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0
제660화. 신장(神掌)
이안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기 전, 신께 기도하는 전사처럼. 그러고는 고개를 틀어 생긋 웃고 있는 분신과 눈을 마주했다.
분명히 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건만, 근심 걱정 하나 없이 행복해 보이는 미소다. 우리가 마주한 게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겪게 될 줄 알고 저리 웃을까.
“마법사여.”
“…크윽.”
“영혼 잃은 마법사여.”
상대를 부르는 이안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났다.
“만약 내 말이 들린다면 정신을 바로 하라. 그대들에게 실을 꿰었던 인형술사에게 문제가 생긴 듯하니, 이는 두 번 없는 기회. 혹 틈을 본다면, 부디-”
이안은 그리 이르며 회록(回祿) 마법을 그려냈다.
그의 어깻죽지에서 거대한 화염 날개가 솟아났고, 이어서 불의 형상을 한 여인이 고고하게 몸을 일으켰다. 회록의 여인. 이안의 추종자였다.
“부디, 잘 헤집고 나오길 바란다.”
“크아아악!”
이안의 당부에도 금기의 마법사들은 비명에 가까운 괴성만 내질러댔다.
지이잉! 지잉!
「연동(蠕動)」.
금기의 힘 덕분일까. 그들은 마법진도 없이 순식간에 마법을 불러냈다. 곧 몸체를 가르며 쏟아져 나오는 촉수들. 그 끄트머리는 죄다 괴물의 형상이다.
날카로운 주둥이와 거대한 송곳니, 그리고 핏줄이 선 채로 먹잇감을 노리는 눈알들…. 그 모습은 마치, 마법사들을 잡아먹은 괴물이 살점을 뚫고 나온 것 같다.
“……!”
끝이 아니다. 촉수에서 다시 촉수가, 그 촉수에서 또 다른 촉수가 끝없이 돋아나며 몸집을 불려갔다.
이안 뒤에 서 있던 회록의 여인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낮췄으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안이 명령을 내리지 않은 탓이다.
한편 이안은 눈앞의 괴현상을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연동 마법이라면… 내가 아는 그것이 맞는가?’
그때-
“이안 님! 안 됩니다! 공격하시면 안 됩니다!”
회록의 공격 태세를 본 나키나가 소리쳤다.
“고대 마법서에서 본 적 있는 마법입니다! 재생력이 상당하여 잘라내면 순식간에 수천 배로 몸집을 불립니다! 마법사까지 포함해 단번에 처치하는 게 옳습니다. 게다가 상대가 두 명이지 않습니까! 자칫했다간 정말, 정말 위험해집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녀석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듯, 촉수로 마법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 보이지 않게 했다.
“더하여, 촉수를 베어내면 맹독이 터집니다! 치명적이니 조심하십시오!”
나키나가 안타까워하며 당부했다. 마력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건데. 현재 그녀는 신의 힘을 빼앗긴 인간에 불과했다.
촤아악!
그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 금기의 마법사들이 서로의 촉수를 베어버린 것이다. 뭉텅이로 떨어진 촉수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살덩어리를 이루었으며, 순식간에 증식하여 몸집을 거대하게 불렸다.
“이안 님, 저놈-! 젠장! 미친놈이!”
이안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군. 상대가 공격하지 않으면 스스로 베어서 증식하겠다는 전략이로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흩어진 촉수들이 눈알을 빳빳하게 쳐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무엇이든 해보라며 이안에게 독기를 쏘아댔다.
촤아아악!
하지만 이안은 반격 대신 보호막을 세워둔 채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안 님! 보호막으로는 안 됩니다!”
놀란 나키나가 기함하며 벌떡 일어났다. 촉수의 수가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저것들은 금기의 마법으로 생겨난 것들. 마력 자체의 깊이가 남달라 아무리 이안의 보호막이라 한들 위험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키나의 외침과 동시에 보호막이 맹독에 의해 맥없이 녹아내렸고, 아슬아슬한 때 개입한 회록의 여인이 이안을 감싸며 불길을 세웠다.
사아아악!
사멸하듯 증발하는 독기.
스멀스멀 다가오던 촉수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멈추었다. 그러고는 이안은 물론, 일대를 삼켜버리고도 남을 만큼의 거대한 구(球)를 만들어냈다.
지이잉. 지잉.
일촉즉발의 순간.
하지만 이안은 조급하지 않다. 그는 무수한 촉수로 인해 가려진 하늘 사이, 희미하게 떠오른 해를 발견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는 내내 한쪽 눈을 감고서 마법진을 움직이고 있었고, 이윽고-
“…되었다.”
동심원의 중심이 해와 맞물렸다.
그러자, 마법진의 금빛 테두리가 환하게 반짝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키나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설마, 부, 분신도?’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분신은 이미 이안과 똑같은 마법진을 완성한 뒤였다. 그가 나키나를 보며 싱긋 웃자, 나키나는 희게 질려서는 뀨의 옆구리를 마구 쳐댔다.
“…뒤, 뒤로.”
-뀨우?
“뒤로 빠지라고, 인마! 뒈지기 싫으면!”
지이이잉! 지잉!
마법진이 하늘을 덮을 것처럼 거대해졌다. 그를 이루고 있던 진언(陣言)들이 하나하나 독자적으로 움직이더니, 거대한 손의 형상을 이루었다. 저것은 바로-
「신장(神掌)」.
신의 손바닥.
금빛의 거대한 손바닥이 금기의 마법사 쪽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보다 조금 더 불투명한 손바닥이 대지에서 솟아났으니, 이는 분신의 것이다.
쿠구구궁-! 쿠궁!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 거대한 기(氣)가 휘몰아쳤다. 금기의 마법사와 그를 감싸고 있던 촉수들이 벗어나고자 몸부림 쳤으나, 신의 손길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키이이익!
취익! 취이익!
이안은 식은땀을 흘리며 손의 형상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집중했다.
언뜻 본다면, 두 손은 나비를 품은 것처럼 소중하게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실제 그 안에서 끓어오르는 건 독을 품은 촉수. 손가락 틈으로 독기가 흘러내리자, 이안과 분신이 동시에 제 손바닥을 짜악-! 부딪쳤다.
콰아아아앙!
둘의 손짓에 따라 격돌하는 두 신장(神掌). 광풍이 몰아치며 온 사방을 덮쳤다.
드래곤의 목을 껴안은 나키나, 병사들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던 베릭은 그 여파에 휩쓸려나가지 않으려 황급히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잠시 후, 잠잠해진 격돌의 근원지를 본 둘은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번쩍-!
세상이 지워질 것처럼 환한 빛만을 남긴 채, 독을 그득하게 묻혔던 두 손바닥은 점차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이안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비틀거렸다. 고등 마법을 연달아 몇 개씩이나, 그것도 중첩으로 사용하니 눈앞이 핑핑 도는 느낌이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던 이안은 결국 힘을 놓아버렸고, 속절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안아아!”
“이안 님!”
두 사람이 이안을 받아내기 위해 달려갔지만, 제일 가까운 건 분신이었다.
그는 이안을 포옥 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더니, 조심스레 바닥에 눕히고서 사라졌다. 나키나와 베릭이 재빨리 달려와 그를 살폈다.
촤아악!
“이,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얘 왜, 왜 이래? 숨 쉬고 있지? 이안아아!”
“…시끄러워. 베릭. 머리가 좀 아프다.”
“와씨, 정신 안 잃었네. 미쳤다, 진짜. 머리만 아파? 그럼 다행이고, 씨. 나키나, 뭐 해? 이안이한테 마력 좀 넣어줘라!”
“나 이드갈 맞았어. 멍청아.”
“쳐 맞아놓고 누구보고 멍청이래?”
“…베릭, 제발. 골이 울려.”
“어엇, 알겠어. 싸물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일시적으로 증폭되었던 마력을 일순간 모두 소모한 느낌이다.
금기의 마법사 두 명을 상대로 큰 외상 없이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걸까? 이안이 신음을 흘리자, 나키나가 의아해하며 그의 옷깃을 젖혔다.
“……!”
이안의 오른쪽 팔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괴사와 비슷하게 검게 변한 피부. 아무래도 마법진을 그리는 과정에서 독기에 노출된 듯싶다.
나키나는 서둘러 제 옷을 찢어 어깨를 묶었다. 독 기운이 몸으로 퍼지지 않게끔 할 수 있는 간단한 조치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가서 치료 받는 게 급선무다.
“…베릭, 저쪽 상황은?”
“루스웨나 병사들? 다 수도로 도망갔어. 인형술사도 보니까 같이 간 것 같은데 제대로 보이지는 않더라고. 넌, 뭐 좀 봤어?”
“어. 녹아내린 것 같던데.”
“엥? 뭐가? 몸이?”
나키나는 응급처치를 마무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과 대적하느라 시야가 한정되었던 베릭과 달리, 나키나는 모든 걸 지켜봤다.
“어. 두 번째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세 번째 되니까 터지듯이 녹아내렸어.”
“우엑, 개 역겹다. 진짜.”
순간, 힘없이 누워 있던 이안의 왼손이 나키나의 팔을 잡아챘다.
“이, 이안 님?”
“…세 번째라니?”
“예?”
이안의 물음에 나키나가 멈칫거렸다. 이안은 금기의 마법사 두 명과 대적하느라, 세 번째가 생겨난 걸 몰랐다. 사실상 그가 두 명만을 상정했기 때문에 분신도 하나만 만든 것이었으니.
콰아앙!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대지가 흔들렸다. 세 번째 금기의 마법사와 싸우고 있는 마법부의 소란이었다.
이안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자,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이안아!”
“이안 님!”
뜨거운 각혈이다. 이안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피는 끝없이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으로 독 기운이 빠르게 퍼진 것이다.
이안은 붉게 얼룩진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금빛으로 빛나 세상을 뒤집었던 신장(神掌)은 온데간데없고, 피에 절은 작은 손만이 존재했다.
* * *
헤일은 처음으로 무력감이라는 걸 느꼈다.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불러내도, 마법사들이 계속해서 마력을 건네주어도, 우두커니 서 있는 금기의 마법사에게 작은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으니까.
촤아악!
“대장!”
상대의 마력을 견디지 못해 튕겨나간 헤일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숨을 골랐다.
미치겠다. 대체 금기의 마법은 깊이가 어느 정도기에, 이토록 아득한 벽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자들에게 맞섰던 이안은 정말이지…….
‘…경외롭군.’
이마저도 겸손한 표현임을, 헤일은 절실히 느꼈다.
그가 땀을 닦아내는 동안, 마법사들은 금기의 마법사를 중심에 두고 넓게 펼쳐 섰다. 그리고 곧바로 힘을 모아 기속(羈束) 마법을 발현했다.
쿠웅! 쿵!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나아가 포박까지 가능한 마법이었다. 여럿이 함께한지라, 지금껏 보지 못한 거대한 빛 기둥이 사방으로 떨어졌다.
콰앙!
“크흐으으!”
하지만 금기의 마법사는 주먹으로 빛 기둥을 내려쳐 간단히 파훼했다. 마법도 아닌, 그저 마력이 깃든 주먹일 뿐인데 말이다.
마법사들이 날아드는 기둥 파편을 피해 도망치며 비명을 내질렀고, 그 순간 뒤에서 엄청난 굉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쿠구구구궁! 쿠웅!
이안의 마법이다. 위아래로 솟아나는 금빛 손바닥. 분신, 추쇄, 회록에 이어 신장까지 이어지는, 고등 마법의 향연이었다.
마법사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쪽으로 시선을 고정했고, 금기의 마법사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이잉! 지잉!
“다, 다들-!”
“집중해! 온다!”
금기의 마법사는 날카로운 불길을 불러내어 마법사들을 공격했다.
보호막이 재빠르게 생성되었지만 무용지물. 순식간에 파훼되었고, 결국 몇몇 마법사들의 어깨와 볼, 허리를 베어냈다.
“안 돼!”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공격.
금기의 마법 앞에 모두가 무기력했다.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 상대를 두고서, 이처럼 의미 없는 전투가 있을까.
“으아아앗!”
“조심해! 제발!”
“앞에 또 온다!”
“커헉, 씨, 아오…….”
“괜찮아? 다친 자들은 뒤로 물러나!”
헤일은 속절없이 당하는 동료들을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이안 님도 금기의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고등 마법을 네 개나 중첩해서 사용했다. 그런데 자신이, 여기 있는 마법사들이, 어떠한 희생도 없지 저자를 이길 수 있을까?
“헤일 대장?”
이미 이안 님은 두 명을 맡아서 제 몫을 해냈는데, 명색이 그 밑의 대장이라는 자가…….
“대장! 잠시만요!”
“아, 안 됩니다!”
헤일은 바닥에 손을 짚고서 금기의 마법진을 그려냈다. 놀란 마법사들이 다가오려 했으나, 헤일은 금안을 번뜩이며 거부했다.
“다들 계속해!”
“대장! 절대 안 됩니다!”
“이거 못 잡으면, 우리 다 죽는다.”
우리의 죽음은 곧 바리엘의 쇠락이요, 이는 이안의 과거와 미래가 모두 부정당하는 것이다. 지금껏 지켜온 가이아의 긍지를 여기에 묻을 것인가?
아니. 절대.
“헤일-!”
지이잉! 지잉!
헤일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금기의 마법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던 그 마법진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헤일은 잠깐 한숨을 내뱉곤, 칼로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었다.
촤악!
이제 마법진에 피를 섞기만 하면 된다.
헤일은 동료들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웠다.”
이제, 온전히 내 몫으로 너희들의 미래를 만들마. 헤일이 그리 다짐하며 마법진에 피를 섞으려는 순간이었다.
타앗!
누군가가 그의 손을 낚아챘다. 피로 범벅된, 작지만 단단한 손이다. 천지를 뒤흔들었던 금빛 신장(神掌)처럼, 붉은 두 손이 허공에서 맞물렸다.
“…헤일. 심연은 보지 않아도 될 세상이다.”
이안이었다. 이를 꽉 깨문 채 버티고 선 모습. 그의 턱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헤일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금기의 마법사를 살폈고, 이내 놈이 이드갈로 인해 갇혔음을 알아챘다. 얼마간일 뿐이겠지만 일격에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이안이 명령했다.
“잠시 후퇴할 것이다. 다들, 정신 차리고 일어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