에 만족하는 낯이다.
“이것들 봐라…….”
살아남은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그런데도 몸을 사리긴커녕 오히려 자신들을 쫓아 왔다고? 마법사들은 실소를 흘리며 두 손 가득 마력을 터트렸다.
“제 발로 찾아와주다니! 친절도 하셔라!”
카칸은 쓰러진 네르사른과 샬라이의 시신을 눈에 담았다. 이미 너무도 많은 가족이 천려에서 쓰러졌다. 눈물을 흘리는 건, 그곳에 돌아가서다.
쿠구궁! 쿠웅!
천둥과 번개가 사정없이 몰아쳤다. 마법사들은 이전과 달리 바람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챘다. 이건 모래 폭풍이다.
“어떻게 합니까? 일단 물러설까요?”
“살아남았어도 머릿수로는 열세입니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일단 돌아가시지요.”
“젠장, 기다려! 족장은 처리하고 간다. 금방 끝나잖아? 팔도 한쪽 없는 놈인데.”
카칸이 남은 팔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폭풍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안이 대사막을 건네준 이후, 그들은 연구를 거듭하여 ‘하늘을 헤아리는 법’을 깨우쳤다. 그러니까, 지금 그들을 덮치는 폭풍은 양날의 검인 셈이다.
“나에게 팔이 없다면, 이로 그대들의 목을 뜯으리라.”
“데모샤!”
“가족을 죽인 자, 저승까지 쫓아가 그들의 피로 내 손을 적시리라. 대사막을 어지럽히는 자-!”
“데모샤!”
카칸이 잇새로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신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리라!”
“가자아아!”
카칸을 선두로 천려들이 쏟아져 내렸다. 마법사들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치며 가볍게 마력을 터트렸다.
그때, 엄청난 모래 폭풍이 마법사들을 덮치며 크게 휘몰아쳤다. 카칸은 폭풍 속에 몸을 내던졌다.
“우리는 대사막의 중심이다!”
그 누구라도, 설령 마법사라 하더라도, 대사막에서는 그들을 막아서지 못하리라. 죽음을 내놓아도 모자라다. 전사의 영광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이기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