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2
제652화. 만도(晩到)
비토르를 가까이서 본 이안은 그의 외모를 보고서 생각했다.
‘외지인인가?’
바리엘 주변국은 물론, 북쪽 지대에 사는 북방인들의 외형과도 상당히 동떨어진 이목구비였다. 물론 피부와 머리칼이 흘러내려 낯설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가이아인(Gaia人)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
그렇다면 즉, 루스웨나에서 고용한 용병이다. 이안은 어째서 이자가 금기의 마법을 사용했던 것인지 조금 이해했다.
‘정확히 몰랐군. 금기의 마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이아의 마법사들은 어릴 적 마력운용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마법사끼리 한데 뭉쳐 유대를 쌓게 된다.
예를 들어 바리엘은 중앙 황궁의 마법부에서.
루스웨나는 여기 이곳, 마법사의 숲에서.
버고스와 클리포포드는 마법사 발현 사례가 매우 적었기에 따로 교류의 장은 없었지만, 있었다면 분명히 왕궁을 중심으로 모였을 터.
‘하지만 유대 없이 세월 대부분을 홀로 떠돈 마법사라면, 지식과 지혜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지.’
고대부터 켜켜이 쌓아왔던 유산은 존재만으로도 마법사의 발전에 도움 되었다.
수식을 재배열하여 새로운 마법진을 그리는 방법, 하급 마력석과 중급 마력석의 결정적인 차이, 마법사가 가질 신념과 금기 사항. 특히, 금기의 마법이 가져오는 파멸 등등.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기에 아마 저자에게 ‘금기의 마법’이란, 일종의 마지막 비장의 수였을 수도 있다.
‘수세에 몰려 죽음을 각오했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할 힘.’
이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비토르를 향해 마력을 터트렸다.
콰아앙! 쾅!
“금기의 마법에게 자아가 먹혔나? 어찌 인간의 형태를 하고서 말을 하지 못해.”
“크으윽…….”
정면으로 공격을 받은 비토르가 뒤로 나뒹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하찮았던지, 뒤에서 호위를 해주려던 베릭이 검을 빼 들다가 멈칫거릴 정도다.
“이안아. 저 새끼, 마법사 맞아?”
“맞아. 여섯 번째 감각이 일러주고 있어. 그리고 저자가 히엘로에 왔었다는 것 또한 확신한다.”
“아니, 근데 뭐 저렇게 허접데기여. 저런 놈한테 네르사른이랑 카칸이 죽었다고? 말도 안 되지. 시발.”
비토르의 입가에서 검붉은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침인지, 피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삶을 갉아먹는 죽음인지 모르겠다. 이안은 이드갈 검을 꺼내 들어 그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금기의 마법을 사용하고도 이리 살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대에게 숨 고를 시간을 주고자 한 것이 아니니, 대답이 없다면 영원히 지하에 묻어주마.”
스릉.
이안은 비토르의 목에 검을 겨누며, 알 수 없는 기운으로 혼재된 상대의 동공을 가만 들여다봤다. 놀랍게도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자아가 사라졌다.’
이자가 루스웨나군과 함께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드래곤이 추락한 직후에 나타났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자아가 없는 자를 보냄으로 인하여, 여기 상황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이안은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고개를 살짝 틀었다.
쉬이이익!
패앵!
아기아르 전투에서 처음 보았던 그것이다. 보이지 않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날카롭고 가느다란 공격. 인형술사다.
이안은 그걸 깨닫자마자 이드갈 검으로 상대 마법사의 눈을 그어버렸다.
촤아아악!
“크아아악!”
저것의 몸을 통하여 인형술사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게다. 토올룬, 정말 예상한 것보다 빨리 움직였구나. 여기까지 인형술사의 손이 뻗치다니.
비토르는 괴로워하며 나뒹굴었지만, 이안은 발로 그의 머리를 고정한 다음 들으라는 듯 일렀다.
“듣고 있나? 토올룬의 인형술사.”
멈칫. 고통에 몸부림치던 비토르가 몸을 연신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뭉개진 발음과 간드러진 말투로 대답을 뱉어냈다. 저음의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호호, 예, 잘 들리네요. 반갑습니다. 마법부 장관님. 다르시 부인입니다앗.”
“우엑. 말투 뭐여? 시발!”
옆에서 듣던 베릭이 팔뚝을 벅벅 긁어대며 뒷걸음질 쳤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는지, 목 부근까지 닭살이다.
“히엘로를 공격한 것이 이자의 의지인가, 아니면 그대의 의지인가.”
“그게 중요합니까? 선택지는 없는데요.”
그쪽이 죽든 이쪽이 죽든, 이렇게 마주한 이상 의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 중요하지는 않지. 이미 그들은 목숨을 잃었으니까. 하나 맹세하지. 나는 마법부 장관으로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히엘로령의 주인으로서 온 것이다. 나는 모든 걸 잃었다. 루스웨나가 이에 응하려면, 그들 역시 모든 걸 잃어야 할 것이다.”
비토르의 고개가 기이하게 까딱거렸다. 수긍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숨넘어갈 것처럼 몇 번 꺽꺽거리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그런데 이안 히엘로 장관.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것 아닙니까? 비토르는 꽤 위험한 마법사인데요.”
콰아앙! 쾅!
경고와 함께 바로 터지는 폭발. 이안은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생성했고, 베릭도 검을 세워 화기(火氣)를 막아냈다.
비토르는 비척비척 겨우 일어나서는, 더듬거리며 중얼댔다.
…「예기(穢氣)」.
솨아아악!
그의 몸체를 중심으로 끈덕진 어둠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액체와 맞닿은 풀은 바로 시들어 사그라들었고, 나무는 썩어갔으며, 사방은 악취로 진동했다.
냄새에 민감한 베릭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이안 또한 미간을 찌푸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스스슷!
어둠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둥글게 원을 그리더니, 크게 뻗어나가 이안과 베릭을 에워쌌다. 마치 이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안이 발돋움하며 날아오르려 하자, 그것들은 벽을 세워 이안과 높이를 일정하게 맞췄다.
“우욱, 썅! 냄새 개 오지네, 진짜! 이안아, 움직이지 말아봐. 늘어나니까 나, 우에에엑.”
베릭은 말을 잇지 못하고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이안은 혀를 쯧 찬 다음, 손끝으로 마법을 부렸다.
「돌풍(突風)」.
바람의 흐름이 확연해졌다. 베릭에게서 비토르에게로. 이를 따라 냄새가 흩어지자, 베릭은 살 것 같다는 듯 철퍼덕 주저앉았다. 머리가 띵해서 전투 의욕 상실이다.
촤아앗!
그 틈에 이안은 보호막으로 공간을 확보해 비토르에게 날아들었다. 별것 아닌 자다. 금기의 마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의지를 잃어버린 터라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무용지물에 가까운 신체 능력. 서둘러 베어버리고 마법사의 숲을 나가 저자들과 대적하리라.
이안이 그리 여기며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
무언가 달라졌다. 줄 달린 인형처럼 움직이던 몸이 자세를 바로잡은 것이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손끝으로 마법진을 그려냈다.
「만도(晩到)」.
“……!”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고, 그 가운데 기다란 시곗바늘이 그려졌다. 이안은 그것이 어떤 공격인지 알아채고서 피하려 했지만, 너무 가까웠다.
우우웅.
마법진에서 쏟아지는 빛을 그대로 맞고 말았다. 딸깍.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움직이자, 이안의 몸 움직임이 느려졌다.
“이안아!”
딸깍. 오른쪽으로 한 번 더. 그러자 한 걸음 떼는 데도 수 초가 걸릴 정도가 되었다. 이는 이안뿐만 아니라, 빛이 닿는 공간 전체를 포함했다. 살짝 떠오른 머리칼과 풀들의 움직임, 소매의 펄럭거림도 확연히 늦어졌으니.
“야이, 씨!”
베릭이 달려들려고 하자, 비토르는 검은 피를 거하게 토하며 마법진의 빛을 널리 퍼지게 했다. 다가가면 베릭 또한 저 술수에 걸리게 될 것이다.
여기저기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궁리했지만, 무리였다. 베릭은 그 자리에서 멈춘 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고는 대답 없이 조금씩 움직이기만 하는 이안을 무기력하게 쳐다만 봤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런 마법은 처음 보았으니까.
“젠장!”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이안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였다. 베릭은 마법진 형상을 한 시계를 향하여 검을 내던졌지만, 흠집 하나 내지 못한 채 떨어졌다.
“이안아!”
달깍. 달깍. 달깍. 시계는 조금씩, 계속해서 움직였다. 비토르는 판단했다. 바늘이 오른쪽으로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마법이 풀릴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비토르는 비틀거리며 바닥을 더듬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안에게 눈이 베인 탓이지만, 그는 알지 못했으니까.
그때-
“아으…….”
투욱.
손끝에 걸리는 기다란 무언가.
촉감으로 살피니 이드갈 파편이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이안에게 다가갔고,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이안과 마주했다. 이안은 물속에 갇힌 인형처럼 어떠한 표정도 없었다.
“여기까지다. 너를 안 죽이면, 내가 죽어.”
비토르는 이안의 목 부근을 더듬거리며 급소를 찾았다. 쿵쿵. 느리게 뛰는 맥박이 짚인다. 좋아, 여기구나.
“…….”
“너무 유감 갖지 말라…고. 크흑.”
달깍. 시곗바늘이 한 바퀴를 돌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시침이 움직인 만큼, 상대에게 누적되는 시간의 무게가 커지는 만큼, 이는 곧 비토르의 부담이었으니. 어서, 이 검으로, 목을…….
“안 된다고, 개새!”
그걸 본 베릭은 어쩔 수 없이 술식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비토르는 중력에 짓눌리듯 피를 토해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법진의 효과를 받는 자가 두 명으로 늘어난 탓이다.
베릭이 이안 쪽으로 손을 뻗은 채 멈추었고, 비토르는 방향을 잃은 채 바닥을 더듬거렸다.
달깍, 달깍…….
온통 적막으로 휩싸인 사위. 시침 소리만이 계속해서 울렸다. 이중 누가 먼저 검을 쥐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
“다르시 부인?”
“조용히 좀!”
눈을 감은 채 끙끙거리던 다르시 부인이 버럭 소리쳤다. 마르틴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녀가 지금 마법사를 이용해 이안 히엘로를 상대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기에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좀 어렵네, 이게. 일반인이 아니라 마법사라 그런지. 아으흐.”
그녀는 마법사에게 ‘상대를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비토르가 선택한 것은「예기(穢氣)」라는 마법. 고약한 냄새와 독성으로 상대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마법인 것 같았는데, 펄펄 날아다니는 두 사람을 대상으로는 어림도 없는 공격이다.
“끄응.”
금기의 마법까지 썼으니, 필시 상대를 단번에 제압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인데…….
“하여간, 잔인한 사람 같으니라고! 어떻게 사람 눈을 베어요? 안 그래요? 이래서 제국 놈들은, 쯧!”
이안이 비토르의 눈을 베어버린 바람에 마법사의 눈을 통해서는 상황을 볼 수 없게 됐다. 인형술사의 감각으로 둘러볼 뿐. 하나 바늘구멍처럼 워낙 좁은 시야인지라, 효율이 낮다는 게 문제였다.
다르시 부인은 초조하다는 듯 혀끝을 잘근거리더니, 비토르 인형을 손수 집어 들었다.
“안 되겠네.”
그러고는 토옥. 그와 연결된 줄 하나를 끊었다. 자아를 억압하고 있던 실 중 하나다. 이어서 그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비토르에게 속삭였다.
“비토르 마법사. 잘 들어요. 지금 당신은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를 죽이세요. 그러면 제가 연결된 인형을 없애줄게요. 아, 그리고 희소식도 하나 있어요.”
이게 뭐 하는 행동인가? 마르틴이 미간을 찌푸리자, 다르시 부인은 가만있으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금기의 마법을 푸는 법도 찾았답니다! 호홋. 그러니까 어서 이안 히엘로와 그 부하를 죽여요. 지금 그대의 앞에 있습니다.”
쪽! 그리 말하고서 다르시 부인은 인형에 대고 키스했다. 이 정도면 자아를 찾은 비토르가 적당한 마법으로 상대를 처리하겠지. 뭐, 눈이 보이지 않으니 한계는 있겠다만…….
“다르시 부인.”
“네?”
“연결된 걸 풀어준다니요? 그리고 금기의 마법은…….”
마르틴이 의아하다는 듯 묻자, 다르시 부인은 재미있다며 깔깔 웃었다.
“어머, 순진하셔라. 당연히 거짓말이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안 히엘로만 죽이고서 다시 자아를 봉인하면 되니까! 호호홋.”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