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0
제650화. 수풀 속 맹수
끝없이 펼쳐진 녹음.
이안은 바람을 느끼며 먼 곳을 둘러봤다. 마법사의 숲은 생각보다 넓고, 울창했다. 산새들이 날아서 가는 것 외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래에서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던 베릭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안아! 뭐 좀 보여?”
“아니. 전혀.”
“자이라 이 새끼는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았대?”
“숲 입구와 길이 따로 있을 것이다. 국경 쪽은 왕래하는 사람들이 없어 개발되지 않은 것일 테고.”
이안은 그리 말하며 가볍게 착지했다. 왕궁으로 직행할 수도 있었지만, 혹여 그사이 루스웨나군이 다른 경로를 통해 히엘로에 들어선다면 낭패였다.
이 숲을 기점으로 루스웨나군의 선발대를 먼저 잡아낸 다음,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차근차근 정리하고 올라가는 게 확실한 방법이다.
루스웨나의 이름을 단 자라면, 그게 누구라도 바리엘 땅에 발을 딛지 못할 것이라. 이안은 그리 맹세했다.
“숲이 너무 우거져서 위에서는 안 보여. 밑에서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더 열심히 풀떼기들 헤치라는 말이지?”
“영리해.”
헤헤 웃어 보인 베릭은 촤악, 시원하게 나무줄기를 베어내며 길을 텄다. 그러곤 대뜸 물었다.
“그런데 마법사들이 살던 곳은 왜?”
여기서 루스웨나 선발대를 기다리는 것? 좋다. 이해된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이라가 살았다던 마을을 찾는지는 모르겠다.
베릭 뒤를 천천히 따르며 흔적이 없는지를 살피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마법사가 루스웨나로 돌아갔다면, 그들은 현재 히엘로의 상황을 온전하게 파악했을 터다.”
“그렇겠지? 쫑알쫑알 보고 다 올렸을 거니까? 근데 마법사가 금기의 마법을 썼을 거라 했잖아. 뒈지지 않았을까?”
“죽음 그 자체가 보고일 수도 있지. 히엘로에서의 전투가 쉽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니, 이로써 변경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는 완전히 궤멸당했지만, 어쨌거나 루스웨나에서는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렇다면 저들에게 남은 수는 하나뿐이다. 중앙에서 지원군이 도달하기 전에, 마법사의 뒤를 이어 총력전을 펼치는 것.
특히 히엘로와 메렐로프는 중앙으로 나아가기 전 꼭 지나쳐야 하는 요충지. 두 영지를 점령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릴 것이었다.
“그러니까 히엘로가 잘 싸웠든 못 싸웠든, 마법사가 그렇게 돌아간 시점에서 루스웨나는 서둘러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말?”
“그래. 루스웨나는 사력을 다하여 몰려올 것이다. 이만한 기회가 없거든. 나와 폐하가 칼라마트에 있다고 믿으니까. 그리고 그들에게는 마법사와 흑갑옷, 드래곤이 있어.”
그러므로 마법사의 근거지를 찾는 것이다. 자이라와 그 가족들이 바리엘로 망명하기 전 짐을 챙기긴 했겠다만, 그들의 마을은 루스웨나의 역사와 함께한 곳. 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루스웨나의 새로운 마법사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면 더더욱 알아둘 필요가 있지.”
“그렇군. 뭔지 잘 모르겠군.”
“…모르면 외우는 습관을 들이도록.”
“그래서 열심히! 줄기 뜯고 있잖아!”
마법사가 몇 명이나 될까. 드래곤과 흑갑옷의 수는 대충 파악했지만, 변수는 마법사였다. 금기의 마법을 쓸 만큼 루스웨나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일까? 아니면 자이라의 할머니처럼 다른 이유?
마법사 열댓이 와도 이안은 자신 있었으나, 금기의 마법은 경우가 달랐다. 그것이 개입하면 일이 흐트러진다.
‘이제는 절대, 패착 따위 없다.’
바리엘의 풀 한 포기조차 적들의 손에 으스러지는 일 없도록 할 것이다. 자신과 마주했던 모든 이들의 웃음을 지켜내리라.
“어?”
드디어 길이라고 부를 만한 게 나타났다. 갈림길이다. 이안은 루스웨나의 수도 방향인 남쪽을 택하였고, 이는 옳은 결정이었다. 얼마 안 가 아기자기한 오두막 마을을 발견한 것이다.
이끼와 넝쿨로 지붕을 덮고, 참나무로 벽을 세운 마을이었는데, 곳곳에서 마법진 그리는 것을 연습한 듯한 흔적들이 발견됐다.
“오, 생각보다 작네.”
“주위를 둘러보자. 베릭. 저쪽으로.”
“내가 본다고 뭐 알겠어? 먹을 거나 있는지 볼게.”
거주지로 보이는 곳은 베릭이 맡고, 공공시설로 썼던 곳은 이안이 확인했다. 망명 당시 얼마나 급했던지, 온갖 종이와 물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반쯤 삐져나온 서랍 틈으로 연구용으로 썼던 마력석과 온갖 물약이 보였다. 살펴보니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끼이익.
벽면이 살짝 떠 있는 듯해 잡아당겼더니, 문처럼 열리며 숨겨진 지하실이 드러났다. 오래된 책들이 보관된 곳인지 썩은 종이 냄새와 흙냄새가 한데 섞여 한 번에 훅 올라왔다.
이안은 천천히 발을 내디뎠고, 그중 유독 반질거리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신을 따르는 자에게 이르는 조언>
‘카르보 신전에서 발행한 책이다.’
진이 태어난 곳이자, 로버사이드로부터 시작된 바리엘의 신성한 신전.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책의 상태로 보아 적어도 100년 전 교류의 산물일 터. 이안은 먼지를 털어내고서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사락.
신관들의 마음가짐과 규율 등을 정리해 놓은 일종의 지침서였다. 아무래도 ‘신을 따른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책을 연구했던 것 같다.
이안은 대충 훑어보다, 누군가 밑줄 쳐 놓은 부분을 발견하고는 이에 집중했다.
-…신께서 보시기에 인간의 몸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결실은 사랑, 그리고 사랑을 구체화하는 것은 오로지 희생이니. 희생이 따르는 모든 행동에는 신의 허락이 있는 셈이다. 그것이 설령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일지라도.
사락.
-…스스로 희생한다는 건 뜨거운 얼음과 같이 모순된 것이다. 그대의 머릿속에 두 단어의 조합이 이루어진다면 심호흡 후 내면과 마주하라. 그것이 정녕 희생인지, 아니면 욕심인지.
이게 무슨 뜻일까? 이안은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흐릿한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뒷장을 더 살펴보았으나 특별히 기록된 것은 없다.
이안은 문제의 부분을 찢어 품에 접어 넣었고, 지하실 안쪽까지 샅샅이 살폈다. 대부분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이라와 그 가족이 망명할 때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듯했다.
“이안아아!”
그때, 밖에서 베릭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가보니 무언가를 감지한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연신 귀 끝이 쫑긋거렸다.
“무슨 일이지?”
“…뭔가 온다. 소리가 들려.”
그러고는 계속해서 쫑긋쫑긋.
이안은 기척을 숨긴 채 자세를 낮췄다. 오래전 버려진 마을을 찾을 이가 자신들 말고 또 누가 있겠나? 예감이 좋지 못했다.
이내 소음의 근원이 또렷해졌다.
“……!”
베릭이 들은 것은 대지의 진동이 아닌, 창공의 흐름. 둘은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연신 왔다 갔다 하는 무언가를 느꼈고, 곧장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날개, 푸른빛 비늘, 엄청난 속도…….
“드래곤.”
쉬이이익!
캬아악!
비늘이 보호색을 띠고 있는지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동력이 상당한 것만큼은 똑똑히 느껴졌다. 정찰 목적으로 먼저 보냈음이 분명했다.
드래곤은 마법사의 숲 인근을 몇 번이나 선회한 다음, 왔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돌아가려는 게다.
“이안아, 어떡할까? 잡을-”
베릭이 이안을 바라보며 묻다가 일순 멈칫했다.
“…이안아?”
이안의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금안을 빛내며.
이안은 드래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홀린 것처럼 몇 발자국 천천히 걷더니, 이내 마력을 폭발적으로 터트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이잉, 지잉!
퍼엉!
“이안아!”
순식간이었다. 따라잡으려고 했으나, 감히 엄두도 못 내겠다. 베릭은 망설임 없이 드래곤에게 날아드는 이안을 입만 벌린 채 구경했다. 홀리, 시발!
촤아아악!
이안은 드래곤의 뒤쪽으로 날아들며 두 손으로 마력구를 있는 힘껏 모았다. 기척을 알아챈 놈이 경로를 틀었지만, 이안은 아랑곳없이 더욱 가속하여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이내-
콰앙! 콰아앙!
키에에엑!
청명한 하늘에 뜨거운 불꽃이 여러 번 터졌다.
드래곤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이며 이안에게 덤벼들었고, 이안은 이를 꽉 깨문 채 놈의 주둥이 쪽으로 주먹을 뻗었다. 놈의 아가리가 이안을 덮치려는 순간-
‘이드갈.’
날카로운 이드갈 수백 개가 뻗어 나와 드래곤의 머리를 꿰었다. 워낙 단단한 비늘의 전신과는 달리 주둥이 안쪽은 여린 살뿐이라, 이는 드래곤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이안은 멈추지 않고 이드갈을 생성해냈고, 무한에 가까운 이드갈에 찔린 드래곤은 결국 숲으로 추락했다.
쿠우웅!
이드갈 덩어리로 인해 무거워진 몸 탓에, 숲 전체에 진동이 울리는 것 같다. 베릭은 드래곤이 떨어진 쪽으로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어우, 떨어지기도 전에 죽었네. 이안아, 괜찮아?”
이안은 드래곤의 피로 얼룩진 소매만 툭툭 털 뿐, 무탈해 보였다.
“괜찮다. 아직 어린 녀석 같은데.”
“어. 뀨에 비하면 좀 그렇긴 하네.”
확실히 정찰용이다. 게다가 한 마리. 혹여 여러 마리였다면 이안이도 좀 귀찮아졌을 텐데. 베릭은 축 늘어진 드래곤을 뒤로하고 이안을 올려다봤다.
“근데 이거 정찰용이면, 이 자식 죽었으니까 저쪽에서 눈치챘겠다. 마법사의 숲에 뭔가 문제 있다고.”
“그렇겠지.”
이안은 그리 중얼거리며 소매를 반듯하게 접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 한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경건한 의식을 준비하는 사제 같다.
영문 모르는 베릭은 눈만 깜빡이더니, 이내 제일 높은 참나무 위로 올라가 이안이 바라보는 쪽을 쳐다봤다. 베릭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 멀리, 무언가 보인다.
“저게, 저게 뭐시냐.”
“드래곤이다.”
“어어. 나는 거 보니 그건 맞네.”
“그리고 흑갑옷도.”
“엥? 그래? 아, 개새끼들, 반갑구먼.”
날아오는 드래곤 셋. 그 등 위로는 흑갑옷을 입은 검사들이 짐승 부리듯 하나씩 올라타 있었다.
이안이 가볍게 손을 털며 주위를 가늠했다. 자신의 뒤로는 온통 사막이다. 그리고 아래는 마법사의 숲. 앞과 옆으로는 한여름의 갈대가 무성했다.
‘공중전…. 드래곤은 셋. 흑갑옷도 셋.’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만, 베릭과 함께하면 좀 더 수월할 것 같았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밑으로 내려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는 빽빽하게 들어찬 참나무 사이에 서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안아, 뭐 해?”
“쉿.”
이안이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세우자, 베릭이 뒤따라 입을 잠갔다. 이안이 말인데 까라면 까야지, 뭐!
고요한 숲, 멀리서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이안은 침착하게 기다렸고, 베릭 역시 그가 뭘 하려는지 알아챘다.
“이안아, 온다.”
“그래.”
드래곤이 그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순간. 이안이 이드갈을 빠르게 생성해냈다.
대지에서 뻗어나는 거대한 그물. 황금빛의 가느다란 이드갈 줄기들이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쳐 창공으로 날아들었고, 이내 촘촘히 엮였다.
촤아악!
“……!”
비행하던 드래곤과 흑갑옷 검사들이 놀라서 멈칫거렸지만, 이미 늦었다. 아래로 떨어지는 이드갈 그물을 피해 고도를 낮추는 수밖에.
정확히 말하자면, 그물에 걸려 떨어졌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옆으로는 촘촘한 나무, 위로는 알 수 없는 황금빛 그물 탓에 비행에 제약이 상당해졌다.
“이, 이게 뭐지?”
“이봐, 괜찮아? 이드갈이다!”
“이드갈? 그게 왜 갑자기…….”
그들이 검을 휘둘러 이드갈 그물을 깨부수려 하자, 낯선 인기척이 들려왔다.
사사삭!
날랜 짐승이 수풀 사이를 가로지르는 소리. 흑갑옷 검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주위를 둘러봤고, 이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뒤에!”
‘뒤에?’
지이잉! 지잉!
수풀에 숨어 있던 이안과 베릭이 날아들며 마력을 터트렸다. 베릭의 손아귀에서는 붉고 뜨거운 마력검이, 이안의 손아귀에서는 찬란한 이드갈 검이 깃들었다.
“베릭!”
“알아아!”
흑갑옷의 약점은 머리. 이안과 베릭이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최대한 가까이 붙어 검을 휘둘렀다.
흑갑옷 검사들도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고, 위협을 느낀 드래곤은 몸부림치며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콰아앙! 쾅! 쾅!
거대한 참나무가 꺾일 정도로 거대한 광풍이 들이닥쳤다.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회색의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한편, 멀리 떨어진 곳. 망원경으로 이 모습을 확인한 루스웨나의 국방부 장관 마르틴은 미간을 찌푸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