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6
제656화. 선을 넘은 금기
“…말도 안 돼.”
토미가 사색이 되어서는 중얼거렸다. 방금까지 대적하던 마법사다. 그런데, 순식간에 금기의 마법을 발동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어떠한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사라면 응당 각오할 심연의 저주에 대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하나처럼, 아주 간단하게 금기를 깨버렸으니.
“인형술사가 어찌하여 저걸-”
“토미! 넋 놓지 마!”
콰앙!
다른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동요 없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나키나가 수천(水天)의 방패를 휘둘러 토미를 보호했고, 끝없이 날아드는 공격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선배-”
“하지만 같은 건 없다! 닥치고 싸워!”
마법사가 스스로의 의지 없이 금기의 마법을 썼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단 말인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인형술사의 힘에, 모두가 공포에 빠졌다. 혹여 바르사베 대원처럼 실이 꿰이기라도 한다면, 단번에 가이아의 정세가 역전될 수도 있는 상황.
특히나 이안, 그가 인형술사에 의해 조종된다면-
“젠장!”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나키나는 온몸이 불탄 채로 울부짖는 마법사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이성은 없어도 본성이 남은지라, 비명에는 고통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토미! 서둘러!”
“하아, 알겠습니다!”
촤아악!
금기의 마법을 제대로 사용하기 전, 숨을 끊어주는 것. 영혼은 심연으로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육신만큼은 평온 속에서 잠들리라. 토미와 나키나는 루스웨나 마법사들의 공격을 피하며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안은 가만 서서 모두 지켜봤다.
사악-
서늘한 바람이 아이의 금발을 가볍게 스쳤다. 지금, 가슴 깊이 올라오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이안은 무의식적으로 심연에서 보았던 나움을 떠올렸다. 죽음의 순간을 영원히 되풀이하며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을.
‘…이안 님. 웃으십시오.’
그리고 웨슬리-
‘…게일, 내가 설마 그대를 죽이겠어요?’
자이라의 할머니-
‘…이안 히엘로. 그대의 자비에 고마워하지는 않을 걸세. 여기는 전쟁터고, 나는 루스웨나의 국민이며, 왕께서는 우리의 삶을 쥐고 계시니.’
나아가 히엘로를 궤멸시켰던 비토르라는 마법사까지.
모두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길이었으나, 저 마법사는 그렇지 않았다. 국적과 이해관계가 달라 이리 맞서고 있으나, 마법사들은 특별한 힘으로 서로 유대 맺는 자들 아니던가.
“크아아악!”
저열함과 비열함의 정수다. 상대를 이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 따른 책임까지 모두 전가하는 것이다.
이안은 자신의 여섯 번째 감각이 마법사와 함께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이는 명백한 분노였고, 연민이었으며, 슬픔이었다.
이안의 주위로 마력의 기운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그가 뒤를 돌자, 금안의 궤를 따라 빛이 그어졌다.
“루스웨나-!”
이안의 고함이 천둥처럼 울렸다. 선을 거하게 넘었다. 10년 전, 에리포니 왕이 마법사를 도구처럼 다루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이안이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심연으로 빠질 자를 구해낼 방도는 없다.
방도를 알았더라면, 나움을 구해서 함께했겠지.
“네놈들은, 심연이 얼마나 깊은 곳인지 아는가!”
얼마나 깊고 어두우며 차갑고 고통스러운지는, 가본 자만이 이를 수 있으리라.
이안의 격분을 목도한 병사들이 멈칫거렸다. 먼 거리에 있어도 소년이 쏟아내는 기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니.
“크, 크흐흣, 흐읏.”
다르시 부인 역시 몸을 떨어댔지만, 웃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 잘난 마법사를 완벽하게 조종해냈으니, 바리엘의 깃발이 반쯤 꺾인 것이나 마찬가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신음에 마르틴이 당혹스러워하며 전방과 부인을 번갈아 주시했다.
쿠구구궁-
화창했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마치 한여름날의 폭풍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것이 금기의 마법 탓인지, 아니면 이안의 분노로 인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신의 노여움 때문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해보자고! 어디 한번, 그래!”
지이잉! 지잉!
다르시 부인이 손을 뻗자, 금기의 마법을 불러일으켰던 마법사의 허리가 꺾였다. 놀라울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한 힘. 마법사에게 달려들던 토미와 나키나가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아오, 씨! 젠장.”
“이안 님!”
두 사람은 동시에 이안을 불렀다. 금기의 마법에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이안밖에 없었다. 웨슬리 때도 그랬고, 자이라의 할머니 때도 그랬다.
당시에는 이안의 마력이 규격 외로 강해서 그런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이안은 ‘금기의 마법으로 존재하는 자’, 그렇기에 대적할 수 있었음을.
“죄송합니다! 저희 능력 밖입니다!”
“이안 님, 본대는 저희가 가겠습니다!”
차라리 인형술사 쪽을 토미와 나키나가 맡고, 이안이 금기의 마법을 상대하는 게 적절했다. 이안은 대답 대신 몸을 돌렸고, 이내 토미, 나키나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보십시오, 장관! 바리엘 마법사들이 당황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호홋! 서둘러서 지원할 준비 하세요!”
“괘, 괜찮습니까? 다르시 부인?”
“예, 물론이지요. 마법사 놈들, 차라리 금기의 마법을 몰랐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인데. 어리석지요. 호호홋. 어서요, 장관! 저기 마검사 놈이 올라옵니다!”
인식(認識)은 즉각적이다. 누군가에게 ‘사과’를 이르면, 그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과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사과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한다고 한들, 그런 과정조차도 사과를 인식한 다음 이루어질 수 있다.
‘금기의 마법’도 마찬가지다. 오감이 묶이고 의지가 끊어진 마법사에게 금기의 마법을 명령하면, 술식 자체는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발동법이 문제여서 그렇지.
‘잘 보셨습니까, 전하.’
다르시 부인은 콩콩 뛰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웃었다. 자신의 감각을 통하여 토올룬의 왕 또한 환희를 겪고 있을 터. 땀범벅이 된 다르시 부인이 인형 줄을 미친 듯이 움직이자, 마르틴 장관이 뒷걸음질 쳤다.
‘이상한데.’
그저 땀범벅인 채 흥분하여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게 문제가 아니었다. 다르시 부인의 외관 어딘가가 조금 이상했다. 굳이 짚자면, 이목구비가 조금 무너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마르틴은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으며 부하들을 데리고 진영 앞쪽으로 나갔다.
‘왕께 강력히 건의할 것이다. 다르시 부인, 아무리 보아도 미심쩍고 괴이해. 저런 자를 옆에 두었다간 도리어 루스웨나가 위험에 처할 터.’
쿠구궁- 쿠웅!
갑작스러운 천둥이 대지를 찢을 것처럼 울려댔다. 심상치 않은 일이다. 마르틴은 입매를 단단히 굳힌 다음, 창공에서 터지는 강력한 진동을 지켜봤다.
지이잉! 지잉!
퍼엉! 퍼어어엉!
이안과 금기의 마법사의 격돌. 짙은 마력의 흐름 탓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설령 보였다 한들 인간의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일 게 분명했다.
이안은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힘에 대항하며 마법사의 빈틈을 노렸다.
‘무엇일까.’
금기의 마법에는 주문자의 염원이 깃든다. 나움은 자신에게 새로운 길을 내어주고자 했고, 웨슬리는 마력봉인석을 해제하여 강인한 힘을 얻고자 했으며, 자이라의 조모는 전쟁의 승리를 빌었다.
그렇다면, 저자도 분명히 무언가를 염원하고 있을 터. 단순히 마력의 증폭을 바란 것일까?
콰앙! 쾅!
이안의 턱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심연의 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 이드갈 능력과 확장된 마력을 얻었지만, 역시 금기의 마법사는 버겁다. 육신과 영혼을 모두 내건 자는 처절했고, 처절함은 전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니.
이안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마법사를 쳐다봤다.
‘고하(苦河)를 써야 하나? 하지만, 저자는 의식이 없다.’
사용자와 대상자의 고통을 융합하여 터트리는 정신계열의 마법이다. 부작용이 심하긴 했다만, 클리포포드 전쟁 당시 자이라의 할머니를 대상으로 시전했었다.
그녀는 의지를 가진 존재였기에 정신 공격이 유효했지만, 지금 상대는 인형술사의 꼭두각시. 의지 없는 자에게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혹 통하지 않는다면,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이드갈을 사용하면 그나마 효과가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접근하는 것이 문제다. 맞대는 순간이 너무 위험해.’
이안이 금기의 마법사와 대적하며 버티는 사이, 토미와 나키나는 루스웨나군 본대로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어딨어, 이 인형술사 개새끼!”
“다 죽이면 안 됩니까?”
“그래, 그거 좋다! 살고 싶은 새끼들은 대가리 박고 누워 있어라!”
지이잉!
“마법사다! 바리엘 마법사가 가까이 왔다!”
“이드갈 화살, 준비!”
“조준! 발사!”
“발사! 맞혀라! 계속해서 쏘아라!”
“오케이,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선배! 오른쪽으로 돌아요! 이드갈 화살 조심하고요! 보호막은 제가 맡겠습니다!”
“흐아아압-!”
토미와 나키나는 개미 떼처럼 빽빽한 군병들 위를 날아다니며 쉴 새 없이 마력 공격을 퍼부었다.
기세는 좋았지만, 그것도 잠시. 드래곤을 탄 흑갑옷 기사와 다른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두 사람에게 날아들었다.
“크흣!”
힘이 조금씩 부쳤다. 10년 전, 클리포포드 전쟁 이후로 이런 격전은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멈출 수 없다.
“지긋지긋한 루스웨나 새끼들!”
그때 완전히 끝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그리고 10년 후 언젠가,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다르시 부인은 두 마법사가 멀지 않은 곳까지 들이닥친 걸 보고서 허둥지둥 인형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죽여! 죽여! 어서 죽이란 말이닷!”
그러고는 다시금 피아노 치듯 손가락을 유연하게 움직여댔다. 곧 또 다른 마법사의 허리가 꺾이더니, 그 앞에 금기의 마법 술식이 떠올랐다. 이를 알아챈 나키나가 경악하며 있는 힘껏 달려들었지만-
지이잉! 지잉!
“씨바아알! 안 된다고! 제발!”
“선배! 조심해요!”
퍼어엉! 펑!
병사들이 뜨거운 열기를 피하고자 몸을 납작 숙였다. 거리가 좀 있던 다르시 부인 역시 뒤로 벌러덩 뒤집힐 정도다.
그녀는 먼지 속에서 킬킬 웃으며 인형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이번에도 금기의 마법을…….
“어머나?”
손이 왜 이러지?
다르시 부인은 쭈글쭈글해진 자신의 손등을 보곤 멈칫거렸다. 손등만이 아니다. 온몸의 피부가 흐물흐물해져서는 녹아 흘러내릴 것 같은 기분이다.
당장 거울이 없는지라, 다르시 부인은 당황해하며 손으로 제 몸을 어루만졌다. 대체 이게…….
“어, 어머?”
그녀가 가까이 있는 병사를 불렀다.
“이봐, 혹시-”
“흐익!”
정신 못 차리던 병사는 다르시 부인의 몰골을 보고서 기함하더니, 뒷걸음질 쳤다. 곧이어, 인근에 있던 병사들 모두가 다르시 부인에게서 멀리 떨어지며 거리를 유지했다. 그녀가 한 발자국 다가가면, 두 발 멀어지고, 몇몇은 검과 창까지 꺼내 겨누었다.
“왜, 왜들 이래?!”
“으아악!”
“물러서십시오!”
한편, 토미는 루스웨나 병사들 사이에서 퍼지는 소란을 알아챘다. 한 사람을 구심점으로 둥글게 퍼진 인파 탓에, 드레스 입은 여인이 한눈에 보인 것이다.
“선배-!”
“가! 얼른!”
나키나는 기속(羈束) 마법으로 상대를 결박 중이었다. 하지만 찰나일 뿐임을 그녀도 알고, 토미도 안다. 금기의 마법 앞에서 그녀의 마법은 작은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유리 조각에 불과했고, 두 사람을 노리는 상대도 너무 많았다.
인형술사 쪽에서 일어난 소란 탓인지, 나키나를 상대하는 마법사는 금기의 마법을 일으키키만 할 뿐, 발동시키지는 않은 채 교착 상태를 유지했다.
“선배, 제발-!”
“알겠어! 난 안 죽어!”
토미가 눈물을 머금으며 인형술사 쪽으로 날아갔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루스웨나에서 치르는 지금 전투는, 필시 마법사들의 상처로 남으리라는 것.
“버텨줘요!”
“괜찮아! 난 절대-! 안 죽어어!”
나키나가 다짐하듯 소리치는 순간-
어느새 다가온 흑갑옷 기사의 검이 그녀의 등을 베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