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43
제643화. 움직이는 그림
휘이익!
네르사른의 매, 뱐이 히엘로 저택 창문을 두드렸다. 리엔 부인이 마차를 타고 떠난 직후였다. 서신을 정리하던 해나가 낯선 기척에 창가 쪽을 살폈고, 이내 흠뻑 젖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매와 눈이 마주쳤다.
드르륵.
“뱐?”
네르사른 님이 녀석을 쫓아 나갔는데, 어찌하여 홀로 돌아온 것일까? 해나가 놀라며 창문을 열어주었건만, 매는 들어올 생각 없이 창틀에 꼿꼿이 앉아 있기만 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듯하다. 해나가 웃옷을 집어 들고 나가려는 순간-
“해나!”
“무이?”
해나의 남편이자 천려족 전사인 무이가 급하게 저택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자 구슬프게 들리는 매의 울음소리. 해나가 놀라서 난간을 붙잡은 채 남편을 내려다봤다.
“네르사른 님은?”
“아까 뱐을 따라 나섰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뱐은 방금 돌아왔지만요. 무슨 일이에요? 밖에 저 매들, 모두 천려에서 온 건가요?”
천려에서 한 번에 여러 마리의 매를 보냈다면, 필시 비상사태를 의미하는 것.
돌연 해나의 머릿속이 백지장으로 변했다. 답을 알고는 있었으나, 바로 연관해서 떠올리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침입자다.”
그에 남편이 대신 일깨워줬다. 천려에 침입자가 나타났고, 이리 매들을 보낸 것으로 보아 상황이 좋지 않다며.
해나는 비명을 지르며 위층으로 달려갔다.
쿵! 쿵쿵!
“이봐! 다들 밖으로 나와!”
“왜, 왜 그러십니까, 집사님?”
“지금 당장 경비대장에게 연락해라! 침입자다! 대사막 쪽과 인접한 국경지를 수색해야 해. 네르사른 님을 찾을 것이다!”
“아, 예예. 알겠습니다!”
“영지민들에게도 대피령을 내리고, 각 세대의 가장들은 최대한 무장하여 경계 태세에 돌입하도록 하라. 혹여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저택으로 데려오라고 전해!”
해나의 말에 시종들이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갔다.
본관 맨 위층에 당도한 해나는 저택 외부와 연결된 창문을 열어젖혔고, 좁은 폭의 난간을 따라 조심스레 걸었다. 비와 바람 때문에 위험했지만, 해나는 발끝에 힘을 주고서 천천히, 거대한 종 아래로 걸어갔다.
데에엥! 데엥-!
“긴급 상황이다!”
거대한 금빛 종이 좌우로 흔들리며 크게 울렸다. 비를 피하려던 영지민들은 경종을 듣고서 하나둘씩 걸음을 멈추었고, 멀리 떨어져 있던 경비대 초소에도 횃불이 피어올랐다.
“병사들을 모두 집결하라!”
“해나!”
“무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먼저 가요! 황궁으로 급사를 파견할게요!”
해나는 아래에서 걱정스레 자신을 올려다보는 무이에게 소리쳤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손으로 휘파람을 불어낸 다음 쿠실레에 올라탔다.
“뱐!”
네르사른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달라는 뜻의 외침이었다. 이에 창틀에 조각상처럼 앉아 있던 뱐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아들었다.
타닥타닥!
휘이익!
“무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모르겠소. 일단 무기를 잡으시오! 경비대!”
“예, 이쪽입니다!”
“뱐이 사막 쪽으로 가는 것 같네! 길을 트시게!”
“비키시오! 다들 비키시오!”
저택으로 달려오던 경비대가 무이를 발견하고는 말 머리를 틀었다. 국경선 쪽이면 설마, 마물의 습격인가? 아니면 루스웨나?
무엇이 되었든 히엘로의 평화가 깨지는 것은 틀림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그들은 거친 비를 뚫으며 내달렸다.
“사막이 보입니다!”
보이긴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람이 거세져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무이는 은근히 느껴지는 가족의 기운에 소매를 찢어 무기와 손을 한데 칭칭 감았다.
“따르라! 사막으로 진입한다!”
“알겠습니다!”
“자세를 바짝 낮추고, 은밀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때, 모래바람 사이로 흐릿한 인영이 보였다. 네르사른인가? 무이가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가까이 다가갔고, 이내 그가 카칸티르라는 걸 알아챘다.
상체가 잘린 채로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족장. 그는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한 채 형형한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카, 카칸!”
지이잉! 지잉!
퍼어엉!
그리고 연달아 터지는 폭발. 마력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힘이다.
무이는 루스웨나의 침입자들이 들이닥쳤음을 바로 깨달았고, 황급히 카칸의 시체를 둘러멨다.
“히엘로로 돌아간다! 침입자다! 루스웨나 마법사의…….”
“아아아악!”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된 비명. 무이와 경비대는 머리칼이 쭈뼛거리는 걸 느꼈다. 죽음의 문턱까지 떨어진 자의 악 받친 비명 같았기 때문이다.
뒤이어 번개처럼 번쩍이는 빛에 그들은 두 눈을 가렸고, 이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말과 쿠실레가 놀라서 이리저리 날뛰는 탓에 중심 잡기가 더욱 어려웠다.
그때-
지이잉!
빛무리 사이로 한 마법사의 인형이 드러났다. 루스웨나의 침입자였다.
루스웨나가 천려를 먼저 급습한 것은 히엘로의 전력을 ‘은밀히’ 도려내기 위함이었다. 한데, 히엘로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천려의 생존자가 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지금,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나중에 있을 루스웨나 병사들의 진격을 위해서라도 히엘로를 정리해두는 것이 맞았다.
‘황궁에서 지원이 오기 전까지 다 죽인다.’
마법사 세 명 중 한 명은 천려족 전사에 의해 갈가리 찢겼고, 나머지 한 명은 의식을 잃었다.
당한 동료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죽이고 죽여서, 감히 마법사에게 덤벼든 자의 최후가 무엇인지 뼛속 깊이 새겨줄 것이다.
“커헉-!”
마법사가 피를 토해내며 금안을 번쩍이자, 병사들이 멈칫거렸다.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뭔지 모르겠다만, 천려와의 전투로 몸 어딘가가 불편한 게 분명했다.
병사들은 말고삐를 돌리며 손짓했다. 마법사 상태가 안 좋아 보이니 이 틈에 서둘러 도망가야 했다.
“아, 으. 도, 도망쳐라!”
“퇴각하라! 퇴각! 히엘로로 가서 방어진을 구축해!”
“무이! 서둘러! 어서!”
“이거 놔아! 저 새끼가 카칸 님을-!”
“안 된다니까! 여기 있으면 다 죽어!”
무이가 검을 빼 들며 마법사에게 덤벼들려 했지만, 경비대원 한 명이 그의 쿠실레 고삐를 대신 잡아 끌어당겼다. 바람에 휘청이던 쿠실레는 이때다 싶어 등을 돌려 내달렸다.
* * *
‘얼마나 지났지?’
‘모르겠어. 두 시간? 넘었나?’
‘끄응. 생각이 깊으시네.’
몇 시간째, 이안은 턱을 괸 채로 빈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샤티마 수상이 측근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로, 계속 저 상태다.
차라리 어떤 명령이라도 내려주면 움직이기라도 할 터인데, 마법사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이안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클리포포드에서 칼라마트까지 전서구를 보내면 보통 얼마나 걸리지?”
“개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일주일 안쪽입니다. 이번 건은 서신 아래 인장으로 보아 닷새 정도 걸렸습니다.”
닷새나 지난 정보다. 클리포포드가 접수한 것이니, 그녀의 죽음은 더 이전의 일이라 볼 수 있을 터. 샤티마 수상이 측근에게 죽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하완의 정세는 어느 정도 결이 정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정보가 바로바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이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합니다. 만약 토올룬이 샤티마 수상의 죽음에 관여한 거라면, 이는 루스웨나에게 희소식이겠네요.”
“분명히. 토올룬 입장에서는 루스웨나에게 길을 터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지 않나. 바리엘이라는 공통된 적이 있는 이상, 루스웨나가 수혜자가 되는 건 확실하지.”
“그 수혜라는 뜻은, 군사적 움직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확했다. 루스웨나는 지금까지 클리포포드와 하완, 두 나라를 견제하느라 바리엘 쪽으로는 감히 이빨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하완이 토올룬 손아귀 안에 떨어졌다면 숨통이 트이지 않겠나? 살 만해진 짐승은 당연지사 숨겼던 발톱을 보이며 달려들 것이다.
마법사들이 지도를 펼쳤다.
“바리엘 남쪽, 클리포포드와 루스웨나 삼국이 인접한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을 노리려 들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메렐로프령은 하완 쪽에 맡기는 것이… 어라? 히엘로?”
마법사들은 특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의 장관, 자신의 상관이 변경을 담당하고 있는 귀족이라는 걸 말이다. 중앙으로 올라온 이후 단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었고, 마치 고향 따위 없는 것처럼 계속 일을 해왔으니까 말이다.
“히엘로가 여기 있었네요, 이안 님?”
“그럼 이쪽은 안심이군요. 엘더트 왕이 아무리 안하무인이라 해도, 천려와 마법부 장관이 다스리는 영지를 치고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모르지. 그런 걸 따질 만한 작자였다면 애초에 바리엘과 척지지도 않았을 터.”
“그것도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만.”
이안이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했다. 히엘로에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움직이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나를 유인하려는 계략일 수도 있다.’
바리엘 동쪽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이는 당연지사 예견할 수 있는 움직임이다. 게다가 토올룬은 이쪽과 달리 인형술사들을 통하여 감각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았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그들의 계책에 엮일 수도 있는 노릇.
당장은 천려를 믿고서 다음 정보를 기다리는 게 최선인가?
“이안 경.”
“폐하.”
그때, 소식을 들은 진이 회의실로 내려왔다. 트웰러와 함께 있었는지, 그도 황제의 뒤를 따라 바로 들어왔다.
“샤티마 수상이 죽었다고.”
“예. 황궁에서도 이를 알게 되었을 것인데, 그쪽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모르겠습니다.”
이안의 대답에 트웰러가 가볍게 덧붙였다.
“황궁은 중앙 수비에 전념하지 않겠소? 적군이 변경을 밀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긴급 상황 시 수상께서 전권을 갖는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안 갔을 것이고.”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시간문제입니다. 샤티마 수상의 죽음이 측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이안과 진 그리고 트웰러는 황궁에서 보았던 그녀를 떠올렸다. 상당한 인망과 연륜을 지닌 자였다. 게다가 왕권을 탈환하여 승기를 세우기 직전이었으니, 측근에게 어지간한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샤티마를 죽임으로써 얻는 이득은 미비할 것이었다.
“토올룬이 개입되어 있을 것입니다.”
“측근이 아니라, 인형술사의 짓이다?”
“예. 정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흐음. 맞는 말이긴 하오.”
인형술사가 아니더라도, 샤티마를 죽인 자는 바리엘에 반감이 있는 자일 것이고, 이는 포괄적으로 토올룬과 루스웨나의 편이라는 뜻이다.
“바리엘 남쪽으로 분란이 일어나면 클리포포드가 막아낼 것이지만, 히엘로령 쪽이 침략당한다면 이는 어찌하면 좋을지 고심됩니다. 중앙 지원군이 히엘로에 당도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립니다.”
“포탈을 이용하여 그대가 잠시 다녀오는 것은?”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칼라마트에서 히엘로까지는 거리가 너무 멉니다.”
칼라마트에서 토올룬이나 중앙으로 가는 것보다 배 이상의 마력이 소모된다. 가기만 할 것인가? 돌아오는 데 드는 힘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치 않은 상황인지라, 막대한 마력을 그저 ‘확인용’으로 사용하는 건 합당하지 않았다.
“우선은 루스웨나 측으로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일전 아기아르 전투에서 러더포드를 지원했던 것에 대한 공식 항의서입니다. 바리엘 측에서 이를 문제 삼는다면, 루스웨나에서는 바리엘을 선제공격하기 위해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도리어 자극하여 멈추도록 한다?”
“명분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시간을 벌 수도 있다. 잘만 하면 그들이 토올룬에 갔다 올 때까지도.
콰앙!
이안이 펜을 잡으려 하자, 문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베릭이 들이닥쳤다.
“이안아아!”
펜의 잉크가 또 나갈 뻔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안은 침착하게 펜을 거두며 종이가 멀쩡한지를 확인했다.
“저 새끼 끌어내.”
“여기 황제 폐하 계시는데, 미쳤나.”
마법사들이 베릭의 양쪽 팔을 잡자, 베릭이 일렀다.
“아니, 나도 용건 간단하거든? 이안아. 저-기, 칼라마트 저잣거리에 움직이는 그림 있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