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45
제645화. 메렐로프와 히엘로
콕.
베릭이 발끝으로 낯선 자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꼼짝하지 않아 죽었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다. 이에 마법사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서로를 껴안은 채 베릭에게 물었다.
“주, 죽었어?”
“아니. 살아는 있음.”
“하아, 미, 미친. 대체 저게 뭐래?”
“말했잖아. 그림 움직인다고.”
당연히 술에 취해 떠드는 개소리인 줄 알았지!
트웰러는 진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고, 그런 둘을 이안이 막아섰다. 또 그 셋을 마법사들이 둘러싸 보호하는 모양새. 베릭은 희한한 구도로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코를 훌쩍였다.
“이안아. 얘, 그림에서 빼낼까?”
“그래. 조심하거라.”
“나? 아니면 얘?”
“둘 다.”
“오케이!”
베릭이 낯선 자의 머리끄덩이를 붙들고는 열심히 잡아당겼다. 코피 범벅이 된 채 이리저리 끌리는 모습을 보니, 어설프다 못해 하찮다.
마법사들이 이안에게 속삭였다.
“이, 이안 님. 러더포드 잔당은 아니겠지요? 그쪽은 아기아르에서 다 정리된 것 아닙니까?”
“그래도 그때, 황궁에 침입했을 때와 수법이 똑같습니다. 연관은 있는 것 같은데 행색이 영 허접하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놀라되 걱정은 하나도 안 됩니다. 게다가 혼자 넘어오려고 했던 것 같지요?”
“미친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아니, 진정해. 쟤 입장에서는 화랑으로 오려던 거 아니야? 베릭이 그림 떼 와서 이 지경 된 것 같은데.”
“아. 맞네. 그러면 베릭 잘못이네.”
“그치. 다 베릭 때문이지.”
“야! 다 들리거든? 안 닥쳐?”
“으응. 들으라고 한 거야.”
베릭이 사내의 머리채를 붙잡고서 열심히 흔들어 젖혔다. 그러자 조금씩 신음을 흘리는 남자.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실눈을 뜨며 주위를 둘러봤다.
“으……?”
“오, 이 새끼 정신 차렸다. 인마! 너 누구야!”
짜악!
“때리지 마, 등신아! 그러다 또 기절할라!”
베릭이 사내의 볼을 내려치자, 마법사들이 기함하며 말려댔다. 오히려 상황을 묻고 싶은 건 사내인데 말이다. 그는 한껏 당황한 낯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다 그림 쪽으로 손을 뻗었다. 도망치려는 것이다.
“으, 아으…….”
“어딜 가려고! 누구냐니까?”
“그, 그러는 그쪽은 누구십니까?”
“나? 베릭.”
“그게 누군데?! 아아악!”
베릭은 사내의 팔을 뒤로 꺾어 가볍게 깔아뭉개 앉았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게 제압당한 남자는 금방이라도 다시 기절할 것처럼 정신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런 그 앞에, 이안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신분과 목적을 밝히면 풀어줄 것이다. 서로 간에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마력석 그림 같은 경우는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물건이지 않은가. 이것을 어찌하여 이용하고 있었는지 낱낱이 이르는 게 그대에게 이롭다.”
“아니, 저는 그, 발리주아드 소속 직원입니다. 그림도 상단의 것이고요.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저희가 사용하는 경로인데, 어찌하여 그림이 여기 와 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사내의 말에, 마법사들이 도끼눈으로 베릭을 쳐다봤다. 그림이 자리를 이탈한 이유, 바로 저기 있다는 듯.
“발리주아드?”
이안은 혹시 아는 사람이 있나 싶어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전부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다.
“상단입니다. 그저 물건을 배달하고 전달하는. 이, 이것 좀 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골이 울리는 데, 팔까지 아프니 너무 힘듭니다.”
“베릭.”
이안의 명령에 베릭이 힘을 살짝 풀어줬다.
“물건을 전달한다? 그런 것치고는 짐이 가벼운데.”
“이번에는 다른 임무라 그렇습니다.”
“어떤?”
“…사업상 비밀이지요.”
의뢰인의 비밀을 지키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서신이 유출되어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상단의 평판에 치명적인 흠이 될 터. 다른 것도 아니고, 귀족 부인과 마법부 장관과 연관된 임무이지 않나?
게다가 사내 입장에서 이들은 화랑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그림을 빼돌린 도둑들이요, 다짜고짜 폭력을 행사하는 시정잡배들이었다.
“그래? 훌륭하군. 하지만 정답은 아니야.”
이안이 몸을 일으켜 돌렸다.
“지하 감옥에서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있도록. 조사 후에도 혐의가 없다면 풀어주겠다.”
출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나라를 오가는 건 처벌 대상이다. 다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특별한 혐의가 없다면 적당한 선에서 풀어줄 의향이 있었다. 어쨌거나, 술 취한 개의 과실도 일부분 있으니까.
“안 됩니다!”
지하 감옥이라는 말을 들은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구금되면 언제 풀려날지 기약이 없지 않나? 이번 일은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 내에 처리해야 했다. 리엔 부인이 추가금을 약속했으니까.
“어째서지?”
“기한이 있습니다. 급한 일이니, 마무리만 하게 해 주신다면 제 발로 직접 감옥에 들어가겠습니다. 부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이렇게 코피도 흘리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감옥으로 들어가기 전, 분명히 몸수색을 당할 것이다. 그때 되어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보다 지금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낫다.
사내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일렀다.
“이안 히엘로!”
“……?”
뜬금없는 호명에 다들 멈칫했다. 이에 사내는 먹혀들었다 생각했는지 한껏 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들어는 보셨겠지요.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입니다. 역대 최연소이자 최고 능력자, 바리엘의 빛과 소금, 희망 그 자체이신 대단한 분! 황제 폐하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아 마법부를 이끄시는 분이지요. 바로 그분이 이번 제 임무의 대상자입니다.”
스윽. 마법사들이 눈동자를 돌려 이안을 돌아봤다. 뿐만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진과 트웰러 그리고 문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까지 전부 다.
모두 이안의 뒤통수만 볼 수 있는지라, 그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이안이 이렇게 대놓고 찬양하는 자를 마주한 적 있었던가?
기이한 침묵이 이어지고,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베릭이었다.
“으하하하! 미친! 으아, 개 오글거려!”
“으아악, 아픕니다. 아파요! 움직이지 마세요!”
“사람 웃기는 데 재능이 있네. 이 새끼. 으하하핡!”
이안이 뻣뻣한 태로 다시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안 히엘로를 왜 찾는데.”
“저, 전달할 서신이 있습니다. 제 오른쪽 품에.”
“베릭.”
“으응. 오호, 여기 있네.”
“아앗. 아, 안 됩니다!”
베릭이 몸부림치는 사내에게서 서신을 빼앗아 건넸고, 그것을 받아 읽어내리던 이안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마법사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갔다.
잠시 후, 이안은 서신을 테이블에 올려두어 진에게 보여줬다.
“폐하. 아무래도 히엘로에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문제라니?”
‘폐하?’
사내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가이아 전역에서 ‘폐하’라 불릴 만한 인물은 딱 한 명밖에 없다. 바로, 바리엘 제국의 주인.
“리엔 메렐로프 부인이 보낸 서신인데, 네르사른이 자리를 비우고 영지를 벗어났다고 하는군요.”
“예? 정말입니까? 설마 필리아 님을 찾기 위해서요? 늦은 걸까요?”
진이 침묵하자, 마법사들이 쪼르르 달려가 걱정스레 덧붙였다.
“자세한 건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히엘로에 일이 있는 건 분명해. 하완과 루스웨나 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그와 맞물렸다면 큰일이다.”
“이런. 그런데 여기 클라크 이름도 적혀 있네요. 그자가 메렐로프 출신이었습니까?”
“그래. 정확히는 리엔 부인의 사람이지.”
“클라크를 보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요?”
“우선은 히엘로 쪽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클라크는 한때 러더포드와 연관 있던 자입니다. 보내더라도 먼저 황궁으로 돌아가 마무리한 다음이어야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저기-! 잠깐만요!”
마법사들의 대화에 사내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기회를 놓쳤다가는 계속 못 따라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폐, 폐하라 하시면…….”
“황제 폐하.”
처억.
마법사들이 손바닥으로 받침대를 만들어 진을 가리켰다. 은발에 벽안. 그리고 얼굴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흉터. 진 베로시온이다.
“허억. 그, 그러면 그쪽은…….”
“마법부 장관.”
처억.
다시금 마법사들이 손을 옮겨 이안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화사한 미색이 범상치 않았는데, 워낙 상황이 어지러워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어느 고급 저택인가 싶었던 이 공간도…….
“짜잔. 칼라마트 왕궁.”
“…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안은 베릭에게 사내를 풀어주라 손짓했다.
몸이 자유로워졌음에도 사내는 멍하니 주저앉아 정면만 바라봤다. 세상에. 제국의 황제가, 마법사들이, 장관이 눈앞에 있다니.
“운 좋은 거지. 이안이 앞에서 이안이 욕 안 한 게 어디야.”
“베릭. 쓸데없는 소리. 이봐. 발리주아드라고 했나?”
“예? 아, 예에! 맞습니다!”
“그림은 메렐로프와 연결되어 있고?”
“그렇습니다!”
“폐하.”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 소모 없이 다녀올 수 있다면, 다녀오는 게 옳다. 하완의 정세도 눈으로 직접 확인할 겸.
이안은 그림을 집어 들었다.
“메렐로프로 넘어가고 싶은데, 가능한가?”
“아, 지금요?”
“문제가 있는 것 같군.”
“그게, 그림을 통과하려면 이 마력석이 필요합니다.”
사내는 품 안에 숨겨두었던 목걸이를 꺼내 보여줬다. 그 안에는 사그라든 빛이 담겨 있다.
“한 번 그림을 오가면 불빛이 꺼지면서 소강상태에 들어섭니다. 다시 켜지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나왔다가 바로 돌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사실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마력석관리부.”
“아, 예! 확인해 보겠습니다!”
비슷한 게 있다면 그걸로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래로 우당탕 내려갔던 마법사들은 오래 걸리지 않아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이안 님! 이걸로 한번 해보시지요!”
“아! 그리고 통로가 좁아 저 외에 두 명밖에 못 들어갑니다.”
리엔 부인이 클라크를 데려오라고 했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베릭? 아직 취기가 도는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가자. 이안아.”
이안이 고민하는 것도 모르고, 베릭은 먼저 나서서 그림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마력석도 없으면서. 그 탓에 종이가 쭈욱 늘어났고, 마법사들이 기겁하며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날려댔다.
“미친놈아, 찢어져!”
“이거, 마력석!”
이안은 웃옷을 걸쳐 입은 다음 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고는 마법사들을 향해 명했다.
“발리주아드가 갖고 왔던 마력석은 두고 가겠다. 하루 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히엘로에 문제가 있다는 뜻.”
“알겠습니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어라? 이안아, 쟤들 좋아한다. 너 또 출장 간다고.”
따악! 딱! 딱!
마법사들이 돌아가며 베릭의 머리에 주먹을 까댔다.
그들만의 인사를 나눈 뒤, 이안은 사내를 따라 그림 속으로 손을 뻗었다. 시원하면서도 포근한 감각이 손끝부터 그를 집어삼켰다.
* * *
“엥?”
베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타고 온 그림 한 점만이, 불 꺼진 호텔 로비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던 게다.
“아무도 없는데?”
“왜, 왜 다들…….”
“너 이 새끼, 사기 쳤지?!”
“아닙니다! 그럴 리 없어요. 저도 지금 황당, 아니 당황스럽다고요. 다들 어디 갔는지…….”
끼이익.
프런트도 아수라장이었다.
이안은 천천히 건물 밖으로 나섰고, 이내 어둠 속 메렐로프와 마주했다. 불빛이 든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말 그대로 텅 빈 영지. 아무도 없었다. 작은 인기척은커녕 거리를 돌아다니는 개조차도.
“이안아, 여기 메렐로프 맞아?”
“맞긴 맞는다만…….”
어떻게 된 일이지? 이안이 마력을 개방하며 발돋움하자, 베릭이 사내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여기서 히엘로까지, 날아서는 몇 분 걸리지 않는다.
촤아아악!
창공으로 날아오르자, 이안의 동공이 커졌다.
발치 아래로 펼쳐진 히엘로의 전경이 참으로 처참했다. 민가는 다 무너지고,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 그리고 거리에 널려 있는 시체들.
쿠웅.
이안의 심장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