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5
제665화. 세모난 상자에 들은 것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어린 베릭은 쓰러진 채 숨만 쌕쌕거렸고, 두 누이동생은 애원하는 눈으로 자신만 내려다보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인지되지 않았다. 모든 게 피곤하고 힘들었다. 베릭은 자신도 모르게 눈가를 닦아내며 힘을 풀었다. 정신이 몽롱해지니, 이게 꿈인가 싶으면서도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윽.
누이가 베릭의 팔을 조심스레 잡았다. 작고 따뜻한 손. 옆에서 지켜보던 작은누이가 큰누이를 끌어안으며 고개 저었다. 가까이하지 말라는 듯 말이다. 이게 바로 최악인 점이다.
“정신 차려요.”
“언니, 하지 마.”
차라리 자신을 죽이려고 든다면, 악의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면, 베릭은 저들을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저것들은 누이의 낯을 한 채 이 기이한 시간선에 실제로 살아 있다. …분명히, 살아 있다.
“으윽.”
그때, 어린 베릭이 깨어났다. 복부를 세게 맞은 탓에 신물을 다 토해낸 상태. 아이는 비틀거리며 겨우 무릎을 짚었다. 누이들이 재빠르게 달려가 아이를 부축해줬다.
베릭은 그 모습을, 두 눈에 꾹꾹 담았다. 어릴 적, 셋을 보고 있던 엄마의 시선이 이러했을까?
“죽여, 누이들, 비켜…….”
“존나 힘드니까 그만 좀 해라, 시발. 난 너희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고. 차라리 배에 구멍을 낼 것이니, 개 같은 마법사 새끼.”
“그럼 대체 여긴 왜-”
“나도 몰라, 인마!”
어린 베릭이 인상을 찌푸리며 베릭을 찬찬히 살폈다.
그 순간-
쿵쿵!
“……!”
누군가 오두막 문을 두드렸다. 누이들은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고, 어린 베릭도 그대로 굳어서 문 쪽만 쳐다봤다.
쿵!
‘그날’과 똑같았다. 아버지를 찾아온 빚쟁이들이 문 두드리는 소리. 누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베릭의 팔을 끌어당겼다.
“숨어요, 어서 숨어요.”
“잠깐, 괜찮아. 숨지 않아도 돼.”
“안 된다고요! 저거 열면 우리 다 죽어요! 제발!”
“누이, 이쪽으로 와!”
어린 베릭이 누이들을 침대 밑으로 숨겼다. 진짜가 왔노라, 진짜로 자신들을 죽이려는 ‘그들’이 왔노라. 겁에 질린 아이들에게, 베릭은 이제 걱정할 것 없다며 중얼거렸다.
“내가 무엇 때문에 강해졌는데.”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자 강해지길 늘 열망했다. 마법사 새끼, X 같지만 이런 건 또 한편으로 고맙네.
…그날, 지금의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베릭은 수없이 상상했다. 살아 있을 엄마와 누이들의 웃음을. 그리고 어쩌면 다른 가족처럼 평범했을지도 몰랐을 자신의 삶을.
촤아악!
베릭이 마력 대검을 꺼내 들자, 어린 베릭의 눈이 커졌다. 아이는 뒷걸음질 치며 창고로 몸을 숨겼다.
쿵!
“누군데?”
“…러 왔다. 열어.”
“어, 그래. 좋아. 대신-!”
벌컥!
촤아아악!
베릭이 문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순간 어두웠던 세상이 일그러지고, 떨어지던 빗물이 뚝 멈췄다.
오두막 밖으로 나간 베릭의 몸 또한 마찬가지. 거센 바람이 베릭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며 오두막 안쪽으로 몰려들었다.
‘안 돼.’
누이들과 어린 자신을 죽이려는 시도다.
베릭은 이를 꽉 깨물며 밀려오는 바람을 몸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오두막이 부서지고, 가구들이 날아갔다. 이어지는 누이들의 찢어질 듯한 비명과 울음.
베릭은 눈물 흘렸다.
‘안 돼!’
어둠이 점점 차올랐다. 베릭은 누이들에게 달려가고 싶었으나, 자신의 몸이 지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 아득히 먼 곳에서 번쩍이는 빛줄기. 베릭에게 일직선으로 내려꽂혔는데, 놀랍게도-
‘어라?’
따뜻했다.
* * *
솨아아.
이안은 고도를 높이며 하늘을 날았다.
밤바람이 차고 거셌으나 피할 방도가 없다. 마법으로 보호막을 펼치면 밤하늘을 환히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숲 한쪽에서 피어오르는 저 불길처럼.
‘불? 횃불인가? 루스웨나 병사들인 것 같은데.’
단순한 화재일까, 아니면 베릭과 관련된 것일까.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점점 더 많은 인원이 마법사의 숲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불을 끄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이안은 고도를 낮추어 숲속으로 들어섰다. 사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만 가득한 곳. 하지만 기운은 범상치 않았다.
‘금기의 힘이다. 그리고 베릭까지.’
숲 전체에 부정한 기운이 서려 있다. 불안한 예감이 맞았던 것이다. 이안은 최대한 기척과 기운을 숨기며 그 흔적을 따라갔다.
“이쪽이다, 이쪽!”
“수, 숲에 불이! 왕궁에 알려라! 서둘러라!”
“물을 길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타닥타닥!
이안은 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로 병사들 뒤를 쫓았다. 그리고 이내, 금기의 마법사와 대적 중인 베릭을 발견했다. 병사들도 마찬가지.
“마법사님! 저쪽이다! 저쪽에 루스웨나 마법사가 있다!”
“불길을 좀 막아주십시오, 마법사님!”
“이, 이보십시오?”
하지만 병사들의 다급한 외침에도 마법사는 눈알만 데굴데굴 굴릴 뿐, 요지부동이다. 자세히 살피니, 그의 몸체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베릭과 연결되어 있었다.
‘은형(隱形) 마법이구나.’
상대의 기억에 빙의하여 정신적 충격을 주는 마법이다.
상대의 취약점을 직접 파고들 수 있는지라 정보 등을 캐내기에 쉬웠고, 원한다면 방심을 유도해 정신적 상흔을 내기에도 적합했다.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라 하면, 은형 마법으로 묶여 있는 동안은 시전자 또한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베릭이 들켰나 보군.’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되었다. 오두막에서 물건을 찾다가 금기의 마법사와 맞닥뜨린 것이다.
병사들이 당황해하며 마법사의 주위를 맴돌았지만, 그는 눈동자를 위쪽으로 향하고서 굳어버린 채였다.
“왜, 왜 이러시지? 이쪽은 바리엘 마검사 아닌가?”
“맞아. 어떻게 할까요? 죽일까요?”
“잠깐만. 건들지 마. 혹시 일이 잘못되면 어떡해?”
“멈춰! 왕궁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라. 우선은 급한 불부터-”
촤아악!
“허, 허억-!”
“컥!”
병사들이 베릭에게 주춤주춤 다가서자, 이안이 나무 아래로 뛰어내려 살기를 실은 마력을 발산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상대에, 병사들은 인지조차 못 하고 몸이 베였다.
투욱.
피로 젖은 소매를 닦으며, 이안은 금기의 마법사를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 역시 이안을 보고 있었다. 진작 이안의 인기척을 느꼈으나, 은형 마법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이안은 잠시 주위를 확인했고, 베릭의 주머니를 먼저 살폈다.
스윽.
작고 세모난 상자 하나. 안에 뭐가 들어 있나 싶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걸 챙겨 들던 이안은, 베릭의 턱 밑으로 떨어지는 무언가를 느꼈다. 깊게 베인 상처에서 흐르는 피인가?
아니다. 이것은-
“…베릭.”
눈물이다.
베릭은 은형 마법에 걸리기 직전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너는 지금 기억 속 어느 곳을 헤매고 있지?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금기의 마법사를 돌아봤다.
‘…기회다.’
내 목을 가져가도 좋다, 하고 서 있는 꼴 아닌가. 이 자리에서 목을 베고 심장을 도려내면 될 일이다. 세 번째 금기의 마법사를 처치하면, 루스웨나 전력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베릭이 위험해져.’
자칫 잘못했다간 그대로 기억 속에 갇힐 수도 있고, 정신이 붕괴될 수도 있다.
이안은 뒤에서 빠르게 퍼지는 불길을 살피며, 이드갈로 보호막을 쳤다. 일시적으로나마 불길과 병사들의 접근을 막아줄 것이다.
“나부, 거기 있지?”
“…네, 있습니다.”
이안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나부가 고개를 슬쩍 들이밀었다. 이제는 괜히 눈치 보며 숨어 있는 짓 따위 하지 않았다. 지난 낮에 이안이 얼마나 강한 자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으니까.
“외부의 접근을 막아. 혹 문제가 생기면 나와 베릭을 너의 그림자에 잠시 숨겨도 좋다. 그리고 마법사들에게 돌아가 은형(隱形) 마법이라 설명하면 돼. 이해했는가?”
“네. 이해했습니다.”
촤아악!
「은형(隱形)」.
이안은 그리 이르곤 은형 마법을 발동했다. 대상자는 당연히 베릭. 이안의 주위가 어둠으로 물들며, 이내 낯선 오두막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다.’
비바람을 헤쳐 오두막 앞에 도착한 이안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쿵!
“누군데?”
베릭의 목소리다. 이안은 안도하며 대답했다.
“데리러 왔다. 문 열어.”
“어, 그래. 좋아. 대신-!”
벌컥!
촤아아악!
문이 열리자마자 날아드는 붉은 대검.
하지만 이안은 알고 있었다. 온갖 과거를 헤매느라 한껏 곤두섰을 저 천방지축 망나니가, 얌전히 문만 열어줄 리 없음을.
이안은 가볍게 한 발 물러서며 피했고, 문 너머로 보이는 아이들을 확인했다.
‘이런.’
어릴 적 베릭과 그의 누이동생들.
이안은 판단했다. 바로 저 아이들이, 베릭이 은형(隱形) 마법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돌풍(突風)」.
촤아악!
날카로운 바람이 베릭을 스쳐 지나가며 어린것들의 목을 노렸다. 어둠 속으로 잠겨 들던 베릭이 황급히 뒤돌아 막아내려 했으나, 어찌 바람을 앞설 수 있겠는가?
돌풍에 휩쓸린 한 여자아이가 두 눈을 빙글빙글 돌려댔다. 모습을 숨기고 있던 금기의 마법사다.
“아아아악-!”
지이잉! 지잉!
번쩍!
이안은 두 손 가득 마력을 끌어모았다. 아이의 몸이라 특별히 강한 힘이 필요하지는 않을 터. 일시에 마력을 터뜨렸다.
일직선으로 쏘아진 마력 발사체가 베릭을 관통하여, 금기의 마법사에 적중했다. 온 사위로 빛이 폭발했다.
파앗-!
빛에 닿은 모든 것들이 하얗게 불타올랐다. 어둠 속에 존재하던 오두막과 빗줄기, 어린아이들이 점차 사라지며, 사방으로 푸른 이파리들이 우수수 돋아났다.
마법사의 숲이다.
다시금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어…….”
어라…. 베릭은 현실을 지각하지 못한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제발 사라져달라 부탁했건만, 막상 이리되니 가슴 한편이 도려진 것처럼 휑했다.
이안은 그의 팔을 잡아주며 중얼거렸다.
“정신 차려. 돌아간다.”
“이, 이안아. 네가 왜 여기 있냐?”
“길 잃었을 것 같아서.”
이안은 휘청이는 베릭을 감싸 안고는 날아올랐다.
곁에서 서성이던 나부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내던졌고, 베릭은 멍하니 서 있는 금기의 마법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저 새끼, 왜 꼼짝도 안 해?”
“은형 마법에 걸린 채 죽었으니까. 네가 죽었으면 네가 저러고 있었겠지.”
“…그럼 저게 죽은 상태야?”
“정확히는 정신이 깨져 있는 상태지.”
“잠깐 내려줘. 내 손으로 죽이고 싶어.”
“안 돼.”
“왜?”
이안이 숲 저편을 향해 턱짓했다. 마법사의 숲에 난 화재 때문에 드래곤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게다가, 기괴하게 관절을 꺾어대는 금기의 마법사. 저자 역시 인형술사에 의해 의식이 잠식된 터라 정신이 깨졌다 한들 곧 다시 움직일 것이었다.
“잘 해주었다, 베릭. 너의 임무는 달성했고 내 목적 또한 이루었다. 여기서 더한 전투는 전력 낭비니, 계획했던 대로 저택으로 돌아간다.”
“하씨, 이안아. 내가 다른 건 모르겠고, 저 새끼는 진짜 아프게 죽여줄 거다.”
“마음대로 해.”
…눈가의 눈물이나 닦고.
이안은 베릭을 힐끔거렸으나, 덧붙이지는 않았다.
베릭은 주머니를 더듬거리더니, 화들짝 발작하듯 소리쳤다.
“아아악! 악! 미친! 상자 없어졌어! 이안아, 돌려! 시발, 나 진짜 빡대가리인가 봐! 두고 온 것 같아!”
“세모난 상자 말이지?”
“…어? 갈색?”
“내가 잘 챙겨두었으니 그만 움직여. 힘드니까.”
아하, 역시! 베릭은 안도하면서도 뭔가 의아함을 느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너, 나 구하기 전에 상자 먼저 빼 갔냐?”
“…다 왔다.”
“어어? 이보쇼?”
히엘로 저택 앞에는, 걱정에 잠 못 든 마법사 몇 명이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안과 베릭을 발견하고는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이안 님! 베릭!”
“인마, 넌 뭐 했길래 이안 님한테 매달려 있어?”
“어? 이 새끼 울었나 본데?”
“몰라, 꺼져. 네들이 뭘 아냐? 어?”
마법사들이 베릭을 반기는 동안, 이안은 먼저 세모난 상자를 열었다.
“이안 님, 그겁니까? 베릭이 찾으려고 했던 거?”
“그런 것 같은데…….”
마법사들이 의아해하며 미간을 찌푸렸고, 이안 역시 멈칫했다.
빽빽한 글자가 적혀 있는 상자 안쪽 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구슬 몇 개와 곱게 접힌 흰 종이 한 장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