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2
제662화. 세 번째 금기의 마법사
엘더트는 탁자 위에 놓인 유리병을 혐오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끈적한 액체에 잠긴 눈알 두 개의 동공이, 계속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했다.
그는 이마를 짚으며 마르틴 장관을 돌아봤다.
“이게 다르시 부인이라고?”
“그렇습니다, 전하.”
“돌아버리겠군. 이런 모습인데도 안 죽고 살아 있다는 것인가?”
“동공 반응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 살아 있다 보는 게 맞겠습니다. 무엇보다 루스웨나의 마법사들이 인형술에서 깨지 않았습니다.”
“기괴하다, 기괴해.”
마법사들로 하여금 금기의 마법을 부리도록 하자 다르시 부인의 몸이 녹아내렸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토올룬의 왕을 부르짖는 것 같았다는 증언도 있었으나, 다르시 부인에게는 입이 없었기 때문에 어떠한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참으로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엘더트가 회의실을 이리저리 오가자, 이에 반응하듯 다르시 부인의 동공이 작아졌다.
“바리엘 마법사들이 거의 다 넘어왔다는 것이지?”
“예, 수로 보아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과 마검사 한 명이 선두로 진입하여 마법사의 숲에 숨어들었고, 전투가 시작된 후에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칼라마트에 있었으면서, 대체 그자는 어찌 알았단 말인가?!”
엘더트가 책상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 탓에 유리병에 담긴 다르시 부인이 크게 흔들렸다.
“송구합니다, 전하. 아무래도 히엘로령에 무언가 장치를 해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법부 장관의 영지이니, 언제든 바로 소식을 전달할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요?”
마르틴이 조심스럽게 추측했으나, 확신 따위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주장에 의견을 덧붙여줘야 할 마법사들은 모두 정신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니.
엘더트가 지끈거린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피해는?”
“마법사의 숲으로 정찰 갔던 흑갑옷과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마법사들입니다. 금기의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 두 명은 이안 히엘로에게 당했고, 나머지 한 명은-”
“아직도 거기 서 있다고?”
“예.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해가 완전히 진 후, 루스웨나는 바리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드래곤으로 마법사 숲 한 바퀴를 돌았다. 그때, 이드갈에 잡힌 마법사를 발견한 것이다.
병사들이 망치로 깨주었지만, 그는 꼼짝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엘더트는 고민하며 유리병을 살펴보다가,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머리칼이라 여겼던 희미한 실들이 유독 길게 이어져 있던 것이다. 다르시 부인의 것이라 하기에는 그 길이가 너무 길었다.
‘…실?’
인형술사의 실인가? 그게 왜 다르시 부인에게서 보이는 거지? 엘더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르시 부인도 실에 꿰여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주술자는 분명 토올룬의 왕이겠군. 몸이 녹아내리기 전, 왕을 부르짖었다는 증언과 일치한다.’
다르시 부인 또한 인형일 뿐, 결국에는 근원이 되는 존재가 건재했기에 루스웨나 마법사들도 인형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로다.
엘더트는 가만히 서 있는 마법사들 중 하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토올룬의 왕, 거기 계시는가.”
“전하?”
“듣고 있다면 대답하라. 숨어서 엿듣지 말고.”
마르틴이 당황해하며 엘더트와 마법사를 주시했다.
마법사는 별 변화가 없는 듯하다가, 이내 눈동자를 스윽 돌리며 웃었다. 몸은 중년의 사내였으나, 말투는 어린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첫인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로선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르시 부인이 저리되었으니, 앞으로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어찌 되는 것인가?”
“루스웨나의 왕께서는 걱정할 것 없이 계획한 바를 진행하시오. 그대의 목적은 바리엘 마법사들을 처리하는 것. 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도와주리다. 다만-”
마법사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금기의 마법은 인형술사가 감당하기에 좀 버거운 힘인 듯하여, 당분간은 하나 남은 것을 운용해 상대하는 게 좋겠군.”
“지금 마법사의 숲 인근에 서 있는 그것을 말하는가? 움직이는 것조차 문제가 될 만큼 부담되는 것이라면, 루스웨나는 토올룬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네. 그리고 무엇보다…….”
엘더트가 눈매를 가늘게 뜨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왕궁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다 엿들은 듯한데, 티 내지 않은 게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왜 먼저 인기척을 보이지 않았지? 내가 눈치채지 못했으면, 계속 숨어 있을 요량이었나?”
“그런 것은 아니고, 조금 미안해서.”
“미안하다니?”
마법사가 킬킬거리며 웃어댔다. 텅 빈 눈은 허공을 응시했지만, 입꼬리는 찢어질 것처럼 좌우로 늘어났다.
“마법사들이 물길을 그쪽으로 돌릴 줄은 생각 못 했거든.”
“물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으흠, 모르시었소? 토올룬에서 흘려보낸 독수(毒水)가 마법사들과 함께 포탈을 타고 루스웨나로 가버렸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칼라마트에 마법사를 붙잡아두려던 시도 중에 일어난 일이니, 이해해주시오.”
엘더트가 마르틴을 돌아봤다. 지금 저자가 말하는 독수가 대체 무엇인가? 하지만 장관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낯이었으니, 마법사는 킬킬거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금기의 마법사는 계속 거기에 세워둘 것이오. 혹여 바리엘이 다시 루스웨나를 침입하면, 이것들이 1차 저지선이 되겠지. 하완 쪽 ‘인형’에도 신호를 내릴 것이니 조금만 버티시면 좋겠군.”
“잠깐만. 하완에서 밀고 들어오면 히엘로에 중앙군이 당도했을 시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완은 메렐로프 인근에 대기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내가 알아서 판단해.”
마법사의 대꾸에 엘더트의 목덜미에 핏줄이 섰다.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본인은 저 멀리서 인형 줄만 까딱거리는 주제에.
마법사는 기괴한 각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아무튼, 덕분에 칼라마트가 완전히 비었다는 걸 알았네. 고마워.”
칼라마트의 마법사들이 모두 루스웨나에 와 있다는 건, 황제가 혼자 있다는 뜻. 마검사들이 옆을 지키고 있겠지만, 마법사에 비견하겠는가.
“좋은 소식 있으면 전하도록 하지. 그럼, 건투를.”
“이봐!”
엘더트가 다급하게 불렀으나, 토올룬 왕은 마법사와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
잠시간 소매 끝자락만 쥔 채 고민하던 엘더트는 마르틴을 돌아봤다.
“토올룬 왕이 말한 독수가 무엇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전투 당시에는 정신이 없었고, 드래곤을 타고서 전방을 둘러볼 때는 너무 어두워 식별이 불가했다. 사막 쪽에서 흘러들어온 독수가 어디까지 번졌는지, 흙과 식물의 상태는 어떠한지 볼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다시 드래곤을 보내 확인하라. 혹여 오염수가 흘러들어오고 있다면, 국경 쪽으로 땅을 파서라도 막아내! 마법사의 숲이 훼손되면 모든 계획이 의미를 잃는다.”
“아, 알겠습니다. 전하!”
“젠장.”
콰앙!
마르틴이 허겁지겁 사라지자, 엘더트는 다시금 짜증스럽게 책상을 내려쳤다.
루스웨나가 바리엘 마법사들과 전투하는 동안, 토올룬은 칼라마트에 홀로 남은 황제를 노리려는 것 같았다. 바리엘 대군에 맞설 수 있을까 싶지만, 저쪽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한 거겠지.
“하아.”
엘더트는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한 다르시 부인의 눈알을 내려다봤다. 토올룬 왕은 저것으로도 상황을 볼 수 있을까?
돌연 불쾌해진 그는 유리병을 서랍 안으로 치워 넣었고, 넋 잃은 마법사들을 지나쳐 집무실을 나섰다.
“긴급 소집회는?”
“진행 중입니다, 전하.”
바리엘 마법사들이 후퇴했다. 이는 저들에게도 만만찮은 피해가 있다는 뜻. 엘더트는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임을 인지했다.
“왕궁 활을 내와라. 다음 전투에는 나도 참전할 것이다.”
* * *
“아이, 씨.”
베릭이 짜증스럽게 코를 킁킁거렸다.
X 됐다. 호기롭게 사막을 가로질러 다시 루스웨나 국경선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마법사의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귀신같이 길을 잃어버린 게다.
‘건물도 없고, 길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네.’
게다가 한밤중. 나무들도 다 거기서 거기라, 자신이 제대로 걷고 있는지조차 확인이 불가했다.
베릭은 잠시 멈춰 서서는 팔짱을 꼈다. 어디선가 더러운 지린내가 나는 것 같긴 한데, 바람과 한데 섞여드니 잘 모르겠다.
“베릭. 너 혼자 갈 수 있겠어?”
“맞아. 오른쪽 왼쪽 구분도 못 하는 게. 어두워서 더 힘들걸?”
“나를 뭐로 보고. 나 이제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거든? 그리고 거기에 드래곤이랑 흑갑옷 기사 애들 피 냄새 남아 있어서 금방 찾아.”
“걱정되는데. 같이 가줄까?”
“웃겨. 너희들은 거기 가본 적도 없잖아. 나랑 이안이 말고 또 누가 있어?”
“안 가봤어도 너보다 잘 찾을 듯.”
“여기 루스웨나 출신 마법사 있는데?”
“네, 저요. 근데, 우웁-”
“얼굴 시퍼레져서는 금방이라도 뒤질 것 같구먼. 괜찮아! 됐어! 루스웨나 애들이 정찰 돌고 있을지도 모르고, 혹시 뭔 일 나면 짐이나 되지.”
“이안 님, 괜찮겠습니까? 베릭 혼자 보내도?”
“…쉿. 이안 님 잠깐 잠드셨어.”
“됐네. 내가 이안이 깨기 전에 돌아온다. 아니면 내가 너네들 동생임.”
“원래 동생이잖아, 새꺄.”
베릭은 저택에서의 대화를 떠올리며 낑낑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루스웨나 출신 마법사를 데리고 올걸 그랬다. 그는 가져온 육포를 질겅거리며, 마법사가 그려준 지도를 펼쳤다.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에 의지해 겨우 지도를 식별해내는 베릭. 지도를 준 마법사는 그의 특성을 생각하여 최대한 단순하고 명확하게 그려주었으나-
“이걸 지도라고, 쯧쯧. 똑똑하다는 새끼가 더하네, 진짜.”
베릭은 지도를 거꾸로 든 채 혀를 끌끌 찼다. 냄새로만 쫓아가는 게 제일이긴 한데, 바람이랑 쿰쿰한 물 냄새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는 단검으로 수풀을 대충 헤치며 걸었다. 계속 걸어가다 보면 뭐가 보이겠지, 뭐.
휘이이익-!
그때, 하늘 위로 드래곤이 날아들었다. 놀란 베릭이 몸을 웅크렸고, 드래곤은 주위를 정찰하듯 계속 배회했다. 루스웨나 측이 마법사의 숲 인근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진짜 귀찮네.’
안 그래도 길 찾느라 바쁜데 몸까지 숨기고 있으려니 귀찮고 답답해 죽겠다. 확 그냥 한 놈 잡아버려?
지이잉! 지잉!
베릭은 마력을 개방하며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봐줬다, 도마뱀 새끼.”
그러고는 사사삭, 기척을 낮추며 다시 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조금씩 숲 중앙으로 갈수록 오염수 냄새는 옅어지고, 피 냄새는 짙어졌다.
“오!”
얼마 안 가, 베릭은 오두막 마을을 발견했다. 뭉텅뭉텅 꺾인 채 널브러진 나무들, 드래곤 사체, 흑갑옷 잔해들이 그대로다.
베릭은 조심스레 마을 회관 같은 곳으로 들어가 서랍장을 열었다.
“여기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
상자, 상자, 세모난 상자…. 베릭이 기억을 더듬으며 여기저기 뒤지고 있는데, 창문으로 그림자 하나가 들어섰다.
스산하고 불쾌한 기운이 등 쪽을 엄습하자 베릭은 멈칫거리며 뒤돌아보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웃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창문을 얼굴에 딱 붙이고 있는 저자는 다름 아닌,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 번째 금기의 마법사’였다. 베릭의 마력을 감지하여 자연스레 이끌리듯 온 것이다.
“이, 씨-!”
지이잉, 지잉!
퍼어엉!
놀란 베릭이 반사적으로 붉은빛의 마력 검을 터트렸고, 이내 오두막 창문이 와장창 깨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