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
제65화. 마음으로 모이다
“오메나, 세상에. 저게 다 뭐여?”
“밤중에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대체 왜? 누가?”
“이안 님이 저택으로 돌아가다가 변을 당했대.”
“뭐어어?! 어쩌다?”
“그걸 지금 조사하고 있는 거 아닌가. 굴라 나눠주러 나왔다가 무슨 날벼락인지 원.”
“이안 님은? 저 시체 중 하나가 이안 님이여?”
동이 터오자, 사람들은 새벽에 있었던 일을 모두 알게 되었다. 산처럼 쌓인 시체가 골목을 막고 있으니 비밀로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대로변까지 흘러나오는 핏물은 또 어떠하고?
경비대가 시체를 일렬로 쭉 나열하여 신원 확인을 하는 동안, 다들 멀찌감치 물러서서 쑥덕거렸다.
한편, 저택도 만만치 않게 시끄러웠는데, 특히나 본관의 지하실이 그러했다.
“으아아악!”
습격자 중 살아남은 자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페트레이오’라 ‘추측’, 나머지 한 명은 신원 불명의 사내였다. 그중 입에 재갈을 물고서 비명을 내지르는 페트레이오. 땀과 눈물 그리고 피로 온몸이 흠뻑 젖어있었다.
“지금 자네 꼴이 얼마나 끔찍한지 아는가?”
“으으윽…….”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것이네. 신원만 확인한다면 내 자네에게 의원을 붙여줄 것이다.”
사실 그가 기절한 사이, 의원이 다녀갔었다. 하지만 워낙 상처가 기괴하고 심한 터라, 당장 사흘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찰을 내렸다. 베릭은 천으로 그의 얼굴을 꾹꾹 누르며 짜증을 부려댔다.
“그만 입 좀 쳐 열자!”
“아아아악!”
“소리 좀 그만 쳐! X발, 누가 보면 내가 고문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의자에 묶이고, 재갈이 물려있긴 하지만 그들이 하는 건 고문이라기보다 간호에 가까웠다. 미지근한 물로 오물질을 닦아냈으나, 워낙 피부가 떨어져 나간 탓에 그것마저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끄으윽……”
“베릭. 되었다. 옷을 싹 벗겨.”
“옷을? 다?”
“천 하나 남기지 말고.”
“끄응.”
베릭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이안의 명령에 따랐다.
페트레이오는 군인 계열이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일단 황궁의 규율 아래 일했던 자는 확실해 보였다. 나이로 보아, 참가했던 크고 작은 전투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경우에는 신체에 제 신분을 새겨놓는 경우가 많았다. 혹여 전장에서 시체가 되어 갈기갈기 찢기더라도,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 이건가?”
베릭이 웃통을 벗기다 왼쪽 옆구리에서 문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일부러 상처를 내어 살집을 긁어놨다. 아주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것이다.
“쯧쯧.”
이안은 허리를 살짝 숙여 상처를 보다 그와 눈을 맞췄다. 배가 뚫리고, 얼굴이 녹아내리는 상황에서도 눈은 빛을 잃지 않았다. 이런 자들은 어지간해서 입을 쉽게 열지 않는 법이다. 몰린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겠지.
“곧 죽을 자에게까지 고문을 하고 싶진 않다.”
“…….”
“하지만 진정한 전사라면 복수를 잊지 않는 법이지. 부디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 없길 바란다. 페트레이오라는 이름을 간직한 자는 너와 똑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담담하지만 굉장히 잔인한 말이었다. 사실 그럴 생각은 별로 없다만, 페트레이오의 빈틈을 노려보기 위해 질러본 것이다. 역시나 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계속 잘 지켜봐.”
“오케이. 후우. 피 냄새 우엑이다. 진짜.”
이안은 어쩔 수 없이 베릭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지하실 복도로 빠져나왔다.
끼익.
“…으아아악!”
닫히는 문 사이로 페트레이오의 비명이 새어 나오다 뚝 멈추었다. 복도 반대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누군가 계단을 구르다시피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쿵! 타다닥! 쿵쿵!
“이, 이, 이안!”
“아. 로만드로 님. 일어나셨습니까.”
“이게! 이게! 어이구…….”
일어나자마자 달려와 상당히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이안의 어깨를 붙잡고 위아래로 훑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멀쩡해서 당황한 것 같았다.
“그, 장정 열댓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하던데…….”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역시, 역시 마력 운용자는 다르군! 역시!”
“일단 진정을 좀 하십시오.”
베릭이 들었더라면 기함했을 터다. 쥐어 터지며 싸운 것은 저인데 어찌하여 이안이 이런 치하를 듣는지 모르겠다며.
“페트레이오라는 자가 작당하여 일을 벌였습니다. 몰린의 부하인 것 같은데, 잡는 순간 독으로 얼굴을 망가트려 신원 확인이 불가합니다. 조사는 하고 있다만, 자꾸 이상한 이름만 대더군요.”
“모, 몰린 일행은?”
“그쪽도 별반 차이 없습니다.”
로만드로의 물음에 이안이 복도 끝방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몰린을 비롯해 두 남자가 갇혀있는 곳이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로만드로는 이안 앞을 서성이다가 도저히 답이 안 보인다는 듯 되물었다. 사실 여기서 몰린이 이안을 죽이려 했다는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관습상 그에게 문제 될 것이 딱히 없었다. 몰린은 황궁의 행정관이고 이안은 그의 주장대로 천민에 대사막을 주둔지로 둔 자였으니까. 이안이 마력운용자에 저택의 책임자라지만, 그 어떤 것도 공식 직책은 아니었다.
“죽일 것인가?”
“아니요. 더 이상 황궁에서 조사단이 내려오는 것은 사절입니다.”
이안이 몰린을 죽이면 황궁에서는 또 사람을 내려보낼 것이다. 재수가 없다면 게일 측에서 아예 이안을 처단하기 위해 군대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으응?”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증명해 보이겠다고. 그러니 마리브 저하께 전언을 올리십시오. 따르겠습니다.”
게일의 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 이외에 이것이 제일 뒤탈 없고 깔끔한 방법이었다. 대충 황궁의 상황이 어떤지는 예상할 수 있으나, 말 그대로 예상이었다. 몰린의 죽음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는 확신할 수 없으니 마리브에게 그 역할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러면 답신이 올 때까지는…….”
“저리 두지요. 그것까지는 괜찮습니다.”
“알겠네. 내 바로 전서구를 날림세.”
“아. 잠시만요. 로만드로 님.”
냉큼 계단을 뛰어 올라가려는 그를 붙잡았다. 이안은 천으로 잘 싼 반지를 보내주었다. 심플한 디자인은 은색 링이었는데, 안쪽에 난 작은 침과 그 주위가 독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혹시 들으신 바가 있으실까요? 찌르니 바로 얼굴이 흘러내리더이다.”
“음. 보자…….”
로만드로는 얼굴을 뒤로 쭉 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걸 다시 쓰려고 하나?”
“쓸 수 있습니까?”
“뭐, 침을 다시 넣어야 하니 기술자가 필요하겠지만 전혀 못 쓸 것은 아니지. 독은 아마 테바르핀인 것 같은데. 암살자들 신분을 숨길 때 쓰거나, 저기, 인신매매범이 범죄에 주로 쓰는…. 그거구먼.”
인신매매 혹은 장기밀매 등.
시체의 신원이 밝혀지면 안 되는 범죄에 적극적으로 쓰이는 독성 물질이었다. 이안의 시대에는 전혀 쓰이지 않던 터라 조금 충격적일 정도다.
“그런 게 있다고요?”
“모를 수도 있지, 뭘 그리 놀라나?”
100년 전에는 이런 엄청난 독성 물질을 쓰기도 했구나. 이안은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시체 훼손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생기고 묻혔겠는가.
분명 이안 시대에는 인식조차 되지 않는 독이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 금지품으로 지정되었을 터인데,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로만드로는 이안을 힐끔거리더니, 이내 서신을 쓰겠노라 말하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최대한 빨리 써 보내겠네.”
“네. 부탁드립니다. 이따 뵙지요.”
이안은 반지를 다시 천으로 싸서 안주머니에 챙겼다. 그리고 복도 끝, 몰린 일행이 갇혀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안쪽에서 소란은 없었는가.”
“네. 없었습니다.”
“문을 열어라.”
덜컥.
이안의 지시에 문지기가 어른 주먹만 한 자물쇠를 풀었다. 짐승 먹이 주듯 나무 식기만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맥이 일어섰다.
“이안 네 이놈!”
하지만 이내 경비에 의해 저지되었다. 이안은 엎어진 나무 그릇을 탁자에 올려두며 물었다.
“잠은 좀 주무셨습니까?”
“천한 것이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감히, 우리가 누구인 줄 알면서도 이래? 당장 문을 열어! 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다! 황궁에서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이번에는 드고르 역시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것처럼 달려와 따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황궁의 명을 받고 온 자들이다! 우리를 이리 대하는 것은 중앙에 대한 모욕이야! 변경이면 변경답게 행동해라! 천려족! 그대들도 행동을 똑바로 하시오! 이안은 누구 말마따나 현재 소속이 천려족이오! 그런 자가 황궁 행정관을 이리 대하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가?”
“그래서 그대들이 여태껏 살아있는 것 아닙니까?”
“뭐, 뭐라고?”
“황궁 깃발이 아니었다면, 지금 그대들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페트레이오의 자리에 앉아 있을 겁니다.”
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반지를 꺼냈다. 천으로 링 부분을 잡고서 침을 맥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흠칫, 물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맥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페트레이오라니!”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얼굴이 괴사하였다 하더라도,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미 들어보시지 않았습니까?”
베릭이 보여준 붉은 브로치. 그들이 밀담을 나눈 것이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다. 하지만 몰린 일행은 주눅 들지 않았다. 되려 당당하게 소리치며 부당함을 주장했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그리 당당하다면 정식으로 재판을 열어! 이건 도대체 어디서 빌어먹은 과정이란 말인가? 감히 이름도 못 받은 자가…….”
“영지조차 이름을 잃었는데 어찌 사람이 그 이름을 갖고 있겠습니까? 드고르, 여기는 변경이에요. 그네들이 있던 중앙이 아니랍니다.”
이안은 맥의 흐트러진 깃을 툭툭 털어주며 중얼거렸다.
“부하의 실수는 곧 상관의 실수. 무엇보다 대사막의 전사들은 복수를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브로치로 인해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결론이 있으니, 나는 이것을 단순히 넘길 생각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마리브의 지시에 따라 몰린 일행을 처벌할 것이었다. 이안은 바닥에 널브러진 보리죽을 보며 경고했다.
“음식이 귀합니다.”
다음부터 이러면 바닥에 떨어진 걸 먹을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이안은 경비에게 잘 감시하라는 눈짓을 보내며 밖으로 나섰다.
달깍.
“이안 님! 이, 이안 님!”
그때였다. 해나가 지하실 아래로 뛰어 내려오며 이안을 불러댔다.
“왜 그러느냐?”
“영지민들이 죄다, 아주 떼거리로 몰려왔습니다!”
영지민들이 대체 왜? 무슨 연유 때문에?
하지만 해나는 급한지 발만 굴리며 앞서 뛰어갔다.
그를 뒤쫓는 이안은 몇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굴라를 약탈하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몰린이 손을 써둔 병력?
“이안 님!”
지하실에서 올라오자 햇빛이 환하게 쏟아졌다. 그 아래 모인 영지민들. 모두 들꽃이나 작은 과일 따위를 들고 있었다. 그들도 이안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멀쩡하시네!”
“아이구, 다행이다. 다행이야!”
“누가, 응? 누가 헛소리를 한 겨? 이안 님 배때지에 칼빵 어마무시하게 맞았다며?”
“걱정했어요. 밤중에 엄청난 습격을 받았다고 해서… 골목에 피는 또 얼마나 흥건하던지.”
“괜찮으신 거죠? 괜히 밤중에 나왔다가 에구.”
“쉿! 조용히 해! 중앙 쉐끼들 듣겠어.”
“이안 님. 이것 받으셔요. 작지만 실한 겁니다.”
이안을 둘러싼 영지민들이 쉴 새 없이 걱정을 쏟아냈다. 눈으로 혹여 상처 난 곳은 없는지 살피고, 그의 손에 선물을 쥐여주었다. 순식간에 품 가득 꽃과 과일이 차올랐다.
“이게 다…….”
이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꽃을 내려다봤다. 고작 3년이라는 짧은 시간, 왕관의 무게를 버티게 해주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생각난 것이다.
이토록 작은 웃음. 이것이 전부였다.
“마침 다들 잘 왔군. 로만드로 님이 드디어 허락하셨네.”
“네? 허락하셨다면…….”
“굴라의 재배와 유통, 섭취에 대한 허락.”
“와아아아! 세상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이른 희소식에 다들 얼싸안으며 방방 뛰어댔다. 이안은 진정하라며 손짓했고, 다들 눈을 반짝인 채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조건이 있지.”
“말씀만 하십시오!”
다들 왁자지껄하게, 맘속으로 풍족한 겨울을 그려냈다. 이안은 해나에게 꽃과 과일을 넘겨주며 전했다.
“오후에 영지민들은 모두 광장으로 모이라 하게. 공표하며 일러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