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3
제653화. 불가능을 가능으로
“…해 떴다.”
“그렇네. 날 지났네.”
당직을 선 두 마법사가 멍하니 아침 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안과 베릭이 그림으로 들어가고 나서 처음 뜬 해다. 다음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던 이안의 당부가 머릿속에 자근자근 맴돌았다. 둘은 작게 한숨 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숙직실로 올라갔다.
끼이익.
“어이. 다들 일어나.”
“…으응. 이안 님은?”
“안 돌아오셨다.”
대부분 잔업하고서 새벽에 잠든지라,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하나같이 퉁퉁 부은 얼굴에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
하지만 이안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전언에 모두의 눈이 띠용 하고 커졌다. 자고 일어나면 분명 돌아와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하아암. 안 오셨다고? 베릭도?”
“이안 님도 안 오셨는데 걔가 어떻게 와.”
“무슨 일 생기신 건가?”
바리엘 동부 정세가 심상치 않긴 하다만, 어디까지나 마법부 장관이 지키고 설 자리는 황제의 옆이었다.
게다가 토올룬과의 전쟁을 앞둔 시기. 어느 정도 문제가 될 사안이라면 일단 뒤로하고 복귀하여, 칼라마트 전력에 누수 없도록 하는 게 이안의 판단이었을 터다.
“그런데도 안 돌아오셨단 말이지.”
헤일이 거뭇하게 난 수염을 벅벅 문질러댔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로브를 걸쳤다.
“폐하를 뵙고 오겠다. 상의하여 오전 중으로 움직일 마법사를 정할 것이니, 모두 준비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히엘로로 떠나는 것이지요?”
“거리가 상당하니 마법진을 미리 그려놓겠습니다. 수식 계산하다 보면 오후까지 시간 금방 갑니다.”
“예, 저도 도울게요.”
마법사들은 하나둘씩 기지개를 켜며 침구를 정리했다.
이에 무심코 돌아서던 헤일은, 우연히 벽 거울 속 제 모습과 마주했다. 이대로 폐하를 뵙는 건 좀 무례한가? 헤일은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내 별문제 없겠다는 듯 문을 나섰다.
칼라마트의 아침은 전시임이 체감되지 않을 만큼 적요했다. 바깥의 공기는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왕궁 안은 대리석으로 인해 한기로 가득했다.
타닥타닥!
헤일이 황제가 있는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맟은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급한 걸음으로 뛰어왔다. 다들 사색이 되어서는, 헤일을 발견하자마자 허둥지둥 손짓했다.
“마법부의 헤일 대장님 맞으시지요?!”
“그렇소만.”
“이쪽으로! 어서 와주십시오! 급한 일입니다!”
난데 없는 재촉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헤일은 반사적으로 걸음을 빨리하여 그들과 함께 황제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건만, 진은 빳빳한 정복 차림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다.
똑똑.
“폐하. 큰일 났습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이안 경과 관련된 일인가?”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그, 마, 말랐던 버고스 강물이 다시 흐르고 있습니다.”
예상외의 보고에 진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헤일도 마찬가지다. 위쪽에서 강물을 틀어막아 가뭄이 우려되었건만, 그것이 해결되었다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바로 덧붙여지는 말에 진 역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 한데, 물색이 좀 검고 탁한 것이 괴이합니다. 아직 음용한 사람은 없지만, 당나귀 하나가 입을 데었다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합니다. 아무래도 토올룬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것 같은데, 저, 저희로서는 알 방도가 없는지라… 송구합니다.”
“무어라?”
진의 되물음에 노기가 서렸다. 단순히 농작 방해를 위해 강뚝을 틀어막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더 크고 확실한 피해를 주고자 준비하는 과정이었던 게다.
“미친 자들이 아닌가? 어찌 가이아의 땅을 죽여.”
사람은 죽어도 땅은 죽어선 안 된다.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지만, 땅은 미래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참으로 예상 밖의 행동인지라, 진은 말문이 막혀 잠시 멈칫거렸다.
“강물이 어느 정도 흐르고 있지?”
“지금은 원래 수위의 10분의 1 정도지만, 시간이 갈수록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토올룬까지 올라가서 문제의 근원을 살피고 해결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진이 난감하다는 듯 이마를 감쌌다. 당장은 바리엘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이는 정말 큰 문제다.
러더포드가 주된 이유긴 하나, 어쨌거나 전쟁을 위해 바리엘에서 감수한 것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버고스의 땅까지 죽으면, 바리엘이 입게 될 손실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클리포포드. 그쪽으로도 강이 흐르니 필연적으로 농작에 피해가 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이아 대륙 전체에서, 루스웨나 식량 의존도가 높아진다.’
상당히 난감했다. 그저 땅이 말라버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진이 고심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자, 헤일이 나지막이 덧붙였다.
“토올룬의 정령술사 한 명이 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분명 바리엘의 북진을 경계하는 자들과 마주할 것입니다.”
마치 올라오기를 유도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헤일을 올려다봤다.
“헤일 대장.”
“예, 폐하.”
“혹, 이안 경 없이도 포탈을 열고 유지할 수 있나? 얼마 동안이나 가능한가?”
“…포탈 말씀이십니까?”
갑작스러운 물음이었지만, 헤일 대장은 곧이어 진의 의도를 파악했다.
“강폭만큼이라면, 일곱 명 정도가 교대로 돌아 닷새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아코렐라 대장의 물약이 필수적이겠지요. 최대한은 그렇습니다.”
“폐, 폐하 지금 무슨 말씀을……?”
한 신하가 영문 모를 얼굴로 진과 헤일을 번갈아 휙휙 둘러보며 물었다. 포탈을 어디다 연다고? 강에?
“포탈을 토올룬 쪽으로 열어두어, 흘러내리는 오수를 그대로 돌려주면 어떻겠는가? 가능한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만, 위험이 많습니다. 우선 하늘이 아닌 대지면에 맞춰 포탈을 여는 것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안 님이 아니라면, 글쎄요.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포탈이 열리면 이쪽의 강물을 토올룬으로 넘길 수 있지만-”
헤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쪽에서도 칼라마트로 넘어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왕궁 앞, 폐하에게 바로 떨어지는 길을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일반 병사는 당연히 물살을 거슬러 올라오지 못하겠지만, 물의 정령술사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들은 분명히 포탈로 이어진 길을 이용할 것이고, 그로 인해 어떠한 위험이 도래할지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하나 지금 확실한 건, 강물의 흐름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마법사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
문득, 이걸 떠올린 진이 놀라서 헤일을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이상하다.”
“무엇이…….”
“이안 경이 없는 지금, 강물을 푼 것이 말이다.”
만약에 토올룬이 진정으로 버고스와 클리포포드의 땅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라면, 지금은 적기가 아니었다. 칼라마트 왕궁에 바리엘 마법사들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지 않나.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 게 최선일지 고민하는 것이지, 막아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예.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토올룬이 진정으로 의지가 있었다면, 바리엘군 본대가 칼라마트를 떠난 직후 강물을 풀었을 것입니다. 이동 중에는 대응이 어렵고, 운이 좋다면 바리엘군은 강물에 이상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아챌 터이니 말입니다.”
“한데 이자들은 우리가 버고스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문제를 일으켰어. 꼭 마법사들이 ‘대응하길’ 원하는 것처럼.”
“…이안 님이 어젯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따악!
진은 이제 좀 알겠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이안 경 때문에 이것들이 이 사달을 벌인 것이다.”
다소 과격한 말투에, 신하들이 고개를 슬쩍 숙이고서 시선을 피했다. 진의 기분이 불쾌해 보이니,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자연스레 나오는 습관이다.
“이안 경은 메렐로프와 히엘로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그리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지. 이는 염려했던 일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했다는 뜻이고, 이걸 일으킬 만한 주체는 하완과 루스웨나뿐.”
“하완에서는 샤티마의 죽음으로 인형술사의 존재가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인형술사들은 오감을 공유한다. 맞는가?”
진의 물음에 신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형의 인형, 그리고 또 그 인형의 인형…. 인형술사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토올룬의 왕은 오감으로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즉…….
“이안 경은 루스웨나 혹은 하완과 대적하고 있겠군. 그들에게는 인형술사가 있고.”
“폐, 폐하의 말씀은… 하면, 그, 마법사들의 지원을 잡아두고자 토올룬에서 시기적절하게 일을 벌였다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리고 그 말은 반대로 이안 경에게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그, 어이고, 그럼 어찌하면 될지…….”
토올룬의 의도는 파악했다만, 그건 별개의 일이었다. 강물은 계속 끝도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진이 선택할 시간이다. 무엇이 정답일지는 오직 신께서만 알고 계시리라.
“마법부는 포탈을 준비하라.”
이안을 선택한 것인가?
신하들이 고개를 조아리려 하자, 명령이 덧붙여졌다.
“강폭에 맞추어서.”
“하면-”
“목적지는 히엘로, 루스웨나와 인접한 대사막으로 설정한다.”
그곳이라면 오수가 흘러가도 당장은 상관없을 것이다. 이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죽음의 땅이었으니까.
게다가 적들의 역습 가능성도 낮았다. 루스웨나 지형은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이며, 바리엘 입장으로는 낯선 정령술사보다 마법사가 대응하기 편한 상대들이다. 전력의 차이가 문제겠지만… 이안과 합류한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알겠습니다.”
헤일은 진의 명령을 받들겠노라 고개 숙였다. 거리가 먼 만큼 유지 시간은 짧아지겠지만, 문제없었다.
그는 예를 갖춰 인사한 다음 서둘러서 밖으로 나왔다. 왕궁 광장 앞, 마법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닥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헤일 대장! 빨리 오셨네요. 황제 폐하께서 무어라 하십니까?”
“아니, 잠깐만. 대장! 여기 먼저 봐주시면 안 됩니까? 이 새끼가 자꾸 이상한 술식 집어넣는데요.”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이거 맞거든?”
“내기할래? 진 사람한테 일주일 치 일 몰아주기.”
“들어와. 덕분에 일주일 유급휴가 받겠구먼.”
“아니이! 헷갈리는 거 있으면 비워두고 그리라고, 머저리들아!”
“넌 빠지고 우측이나 잘 그려!”
히엘로. 바리엘의 동쪽 끝.
거리가 워낙 멀어서 이안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던 곳이다. 그림을 타고 온 전언이 아니었다면, 아마 가지 않았을 터.
“…다들 동작 그만.”
“예?”
헤일이 궐련을 꺼내 물며 명했다.
동작 그만? 뭔가 불안한데. 마법사들이 멈칫거리며 헤일을 올려다봤다.
“왜, 왜요?”
“그거 지우고, 다시 그린다. 저기 강바닥에.”
“예에에에?!”
“그리고 토미, 나키나. 두 사람은 그림으로 먼저 히엘로 쪽 가서 이안 님을 찾아. 포탈 열 지점은 지도에 좌표로 찍어줄 터이니, 확인하고.”
“잠깐만요! 이걸 어떻게 강바닥에 그려요? 맨질맨질한 대리석 바닥에도 그리기 힘들구만!”
토미와 나키나는 ‘앗싸’ 하며 마법진 그리는 데서 슬쩍 빠졌다. 헤일은 강쪽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강에 물이 흐르고 있어.”
“예에에?!”
“그걸 포탈로 흘려보낼 거다. 설계해야지.”
“아니, 미친! 대체 어떻게 물에다 마법진을…….”
“누, 누, 누가요?”
누구긴 누구겠어? 헤일이 난간을 밟으며 날아올랐다. 그의 목적지는 안 봐도 빤했다. 칼라마트를 가로지르는 버고스의 젖.
“괜찮은 바닥 봐두고 있으마. 마법진 그대로 기록해서 옮겨와.”
“못 해요! 절대 못 해!”
“이안 님 앞에서도 그 얘기 해보든가.”
이안을 언급하자, 마법사들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어쩌겠나? 방도가 없는데. 하라면 해야 하고, 해낼 수밖에 없다.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하면.”
“아니, 근데 대체 어떻게 해? 진심으로.”
“몰라.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마법사들은 꿍얼거리면서도 헤일을 따라 날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