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9
제659화. 오수(汚水)
병사들과 함께 앞장서서 싸우던 마르틴은 상황을 인지했다.
앞으로는 미친개와 같은 마검사가 돌진해 오는 중이고, 뒤에서는 바리엘 마법사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대열을 흐트러트리고 있다.
게다가-
“……!”
다르시 부인이 액체처럼 녹아내려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눈알만 남은 채 데굴데굴 떨어지는 중이다.
마르틴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지휘봉을 흔들었다. 부하들이 그의 손짓에 따라 루스웨나 깃발을 좌측으로 기울였다.
“퇴각-!”
“퇴, 퇴각하라! 모두 퇴각하라!”
인형술사가 없다면 마법사와 대적할 수 없고, 이는 병사들의 무의미한 죽음만을 남길 것이니.
마르틴의 명령에 병사들은 이때다 싶어 몸을 돌렸다. 마검사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바리엘의 마법사들까지 죄다 우르르 몰려온 걸 보고 막 혼비백산하던 차였다.
“달려라! 계속 달려라!”
“으, 으아아앗!”
“마르틴 장관님! 다르시 부인은 어찌합니까?”
“젠장, 챙길 만큼 챙겨라!”
“예? 그, 그게 무슨-”
“주워 들라고! 인형들도!”
마르틴의 고함에 부하들이 허겁지겁 다르시 부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수통에 눈알과 끈적이는 액체를 대충 주워 담아 퇴각하려 했다.
촤아악!
“마법사!”
“헤일 대장!”
이를 알아챈 헤일이 그 틈을 노려 가까이 붙었지만 말이다.
마르틴은 이드갈 버무린 검을 빼 들고서 헤일의 앞을 가로막았고, 두 사람의 격돌에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쳤다.
“마법사가 내려왔다! 사정거리 안이다!”
“이드갈 화살! 발사!”
“흑갑옷 기사님, 여기입니다!”
“대장, 위험해요! 젠장!”
“이드갈 좀 작작 쏘아라! 원산지도 아닌 주제에!”
타앗! 탁! 탁!
헤일은 마르틴의 검을 몇 번 받아내더니, 무기를 버리고 오른쪽 주먹을 허리 옆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그를 감싸는 금빛 마력. 순간 헤일의 눈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이내 강한 기운이 폭발했다.
지이잉!
「난종(亂鐘)」.
쿠우웅!
헤일은 날아드는 마르틴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주먹을 상대 심장 부근에 때려 박았다.
그러자 마르틴의 심장이 크게 울리더니,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갔다.
데에엥-!
데엥!
한 명씩 사람의 몸을 통과할 때마다 충격파는 점점 세지더니, 이내 사람의 장기를 파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진형 맨 뒤에서 퇴각하던 병사들이 각혈을 쏟아내며 쓰러진 것이다. 도미노처럼 하나둘씩, 전방위 범위의 병사들이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갔다.
“이-!”
마르틴은 미친 듯이 박동하는 심장 부근을 붙잡으며 검을 다잡았다. 헤일은 누구든 덤벼들어도 좋다는 듯, 계속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으니-
촤아악!
세 번째 금기의 마법사다.
헤일은 마른 궐련을 가볍게 깨물었고, 마르틴은 이때다 싶어 허둥지둥 뒷걸음질하여 도망쳤다. 바리엘 마법사들이 쫓아가려 했으나, 금기의 마법사는 독기(毒氣)를 가감 없이 흘려대며 마법사들의 앞을 막았다.
“다르시인가 뭔가, 그 인형술사 안 죽었나? 얘들 왜 아직도 이 상태지?”
“한번 금기의 마법을 발동한 이상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안 님 쪽도 교착상태고요. 죽은 건 아닌가 봅니다. 아니면-”
“아니면 토올룬 왕 때문이다.”
“왕 때문이라 하면…….”
“다르시 부인도 결국에는 왕의 인형에 불과하다. 인형이 망가진다 한들, 갖고 노는 자가 뒤에 있는 이상 놀이는 끝나지 않는 법이니까.”
헤일 대장이 속으로 한숨 쉬었다. 금기의 마법이라. 마력의 격차는 차치하고, 자신들의 공격이 먹혀들지부터가 의문이다.
웨슬리 사태 때, 마법부는 금기의 마법사에게 어떠한 유효타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클리포포드 전쟁 때는 또 어땠던가? 그저 마력을 한데 모아 이안에게 넘겨주는 것이 다였다.
그럼에도 걱정 없었다. 이안, 그에겐 늘 해답이 있었으니까.
“헤일 대장.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이안은 이미 금기의 마법사 둘을 상대하고 있다. 분신과 추쇄 마법까지 써가면서. 이안에게는 더 이상 여유가 없었고, 마법부에게도 남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분신술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평소의 이안 님이라면 반나절 정도는 무리 없을 것이지만, 금기의 마법사와 맞서다 보면 분명 힘을 다 쓰고 말 것이다.’
단순히 이안이 둘로 늘어났다고 하여 희망적인 건 아니었다. 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정 수준의 마력이 계속 돌아야 하고, 분신이 고통을 받으면 본체에는 곱절 이상의 타격이 들어가니…….
애써 상념을 지워버린 헤일은 마른 궐련에 불을 붙이고는 로브를 집어 던졌다.
“다들 뒤로 물러서.”
“헤일 대장?”
“원래 이런 일 하라고 대장직 주는 거니까.”
후우- 그는 깊고 빠르게 궐련을 피워댔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금기의 마법사는 한쪽으로 고개를 꺾어내며, 강인한 기운을 터트렸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압박에 숨을 못 쉴 정도로 무겁고 탁한 힘이다.
촤악.
한편, 마법사들은 물러서라던 헤일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로브를 따라 벗었다. 헤일이 뒤로 고개를 돌리자, 그들은 결연하게 입매를 굳힌 채로 전투 자세를 취했다.
“저희도 이런 일 하려고 대장 따르는 겁니다.”
“이안 님이 두 놈 잡아주는데, 우리가 다 해서 한 놈 못 잡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빈틈없이 보조하겠습니다. 어서 저놈 처리하고, 인형술사 들고 튄 루스웨나 놈들 잡아서 족칩시다.”
“개새끼들, 다 뒈졌다, 진짜.”
“왕궁터까지 밀어버릴 겁니다.”
마법사들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형형한 적개심을 내보였다. 금기의 마법이라니.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일이었으며, 나아가 신성모독, 존엄에 관한 사안이었다.
헤일은 소매를 걷어낸 다음, 궐련을 내던졌다.
“그래. 뒤에서 잘 지키고 있어라. 그럼 적어도 내가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
“네, 대장!”
헤일은 웃으며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설령 그것이 제 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내놓는 일이 되더라도-
마법부만큼은 지켜낼 것이라고.
“간다아아!”
헤일이 기합을 넣으며 달려들자, 금기의 마법사가 반사적으로 마력을 방출했다. 두 힘이 맞물림과 동시에 굉음이 터졌다. 때마침 이안 쪽에서도 심상치 않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쾅!
걸음아, 살려라, 도망치던 루스웨나 병사들은 절로 몸을 낮추며 멈칫했고, 이내 절망 어린 탄식을 뱉었다.
“허…….”
온 세상이 어두웠고, 밝았으며, 뜨거움과 동시에 추웠다. 죽음의 기운이 만연한 하늘,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는 역사의 한 조각임과 동시에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 무력한 병사들은 그저 신께 기도하며, 서둘러 성벽 쪽으로 내달렸다.
* * *
“폐하. 마법사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그래. 보았다.”
진은 성벽에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햇빛을 받았음에도 탁하고 어두운 물길. 굽이치며 흐르는 강물이 한눈에 보이는 장소다.
병사들은 강 인근을 통제하며 주민들의 접근을 막았고, 포탈이 세워진 밑 쪽에선 혹시나 한 마음에 간이 차수벽을 설치하는 중이었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들이 더 이상 흐르지 않게끔.
“마법사들이 그래도 지혜를 잘 짜내었습니다. 강물에 포탈을 어찌 여나 싶었는데, 저런 방법이 있었군요.”
신하 한 명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은 강폭에 맞는 지지대를 세운 다음, 그곳에다 포탈을 그려냈다. 그것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알맞게 수정하느라고 열댓 번에 가까운 시도가 있었다는 걸, 이들은 알지 못하리라.
마치 하수구가 빠져나가듯, 더러운 오수들이 시원하게 포탈을 따라 사라졌다.
“시각을 잘 확인해 두어라. 예정된 시간 내에 보고가 없으면 우리 쪽에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
“예, 폐하. 문제없이 해내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를 안 할 수가 없지 않나. 가이아의 대지는 곧 바리엘의 대지고, 클리포포드의 힘이 곧 우리의 힘이다. 그대들은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라.”
진의 작은 꾸중에 신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혹여, 포탈 유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오수(汚水)가 쏟아진다면, 진이 특임대를 꾸려 상류로 사람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 해결까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상황은 파악해야 하니까.
“아이고, 안 됩니다! 경을 치십니다!”
“잠시면 됩니다, 아주 잠시만요!”
“안 된다니까요. 단단히 미치셨소? 여기가 어디라고!”
“하지만 이안 경도 안 계시고, 지금 저에게 말을 전해주는 자가 없지 않습니까! 이거 놓으십시오!”
“경비대! 경비대!”
그때, 밖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칼라마트 성이 아닌, 성벽 쪽으로 내려와서 그런 것일까. 혹여 극성맞고 아둔한 주민들이 일으킨 폭동 같은 것이라면 곤란했다. 제이럿과 황궁친위대들은 경계하며 입구 쪽으로 내려갔다.
“무슨 일인가? 출입증이 있는 자인가?”
“아, 송구합니다. 그것이-”
“…클라크?”
제이럿의 중얼거림에 진이 고개를 틀었다.
“제이럿. 괜찮다. 들라 하라.”
“하오나, 폐하.”
“괜찮대도. 이안 경이 없으니 나를 찾은 것이겠지. 들여보내도 좋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클라크가 제이럿을 지나쳐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왔다. 흥분한 얼굴이 꽤 달아올라 있었는데, 칼라마트의 성벽 위에서 맞는 바람으로도 쉬이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진은 클라크의 손에 쥐어진 종잇조각을 보곤 조소했다.
“이안 경이 그대에게 과분한 것을 주었군. 출입증은 이럴 때 쓰라고 내어준 게 아닐 것인데?”
“폐하!”
클라크가 그의 발치에 넙죽 엎드리며 일렀다.
“메렐로프에서 저를 찾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저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마법사들만 변경으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정녕 몰라서 묻는 것인가? 그대는 러더포드의 사람이었다. 신분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황궁을 거쳐야 하는 법. 소란 피우지 말라. 그대가 이안 경과 인연이 있다 한들, 나와는 무관하다.”
주제를 파악하고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클라크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금 이마를 바닥에 찧어댔다.
“폐하. 송구하오나, 오랜 세월 저를 살게끔 한 자가 있습니다. 메렐로프와 히엘로에 문제가 생겼고, 마법사들이 모두 넘어간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하여간. 이놈이나 저놈이나 정신 팔려서는.”
진이 눈매를 가늘게 하며 중얼거렸다. 이놈은 클라크요, 저놈은 시아오시다. 진은 고갯짓하며 성벽 아래를 가리켰다.
“그러면 여기서 뛰어내리면 되겠네.”
“예?”
“저 포탈은 메렐로프와 바로 이어진다. 감히 내 앞에서 개인 사정을 구구절절 읊는 용기가 기특하여 일러주는 것이다. 원한다면 뛰어내려 가보도록 하라. 내 이안 경에게는 따로 일러주지.”
높이는 둘째 치고, 독극물 섞인 오수 위로 어찌 뛰어내릴 수 있겠나? 클라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진에게 고개 숙였다.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고는 진짜 뛰어내릴 것처럼 성벽 난간에 올라서는 것이었다. 신하들이 기겁하며 입을 틀어막았고, 제이럿과 황궁친위대원들은 못 본 척 시선을 멀리 두었다.
“하아. 진정…….”
…짜증 나게 하네. 진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되었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다. 오수에 절인 네놈 시체를 보면, 이안 경이 도리어 이쪽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걱정할 것이다.”
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이럿이 클라크의 팔을 붙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클라크.”
“예, 폐하.”
“그러면 내가 하나 제안을 하지.”
난간에서 내려온 클라크가 진의 앞에 무릎 꿇었다. 죽으나 사나 어차피 상관없는 자. 진은 고민 끝에 말을 이었다.
“오수가 멈추면, 그대가 포탈을 타고 변경으로 가는 걸 허락하겠다. 황제의 이름으로 그대의 신분을 새로이 내려주겠어. 어때, 할 만한가? 여기서 뛰어내리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나을 것 같은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