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1
제661화. 후퇴
잠시 후퇴.
이안의 지시에 마법사들이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비척거리며 한 걸음씩 걷다가 동료들의 팔을 붙들었고, 허리를 잡아주었으며, 마력을 나눠주었다.
내가 내어주었던 힘이 동료를 살렸고, 그 동료는 또 다른 동료를 살렸다. 그리고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와 결국에는 자신을 살렸다.
그들은 하나의 생명이었다. 순환하여 언제까지고 계속 이어질, 운명의 형제들.
“베릭!”
드래곤을 탄 나키나가 베릭 쪽으로 고도를 낮추며 소리쳤다. 상황을 파악한 베릭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번에 드래곤 위로 올라탔다. 두 사람은 아래로 손을 뻗어, 날 수 없거나 부상이 심각한 마법사들을 붙들었다.
타앗!
“잡아! 돌아간다!”
이안은 마법사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걸 확인하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쩌어억! 금기의 마법사를 가두었던 이드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력을 파훼하는 힘이라도, 금기의 마법까지 완벽하게 감당하지는 못하는구나. 한계가 있어.
촤아악!
그래도 다행이다. 아까 두 명과 대적했을 때는 접근하기 쉽지 않아 이드갈을 사용조차 못 했는데, 지금은 가능하지 않나.
마력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는 터라, 이안은 끝없이, 계속해서 거대한 이드갈을 생성해냈다. 마법사들이 무사히 루스웨나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이안 님.”
헤일이 피가 뚝뚝 흐르는 손으로 이안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근심이 가득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혹여 이안도 마법부를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할까 봐, 마법사들을 무사히 후퇴시키기 위해 여기 홀로 남아 있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염려할 것 없다.”
이안은 그리 이르며 헤일과 함께 몸을 돌렸다.
앞서 먼저 가고 있던 마법사들이 모두 이안과 헤일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잘 따라오고들 계시지요? 혹, 저희만 가는 것은 아니지요?’ 하는 눈빛들이 역력했다.
이안이 허공으로 발돋움하자, 그들은 그제야 안심하고는 시선을 바로 했다.
솨아아-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 포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것을 통해 쏟아진 오수(汚水)의 자국은 확연했다.
그들은 뜨거운 사막의 광풍을 가르며 루스웨나 국경선을 넘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마음에 품은 목적지는 하나였다.
‘히엘로 저택.’
이안은 루스웨나 국경선을 넘기 직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다행이다. 금기의 마법사가 추격해오지 않았다. 상대 쪽에서도 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게다.
‘다시 돌아올 때는…….’
진정 끝이란 것이 무엇인지, 내 보여주마.
이안은 그리 다짐하며 마법사들의 뒤를 따라 날았다.
잠시 후-
저 멀리, 궤멸한 히엘로 영지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저택이 보였다.
타앗.
“으윽, 아파라.”
“아이고, 힘들어. 나 잠시만 눕자.”
“아까 피 흘리던 거 누구였어?”
“헤일 대장?”
“대장 말고, 하아. 잠깐만, 나도 여기 피 난다.”
마법사들은 히엘로 저택 잔디에 데구루루 구르듯 착지하자마자 대자로 뻗어 누웠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서, 딱 죽을 만큼 힘들었다.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흐윽…….”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한 마법사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일 대장이 금기의 마법을 쓰려 했다니. 그것도 자신들 앞에서…. 그 충격적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투욱.
뒤이어 헤일이 잔디 위로 가볍게 착지하자, 마법사들이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달려들었다. 눈물, 콧물, 그리고 피로 범벅된 모습들이 참으로 가관이다.
헤일은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한 채, 안겨드는 이들을 토닥였다.
“흐윽, 흐으윽…….”
“대장 정말 너무하십니다.”
“그러시면 안 되죠. 대장은 그러시면 안 됩니다.”
다들 울면서 헤일을 질책했으나, 마음 한편으로는 그의 선택이 이해되어 더욱 참담함을 느꼈다.
신과 제일 가까운 자들이라 불리며, 권능을 행했던 자들이다. 그들이 힘을 모았으나, 금기의 마법사 앞에서는 하찮디하찮은 존재,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으니 패배감이 상당했다.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모두 우리가 할 말입니다. 대장.”
“죄송합니다. 대장이 그런 선택을 하게 해서. 그리고 고맙습니다. 저희를 위해 그러신 거 다 압니다.”
“하지만 안 돼요. 차라리 다 같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금기의 마법은 안 됩니다. 영혼이 무너지는 저주입니다.”
“그래, 헤일.”
이어서 다가온 이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유달리 창백해 보이는 낯이었다. 금기의 마법사를 상대하느라고 기운을 다한 듯 보였다.
하지만 걸음은 분명했고, 주의하는 말투는 단호했다. 이안은 얼굴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마법사들을 돌아봤다.
“내가 있는 한, 금기의 마법은 절대 불가하다. 이는 헤일 대장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단단히 심장 속에 새겨두어라.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100년 후, 미래의 바리엘에게도 전해질 의지다.
“그대들은 안식 속에 죽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위해 살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그리고 바리엘을 위해서 스스로 포기하지 마라. 그 몫은 나의 것이다. 그대들이 무너지면, 나는 부서져.”
진심이 가득 담긴 부탁이었다.
이안의 당부에 헤일이 작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구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다. 돌이킬 수 있었으니, 되었어.”
마법사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살아 있다. 여기 있다. 함께 있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위안 삼을 수 있었다.
끼이익.
“울고불고 난리들 났네. 다들 그쯤 하고 좀 들어오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그때, 저택 안으로 들어갔던 베릭이 문을 활짝 열고서 사람들을 불렀다. 장식품들이 이곳저곳 깨져 있긴 했지만, 임시 거처로 삼기에는 온전한 편이었다.
“저 새끼는 감동도 모르고, 눈치도 없고.”
“안 뒤졌으면 됐지. 다들 따라와. 보니까 해나가 치료할 거랑 음식을 조금 남기고 간 것 같거든.”
“해나가 누군데?”
“있어. 여기 저택 집사.”
마법사들은 베릭을 쫄래쫄래 따라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낡고 부서졌지만, 여기저기서 고유의 고풍스러움이 묻어났다.
이에 마법사 중 몇몇이 놀란 기척을 보였다. 황궁에서 지내던 자들이니, 저택의 아름다움에 놀란 것은 아니고…….
“여기가 이안 님 저택이라고?”
“이안 님, 여기서 어릴 적 사셨습니까? 아차, 지금도 어리시지. 송구합니다.”
“베릭도 같이 지냈다고 하던데.”
“어, 맞아. 나는 2층 방 썼었지.”
“와, 신기하다. 이안 님 저택인 게 뭔가 안 믿깁니다. 그간 사무실 작은 방 아니면 로만드로 님 저택에서 지내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리 근사하니 뭔가 놀랍습니다.”
“이쪽, 다들! 응접실로 따라와!”
실로 오랜만이었지만, 베릭의 발걸음은 아직 저택 구조를 기억했다. 그는 응접실로 마법사들을 안내한 후, 해나가 두고 간 상자를 꺼냈다.
차곡차곡,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알차게 담겨 있었다. 히엘로의 생존자들을 위해, 또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 이안과 베릭이 돌아왔을 때를 위해 남겨둔 것이었다.
“자, 찢기고 베인 애들부터 이쪽으로 오셔. 나키나! 등짝에 칼빵 제일 크게 났지?”
“살살 발라라. 아프게 하면 죽인다.”
“그러면 돌아가시든가요. 어이! 배고픈 애들은 육포 하나씩 먹고 있어.”
“어허라. 베릭이 웬일로 먹을 걸 먼저 먹으라 하지?”
“왜겠어? 자기 거 미리 빼뒀다, 이거지.”
“하나씩 먹어라, 진짜. 뒤진다.”
그들은 서로를 치료하고 먹을 걸 나누며 휴식했다.
이안 역시 물수건으로 피 얼룩을 닦아냈고, 이내 피곤하다는 듯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혼자서 금기의 마법사를, 그것도 둘이나 상대하셨으니, 버티신 게 대단합니다. 그런데…….”
마법사 한 명이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목소리다.
“이안 님. 지금 상황에 대해서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이안은 물수건 얹은 채로 허락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일까, 이제는 대꾸할 힘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에게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루스웨나가 금기의 마법을 사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저자들이 저희보다 한 수 앞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 수 앞을 보았다는 게 무슨 말이겠나? 지난 10년 동안,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성장했다는 걸 의미했다.
바리엘 마법사들이 북쪽과 남쪽으로 찢어져 있는 동안, 저들은 이드갈을 숨기고, 마법사 용병을 구했으며, 흑갑옷 기술을 개발하는 등 국력을 향상시켰다.
“저희도 분명히 그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패배했습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토올룬 개입이 있었다 한들, 어쨌거나 우리는 금기의 마법사에게 손끝 하나 댈 수 없었으니까.”
“차원이 다른 것 같더라고. 힘의 근원이 조금 달라져서 그런 거겠지만.”
“그것 외에도 체감상 루스웨나 마법사들 수준이 괜찮긴 했어. 구사하는 마법들이 대부분 중급 이상인 거, 봤지?”
“응. 어느 정도는 금기의 마법 덕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예 모르는 마법을 시전할 순 없잖아? 특히 용병 출신인 애들은 국적도 다 다르고 경험도 천차만별이라 그런지 몸놀림부터 다른 게 확 체감되더라.”
마법사들이 동조하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패배를 인정하고 나니,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다. 마음을 가벼이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진하기 위한 첫걸음임을, 그들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코렐라 대장의 물약 의존도가 너무 높았던 것 같습니다. 마력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그 때문에 안일했던 것도 있어요. 마력 확장 수련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요.”
“아코렐라 대장이 들으면 거품 물겠네.”
“대장의 물약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라, 의존도가 높았던 내 자신이 문제였노라고 이르는 거야.”
마법사의 성찰에 다른 자들도 하나씩 입을 떼었다.
“쓰던 마법만 계속 썼던 것도 있지.”
“아, 나도. 아까 기속 오랜만에 쓰는데 좀 당황스럽더라. 마법진 잘못 읽은 줄 알았어.”
“나키나도 이드갈에 두 번이나 베였잖아.”
“맞아. 뒤로 돌아와서 당했어. 뒤쪽으로도 보호막을 계속 쳐놓고 있어야 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부족했던 점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자책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단기간에 약점을 보완하고, 다음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비약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으면 이전보다 나아지는 것 아니겠나?
‘내가 성장하면 동료가 다치지 않는다. 내가 버팀목이 되면 동료가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진짜 미치도록 수련해서 신께 보다 가까이 다가가리라.
옆에서 가만 듣고 있던 베릭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라, 뭐, 뭐라더라? 왜, 그, 마검사 혈 뚫어주는 것처럼 마법사도 뭐 어떻게 하면 한 단계 올라간다고 하던데. 아님?”
“마검사 님. 대체 어디서 뭘 주워듣고 다니시는 거예요?”
“베릭. 우리는 너와 달리 혈을 뚫거나 그런 게 없어. 그릇을 넓혀간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지.”
“아니, 나 분명히 본 것 같은데. 마법사의 숲에서…….”
베릭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물수건을 내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베릭. 넌 서재로 내려오지도 않았잖아.”
“책 말고, 서랍에 이상한 게 있던데?”
“이상한 거 뭐?”
“이상한 거니까 뭔지 모르지.”
마법사들의 눈매가 가늘어졌고,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베릭은 머쓱하다는 듯 인중을 긁적거리더니 물었다.
“…다시 가서 가져올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