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4
제654화. 지원군
마법진 속 시곗바늘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비토르의 신음이 깊어졌다.
몸이 금기의 마법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음이 온 장기의 감각으로 느껴졌다. 마법이 풀리기 전, 서둘러 이안 히엘로의 숨을 끊어내는 것만이 살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비토르는 있는 힘껏 주위를 더듬거리며 무기를 찾았다.
달깍, 달깍-
적막한 숲속. 산새의 지저귐도, 바람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 완전한 고요가 이어졌다.
이안과 베릭은 시곗바늘이 움직일수록 움직임이 둔해졌고, 이제는 완전히 멈춰버린 상태와 같았다. 필시 이곳엔 이들뿐이리라. 비토르는 그리 여겼다.
하나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자가 딱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끄응. 도, 도와줘야 하나?’
이안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나부였다.
있는 듯 없는 듯 기척을 죽이며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었건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상대가 어느 정도 미친놈 같아야지, 비토르의 몰골은 섣불리 나서기 두려울 정도로 참혹했다.
‘아니, 도와달라는 말 안 했잖아. 분명히 대기하고 있으라 그랬다고. 이틀 전에.’
황궁 마법부에서 가져온 짐을 모두 쏟아낸 다음에는 칼라마트 왕궁의 물건을 옮기느라 정신이 쏙 빠졌었다.
그후 제일 마지막, 대기하라는 이안의 명령을 듣고서 지금껏 숨어 있었던 게다. 워낙 상황이 급박해져서 중간쯤엔 자신의 존재를 잊은 것 같다만.
딸깍.
마법진에서 쏟아지는 빛이 너무도 강렬한지라, 그 어느 때보다 그림자가 또렷했다. 나부는 연신 속으로 갈등하다가, 문득 떠올렸다.
‘잠깐만.’
이안 히엘로와 저 망나니 베릭이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바리엘이 열세에 몰리면 북쪽 지대 출신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까?
그렇다면 자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 나부는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댔다.
‘괘, 괜찮겠지?’
바리엘 마법사와 맺은 계약 말이다. 분명 바리엘을 위해 협조하라고 하긴 했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조금 특수한 경우이지 않나? 명령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의외로 이안 히엘로의 죽음이 바리엘을 돕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혼자 변명을 중얼거리던 나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장이 좀 뛰긴 하는데, 이게 마법 문제인지 아니면 긴장돼서 그런 건지 모르겠네. 흐음.’
그때, 비토르가 떨구었던 이드갈 조각을 찾아냈다. 그가 비틀거리며 두 손으로 무기를 잡고 일어나자, 나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선택할 시간이었다.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
“크으윽!”
이어서 들려오는 상대의 힘겨운 신음. 나부는 혀를 쯧 차며 그림자 위로 날아올랐다.
촤아악!
‘에잇, 모르겠다!’
괜히 시험했다가 심장이 터지는 것보다 낫겠지!
나부는 이안과 베릭을 방패로 삼아 모습을 드러냈고, 두 손을 착착 모으며 주술을 일으켰다.
가까이 다가온 비토르가 본능적으로 이드갈을 휘두르며 이안을 공격했다. 예리한 단면이 아주 가깝게, 이안의 동공 쪽으로 날아들었다.
피잉!
거의 닿을락 말락 할 때, 나부가 비토르의 그림자를 완전히 잡아냈다. 빛이 강하다는 건, 그림자 역시 짙고 깊다는 뜻. 어렵지 않았다.
“……!”
갑작스럽게 온몸이 굳어버리자 비토르는 당황해하며 몸을 허우적거렸다. 앞이 보이질 않으니 그림자가 묶였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 시곗바늘이 출발했던 위치로 돌아왔다.
달깍!
촤아아악!
그러자 마법진이 산산조각 파훼되어 별빛처럼 흩어졌고, 이안과 베릭의 움직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지했던 머리칼과 옷소매가 다시금 바람에 흔들렸고, 앞으로 내딛던 발걸음도 안정적으로 땅을 밟았다.
베릭은 기분이 이상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털더니, 이안의 상태를 살폈다.
“이안아, 괜찮아?”
“물론.”
“아오씨, 느낌 더럽네. 마! 나부! 이 새끼 튀어나오는 거 왜 이렇게 느려? 너 속으로 고민했지?”
“…뭐, 뭐를요?”
“우리 죽일까, 말까. 콱, 마! 대가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다 들렸어. 이안아, 여기 정리하면 저 새끼도 같이 묻어두고 가자.”
“억울합니다! 저 지금 그림자 잡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저 아니었으면 이안 님 눈 날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진작 빠릿빠릿하게 하지 그랬냐?”
이에 비토르의 귀 끝이 쫑긋거렸다.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지금 여기에 한 명이 더 있다. 그리고 ‘그림자를 잡아두었다’라니, 말투로 보아 북쪽 출신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술사다.’
비토르는 이를 빠드득거리며 눈부신 마력을 생성해냈다.
지이잉! 지잉!
그림자를 잡아두었다면, 그걸 없애면 될 일.
빛이 쨍해질 때마다 그림자는 옅어졌고, 나부의 힘 또한 희미해졌다. 비토르는 자신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는 걸 느끼며 미소를 띠었다.
“어딜.”
촤아악!
베릭이 바로 검을 빼 들어 그의 목을 베어냈지만 말이다.
비토르의 머리통이 데구루루 굴러떨어졌고, 그걸 기점으로 온몸이 힘없이 퍼졌다. 버틸 때까지 버텼다는 듯이.
“우엑.”
베릭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기분 나쁜 게, 썩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느낌이다. 그는 검 끝으로 죽어버린 비토르의 몸과 팔 따위를 쿡쿡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진짜 죽었나? 좀 허무한데?”
“머리가 떨어졌는데 그럼 삽니까? 허무하다는 말도 웃깁니다.”
“우씨. 너, 입 안 다물어?”
“저, 그럼 다시 들어갈게요. 크흠.”
베릭이 검을 든 채로 쫓아오자, 나부는 큼큼 헛기침을 해대며 그림자 속으로 도망쳤다. 베릭은 당장 나오라며 발로 쾅쾅 내려쳤으나 아무 대답도 없다.
이안은 엉망이 된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드래곤과 흑갑옷, 그리고 마법사.’
루스웨나의 본대가 인근에 있는 게 확실했다. 게다가 중간에 비토르의 의식이 돌아온 것 같던데, 이는 인형술사가 마법사를 다루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는 방증.
이안은 온기가 사라져가는 비토르의 시체를 힐끔거리다가, 베릭에게 손짓했다.
“베릭. 이만 움직이지.”
“어디로?”
“어디긴. 숲을 나간다. 루스웨나 본대가 혹여 경로를 틀 수 있으니, 이를 견제하려면 우리 또한 시야가 트여야 해.”
“오케이. 이쪽으로는 아예 땅 뺏겼다고 생각해야지. 괘씸한 새끼들. 남의 땅에서 눈물 내면 네놈들은 피눈물 낼 줄 알아라!”
베릭은 혹여 인형술사가 들을까 싶어 비토르의 귀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안은 그런 베릭의 목덜미를 잡고서 부웅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말이다.
촤아악!
“오, 보인다!”
그리고 얼마 후-
베릭은 저 멀리, 깨알처럼 바글바글 모여 있는 루스웨나 군대를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었다. 반갑기도 더럽게 반갑네.
* * *
“마르틴 장관님! 이안 히엘로와 그 부하입니다!”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편, 루스웨나 진영은 이안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혼비백산했다. 다른 자도 아니고 바리엘에서 제일 강한 마법사라고 하니, 그 두려움이 절로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마르틴은 지휘봉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침착하라! 대열을 정비하라! 드래곤과 흑갑옷은 앞으로!”
“앞으로!”
그 후, 연신 입술만 잘근거리는 다르시 부인을 돌아봤다. 이안 히엘로가 멀쩡히 숲을 나왔다는 건, 비토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나?
마르틴이 질책을 쏟아내려 하자, 그녀는 갑자기 단검을 들어 비토르의 인형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광기에 젖은 눈빛과 격한 칼부림이 흡사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퍼억! 퍽!
“쓸모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
그 기괴하리만치 급작스러운 변모에, 마르틴은 흠칫하며 뒤늦게 입을 뗐다.
“부인.”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다르시 부인.”
“그런데도 일을 그르치다니,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원! 이래서 멍청한 것들은 소용이 없다니까. 말죽이나 먹고 뒈져버려!”
순간 마르틴은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겉으로는 비토르에 대한 비난 같지만, 가만 들어보면 루스웨나 왕궁을 교묘히 돌려 욕하는 것 같지 않나?
마르틴의 낯이 딱딱하게 굳자, 다르시 부인은 턱을 세워 땀을 훔쳐내곤,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순진한 낯이다.
“하아, 정말 못 써먹겠네요. 비토르, 이 마법사는.”
“…부인.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무엇을요? 버려진 인형에게 화풀이 좀 하였거늘, 문제라도 되나요? 호호홋.”
마르틴은 당장이라도 이 역겹고 섬뜩한 여인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또 다른 인형들이 너무 귀하고 값지다. 마르틴은 인고하며 잇새로 제안했다.
“데리고 온 마법사들을 모두 푸시지요. 이안 히엘로를 막기 위해서라면 그 방법밖엔 없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 드래곤이랑 흑갑옷도 생각보다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던데, 마법사들이라도 제대로 된 애들이었으면 좋겠네요. 호홋.”
루스웨나의 전력 상태가 아주 개판이라는 걸 돌려 이르는 게다. 아무리 인형술사가 뒤에서 조종한다 하더라도, 본체의 능력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건 당연했으니.
다르시 부인은 자연스럽게 마르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마르틴 장관님. 저는 장관님만 믿고 있어요. 지원 잘 해주세요.”
마르틴은 문득 목 뒤쪽이 따끔거리는 걸 느꼈지만, 여기저기서 이안 히엘로의 비행 궤도를 읊어대는 바람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다르시 부인에게 지시했다.
“바로 올려보내십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안 히엘로를 잡아야 합니다.”
“네에. 물론이지요.”
스윽.
다르시 부인이 손짓하자, 목각 인형처럼 서 있던 마법사들이 천천히 움직여 하늘로 날아들었다. 하나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라, 기계인 듯 움직임이 일치했다.
“오, 이안아! 쟤들 온다!”
눈탱이가 다들 맛 간 것 같지? 베릭이 동의를 구하며 이안을 올려다봤는데-
“어라?”
이안이 베릭의 목덜미를 토옥, 하고 놓아버린 게다.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베릭. 그의 귓가로 이안의 담백한 말이 들려왔다.
“나는 위, 너는 아래.”
“…아니! 이안아아아-!”
나는 못 날아, 미친놈아! 그리고 너무 높아! 베릭은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고, 이내 굉음, 먼지와 함께 루스웨나 갈대밭 한복판에 처박혔다.
콰아앙!
이를 망원경으로 확인한 마르틴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뭐지? 떨어진 건가?’
스으윽. 먼지가 점점 옅어지더니, 곧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착지 자세를 취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세는 완벽한데, 뭔가 표정이 멍청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헐. 시발. 이게 되네.”
당사자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으니까.
베릭은 벌떡 일어나 몸을 탁탁 털어대더니, 이쪽을 주시 중인 망원경을 발견했다. 그러곤 싱긋 웃으며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저런, 천박한-”
마르틴이 짜증스럽게 망원경을 내리자마자, 베릭은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루스웨나군 본대 쪽이다.
“적이 온다! 상대는 마검사! 흑갑옷, 앞으로!”
“좌우 정렬! 본대 전진!”
“와아아아!”
쿵쿵쿵! 군악대가 사기를 올리기 위해 있는 힘껏 북을 쳐댔고, 루스웨나 병사들은 허허벌판인 갈대밭을 가로질러 내달렸다.
그리고 수천의 상대에 맞서 돌진하는 베릭. 이안은 창공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고, 이내 고개를 틀었다.
촤아악!
베릭에게 임무를 주었으니, 자신도 임무를 다해야 했다.
상대는 하나, 둘, 셋… 도합 다섯. 생각보다 수가 많다. 아마 전력을 분산했을 것이니, 루스웨나 왕궁에도 마법사가 남아 있을 거란 계산을 해야 했다.
지이잉! 지잉!
다섯의 마법사는 우측과 좌측 그리고 위아래를 맡으며 이안을 감쌌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태지(苔紙)」.
사방에서 가느다란 끈이 돋아나 이안의 사지를 단단히 붙잡았다.
이안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만엽과 비슷하나 이는 분명 그보다 하위의 마법이며, 재생 능력 또한 없어 그저 끊어내기만 한다면 파훼할 수 있음을.
이안이 적절한 마법으로 대응하려는 순간-
사아악!
등뒤에서 돌풍이 들이닥치더니, 이안의 사지에 걸려 있던 끈들이 모두 잘려나갔다. 이에 뒤를 돌아본 이안은 곧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했다.
토미, 그리고 나키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