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49
제649화. 마법사의 숲으로
달그락.
엘더트는 지도 위에 올려져 있던 나무말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멈칫, 허공에서 멈추었다.
“…….”
왕궁에서 출발해 마법사의 숲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올라가면 히엘로이나, 서쪽으로 넘어가면 카렌나라는 도시를 통하여 곧바로 내륙으로 들어설 수 있다.
하나 카렌나는 한때 도적 떼로 인해 치안이 불안정했던 적이 있기에, 다른 도시보다 병사 수가 많을 터였다.
‘텅 빈 히엘로를 두고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타앗.
나무말이 히엘로로 옮겨졌다. 동시에 하완에 서 있던 말은 메렐로프로 들어섰다.
메렐로프. 참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덴바 산맥에 의해 중앙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데다 대사막과 접경해 있으니, 여기만 먹을 수 있다면 뒤쪽으로는 반격을 걱정할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
똑똑.
“전하.”
“들라.”
그때, 기별과 함께 신하가 닫힌 문을 살짝 열었다. 문틈으로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여명이 터 오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위한 출정이 단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준비는 끝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아마 신하가 가져온 소식은 인형술사와 관련된 것일 터. 엘더트는 서둘러 보고하라는 듯 눈짓했다. 하룻밤을 새운 터라, 그의 볼이 창백했다.
“다르시 부인입니다.”
“들라 하라.”
끼이익.
문이 완전히 열리며, 다르시 부인이 종종걸음으로 방에 들었다. 소매가 더러워지지 않게끔 양팔에 토시를 착용한 부인은, 대뜸 줄줄이 꿴 인형 무더기부터 자랑스럽게 들어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눈으로 숫자를 세던 엘더트는 이내 마법사의 수를 떠올리고서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다 해냈군.”
“이쯤이야 쉬운 일이지요. 마법사들의 출신이 모두 달라서 그런가요? 유대가 영 없더라고요. 호홋.”
토올룬에서 온 인형술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설령 있다 한들, 그녀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멍청이들도 있었고.
다르시 부인은 두 손으로 실을 가볍게 움직여 인형들을 조종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어린이 인형극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
“…금기의 마법사도?”
“예, 이놈이지요. 얘가 제일 힘들긴 했습니다. 성질이 아주 날카롭고 예민했어요. 하긴, 원래 아플 때는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톡톡. 다르시 부인이 싱긋 웃으며 인형 하나를 들어 보였다. 가운데에 엑스 표시가 그려져 있다.
엘더트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스르르 의자에 앉았다. 마법사들을 모두 ‘무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금화를 내어주거나, 왕궁이 무너지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짚으며 안도의 숨을 토해냈다.
“…고맙네. 수고했어.”
“별말씀을요. 모두 대의를 위한 것이니까요. 호호!”
“마법사들의 의지는?”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문제 생기면 큰일이지요. 애초에 잠재된 위험은 자르고 가는 게 맞습니다.”
엘더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르시 부인은 싱긋 웃으며 인형을 다시 거두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아침 일곱 시. 한숨 눈 붙이고자 했는데, 애매해서 안 될 것 같다. 그녀는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켠 다음 엘더트에게 부탁했다.
“참, 가능하다면 제 개인 마차는 제일 크고 널찍한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인형을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배경이 필요하거든요. 이게 은근히 공간 차지를 많이 해서.”
“일러두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전하께서는 바로 출전하지 않으시지요?”
“히엘로를 점령한 후 본대를 꾸릴 것이다. 그곳에서 다시 만나지.”
시간이 촉박하기에 국방부 장관 마르틴을 먼저 보내는 것이다. 그쪽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 바리엘에 진입하는 게 옳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다르시 부인은 허리를 가볍게 숙여 인사하고는 뒤돌아 총총 방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살. 어느새 해가 완전히 떠오른 게다.
창밖으로 보이는 왕궁의 전경이 참으로 녹음 지고 화사했다. 나뭇결을 본뜬 벽돌 무늬, 아침 바람에 살랑이는 갈대 조경…. 가을이 되면,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멋있구나! 이래서 다른 나라를 둘러보는 게 좋아. 오호홋.”
그녀는 볼록한 광대를 두 손으로 감싸며 감탄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발까지 동동 구르는 모습은 순수한 소녀를 연상하게 할 정도다.
서너 걸음 뒤에서 그걸 지켜보는 시종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미친.’
그들은 똑똑히 지켜봤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법사의 살을 꿰고, 마치 물건 대하듯 재단하고, 상대를 지배한 다음에는 조롱하며 갖고 노는 모습을 말이다.
시종들은 애써 고개를 내리며 경멸스러운 시선을 감췄다. 토올룬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역겨운 곳임은 분명했다.
“어머, 마르틴 장관!”
복도 끝, 다르시 부인이 장관을 알아보고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보였고,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히엘로에는 몇 명의 마법사를 데리고 갈 계획입니까?”
“전하께서 절반만 데려가라 하시던데요. 왜요? 호홋.”
“알겠습니다. 나와 있는 마법사들이 모두 맞는지, 확인차 물었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이쪽으로.”
왕궁을 나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다르시 부인은 감격스러워 다시금 두 손을 맞잡았다.
아까 보았던 황금빛 갈대밭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갑옷과 육중한 흑갑옷 병사들. 위엄 있게 휘날리는 루스웨나 깃발. 거기에 더하여-
“어머!”
책에서만 보던 드래곤!
그녀는 연신 호들갑을 떨어대며 깔깔거렸다. 아 참, 제일 중요한 걸 빼먹었구나! 그리고 나의 사랑스러운 인형들!
“좋은 아침-!”
다르시의 들뜬 인사를 받은 것은 마법사들이었다. 생기를 잃은 듯 희멀건 동공은 아침의 화사한 빛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저 허수아비처럼 마차 옆에 일렬로 줄지어 서 있을 뿐, 마법사들은 다르시 부인의 인사에도 반응하지 않은 채 멍하니 허공만 응시했다.
“어우, 냄새. 얘는 어떻게 좀 해야겠다. 장관! 마차 뒤쪽으로 보내도 되겠어요?”
금기의 마법을 쓴 탓에 녹아내리고 있는 마법사, 비토르였다. 밝은 데서 보니까 몰골이 끔찍한 게 말이 아니다.
다르시 부인이 코를 막으며 찡그리자, 장관이 손짓하여 공간을 확보해주었다. 그녀는 피아노 치듯 손끝을 빠르게 움직이더니, 비토르를 움직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여차하면 저놈을 제일 먼저 써야겠어요. 상태 보니까 오래 못 가.”
“부인께서 판단하시어 일러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그래요. 뭐, 인형의 주인은 나니까.”
다르시 부인의 대답에 장관이 잠시 멈칫거렸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민감한 주제였기 때문에, 주군 없이 섣부르게 덧붙일 수 없었다.
부우우- 부우-
출전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물소뿔 소리다. 좌우로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검을 빼 들어 하늘을 찔렀고, 맨 앞 선발대가 깃발을 든 채 앞으로 나아갔다.
뒤이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내성(內城) 성문. 고지대인지라, 완전히 열리지 않았음에도 저 멀리 드넓은 평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삭. 삭.
사슴과 들소, 토끼 따위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왕궁의 사냥터다. 짐승들은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고개를 쳐들었다가 후다닥 도망쳤고, 군악대는 악기 소리를 점차 크게 올리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이어서 한쪽으로는 황금빛 농지가 끝없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처럼 풀잎들이 흔들렸다. 언덕 아래로는 백성들이 모여 사는 마을도 보였다.
동서남북 네 곳의 성문 앞으로, 각개의 병영에서 나온 병사들이 출정을 축복하고자 몰려들었다.
“진격-!”
“진격!”
백성들도 마찬가지, 절도 있게 움직이는 병사들을 보기 위해 뒤늦게 거리로 몰려들었다. 전운(戰雲)을 감지하고는 있었으나 어제만 하더라도 다들 평온한 일상을 보내지 않았던가. 한데, 오늘 아침에는 바리엘로 진격이라니.
그들은 수군거리는 한편, 클리포포드 전쟁 이후로 처음 전장에 나서는 자국 병사들을 격려했다.
“조심히 돌아오시게! 부디 살아서, 승리를!”
“전승을 기원합니다! 클리포포드 전쟁에서 겪었던 치욕을 갚아 주자고요! 이번에는 바리엘이 우리에게 무릎 꿇을 차례입니다!”
“맞습니다! 선왕의 복수를!”
“무역 보복을 돌려줍시다!”
백성들이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자, 다르시 부인이 화답하듯 인사했다.
“오호홋.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승리는 우리의 것!”
“저 여자는 누구야?”
“모르겠는데. 말투로 보아하니 외국인 같아.”
“아무렴 어때. 꼭 우리에게 승리를!”
끼이익! 쿵!
비로소 거대한 내성 성문이 무거운 신음을 내뱉으며 완전히 열렸다. 흑갑옷 입은 자들이 손짓하자, 드래곤들이 빠르게 날아올랐다.
넓은 간격으로 동심원처럼 펼쳐져 있는 외곽 성벽 위의 병사들은 드래곤이 날아오른 것을 보며 깃발을 흔들어댔다. 이번엔 외성(外城) 성문이 열렸다.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에서 위기감이 좀 있었나 보네. 성벽이 여러 겹이야.’
다르시 부인은 달그락거리는 마차 안에서 턱을 괸 채 그리 생각했고, 이내 저를 따라 삐걱삐걱 움직이는 마법사들을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아차차, 장관! 경로가 어떻게 됩니까?”
“마법사의 숲을 지나면 바로 히엘로로 진입 가능합니다.”
“거기까지는 얼마나 걸리고요?”
“드래곤들은 하루면 가고, 보병들은 일주일 넘게 걸릴 것입니다. 선발대로 흑갑옷과 드래곤을 먼저 보낼 것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모르니 마법사도 데려가세요. 마법사가 보는 것은 저도 볼 수 있으니까, 상황 파악에 용이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부인.”
그녀의 말에 장관이 의지를 잃은 마법사를 쳐다봤다. 다르시 부인이 손을 까딱거리자, 마법사들이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다르시 부인이 깔깔거리며 배를 부여잡았으나, 장관은 의례적인 미소만 지은 채 말을 앞으로 움직였다. 꺼림칙한 여자였다. 아무리 보아도.
* * *
“사막에 숲이 난 것 같다.”
베릭이 저 멀리 보이는 우거진 숲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참으로 기이했다. 오른쪽으로는 적당히 젖은 땅 위로 풀이 나 있었고, 왼쪽으로는 온통 메마른 모래사막이다. 그런데 정면에는 숲이라. 세 등분으로 찢긴 대지의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여기 국경 맞지? 왜 국경 수비대가 안 보이지?”
“수비대는 동쪽으로 가면 볼 수 있다. 여기는 사막과 접경한 데다, 마법사들의 거주지였어. 어지간한 자가 아니라면 이쪽을 오갈 생각 따위 하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잉. 지이잉.
이안은 손끝을 들어 허공을 매만졌다.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존재했다. 마법사들은 모두 왕궁으로 갔을 터이니, 마력으로 유지되는 것 같지는 않고…….
“마력석이다.”
“하긴. 이런 게 있으면 일반인들은 접근조차 못 하는 게 맞지. 철조망 둘러놓는 것보다 이게 효과적이긴 하겠다.”
어디까지가 경계일까. 베릭이 보이지 않는 벽을 퉁퉁 두드렸다.
“그럼 어떻게 할까, 이안아. 국경 수비대부터 조지고 들어가? 아니면 여기 개구멍이라도 팔까? 잠깐, 이거 부서지기는 하나?”
베릭이 소매를 걷은 다음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퍼어엉-!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의 진동이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베릭은 아픈지 주먹을 탈탈 털어대며 짜증스럽게 벽을 노려봤다.
“금도 안 가네, 시벌! 아오, 개 아파!”
그러면서 다시금 머리를 박아대고, 주먹을 휘두르며, 발로 뻥뻥 차댔다. 그러자 투명한 보호막은 몇 번 흔들리는가 싶더니, 되레 점점 견고해졌다.
“비켜봐.”
“아니, 놔봐. 나 할 수 있을 듯.”
“충격 받으면 받을수록 단단해지는 물질 같다.”
“한 번에 깨면 된다는 말이네?”
콰아아앙!
“아아악!”
베릭이 허리까지 돌려가며 있는 힘껏 주먹을 뻗었지만, 돌아온 것은 짜증 섞인 비명이다.
이안은 나뒹구는 베릭을 뒤로한 채, 바닥에 손을 댔다.
지이잉! 지잉!
벽을 부수려는 것인가? 베릭은 엎드린 채로 이안이 하는 것을 가만 지켜봤다. 그런데 마력의 흐름이 뭔가 이상했다. 벽이 아니라, 바닥으로…….
“어? 어어?”
“그러니까 비키라고.”
“이안아, 잠깐만!”
콰아아앙! 퍼엉! 펑!
베릭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터진 폭발. 순식간에 땅이 터지면서 여기저기 흔들렸고, 흙과 돌무더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이는 땅 아래 박혀 있을 마력석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지이잉- 지잉!
채앵!
이어지는 몇 번의 날카로운 파열음.
…다 끝났나?
베릭은 눈을 빼꼼 내밀며 주위를 둘러봤고, 이내 손을 탁탁 털고는 아무렇지 않게 루스웨나 영토로 진입하는 이안을 발견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