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42
제642화. 보다 빠른 연락
“비가 오려나 보네요.”
하인의 중얼거림에 해나가 창밖을 확인했다. 확실히 하늘이 우중충한 것이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하인들에게 밖에 내놓은 옷감과 식재료를 안으로 들이라 명한 다음, 마구간지기를 찾아갔다. 네르사른이 타고 갔던 쿠실레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집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네르사른 님은 아직 안 돌아오셨는가?”
“예. 아까 외출하신 이후로는 못 뵈었습니다만.”
“…그래. 알겠네.”
해나가 회중시계를 딸깍거렸다. 그가 저택을 나선 지 벌써 한 시간째다.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 나갔을 리 없고,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매를 쫓아 나갔으니 국경선 인근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나가 고민하며 위층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복도에 나와 있는 리엔 부인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부인. 필요하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네르사른 님은?”
“송구합니다. 아직 연락이 없으시네요. 먼저 돌아가 계시면 네르사른 님 도착하자마자 연락드리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아니!”
리엔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낸 게 분명했다. 바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놀란 눈치를 보였으니까.
해나는 쳐다보는 하인들에게 물러나라 손짓한 다음, 부인을 다시 손님방으로 모셨다.
끼이익.
“리엔 부인. 무슨 일 있으세요?”
“미안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네르사른 님께 보내는 로엘 양의 편지를 읽었어.”
“아, 예. 아닙니다. 정리하지 못한 제 잘못이지요.”
네르사른이 자리를 떴으니, 그가 읽던 게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으리라.
리엔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이마를 짚었다.
“클라크.”
“누구요?”
“클라크. 토올룬으로 갔던 내… 하인 말이다.”
“아아! 예예, 기억납니다. 그, 하인이요.”
클라크가 리엔 부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해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혹여 누가 들을까 말조심하며, 천천히 문밖을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편히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부인.”
“이안 경이 클라크를 만난 것 같아.”
“예? 어디서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로엘이 보낸 서신에 분명히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이안 경과 함께 있는 것 같은데, 그쪽으로 연락을 취해보고자 해. 이안 경 쪽으로 통하려면 황궁을 거쳐야 하니 도움을 좀 주었으면 한다. 아니면 차라리 내가 직접-”
“잠시, 잠시만요. 일단 진정하십시오, 부인.”
네르사른에 이어서 리엔 부인까지 영지를 비운다는 말을 입에 올리다니! 해나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랑이 뭔지, 원.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 못 하십니까? 하완과 루스웨나가 당장이라도 히엘로를 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네르사른 님에 이어서 단호하게 말씀드리지요. 영지 비우는 일은 절대, 아니 됩니다.”
메렐로프 영지 실권은 히엘로가 잡고 있었기에, 해나의 말은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다. 리엔이 속상해하는 눈치를 보이자, 해나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너무 상심하지는 마십시오. 서신을 보내어 클라크와의 만남을 요청하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사안이 사안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투둑. 툭.
창가로 빗줄기가 떨어졌다. 어느덧 밤처럼 어두워진 하늘. 해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리엔 부인을 다독였다.
“부인. 송구하오나 네르사른 님께서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늘에서는 비까지 떨어지니 더 어두워지기 전에 먼저 돌아가심이 좋겠습니다.”
리엔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나는 아래층에서 지나가던 시종을 불러 마차를 대기하게 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마부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부인. 네르사른 님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분명히 이안 님과 연락하는 데 도움 주실 것입니다.”
“그래. 기다리고 있겠다.”
“예, 너무 상심치 마십시오.”
“아니, 괜찮아. 내가 실언을 한 것이니.”
리엔은 신경 쓰지 말라며 해나를 다독인 다음 마차에 올라탔다.
그녀를 태운 마차는 익숙한 숲길을 따라 메렐로프로 내달렸다. 비가 점점 거세지면서 마차가 크게 흔들렸지만, 리엔 부인은 꼿곳한 자세로 창밖만 지켜봤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이 말이다.
“이보게.”
“예, 부인!”
메렐로프에 거의 다 와 갈 때쯤, 리엔이 마부석 창문을 열어 일렀다.
“저택으로 가지 말고, 중앙 단지 공원 옆 체일 호텔로 가지. ‘발리주아드’를 만날 것이다.”
“알겠습니다.”
발리주아드? 뭔지 모르겠지만, 위치상 하완에서 넘어온 상단인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중앙 단지 인근에 거처를 삼았기 때문이다.
마부는 고삐를 크게 잡아당겨 말 머리를 옆으로 돌렸고, 이내 퍼붓는 빗속을 헤쳐 목적지에 다다랐다.
“도착했습니다. 부인.”
“잠시 기다리고 있게.”
리엔을 알아본 호텔 지배인이 후다닥 문을 열고 나와 인사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발리주아드 상단주를 만나고 싶네만.”
“위층에 묵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리엔 부인께서 오셨다고 전하겠습니다.”
발리주아드는 하완에서 넘어온 상단 중 비교적 신생에 속했다. 하지만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운반 속도를 보여주며 단숨에 시장 중심으로 급부상했고, 귀중품을 주로 다루는 고급 서비스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리엔은 호텔 로비에 즐비한 그림들을 슬쩍 살폈다.
‘위탁받은 물건들인가?’
작고 큰 것들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 옆을 지키는 경비들이 리엔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모두 텅 빈 방 안만 그려진 그림이라.’
의아하지 않나? 화풍이 대단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리엔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림들을 살펴보다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림 속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이 조금씩 움직였던 게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아이고, 리엔 부인.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그때, 위층에서 내려오는 발리주아드의 상단주. 리엔이 당황해하며 그림에서 눈을 못 떼자, 그가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에 마법사가 있는가?”
“아니요. 없습니다. 그 그림들은 마력석을 섞어 그린 것이랍니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당일 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발리주아드의 비법이지요.”
“…어디든?”
“애석하게도 그건 아닙니다. 지정된 지점으로만 가능하지요. 부인, 의뢰하실 것이 있어 오셨나요? 그렇다면 안으로 드시지요. 그것들은 발리주아드에서 관리하는 것 중 최하 등급이랍니다.”
리엔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특급 배송이라는 말이 과장 없는 진실 그대로였다. 호텔 전체를 전세로 내었는지, 상단주를 따라 걷는 내내 복도 곳곳에 그림과 경비들이 널려 있었다.
“눈썰미가 상당하십니다. 로비에 상주하는 지배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던데.”
“설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사용인의 미덕이라 그런 것이오.”
“그런 것입니까? 하하. 그림을 벽에 걸면 위험하기에 모두 바닥에 두고 있습니다. 모쪼록 걸음 조심해 주십시오. 아. 그리고 늦었지만 감사를 표합니다. 부인의 배려 덕분에 아주 편안히 지내고 있답니다.”
시장 뒷골목 어딘가. 드넓은 초원. 폭포가 흐르는 숲. 한적한 도로 등등. 온갖 그림들이 즐비했다. 이 모든 곳이 발리주아드가 오갈 수 있는 장소인 게다.
“이런 게 가능했으면 어찌하여 메렐로프로 피난 온 것인가? 바로 넘어갈 수 있었을 터인데.”
“보시다시피 그림의 크기가 좀 작지 않습니까? 그림 안에 못 들어가는 것들이 상당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구와 출구는 동시에 존재해야 의미가 있지요. 각고의 노력으로 가이아 곳곳에 길을 뚫었는데, 저희가 이걸 타고 넘어가면 길을 거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랍니다.”
확실히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그림들이다. 발리주아드는 소파에 걸터 앉으며 물었다.
“자아, 편히 말씀하십시오. 부인. 메렐로프에서 이리 신세 지고 있으니 무엇이든 본 비용의 절반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서신을 전달하고 싶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람도.”
“사람은 저희 쪽 직원 외 두 명까지만 가능합니다.”
“한 명이라도 상관없어. 대상은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 버고스 칼라마트 성에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사실 잘 모르겠네. 전서구보다 빠르게 전언할 수 있겠는가?”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이요?”
발리주아드는 난감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송구하오나 부인. 발리주아드는 정치적 의뢰를 받지 않습니다.”
음지에서 국경을 멋대로 넘나드는 자들인지라, 정치적인 일에서는 최대한 멀어지는 게 생존 방법이었다. 사실 평소라면 처음 본 자에게 그림에 대하여 소개해주지도 않았겠지만, 리엔 부인은 신세 지고 있는 메렐로프 영지의 주인이지 않나.
“정치적 의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오. 원한다면 서신 내용을 확인해도 좋아.”
“흐음. 정말이십니까?”
“비용은 어떻게 되지?”
“전달하는 물건 무게나 이송하는 사람 수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런 경우에는 금화 스무 닢입니다. 참고로 절반으로 깎아서 스무 닢이지요.”
날강도 같은 놈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히엘로에서 출발한 전서구가 황궁에 도착하여 다시 이안 쪽으로 전달되려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리엔 부인이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이자, 발리주아드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부인. 그럼 언제 착수하도록 할까요?”
“가능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데엥-! 데엥!
갑작스러운 종소리에 리엔 부인이 멈칫거렸다. 빗소리를 타고 온 저것은 히엘로에서 시작된 경종이다. 안보에 문제가 생겼으니 영지민들은 집으로 돌아가 대기하고 있으라는 신호다.
‘뭐지?’
“무엇입니까, 부인?”
방금까지 있었던 히엘로에서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네르사른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하였지. 그것과 연관된 일일까? 그렇다면 루스웨나 측의 침략?
리엔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거리며 테이블 위의 종이와 펜을 집어 들었다.
“별일 아닐 터. 갑자기 비가 거세졌으니 조심하라는 것이겠지. 서신은 지금 작성할 것이니 서둘러 전달해 주시오. 대금은 내일 오전 중으로 사람을 보내 지급하도록 하겠네.”
스윽.
리엔 부인은 아주 간결하게 서신을 작정했다. 하완 출신 상단이 메렐로프에 넘어와 있다는 걸 이안이 알게 된다면, 전체적인 정세 또한 파악할 수 있을 터. 정치적인 내용을 제하고, 최대한 그에게 단서를 줘야 했다.
-이안 경. 메렐로프 리엔입니다. 클라크가 돌아왔나요? 그렇다면 서둘러 메렐로프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네르사른 님이 자리를 비워서 사람이 부족해요.
발리주아드는 내용을 살펴 읽더니, 싱긋 웃으며 서신을 곱게 접었다. 이 정도는 문제없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버고스 인근으로 넘어가도록 하지요. 시일은 최대 보름입니다. 저희 쪽에서 오가는 시간 모두 더해서요.”
“그렇군. 가능하다면 일주일 내로. 그리하면 추가금을 지급하지.”
상단주가 허리를 꾸벅 숙이자, 리엔은 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억셌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울리는 둔탁한 종소리. 히엘로가 침략당했음을, 모두가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