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44
제644화.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꺼어억,”
칼라마트의 중앙 시장.
베릭은 산처럼 부른 배를 토닥거리며 만족스럽게 이를 쑤셔댔다. 성안에서 하도 고기를 털어먹어 대니 이제는 식사 시간 외 식당과 창고 출입을 금지당했다.
“하여간 쪼잔하기는. 멀리 출장 다녀온 사람한테.”
“저기, 손님?”
“왜? 나 아직 덜 먹었는데. 술 더 내와.”
음식점 주인이 어설프게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바리엘 사람인 것 같은데 먹는 양으로 보아 일반인은 절대 아니다. 마법사나 마검사, 뭐 그쪽이겠지.
버고스를 몰락시킨 세력이니만큼 고깝다가도, 베릭 앞에 놓여 있는 접시 더미를 보면 감사한 마음이 생겨났다. 자그마치 큰 접시로 열다섯 개. 술은 세 단지를 해치웠으니.
“죄송합니다. 고기랑 술이 똑 떨어졌네요.”
“에엥? 벌써?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예. 다음에는 오실 때 미리 연락 주시면, 고기 좀 많이 들여놓겠습니다. 손님께서 다 털어주신 덕분에 오늘은 일찍 집 가서 애들 좀 보렵니다.”
“감사하다는 거 맞지?”
“그럼요. 다른 식당처럼 손님 여럿 받는 것보다 몸이 편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말마따나 건너편과 다른 쪽 식당들은 쉬러 나온 병사들로 가득하여 왁자지껄했다.
반면 베릭이 있는 곳은 텅 비어 있었으니, 들어오려던 병사들이 베릭을 알아보고서 죄다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저자가 있으면 식당에 먹을 것이 없다며.
“다음에는 꼭 연락 먼저 주고 오십시오! 화끈하게, 배가 터질 때까지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어, 가서 애들 잘 보라고. 꺼어억.”
아, 술 좀 모자라는데. 베릭이 트림을 연신 해대며 시장 깊은 쪽으로 걸어갔다. 바리엘, 클리포포드와 달리 버고스의 술맛은 뒷맛이 묵직한 게 또 별미다.
그는 술집 앞에 나와 있는 의자를 끌어다 대충 앉았다.
“주인자앙-!”
“네, 손님. 안쪽에도 자리가 많은데요.”
“밖에서 먹을게. 날씨 좋잖아. 여기서 제일 비싼 술 갖고 와.”
“제, 제일 비싼 술이요?”
단번에 화색이 된 주인은 후다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내전 당시에는 입에 풀칠만 해도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는데, 바리엘군이 주둔하고 나서는 시장에 활력이 돌았다. 그들은 왕궁 물자 외 필요한 것들을 정당한 가격으로 거래했고, 병사들은 칼라마트 시내로 내려와 고기와 술을 즐겼다. 나라는 망했지만, 그들은 살길이 생긴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빨리빨리 해. 술기운 가시면 술맛 떨어지니까.”
위에서는 홀린 모녀가 민심을 잡기 위해 돈과 식자재를 풀고, 아래에서는 바리엘 병사들이 돈을 펑펑 써주니 인근 소도시에서는 칼라마트로 들어오기 위해 줄을 지어댈 정도였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건, 무엇을 하든 돈이 된다는 뜻. 적어도 칼라마트 안에서 바리엘에 대한 평판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꺼어억. 아오, 자꾸 나와.”
베릭이 코를 훌쩍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한적한 뒷골목. 선술집 앞에는 문 닫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화랑(畫廊)이 있다. 유리창은 먼지가 그득했고, 팔리지 않은 그림 더미가 널브러져 있다. 별생각 없이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데-
“엥?”
안에서 무언가 반짝, 하는 것 아닌가?
베릭은 알딸딸한 기운을 느끼며 눈을 크게 깜빡였다. 유리창에 햇빛이 반사되었나? 그런 것치고는 창이 너무 더러운데.
반짝!
“어어?”
뭐냐, 시발.
베릭은 의아하여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때마침 술을 가지고 나온 술집 주인이 당황해하며 그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손님.”
“여기 안에서 뭐가 자꾸 반짝거려. 짜증 나게.”
“…그게 짜증 날 일인가요? 아마 그림 말고 다른 공예품도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장사한 지 10년째인데, 그 전부터 문 닫았던 곳이거든요. 소문으로는 귀족과 왕족에게 그림 납품하던 데라 하고요. 그런데 10년 전 왕가가 몰락하고 나서는 뭐, 찾는 데가 없었나 보죠.”
“오래됐네. 근데 안쪽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예? 그런가요?”
술집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술병을 또옹! 따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릭은 집요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안쪽을 살폈다. 킁킁. 냄새도 별다른 게 없고. 흐음…. 문 닫은 화랑인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어라.”
그때, 정면에 걸린 그림이 변화를 보였다. 포근하고 아득한 복도 그림에서 대뜸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다. 마치 방 안에서 누가 살아 움직이는 듯이.
베릭의 눈이 커졌고, 아무것도 모르는 술집 주인이 서비스 음식을 가져오려는 순간-
채애앵! 콰앙!
“허억!”
베릭은 주먹으로 화랑 창문을 죄다 깨버렸다.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자, 문짝도 연신 거칠게 차대며 두 동강 내었다.
주인은 기함하며 뒷걸음질 쳤고, 이내 경비대를 불러오기 위해 달려갔다.
“으, 으아악! 누, 누구 없습니까아! 무뢰한이 건물을 죄, 죄다 부수고 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닥쳐. 내가 유리창 깼지, 뭐 그쪽 대가리라도 깼나?”
“경비대! 경비대!”
“호들갑은, 쯧.”
베릭은 소란 피우는 주인장을 뒤로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먼지가 상당히 자욱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나 있는 발자국. 먼지 때문에 생긴 흔적이다.
베릭은 마력검을 빼 들며 문제의 그림 앞에 섰다.
“킁킁.”
먼지 냄새가 덜하다.
틀림없다. 이건, 뭔가 있다.
‘…러더포드 새끼도 그림을 타고 건너왔었지.’
마력석으로 그린 그림일까? 그렇다면 찢어버려? 그게 안전하지 않으려나? 방금 움직였잖아. 놈들이 이쪽으로 넘어오려고 수 쓰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그런데 이번에는 누구인데? 토올룬? 예상치 못한 상대가 갑작스레 들이닥치면, 이안이는 이번에도 버거워할까?
스윽.
베릭은 검 끝으로 그림을 겨누었다.
“좋아.”
찢자. 그렇게 결심한 베릭이 자세를 취하려 했다.
아마 1초라도 늦었으면 망설임 없이 그림을 갈랐을 터다. 하지만 그때, 상당히 익숙한 낯의 여인이 한 남자와 함께 대놓고 스윽 지나가는 것 아닌가? 마치 이쪽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엥?”
방금…….
“리… 뭐였더라. 클라크 여친 지나간 거 아님?”
리엔 메렐로프 부인. 그녀가 상단주와 함께 대화하며 지나간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검에 힘주고 있던 베릭은 멈칫거리며 눈동자만 굴려댔다. 다른 건 몰라도 부인은 이안이 편이다. 그녀가 배신했다면 히엘로 전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
그런데, 진짜 배신인가?
“아오, 대가리 깨져.”
쿠웅.
베릭은 검을 뒤로 내던졌고, 마력검은 증발하여 사라졌다. 이게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베릭이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 싸자, 술집 주인이 경비대를 데리고 당도했다.
“저 사람입니다! 술 제일 비싼 거 시키더니, 갑자기 화랑 창문이랑 문을 박살 내더라고요!”
“이보시오. 우리는 경비대이올시다. 그쪽 신분은?”
“나, 베릭.”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이쪽으로 천천히 도십시오. 바리엘 사람입니까? 황궁 소속?”
“아오! 말투 보면 몰라? 바리엘 토박이잖아!”
“신분증! 신분증 보여주십시오! 거부하면 연행하겠습니다.”
신분증? 어디 갔다 팔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베릭은 대충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헐, 시발.
“돈이 없네.”
은화인 줄 알았는데 동화다. 베릭이 중얼거리자, 주인장은 얼굴이 시뻘게지며 경비대를 닦달했다.
“돈도 없으면서, 뭐? 제일 비싼 술을 달라고? 이보시오! 당장 체포해서 멍석말이라도 해주시오! 저런 게 바리엘 병사일 리 없지.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나부랭이일 것이오!”
“아, 미안미안. 내가 당장 가서 갖고 올게.”
“가긴 어딜 가, 이놈아! 도망치려고!”
“아니, 진짜 뻥 안 치고.”
“체포해! 얼른!”
경비대가 창을 들이밀며 다가오자, 베릭이 멈칫거렸다.
‘자, 잡히면 이안이한테 연락 간다. 시불.’
신분증, 돈도 없이 술 먹고 댕겼다고 한 소리 듣는 건 물론, 난데없이 창문 깨고 문짝까지 부숴버렸으니 혼쭐날 게 분명하다. 이번에도 두 손 들고 숫자 세기 하려나? 차라리 돌멩이 위에 이마빡 박고 엎드려뻗쳐 하는 게 나은데.
베릭은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벽에 걸린 그림을 냅다 떼어내어 도망쳤다.
“잡아라! 도둑이다!”
“아니, 나 진짜 베릭이라고! 황궁친위대 소속!”
“그럼 멈추든가! 입만 살아서는! 잡아!”
“젠장.”
타닥타닥! 타앗!
베릭은 빠르게 발을 놀리며 어지러운 시장 곳곳을 누벼댔다. 그가 지나간 곳을 따라 과일 수레가 엎어지고, 술독이 깨지며, 쌓아두었던 물건들이 널브러졌다.
“아이고, 과일 다 상하네!”
“야잇, 미친놈아!”
“어, 미안!”
“저놈 잡아라아!”
베릭은 코를 훌쩍이며 왕궁 쪽으로 도망쳤고, 길가에서 술과 고기를 먹던 병사들이 흥미롭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저 사람, 황궁친위대 베릭 님 아니야?”
“어. 맞네. 또 무슨 사고 쳤나 보네.”
“하여간, 사는 게 재밌긴 하겠어.”
병사들은 끼어들 생각은커녕 그러려니 하며, 서로 잔만 부딪쳐댔다.
* * *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뿐인가? 진은 못 들은 척 아예 고개를 돌렸고, 트웰러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마법사들의 표정도 이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팔짱을 낀 채 이안의 뒤에 주르륵 서서는 베릭을 노려봤다.
“…무전취식에 기물파손, 조사 불응으로 소란을 일으키고서 도망쳐 돌아왔다?”
“아니, 이안아. 그게 아니라- 나 그쪽 집에서는 술 한 모금도 안 먹었는데? 그리고 기물파손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고. 조사 불응은 뭐, 응. 그렇게 됐네.”
베릭이 히- 하고 웃자, 마법사들이 코를 틀어쥐었다.
“아오, 술 냄새. 이안 님. 이 자식 만취한 게 틀림없습니다. 제정신 아니에요.”
“아니거든? 완전 멀쩡하거든? 내가 고작 술 세 독에 나가떨어질 술찌로 보이냐?”
“취해서 그림이 움직인다, 어쩐다. 이놈아, 마력석 섞은 그림을 그런 뒷골목에서 어떻게 취급해? 상식이라는 게 없네. 어? 아주 대단한 대가리야.”
“그럼 직접 보라고!”
처억!
베릭이 자신만만하게 그림을 들이밀자, 마법사들이 고개를 쭉 빼서 살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마력석으로 그린 그림은 단번에 파악할 수 없었다.
“어쩌죠, 이안 님. 아코렐라 대장 아니면 바로 확인 못 하는데요.”
냄새만으로 마력석을 감지할 수 있는 아코렐라와 달리, 일반 마법사들은 실험실에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확인이 가능했다. 그랬기에 바리엘 황제가 비밀 통로로 이용했던 것이고, 러더포드가 침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도 많은데 확인하고 말고 할 게 무엇 있습니까. 그냥 째서 버리시지요. 베릭 저놈이 회까닥해서 헛걸 본 것 같지만, 혹시 모를 위협 예방 차원에서요.”
“예, 그리고 아코렐라 대장 돌아오면 봐달라고 하면 되겠네요. 어떠십니까?”
이안은 그림을 이리저리 돌리며 특이 사항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 알아채기 어렵다. 결국 이안은 그래도 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찢어서 보관해두어라.”
“예, 알겠습니다. 베릭은요? 같이 찢어버릴까요?”
“음. 나쁘지 않군.”
“이안아?!”
담담한 이안의 농담에 베릭의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술이 단번에 깨는 기분이다.
마법사가 킬킬 웃으며 그림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
분명 아무것도 없던 배경에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며, 이쪽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내-
“으아아아악!”
“……!”
수욱, 하고 올라오는 팔 한쪽. 트웰러와 이안이 놀라서 진 앞을 가로막았고, 마법사는 그림을 벽 쪽으로 집어 던졌다.
퍼억!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벽에 부딪힌 그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그 궤적을 따라 피가 묻어났다. 머리를 들이밀었던 낯선 자의 코에서 흐른 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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