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48
제648화. 사막의 별
“안녕하세요. 토올룬에서 온 다르시입니다. 호호.”
자신을 다르시라 소개하는 중년 여인의 웃음이 유독 크게 회의장을 울렸다.
엘더트를 비롯하여 신하 중 그 누구도 섣불리 무어라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완국 정세를 단번에 뒤집고 루스웨나 마법사들을 지휘할 수 있다기엔, 그녀는 너무도 평범해 보였다.
“늦지 않게 온 것 같은데, 다들 왜 그러시지요?”
“아닙니다. 저기, 다르시 부인?”
여인은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하나로 묶었고, 풍채가 듬직했으며, 어딘가 달짝지근한 빵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주부의 모습이라 하면 딱 알맞은 묘사다.
“실례합니다만, 인형술사가 맞습니까?”
“그럼요. 항상 이렇게 도구를 들고 다닌답니다.”
다르시 부인이 품에서 반짇고리를 꺼내 들었다. 역시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바늘과 실, 단추 따위만 들어 있다.
신하들은 이자를 믿어도 될지 모르겠다며 엘더트 쪽 의중을 살폈다. 혹여나 일이 틀어져 실패하게 되면, 마법사의 분노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다른 자도 아니고 금기의 마법에 손을 댄 자다. 필시 왕궁은 무너지고 말 터.
엘더트는 연신 생글거리는 다르시 부인을 살피며 물었다.
“하완에서 샤티마 수상을 처리한 것도 부인이 맞으시고?”
“예에. 생각보다 수월했답니다. 가능하다면 샤티마 수상에게 바늘을 꿰고 싶었는데, 영 기회가 안 나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측근 쪽 도움을 받았지요. 지금도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짜란. 그녀는 허리춤에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 작은 인형들을 꺼냈다. 하나같이 작고 귀여운 솜인형들이다. 짚으로 엮어 만들었을 거라든가, 인피(人皮)가 덮여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 부인은 인상 좋게 웃으며 입가를 가렸다.
“호홋! 너무 걱정되시면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괜히 나섰다가 그르치면 죄송해서 어째요.”
“아닐세. 그대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들어가기 전 최대한 확실히 하자는 뜻일세. 혹시 모르니 마법부 마법사들을 먼저 ‘정리’해주면 좋겠는데.”
“아아. 예에. 금방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바느질 하나만큼은 소질이 있거든요.”
깔깔깔. 겉으로만 보면 그저 인정 많고 수다스러운 여인이다. 그 때문에 샤티마 측근이 방심하여 그리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엘더트는 신하에게 눈짓하여 마법사들을 불러 모으라 지시했다.
“마법사들의 의지에 실을 꿴다면 바로 출정할 것이네. 히엘로가 현재 비었다는 정보가 있어.”
“어머, 희소식이네요. 그럼 하완에서도 움직일 수 있겠습니다. 히엘로가 비었다는 건 메렐로프도 사실상 트여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런, 이런. 서두르지요. 마법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법부에 모여있을 것이네만, 혹여 필요한 것이 있나?”
한 명씩 꾀어내어 면담을 청하도록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드갈로 무력화시켜 데려오거나. 원활한 작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협조할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다르시 부인은 괜한 짓이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번거롭게 무엇을요. 마법부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마법사가 총 몇 명인지만 알려주십시오. 보자, 달이 뜰 때까지는 끝낼 수 있겠네요. 그 후에 문제의 ‘그 마법사’도 처리하겠습니다. 루스웨나 왕실에서는 다른 걱정 하나 하지 마시고 출정 준비만 신경 써 주세요. 다른 곳도 아니고, 히엘로지 않습니까. 마법부 장관이 쫓아오면 어쩌시려고.”
마법사라면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으니 허무맹랑한 경고가 아니었다. 중앙군을 제외한 단 하나의 변수, 바로 마법사의 등장.
하나 인형술사인 다르시가 여기 있고, 금기의 마법에 손댄 ‘병력’ 또한 확보하였으니, 그들과 맞선다 하더라도 루스웨나는 쉽게 패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겠지.
“그럼, 이만.”
다르시는 우아한 손끝으로 인사를 올린 다음, 시종을 따라 회의장을 나섰다. 신하들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스레 속삭였다.
“괜찮겠습니까, 전하. 혹시 모르니 대비책이라도 세워두심이.”
“선택할 수 있는 대비책이 마땅치 않아. 지금은 다르시 부인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한데 말입니다, 전하. 지금 당장은 토올룬과 뜻이 맞아 서로를 돕고 있지만, 언제고 갈림길에 설 것입니다. 그때 되면 루스웨나의 마법사들은 모두 토올룬 인형술사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될 것인데, 우려스럽습니다.”
“무익(無益)한 근심이다. 마법사의 가치는 바리엘 깃발이 내려가는 순간 꺾이는 것이나 마찬가지. 바리엘과 대적하여 저자들이 온전히 살아남을 것 같은가?”
인형술사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기 전, 마법사들은 제 역할을 다한 다음 한 줌의 재로 돌아갈 터. 차라리 인형술사들을 어찌 대적하면 좋을지를 연구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똑똑.
“전하. 국방부 장관 들었습니다.”
루스웨나의 국방부 장관은 갑옷으로 무장한 채 들어섰다. 당장이라도 왕궁을 떠나 출전할 수 있음을 일러주는 셈이다.
“마르틴, 왔는가.”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정예부대 500명을 흑갑옷으로 무장시켰고, 전투에 투입할 드래곤 20기도 외곽에서 올라오는 중입니다. 밤중 정비가 끝나면, 아침 해가 뜨는 즉시 출전할 수 있습니다.”
만족스럽다. 엘더트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했다.
“히엘로는 비어 있다. 영지를 점령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하완국과 합류를 꾀하라. 중앙에서 오는 지원군을 함께 막아내어, 변경지를 바리엘로부터 완전히 잘라내야 한다.”
“죽음으로 명 받들겠습니다.”
처억!
마르틴은 엘더트에게 경례하며 조국의 승리를 맹세했다. 그 누가 막아서더라도, 그들은 넘고 넘어 바리엘의 심장을 찌를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 * *
바스락.
이안의 발이 닿는 곳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타다 만 나무 잔해일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의 뼛조각일 수도 있다.
이안은 개의치 않으며, 어둠 속에서 간간이 피어오르는 불씨를 길잡이 삼아 천천히 걸어갔다. 하이만 은행, 의상실, 공원과 이어진 대로변…. 기억하는 모든 것이 눈앞의 현실에 전면으로 부정되었다.
“…….”
“…….”
이안을 뒤따르던 베릭도 자신이 자주 갔던 술집이 무너진 걸 눈으로 담았다. 음식 솜씨가 참 좋았던 주인장인데, 그자도 죽었구나.
…죽었구나. 여기고 저기고 할 것 없이, 모두 다.
“…베릭.”
한참 묵묵히 걷던 이안이 어느 순간 멈추고는 뒤를 돌아봤다. 혹여나 산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이런 곳에서 누군가 살아 있을 리 없다. 그리 결정 내린 이안은, 베릭을 데리고 거칠게 날아올랐다.
지이잉- 지잉!
세상이 어두웠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제외하면 빛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거실을 밝히는 기름불도, 대장장이의 녹물도, 삼삼오오 모여 피워대던 담뱃불도.
베릭에게 있어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안의 뒤통수뿐이었기에, 늘 빛나던 그의 금안 역시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촤아악!
밤바람이 이렇게 차가웠구나. 베릭이 날카로운 바람 탓에 눈매를 가늘게 떴다. 저 멀리, 히엘로의 끝자락인 사막이 보였다.
“어? 저기.”
듬성듬성, 시선에 걸리는 무언가. 이안은 고도를 낮췄고, 별빛에 의지하여 그것을 식별했다. 천려의 전사들이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안은 비행을 멈추어 손수 그들의 얼굴에서 모래를 털어주었다. 치열했던 전투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는지, 이안의 손끝이 뜨겁다.
“…네르사른?”
멈칫. 베릭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놀라서 고개를 틀었다. 무언가 발견한 베릭은 모래 위를 달렸고, 이내 두 손으로 머리를 넘겨댔다.
“말도 안 돼…….”
네르사른이다. 천려의 다른 전사들처럼 눈도 감지 못한 채로 죽었다. 말라버린 동공은 쏟아질 것 같은 우주를 담고 있었다.
“이봐. 네르사른, 아니 네르사른 님. 일어나봐.”
베릭이 주저앉아 뺨을 쳐대며 중얼거렸으나, 죽은 자에게 어찌 들리겠나.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이안을 돌아봤고, 이내 굳어버렸다.
“이안아.”
이안의 낯이 차갑고 서늘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한겨울의 호수처럼. 얼음 아래로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은 시커먼 분노가 모래 위로 흘렀다. 이안의 눈물과 함께.
“…….”
이안은 결국 고개 숙인 채 주저앉았다.
자신의 실책이다. 미래에서 히엘로령의 존재감이 희미했던 걸 단서 삼아 모든 걸 대비했어야 했다. 샤티마의 죽음으로 번진 불씨가 너무도 거대하여, 이안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스윽.
이안은 네르사른의 손등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른 한 사람.
‘어머니. 미안합니다.’
슬픔은 남겨진 자의 몫. 네르사른의 죽음을 전해 들은 필리아의 심경이 어떠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삶에 허락된, 몇 안 되는 축복 중 하나였는데. 이리 보내고 말았다.
“…그자의 말이 옳다. 히엘로는 나로 인해 무너졌어. 내가 아닌 다른 자였다면… 뭐가 좀 달라졌겠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금기의 마법 쓴 마법사를 누가 이겨? 누가 있었든 결과는 똑같아.”
괴롭다.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죽는 것은, 이제 더는 버티기 힘들다. 나움, 마법부, 이어서 네르사른까지.
그러면 그다음은?
“이안아, 잠깐만 나 봐. 정신 차리고 호흡해.”
베릭은 이안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서 함께 호흡했다. 클리포포드 전쟁 때 이상 반응을 보였던 그때와 비슷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이 훨씬 더 위험하다. 당시는 마법 부작용일 뿐이었으나, 지금은 순수 감정으로 인한 반응이니까.
“네가 미래에서 여기로 온 게 다 신의 뜻이고 역사의 흐름이라면… 죽음도 그렇다고 생각해. 네르사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죽었어도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은 언젠간 꺼진다. 단지 그 시점이 조금씩 다를 뿐. 네르사른은 전사로서 끝까지 싸우다 죽었으니, 틀림없이 만족스러운 마지막이었으리라.
“그러니까 무너지지 마. 네가 무너지면… 네르사른의 죽음이 의미를 잃는다.”
이안은 가볍게 눈가를 비볐다. 그리고 다시 네르사른의 손을 붙잡았다. 그대에게 남길 마지막 말은 사과가 아니라 감사 인사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끝까지 바리엘을 위해 싸워주어 고맙습니다. 그대의 기상을 잊지 않겠습니다. 천려의 전사여.”
나지막한 말이 전사의 얼굴 위로 내려앉는다. 이안은 손끝으로 그의 이마와 눈두덩이, 코, 입술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와 로엘은 끝까지 지켜낼 것이니. 그대의 숨을 앗아간 자, 내 반드시 영혼을 앗아오리라.”
베릭도 고개를 숙이며 네르사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10년 전, 그와 저택에서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대사막을 함께 건넜던 그때까지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잘 가십시오, 아버지. 다시 만납시다. 언젠가.”
이안이 네르사른의 눈을 감겨주었고, 둘은 동시에 속삭였다.
“데모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