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
제66화. 불한당들
이안과 저택의 사용인들은 그간 모아두었던 굴라 씨앗을 죄다 광장으로 옮겼다. 네 포대에 불과했던 것이 어느새 백 포대를 훌쩍 넘은 상태였다.
연구를 위해 길렀던 모종 역시 종이로 잘 싸서 수레에 실었는데, 줄줄이 이어 대여섯 번이나 오가야 했다.
“세상에. 뭐가 이렇게 많아?”
“인근 산이고 들을 다 뒤져서 모았으니 그렇지.”
“이걸 다 공짜로 나눠주시는 겁니까?”
이안이 줄을 서라는 듯 손짓하자, 다들 어설프게나마 질서를 지키듯 움직였다. 그의 옆에는 로만드로의 부하가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굴라를 나눠주는 것도 일인지라,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잘 들으시오. 소작하고 있는 밭의 크기에 따라 굴라 씨앗이 나뉘어 갈 것이오. 특히 식구가 많은 가정에는 모종을 추가로 줄 것이며, 재배법이나 요리법은 서로 적극적으로 공유하여 저택의 일손을 줄여주길 바라오.”
“모종도 나눠준대!”
“쉿. 조용히 좀 해봐. 안 들려.”
“뒤에 잘 안 들립니다!”
이안은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지금은 굴라를 무상으로 나눠주지만, 해가 지나 내년 수확 시기에는 조세를 1할씩 더 걷을 것이오. 또한, 외부인과 굴라 매매는 꼭 저택을 통해서만 해야 하오. 이를 어길 시 벌금으로 금화 50닢을 부과하겠소.”
“5, 50닢이래.”
“하이고, 식겁하겠네. 증말.”
일반적인 소작농이라면 한 달에 금화 1닢 버는 것이 평균이었다. 생각보다 엄한 벌에 놀란 것도 잠시, 생각해 보니까 그리 문제 될 게 아닌 것 같다.
“우, 우리끼리 사고파는 것은요?”
“상관없소. 중요한 것은 외부인이오. 외부인에게는 씨앗을 비롯해 뿌리 한 줄기도 개인으로 매매할 수 없소.”
“그거면 뭐, 괜찮지 않을까?”
“그래. 외부인이래 봤자 대사막 부족이랑 또 어디지? 메렐로프 외에는 찾기 힘들잖아.”
“맞아. 무, 문제없어! 문제없네!”
“자네, 나한테 빚이 있지? 굴라로 조금 갚으세.”
이안은 더욱 크게 소리치며 안내를 이어갔다.
“그리고 위반자를 고발한다면 포상금을 주지. 혹시 추가 조세에 대해 불만인 자는 굴라를 보급받지 않아도 된다.”
“1할이면 얼마입니까?”
“밀 열 포대에 한 포대를 더 얹는 것일세.”
“쉰 포대면요?”
“…다섯 포대지. 계산이 불가한 자는 직원들에게 문의하시오.”
각자 내년에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하며 손가락셈을 해댔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아남아야 내년을 맞이할 수 있으니. 굴라 배급이 시작되고 제일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먼저 신청했다.
“아올덴 파르마요.”
“아아. 저쪽 강가 옆에 난 농작지 담당이군.”
“얼마나 줍니까?”
“자. 다섯 바가지일세.”
고작 다섯 바가지지만, 번식력을 생각하면 충분한 양이었다. 늦게 도착한 자들이 발을 동동 굴러대며 계속 앞쪽으로 다가오자, 이안이 그들을 물러내며 말했다.
“혹여 굴라를 받지 못하는 자들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2차 보급 예정이 있소.”
어차피 외부 매매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소작한 것들은 다시 저택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시간의 문제지 결국 브라츠의 모든 영지민이 굴라를 재배하게 될 것이다.
“다음!”
배급을 돕고 있는데, 뒤에서 베릭이 속닥거렸다.
“이안. 잠깐, 저택으로 들어가셔야겠는데. 작당 한 명이 눈 떴대.”
“…금방 가지.”
이안은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로만드로의 부하들에게 눈짓했고, 광장을 빠져나왔다. 굴라고 사람이고 죄다 빠져버린 저택은 평소보다 훨씬 조용하고 텅 비어 보였다.
타닥타닥!
“오셨습니까?”
“남은 놈이 눈을 떴다고? 페트레이오는 어찌 되었나?”
땀에 흠뻑 젖은 의사가 손등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끔찍한 몰골인 환자는 난생처음 보는 터라, 이거 영…….
“가능성이 없습니다. 길어봤자 오늘입니다.”
“…난놈이여.”
베릭이 문틈으로 페트레이오를 힐끔거렸다. 피떡이 되어서는 숨만 겨우 헐떡거리는 사내. 저 정도까지 되었는데도 털어놓지 않는다는 건, 죽어서도 입 열 위인이 아니라는 거다.
스윽.
“다른 놈 의식은?”
“또랑또랑합니다. 눈 뜨자마자 질질 울고 빌고…….”
제발 살려달라며 어찌나 손바닥을 빌던지. 죽을 뻔한 것은 이안과 베릭이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엄한 자를 납치했다 오인할 정도였다.
이안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리죽을 긁어먹던 남자가 행동을 멈추었다.
“아…….”
“이안일세. 낮에 보니 반갑나?”
“살려주세요오오! 살려주세요!”
우당탕탕!
보리죽이 날아가고 그대로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고서 빌어대는 남자다. 엉엉 울고불고 아주 발작 수준. 이안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이름은?”
“코, 콜린입니다.”
“계속 말해.”
이안은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는 입가에 묻은 보리죽을 슥슥 닦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에, 그러니까 콜린이고 나이는 스물에 위로는 형제가 둘 아래로 셋 있습니다.”
“…돌겠군. 그런 건 안 궁금해.”
“야, 보리죽 그릇으로 대가리 터지고 싶냐?”
“히익!”
베릭이 위협적으로 소리치자, 남자가 다시 손을 싹싹 비벼댔다.
“그러니까, 저는 노름판 심부름꾼인데요, 경비들이 떠드는 걸 들었습니다. 웬 자가 돈을 뭉치로 내놓으며 용역을 구하고 있다면서요.”
“어디 출신이지?”
“저, 저는 메렐로프 출신인데요…….”
그럴 줄 알았다. 인근에서 사람을 구하려면 그쪽밖에 길이 없다. 이안의 웃음에 베릭이 남자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빠악!
“으아악!”
“그래서? 웬 자가 누군데?”
“모, 몰라요! 그런 걸 서로 알아서 뭣합니까. 돈이나 주고 힘이나 쓰면 되지. 저는 아예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경비들한테 돈을 받았거든요.”
베릭이 이안을 힐끔거렸다.
“어떻게 할까? 죽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으아아악!”
“어이구. 손도 안 댔는데 비명이 환상적이네.”
베릭은 이안의 발에 매달리는 남자를 걷어차며 떼어냈다. 꼴을 보아, 함구하기 위해 스스로 숨을 끊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안은 톡톡, 손끝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메렐로프…….’
“이안?”
“이자는 감금해 두어라. 그리고 밖에 아무도 없나?”
“네? 이안 님.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메렐로프로 서신을 보낼 것이다. 말을 준비하라.”
이안은 지상으로 나오며 사용인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바로 응접실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던 로만드로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반겼다.
“무슨 일인가? 페트레이오가 죽었나?”
“아니오. 아직 숨이 붙어있습니다. 작당 중 한 놈이 깨어났는데, 메렐로프 출신이라 실토했습니다. 대다수가 그쪽 사람일 겁니다. 노름판의 경비로 일했던 자들이라 하더군요. 서신을 쓰고 싶은데, 도와주시겠습니까?”
로만드로는 펜대를 내려놓고 이안의 의중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서신을 보내면 보내는 것이지, 그것까지 왜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일까? 짐작하던 그가 눈썹을 휘었다.
“명분을 만들려고 하는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허허. 참.”
이안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로만드로는 쓰던 보고서를 돌려 그에게 넘겨주었다. 영주 임명 추천서였다. 굴라의 발견과 함께 대사막의 동맹 관계 그리고 영지 재건 등에 관한 치하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마음에 드는가?”
“마리브 저하와 황제 폐하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혹시 모르니 보낼 때 몰린의 소지품 하나를 넣으시지요. 반지 있습니까?”
“그래. 그러면 메렐로프에겐 무어라 쓸까?”
그는 새로운 종이를 꺼내며 펜에 잉크를 먹였다.
“‘차기 영주로 추천한 이안이 습격을 당했다’로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안이 아닌, 황궁 자문관인 로만드로가 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 이안인 신분이 천하기에 문제를 주장하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차기 영주’로 거론되고, 그의 부상으로 인해 자문관이 대필한 것은 메렐로프 입장에서 쉬이 넘길 수 없을 것이다.
“영주 후임자를 습격한 것은 메렐로프의 괴한들이다. 작당 중 한 명이 생존해 있고 자백하여 알아낸 사실이다. 이는 충분히 서로에게 오해를 줄 만한 사안이라 생각한다.”
스윽스윽.
만약 이안이 영주였다면?
바로 병사를 일으켜도 문제없을 법한 일이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로만드로의 권위를 빌릴 수밖에 없다. 메렐로프 쪽에서 뻔뻔하게 제 영지민을 죽였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메렐로프 백작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이에 사람을 보내 시체를 확인, 인계할 것을 요구하며 적극적인 조사 협조를 요청한다.”
“좋네. 아주 잉크도 잘 먹고, 좋아.”
“그리고 위로금을 덧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이안의 말에 로만드로가 깃대로 코를 긁적거렸다.
“얼마 정도면 되려나? 금화 100닢이면 알맞지?”
“적당합니다만, 기왕 하는 거 더 올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받을 생각도 없으니까요.”
인도적인 차원에서 요구했던 식량 거래도 더럽게 거절하던 위인이다. 200닢 정도는 불러야 깎고 깎아 20닢 쥐여줄지 모르겠다.
“보자, 음…….”
로만드로는 잠시 고민하더니, 유려한 문장으로 서신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반지 인장까지 꾹 찍어내려 동봉한 것을 이안에게 전했다.
“밖에 준비됐는가?”
“네. 이안 님. 말을 꺼내두었습니다.”
“메렐로프 백작님에게 전하게. 조심하고.”
하인은 편지를 품에 잘 넣은 채 응접실을 나섰다. 아마 제대로 된 답변을 받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명분을 위한 것이라 했으니, 아예 서신 답장이 없었으면 좋겠군.”
로만드로의 말에 이안이 방긋 웃었다.
바로 그것이 이안이 원하는 바였으니까.
“아마 겨울쯤에나 받지 않을까요? 그쪽은 굴라 씨가 말랐을 것이고, 당장 농사짓기도 어려울 터이니 분명 오래 안 가서 굴라 자체를 원할 겁니다.”
그때 가서 이번 일을 걸고넘어지면 일차적으로는 거절할 명분이 될 것이고, 이차적으로 굴라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메렐로프 백작이 했던 그대로, 돌려주게 되겠지.
“그자가 잡풀 비싸게 주고 살 생각하면 벌써 웃음이 나오네. 표정이 아주 볼만할 게다.”
하지만 이안의 상황과 저들의 상황은 다르다. 이안은 그의 식량을 사지 않아도 되지만, 저들은 대체재가 없는 이상 물러날 수 없을 터다.
로만드로는 이어서 중앙으로 보낼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말일세. 영주로 임명되는 것도 되는 것이지만은, 자네가 마력운용자라는 것이 보고되었으니 중앙에서 오래 지내야 하지 않겠나?”
일단 되는 것이 관건이긴 하다만, 되고 난 이후에도 문제가 영 없는 건 아니었다. 마력운용자인 이안을 변경으로 내려보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때 누가 이곳을 봐주겠는가?”
“영주가 중앙에 오래 머무는 건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렇긴 하다만, 그건 집사가 있을 때의 얘기지.”
이안은 대꾸 대신 웃기만 했다.
일단은, 황궁으로 돌아가면 그 후에 생각할 일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 회귀가 나움의 마법과 관련이 있는 건지 확인하고서 계획을 다시 짜 내려도 상관은 없다.
“모르겠습니다. 우선 영주가 되고 나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어차피 작위 수여식은 신년회 때 함께하니까요. 아무쪼록 마리브 저하가 잘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리브의 도움이라, 이안의 말에 로만드로는 묘한 표정을 짓기만 했다. 긍정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