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4
제664화. 악몽의 오두막
벌컥!
베릭은 오두막 문을 열었다.
바깥은 존재하지 않았다. 창문도 마찬가지다.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소리가 이토록 생생한데, 창문을 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베릭은 벽에 머리를 쿵 박으며 욕설을 지껄였다. 개 같은 마법사 새끼, 하필이면 이딴 걸 보여주고 지랄. 인기척이 나서 뒤를 돌아보니, 어린 베릭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와씨-”
짧게 뻗친 붉은 머리칼, 쭉 찢어져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매. 어릴 때 자신이 이랬다고? 베릭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잘 모르겠다. 남도 아니고, 어릴 적 자신을 온전하고 또렷하게 기억하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꺼져.”
“뭐?”
“우리 집에서 꺼지라고오!”
어린 베릭이 무딘 낫을 꺼내 들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잔상.
그래. 저것은 알겠다. 어릴 적, 자신이 창고에서 들고나와 휘둘렀던 무기다. 무뎌질 대로 무뎌져서는, 풀 한 포기조차 벨 수 없었던 이 빠진 낫.
촤악! 촥!
아이는 서툴게 낫을 휘두르며 베릭에게 덤벼들었다. 피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너무 어렸고, 작았으며, 흥분해 있었으니까.
베릭이 몸을 틀어 전부 피하자, 아이는 핏대를 세우며 자지러지듯 소리쳤다.
“아아아악! 아악!”
베릭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의 절규가 무엇을 뜻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침입자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침입자를 막지 않으면, 엄마와 누이들이 죽을 것이라는 절망감.
베릭은 가슴 한쪽이 아리는 것을 무시하며, 아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여긴 왜 왔어! 꺼져, 우리 집에서 꺼져!”
“진정해. 나다. 나, 너라고.”
“개소리 지껄이지 마! 돌려줘! 돌려주고 당장 꺼지란 말이다!”
퍼억! 퍽!
어린 베릭이 팔과 다리를 마구 휘둘러댔다. 아이의 발악에, 베릭은 문득 여길 나갈 방법을 깨달았다.
마법사는 개 거지 같은 환각으로 자신의 목적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안 없이 왜 여기 홀로 왔는지, 와서 무엇을 하였는지, 그리고 주머니에 든 것은 무엇인지.
타앗!
베릭은 입매를 굳히고서 어린 자신을 거칠게 떼어냈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구석으로 나뒹굴어 처박힌 어린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이가 흘린 코피가 마룻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만해라. 개 X 같은 마법사 새끼야. 넌 진짜 내가 직접 찢어 죽인다.”
“흐아아압!”
어린 베릭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의 자신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덤벼들고 끈덕지게 들러붙었다.
베릭은 한 손으로 아이의 멱살을 붙든 채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이걸, 이 아이를 내 손으로 죽이는 수밖에 없나?
“끄윽…….”
발끝이 대롱대롱 뜬 아이가 신음을 흘려댔다.
‘너를 베면, 나는 다시 패배감에 물들겠지. 폭풍우 치던 그날 밤처럼.’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이미 그걸 겪었고, 깊은 흉으로 남아 여기까지 자라왔다. 그러니 너도, 부디 너무 아프지 않길 바란다.
베릭이 다른 쪽 손으로 검을 빼 드는 순간이었다.
“안 돼!”
“……!”
베릭의 눈이 커졌다. 침대 밑에 숨어 있던 여자아이들이 눈물범벅으로 내달려온 것이다. 심장이 가라앉았다.
“안 돼요! 제발 살려주세요!”
“베릭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차라리, 차라리 저희가 갈게요! 네? 이러지 마세요, 흐윽-!”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기억 속 흐릿했던 누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밀조밀 귀여웠던 내 누이들. 베릭이 멈칫거리자, 아이는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낫으로 그었다.
솨악!
무딘 것이었지만, 살을 베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베릭의 턱 아래로 기다란 상처가 났고, 피가 흘러내렸다. 뜨겁고, 축축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하아, 하아-”
“베릭, 괜찮아?”
“오빠, 죽지 마. 으아아앙!”
베릭은 주춤주춤, 턱 밑을 붙잡은 채로 뒷걸음질 쳤다.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마음 한쪽으로는 저것들이 고작 환영에 불과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젠장.”
자신은 그렇다 쳐도, 누이들을 어찌 자신의 손으로 죽여? 어릴 적, 동생들을 지키지 못한 것이 평생의 짐이었는데, 지금 저들을 베라고?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데?
“베릭!”
“안 돼, 가지 마!”
“죽어어엇!”
어린 베릭은 호흡을 고르자마자 다시 달려들었다.
“여긴 왜 왔어!”
베릭이 아이의 머리채를 붙잡자, 누이들이 놀라서 함께 덤벼들었다. 마찬가지로 너무 가볍고, 연약하며, 따뜻했다.
아이들은 베릭의 허리를 붙잡고 흔들며 연신 그러지 말라 울부짖었고, 어린 베릭은 틈을 놓치지 않고 곧장 낫을 휘둘렀다.
퍼억!
하지만 거기까지.
베릭은 이를 꽉 깨물고는 아이의 복부에 주먹을 때려 박았다. 신음과 함께 어린 베릭이 쓰러지자, 갑자기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상하다.
쿵, 쿵쿵, 쿵…….
베릭은 가슴 부근에 손을 올리곤 멈칫거렸다. 익숙한데, 이게 뭐였더라? 상당히 불쾌하고 더러운 이 느낌…….
‘절망이다.’
어릴 적, 괴한들에게 일격을 당했을 때 느꼈던 그것. 어린 베릭이 자신에게 맞아 쓰러지는 순간 감정이 동화되며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베릭은 한쪽 벽을 붙들고는 신물을 토했다.
“커헉-!”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 탓에 신체의 장기가 이상 반응을 보인 게다.
베릭이 한발 물러서자, 이번에는 누이들이 바닥에 놓인 낫을 집어 들었다.
“제발, 그러지 말자.”
베릭이 인상을 찌푸리며 애원했다. 그러나 누이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쳤다.
“그쪽이나 그러, 그러지 마세요. 제발. 여기서 나가주세요. 저희들을 살려주세요.”
“제발요, 여긴 아무것도 없어요.”
“알아! 나도 안다고. 우리 집 쥐뿔도 없이 찢어지는 곳이었다는 거, 나도 잘 알아!”
“그런데 여긴 왜 왔어요!”
“애들이-!”
베릭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 쉬며 대답할 뻔했다. 바리엘 마법사들을 돕기 위해서, 어떤 물건을 가지러 왔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가까스로 정신 차리곤 말을 잘랐고,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위험했다.
‘여차하면 진짜 불지도 모르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베릭은 이를 꽉 깨물고서 누이들을 노려봤다. 작은 여자아이 둘. 손 하나로 쉽게 죽일 수 있는 존재.
괜찮다. 저것들은 환영이다.
“꺄아아악!”
베릭의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누이의 목을 움켜쥐었다. 아이는 버둥대며 피하려 했으나, 절대 불가했다. 끔찍하게도, 손바닥 아래에서 작게 뛰는 맥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억, 억.”
살려달라 애원하는 듯한 눈빛. 하나 실제로 뱉어지는 소리는 목젖을 쥐어 짜내는 신음에 불과했다.
베릭은 느꼈다. 따뜻한 피부의 촉감, 눈물에 젖은 소매, 정돈 안 된 손톱, 한 가닥 한 가닥 윤기 나는 머리칼, 터질 듯 붉게 충혈된 두 눈…….
베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보지 말자, 그리하면 덜할 것이다. 베릭은 자신이 눈물 흘리고 있다는 걸 알아챌 틈도 없었다. 저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자신은 죽이기 위해 필사적이니까.
“제발, 제발…….”
사라져라.
베릭이 애원하며 계속 누이의 목을 졸랐다. 죄책감을 넘어서 본인에 대한 혐오가 들끓었다. 누이의 눈가로 눈물 한 방울이 톡 떨어지자, 베릭은 멈칫하며 손에 힘을 풀었다.
“하아, 하, 커억-!”
아이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울부짖었고, 베릭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몇 번이고 바닥을 내려치는 것 외에, 그에겐 이 분을 풀 방도가 없었다.
“개 같은 놈아!”
베릭은 어디선가 듣고 있을 마법사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살면서 이토록 살의를 느낀 적이 없다고, 너는 정말이지, 내가 고통스럽게 죽여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작은누이가 조심스럽게 베릭에게 다가왔다.
“저기-”
아이는 손을 덜덜 떨며 빌어댔다.
“저희, 이대로 보내주시면 안 돼요?”
“…그래, 좀 가라. 진짜 꼴도 보기 싫다.”
“하지만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모, 모르겠어요.”
“…안전하고, 따뜻한 곳으로.”
“거기가 어딘데요?”
지친 베릭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 안전한 곳은, 바로 동료들이 있는 곳.
작은누이가 자신의 손등을 가볍게 쥐었다.
“어디로 가요?”
위잉위잉, 귓가에 늘어지게 울리는 목소리-
베릭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히엘로.”
“히엘로? 하지만 여기도 히엘로인걸요.”
아이가 속삭였다. 히엘로의 어디가 네놈이 일렀던 안전하고 따뜻한 곳이냐고 말이다.
몸을 축 늘인 채 주저앉아 있던 베릭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나운 눈매와 잔뜩 구겨진 눈썹. 그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누이의 얼굴을 덥석 붙잡았다.
“…수작질 좀 그만해.”
지금 이안과 마법사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묻고 있는 거지, 이 개 같은 놈아? X 까!
베릭이 험악한 인상을 짓자, 누이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둘 중 하나가 죽지 않으면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오두막의 밤이었다.
* * *
이안은 눈을 떴다. 소파 위였다.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던 게다. 몸을 덮은 담요가 다섯 장이나 되었다. 이 때문에 땀을 흘린 것일까?
이안이 조금씩 몸을 일으켜 움직이자, 인기척을 느낀 마법사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모두 응급처치를 하거나, 식사를 하는 등의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이안 님. 세상에, 땀을…….”
“아니, 누가 담요를 이렇게 올렸어? 세 장까지만 하라니까 말 더럽게 안 듣지?”
“잠자리가 불편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워낙 곤히 주무시길래 옮기질 못했습니다. 아까 기절하듯 쓰러지시더라고요.”
“아니, 괜찮다. 얼마나 잤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한두 시간?”
“예. 식사하시겠습니까? 집사라는 분이 굉장히 꼼꼼하신 것 같더라고요. 배를 채울 수 있는 게 꽤 남아 있습니다. 이거, 굴라볶음 맞지요?”
이안은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눈을 붙였음에도 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 안 나는 악몽을 꾼 것처럼, 심장이 크게 뛰고 불안한 기분이다.
“…베릭은?”
모두가 빠짐없이 제 옆에 있었지만, 딱 한 명, 베릭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이안의 담요를 치워주며 일러줬다.
“마법사의 숲으로 갔습니다. 아까 자기가 봤던 물건 가져오겠다면서요.”
“아, 그것.”
“저희도 함께 갈까 생각하긴 했는데, 다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다며 베릭 놈이 거절했습니다. 길치라 걱정되긴 하지만, 드래곤 피 냄새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자신 있어 보이더라고요. 새벽까지 안 오면 저 친구가 마중 가보려 합니다.”
마법사가 가리킨 곳엔 구석에서 몸을 만 채 코를 골고 있는 루스웨나 출신 마법사였다. 출신이 출신이니만큼 숲길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를 가다듬었다.
“저 마법사도 베릭이 말한 게 뭔지 모르겠다고 하던가?”
“예, 아무래도 떠나온 지 10년이 넘은지라 모르는 눈치더라고요. 두 번째 세대, 그러니까 루스웨나에서 새로이 배출된 마법사들과 연관된 것이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안 님, 왜 이렇게 땀을…….”
“모르겠다.”
이안은 작게 한숨 쉬며 창밖을 살폈다. 어둠이 완연하다. 히엘로에서 살아 있는 자라곤 자신들뿐이라는 뜻.
“…이상하게 불안해.”
“베릭이 걱정되셔서요?”
이안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는 창문 커튼을 친 다음 마법사들을 돌아봤다.
“그대들은 여기 있어. 잠시 다녀오겠다.”
“절대 안 됩니다! 회복 덜 되셨어요!”
“예, 그리고 가실 거면 저희랑 같이-”
이 불안감이 대체 무얼 뜻하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안은 저도 따라가겠노라 박박대는 마법사들을 진정시키며 다독였다.
“베릭과 만나 금방 돌아오겠노라 맹세하마. 돌아와서, 다시 저 자리에 누워 그대들과 함께 쉬겠어. 그러니 그대들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마력을 회복해. 그것이 나를 돕는 일이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