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3
제663화. 걱정
포탈이 조금씩 작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닫혔다.’
시원하게 포탈 안으로 흘러내리던 통로가 사라지자 강물 수위가 점점 높아졌고, 몰려 있던 주민들은 수군대며 성벽 위쪽을 바라봤다. 바리엘의 황제가 저곳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게다.
진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굽이치는 강물을 살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부하들에게 일렀다.
“너무 이른 것 같은데.”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폐하. 헤일 대장은 분명 닷새를 기준으로 그보다 짧을 것이라 하였는데, 이는 고작 이틀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모든 게 확실해졌다. 이안이 돌아오지 않은 건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고, 이에 마법사들 또한 전력을 다해 대응하고 있음이 말이다.
진은 손끝을 딱딱 튕기며 지시했다.
“광산에 가 있는 마법사들에게 모두 집합하라 이르라. 이 사안에 대해 중히 논의할 것이다.”
“예, 폐하.”
아코렐라와 그 직속 부하들은 마력석관리부 소속인지라 현장 업무를 대신하기에 무리가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도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터.
“그쪽에 인형술사가 있다면, 필시 마법부 전력 대부분이 자리 비웠음을 눈치챘겠지. 마법사들을 불러들여 칼라마트 안에 배치하는 게 안전하다.”
“폐하. 그것은 토올룬의 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신지요.”
“이미 그들은 시작하지 않았나.”
진이 고갯짓으로 강물을 가리켰다. 탁했던 강물이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다만, 햇빛에 반사된 부분은 붉은 기까지 감도는 것 같았다.
“폐하. 하면, 클라크와 함께 바리엘 병사들을 보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제이럿이 제안했다.
클라크는 진의 명령대로 홀로 북쪽으로 향하려 준비 중이었다. 어차피 사람을 보내는 마당에 위험이 예견되었다면, 인원을 더하는 게 안전하지 않겠나.
물론 클라크의 목숨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황 전달’을 무사히 마치기 위함이다.
“기병 십수 기 정도면 효율적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트웰러 장관.”
“알겠습니다, 폐하.”
제이럿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의 호명이었다. 이에 트웰러는 즉각적으로 허리를 숙이고는 성벽을 내려갔다.
이제는 결정의 시간이었다.
진은 턱을 매만지며 한쪽에 걸린 가이아 지도를 살폈다. 바리엘 동부 지역이 공격받은 지금, 이제 어찌하면 된단 말인가?
‘본대를 회군, 중앙으로 이동시키면 어느 정도 대응은 될 것이다. 하나 그러하면 버고스가 비게 되니, 토올룬이 밑으로 치고 내려올 수 있다…. 그렇다고 중앙을 계속 비워둔 채 여기 있자니 동쪽이 우려스러워. 중앙을 통해 소식을 전달받는 것도 너무 느리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일장일단이 뚜렷한 상황. 진은 한숨을 삼키며 지도에 표기된 국경선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최선은 이안 경과 마법사들이 루스웨나와 하완을 빠르게 정리하고 복귀하여 토올룬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 놓고 중앙으로 향할 수 있을 터인데…….
스윽.
그때, 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매로 코를 가렸다. 짙어진 강물에서 악취가 강하게 풍겨, 성벽 위까지 올라온 것이다. 주민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폐하, 이만 내려가심이 좋겠습니다. 악취가 너무 강하여 우려되옵니다.”
“알겠다. 클리포포드에는 기별을 넣었는가?”
“전서구를 보냈으니 너무 늦지 않게 닿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다시 왕궁까지 가려면, 시일은 좀 걸릴 듯합니다.”
칼라마트에서 클리포포드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시 프로드호나 왕궁까지 가는 데엔, 바리엘을 횡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일이 걸릴 터.
진이 걱정스레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리포포드가 저 오수를 잘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황제의 우려에, 신하들은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침묵할 뿐이다.
칼라마트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 버고스 주민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빌어댔다.
“바리엘의 황제이시여. 제발 저 강물을 정화해 주십시오. 버고스의 땅이 말라갑니다. 그리고 저희가 말라갑니다!”
“전지전능한 마법사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폐하!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마차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울음이 참으로 간곡했다.
진은 불편한 마음에, 애써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바리엘의 백성은 아니지만, 황제 된 자로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 이르는 자들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차가 성에 도착하자, 미리 와 있었던 트웰러가 그를 맞이했다.
“폐하. 기마병들이 준비됐습니다. 간단한 채비만 마치면 바로 출발할 것인데, 혹 보고 받으시겠습니까?”
“…되었다. 그대가 대신하여 잘 격려해주고-”
손짓으로 물리려던 진은 문득 멈칫거렸다. 멀리서 말을 끌고 지나가는, 낯익은 여인을 본 것이다. 머리를 대충 묶고 사내처럼 어깨 소매를 걷어붙인 여인은, 에이린이었다.
“저 여인도 가는가?”
“예. 그렇습니다.”
“…어째서?”
기마병은 특별히 선별되어 오랫동안 훈련받은 자들이다. 하나 에이린은 보병이지 않나.
의아해하는 진의 물음에 더욱 의아한 것은 트웰러였다.
“강에 섞인 것은 명백한 독(毒)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니, 이는 그것의 근원이 마물이거나 그에 준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또한 북쪽은 토올룬 신전과도 인접한 곳이니, 마법사나 마검사의 파견이 여의치 않는다면 마땅히…….”
성기사인 에이린을 보내는 게 맞지요.
트웰러가 말끝을 흐리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히이잉, 가만 서 있던 말이 뒷발을 긁어대며 울 뿐이다.
진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실언했다는 걸 깨달은 것인지 무덤덤한 낯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하여 에이린에게 의사를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 나서겠노라 하였습니다. 제가 보아도 기개가 상당합니다. 이는 분명히 바리엘의 홍복이지요.”
“…알겠다.”
진은 체념하듯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클라크가 어쩌고 시아오시가 저쩌고, 속으로 흉볼 것이 아니지 않나. 에이린이 엮여 드니 진 역시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뒤로 따라붙던 제이럿이 황제의 심기를 어렴풋이 가늠하여 덧붙였다.
“폐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들의 임무는 강물의 이상 징후를 확인하여 전달하는 것이지, 클라크를 호위하거나 전투에 임하는 게 아닙니다.”
“누가 걱정을 한다 그러는가. 나는 자랑스러운 바리엘 병사들을 믿고 있으니, 임무를 성실하고 완벽하게 수행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아, 예.”
아, 예에? 진의 눈매가 가늘어졌으나, 거기까지였다. 진은 애써 말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오히려 지금의 걱정이라 하면 이안 경과 마법사들이지. 아마 그대는 베릭을 떠올리고 있겠군.”
“…워낙 말썽꾸러기인지라.”
무뚝뚝한 답변이었으나, 애정만큼은 분명했다. 비단 제이럿만이 아니라 황궁친위대원들 모두가 베릭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을 터.
제이럿은 짐짓 대수롭지 않은 척, 헛기침으로 베릭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댔다.
* * *
“시발!”
콰아아앙! 쾅!
화르륵!
놀란 베릭이 반사적으로 마력을 터트리자, 오두막이 불길에 휩싸였다. 반질반질 닳은 가구들과 세월을 품은 물건들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마법사는 깨진 창문 안쪽을 힐끔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안 히엘로는 없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존나 얼굴 살벌하다, 진짜.”
지이잉! 지잉!
마법사의 맛 간 눈알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에 베릭은 마력 대검을 고쳐 쥐고는 자세를 낮췄다. 전투에서 보았던 세 번째 금기의 마법사가 분명했다. X 같지만, 마법사들이 떼로 덤벼도 이기지 못했던, 그 자식.
이안도 저놈들 상대하는 데 고전한 마당에, 자기라고 승산이 있을까?
‘조졌네.’
그럴 리가.
베릭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되든 안 되든 덤벼들어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 그에게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바로, 여기서 찾은 의문의 상자를 마법사들에게 가져다주는 것.
‘이거 없으면 애들 개발려서 안 돼.’
마법사들이 제 몫을 해낸다면, 이안이 감당할 위험이 줄어든다. 홀로 서서 모든 걸 짊어지는 게 아니라, 동료들에게 어깨를 기댈 수 있게 된다는 거다.
베릭은 품속에 상자를 챙겨 넣은 다음 주위를 둘러봤다.
‘도망칠 수 있을까?’
틈을 보는 건 둘째 치고, 마법사의 기동력을 따돌릴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잘못했다간 히엘로 저택까지 꼬리에 달고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사막 쪽으로 몸을 피하는 게 좋겠다.
“이안 히엘로는 어디 가고 너 혼자 있지?”
“이안이 너네 집 갔다, 인마.”
“이상하네, 다른 마법사도 없고. 왜 혼자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네가 더 이상해. 엿이나 처먹어!”
촤아아악!
베릭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한 바퀴 구르자마자 바로 발돋움하여 방향 생각하지 않고 직진했다. 일단 숲에 숨어들어 상대를 따돌리고, 그때 가서 길을 찾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길 헤매는 건 매한가지니까.
타닥타닥!
어둠 속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베릭은 공간이 보이는 대로 몸을 움직였고, 이내 슬쩍 뒤쪽을 쳐다봤다. 따라올 생각은 없었는지 놈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건가? 그냥 등신이었나? 그리 생각하며 다시 앞을 쳐다보는 순간-
“…이, 씨!”
화아아악!
어느새 코앞에 선 마법사가 불길과 함께 입을 쩌억 벌렸다.
놀란 베릭이 몸을 틀었지만, 관성 탓에 쉽지 않았다. 대검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나뒹구는 것도 잠시. 베릭은 다시 몸을 일으켜 있는 힘껏 도망쳤다.
“베릭-!”
하지만 얼마 안 가, 마법사에 의해 또다시 앞이 가로막혔다. 결국 베릭은 도주를 포기하곤 무릎을 짚었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놈의 위아래를 훑었다.
“어디서 친한 척 이름을 부르고 지랄. 하아, 개힘드네. 너 대체 어떻게 했냐? 너도 이안이처럼 분신술 썼냐?”
그럼 힘이 반절로 분산되었다는 뜻이니, 할 만한가?
“이안 히엘로는 어디 가고 혼자, 여기서?”
“분신술이냐고. 아니면 다른 거?”
“마법사의 숲에 볼일이 있는 거지? 뭐야?”
“딴 나라 사람이라서 그런가, 말이 존나게도 안 통해요.”
“말해. 안 그러면 죽어?”
“그래? 그럼 우리 내기할래?”
베릭이 붉다란 마력 대검을 생성해내며 씩 웃었다. 도망치는 게 의미 없다는 건 알았지만,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자신이 이기면, 앞으로 마법부 놈들한테 형님 대접 제대로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먼저 뒤진 놈이 대답해주는 걸로!”
촤아악!
베릭의 대검이 화염을 쏟아내며 불타올랐다. 어두웠던 숲이 순식간에 환해지고, 잠들어 있던 작은 짐승들이 놀라서 흩어졌다.
마법사는 동의한다는 듯 웃으며 가볍게 손짓했다.
“그거 좋네.”
“덤벼-! 대가리 깨줄라니까!”
「은형(隱形)」.
마법사가 주문을 영창함과 동시에, 모습이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주위는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어느새 침묵만이 남았다.
“이 뭔 개수작?”
어리둥절한 베릭. 이내 그는 자신의 불꽃이 점차 흩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불꽃은 이내 벽의 형태로 바뀌더니, 오두막을 이루었다.
“또다.”
익숙한 공간.
베릭이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그 오두막이다. 러더포드 때와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고 ‘황궁친위대 베릭’으로서 서 있다는 점.
“…뭐 하는 짓거리인데. 개빡치게.”
투둑, 투둑,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 수프 냄새, 습기를 머금은 나무 냄새가 생생했다. 베릭은 홀린 듯 안쪽 방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다.
아니, 아무도 없어야 했다.
“…….”
침대 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척과 창고 쪽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숨소리. 베릭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문손잡이를 잡아당겼고, 이내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베릭이었다.
어릴 적 자신이, 눈시울을 붉힌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 짜증 나네.’
베릭은 직감했다. 이 환상을 깨트리려면, 아이를 죽여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어쩌면, 저 침대 밑에 숨어 있는 자신의 누이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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