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5
제655화. 남은 자들의 몫
토미와 나키나는 예상 밖의 광경에 당황했다. 그림에서 나오고 보니, 텅 빈 어떤 건물의 복도이지 않나?
호텔인 것 같은데, 인기척이라고는 정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바깥의 소음도 전무(全無)했다.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인데도 말이다.
설마 잘못 왔나? 무언가 잘못되었나?
“메렐로프 맞지? 여기 원래 이래?”
“원래 이럴 리 있나요. 다들 피난 간 것 같은데요.”
“그런 것치고는 건물 하나 부서진 게 없구만.”
“히엘로 쪽 문제가 컸다는 뜻이겠죠. 아무튼, 제대로 오긴 왔어요. 여기 메렐로프 맞아요.”
토미가 호텔 입구 옆에 붙어 있는 주소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곧장 호텔을 나선 두 사람. 바깥은 더욱 고요했다. 하늘은 화창하니 맑은데, 그 아래 도시는 여전히 잠든 듯하다.
“…일단 히엘로로 가보자.”
“네. 남쪽이니까, 저쪽이네요.”
두 사람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메렐로프가 한눈에 들어오자, 저 멀리 피어오르는 연기 따위가 보였다.
히엘로다. 얼핏 보아도 메렐로프와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모든 게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길은 히엘로가 완전한 폐허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세상에…. 이안 님의 집이…….”
어째서 이안이 돌아오지 못했던 것인지, 알 것 같다. 그는 분명히 저 처참한 짓을 저지른 자에게 책임을 물으러 간 것이다.
그때, 히엘로 쪽 움직임을 파악하던 토미가 나키나에게 손짓했다.
“선배, 저쪽!”
“사람?”
“네, 히엘로령 사람들인 것 같은데요.”
영지 끝자락에까지 와 닿은 행렬. 가는 방향을 보니 내륙으로 들어오려는 움직임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도를 낮추며 접근했고, 피난민들은 낯선 마법사의 등장에 기겁하여 도망쳤다.
“마, 마법사다! 다시 왔어!”
“으아아악! 도망쳐! 도망쳐!”
적국의 마법사가 히엘로를 저렇게 만들었구나. 토미와 나키나는 그들 앞을 가로막으며 침착하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괜찮습니다! 이안 님의 부하입니다. 황궁 소속 마법사 나키나고요. 이쪽은 토미.”
“예. 마법운용부이고 이안 님 직속입니다. 이안 님을 지원하고자 왔는데, 다들 만나셨나요?”
“이, 이안 님 부하라고요?”
낫과 주머니칼, 망치 따위를 들어 보이며 반항하려던 사람들이 멈칫거렸다. 개중, 아이들을 인솔하던 한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히엘로 저택의 집사, 해나입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다들 어찌 된 일인지요.”
“그것이…….”
해나는 지난날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루스웨나 마법사의 습격으로 히엘로가 불탄 것에 더해, 이안과 베릭 단둘이 루스웨나 국경 쪽으로 내려갔다는 것까지 말이다.
토미와 나키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아무리 이안 님이라 해도, 마법사가 포함된 루스웨나 군대를 막아내는 건 무리다.
“알겠습니다. 피난길을 돌봐줄 수 없음이 송구하군요. 저희도 바로 이안 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아마 오후 중으로 히엘로, 루스웨나와 인접한 대사막에 바리엘 마법사들의 지원이 당도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피해는 없을 것이니, 일단 몸을 피하신 뒤 연락을 기다리십시오.”
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급히 떠나려는 두 사람을 붙잡고서 부탁했다.
“그리고, 혹-”
“예, 말씀하십시오.”
“누구든 천려의 전사를 만난다면, 혹 살아 있다면, 히엘로 영지민들은 무사히 피난 떠났다고… 전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살짝 떨리는 음성이 그녀의 사정을 가늠하게 했다. 천려는 히엘로와 동맹을 넘어 가족과 같은 사이 아니던가? 아마 그녀에게도 천려와 맺은 인연이 있을 터.
나키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물론입니다. 살아 있는 자는 저희가 꼭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맹세합니다.”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혹 메렐로프 쪽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전해주십시오. 리엔 부인이 찾는 클라크라는 자, 지금 버고스의 칼라마트 왕궁에 있다고요. 아직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아마 황궁을 거쳐 돌아가게 될 듯합니다.”
“아! 정말입니까?”
해나가 탄성을 내질렀다. 리엔 부인의 그간 심정이 어떠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리움은, 세월을 덧대면 덧댈수록 울창해지는 숲과 같았으니.
해나가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무운을 빕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고맙습니다. 그대들도 신의 가호가 있기를.”
토미와 나키나는 가볍게 눈인사한 다음, 하늘로 날아올랐다. 폐허가 된 전경 속, 언덕 위의 히엘로 저택만이 온전했다.
그때, 저택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 한 마리. 햇빛에 무언가 반짝인 것으로 보아 마력석을 지닌 놈이다.
“토미!”
“예, 알겠습니다!”
나키나의 지시에 토미가 저택으로 내려가 비둘기를 찾았다. 시간상으로 보아 중앙에서는 아직 히엘로의 참사를 모를 터.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전서구의 내용을 파악하는 게 맞았다.
타앗.
비둘기는 익숙하다는 듯, 본관 창문에 앉아 창문을 쪼아댔다. 토미는 녀석을 붙잡아 발에 묶인 것을 풀어낸 다음, 간단하게 읽어 내렸다.
“아.”
필리아 님이, 네르사른 님에게 보낸 서신이었다.
-네르사른 님. 저 필리아입니다. 무탈하신가요? 그간 직접 연락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이르기에는 편지지가 너무 작아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네르사른 님! 곧 로엘과 함께 내려갈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나 그랬듯, 저를 안아주어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세요. 눈 맞춰 웃는 그 순간이 너무 그리워 가슴 한쪽이 어지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필리아 드림.
아직 히엘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시겠구나. 토미는 서신을 곱게 접어 창문 안쪽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일이 정리되고 나면, 네르사른 님께서 직접 읽는 게 좋겠지.
토미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전서구의 목을 긁어주었고, 이내 자신을 기다리는 나키나 쪽으로 날아갔다.
* * *
촤아악!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토미와 나키나가 동시에 이안을 돌아보며 외쳤다. 갑작스러운 돌풍이 이안의 머리칼을 휘감았고, 이에 이안을 붙들고 있던 끈들이 끊어지며 증발하듯 사라졌다.
“토미, 나키나.”
“돌아오지 않으셔서 찾으러 왔습니다. 상황은 대충 해나 집사님께 전해 들었고요.”
“와. 루스웨나, 장난 아니네요. 대체 언제 저만큼 군세를 키웠답니까? 메렐로프 부인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처억.
두 사람은 이안의 좌우를 자처하며 루스웨나 마법사들과 대적했다. 머릿수는 얼추 맞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저쪽 마법사들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이안 님, 저놈들 혹시-”
“인형술사가 뒤에 있다.”
“지긋지긋하네요. 정말.”
나키나가 바짝 깎은 분홍 머리칼을 벅벅 문질러댔다. 아기아르 공성전 때부터 아주 끈질기게 들러붙는 녀석들이다.
“여기는 저희 둘이 맡겠습니다. 이안 님은 가십시오!”
“예. 나키나 선배가 예전 같지는 않아도 제가 있으니 뭐, 괜찮습니다.”
“…토미. 많이 컸지?”
“어후, 선배 따라가려면 멀었죠.”
지이잉! 지잉!
화아아악!
두 사람은 투덕투덕 어깨를 맞댄 채, 격투 자세를 취하며 마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맞춰 이안 또한 턱을 바짝 잡아당겼다. 목표는 눈앞의 마법사들이 아닌, 그 너머 어딘가. 자아 없는 마법사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보다, 저 어딘가에 있을 인형술사 하나를 처치하는 게 더 쉽고 확실하다는 판단이었다.
이안의 의도를 눈치챈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대열을 정비해 이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마력을 한데 모았다.
지이잉! 지잉!
「운해(雲海)」.
토미와 나키나가 이를 파훼하고자 달려들었지만, 늦었다. 루스웨나 마법사들 주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발동되었다는 뜻.
사사삭!
촤악!
조용히 떠다니던 구름이 한데로 모여들더니, 거대한 물고기 떼처럼 이안의 주위를 유영했다.
‘갇히면 어려워진다.’
이를 직감한 이안은 재빨리 속도를 내어 루스웨나 본대 쪽으로 날아들었고, 그 뒤를 구름 물고기 떼와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바짝 따라붙었다.
“어딜! 토미!”
“예, 선배!”
지이잉!
나키나는 이를 꽉 깨물며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뒤이어 이안의 등 뒤로 바짝 붙은 다음, 두 손을 모아 주문을 읊었다.
「수천(水天)」.
그러자 나키나의 뒤로 거대한 팔이 뻗어났다. 한쪽은 뜨거운 검을 쥐었고, 다른 한쪽은 철 방패를 들고 있었으니.
“흐아아압!”
나키나가 기합을 내지르자,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앙!
방패 쥔 손이 있는 힘껏 구름 떼를 내려쳤다.
“……!”
폭음과 함께 칼바람이 터지고, 수천 병사들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루스웨나 마법사가 방해하지 말라는 듯 달려들자, 이번엔 검을 쥔 팔이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채앵!
「맹타(猛打)」.
토미도 연달아 마력을 개방했다. 즉시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고, 그 열기로 인해 김이 솟아났다.
강화된 육신. 그는 나키나의 방패가 미처 놓친 것들을 향해 날아들었고, 하나하나 주먹으로 쳐내며 확실하게 정리했다.
퍼엉! 펑!
“흐으응…….”
한편, 다르시 부인은 다섯 개의 인형을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며 두 팔을 휘젓는 몰골이 흡사 연주에 몰두한 미치광이 피아니스트 같다.
그녀의 턱살을 따라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토미와 나키나라는 마법사들의 공격과 방어가 너무나 변칙적인지라, 오감을 연결했음에도 따라붙는 것조차 어려웠다.
“다르시 부인!”
“닥쳐! 제발 그 주둥이 좀 닥치고 있으란 말이다!”
이쪽으로 날아드는 이안을 본 마르틴이 소리치자, 다르시 부인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동시에 앞으로 진군하던 병사들의 움직임에도 문제가 터졌다.
“아,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마검사가 계속 밀고 들어옵니다!”
“고작 한 놈이잖아! 흑갑옷은?”
위쪽과 상황이 똑같다. 이안이 루스웨나 마법사를 상대하지 않고 지나친 것처럼, 베릭도 흑갑옷과 ‘일단은’ 대치하지 않은 게다. 먼저 최대한 안쪽까지 파고들어 대열 전체를 어지럽히는 게 목적이었다.
“잔챙이들은 꺼져! 목숨 귀한 줄 알라고!”
“주, 죽여라아아!”
“앞으로! 계속 밀어붙여라! 상대는 고작 한 명이다!”
“흑갑옷! 최전방으로!”
베릭이 촤악, 뛰어들어 병사들의 머리와 어깨 따위를 밟으며 내달렸다. 흑갑옷들이 연달아 덤벼듦에도 피하거나 튕겨낼 뿐, 멈추지 않고 계속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이다.
그 시선의 끝에, 마르틴은 자신이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아.”
어지러운지, 다르시 부인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한숨 쉬었다. 그녀의 드레스 상의가 온통 땀범벅이다.
“안 되겠네요.”
그녀는 대충 손에 잡히는 인형 하나의 실을 끊어냈다.
티잉!
“이름 모를 마법사님. 하나만 물읍시다. 바로 대답해주면 그쪽에게 자유를 주겠어요. ‘금기의 마법’은 어떻게 발동하는 것입니까? 명령을 내려도 작동을 안 하네요오. 호홋…. 짜증 나게.”
또 거짓말. 그녀는 손등으로 땀을 훔쳐내더니, 인형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마르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다르시 부인은 중얼중얼, 보이지 않는 자와 계속 대화했다.
“아하, 그래요? 피를 섞으면 된다?”
다르시 부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자아를 되찾은 마법사가 아무것도 못 하게끔, 곧바로 오감을 완전히 봉인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있던 루스웨나 마법사 한 명이 허우적거리더니 그대로 추락했다. 마력으로 충분히 날 수 있었지만, 당황한 데다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를 인지하지 못해 그대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안 히엘로오-!”
다르시 부인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치며 인형 줄을 까딱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한 명을 선택해, 금기의 마법을 발동했다.
지이잉! 지잉!
온 사위로 퍼지는, 피 섞인 마력의 기운.
등 뒤에서 삿된 기운이 느껴지자, 앞만 보고 날아들던 이안은 반사적으로 멈추고 말았다. 토미와 나키나 역시 넋 나간 낯으로 루스웨나 마법사를 지켜봤다.
콰아아앙!
퍼엉! 펑!
한껏 부풀어 오르며, 기이한 형태로 변하는 몸뚱이. 그와 동시에,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버거운 마력이 일대를 뒤덮었다.
금기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