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7
제667화. 다시 간다
“잠깐만요, 이안 님!”
이안이 구슬을 삼키려고 할 때였다. 마법사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머지 하나는 누가 삼킵니까?”
이에 다른 이들 모두 고갤 끄덕였다. 합당한 지적이라는 듯. 마법사가 덧붙였다.
“설명에 따르면, 총 세 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는 게 안전하고요. 헤일 대장은 그렇다 쳐도, 저희 중에서는 마땅한 사람이 없습니다.”
헤일도 이안과 비교하면 힘의 깊이가 한참 모자란데, 일반 마법사가 구슬을 삼키고서 마법진 생성에 참여하게 되면 결과가 어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안은 입에 대었던 구슬을 살짝 뗀 다음, 잠시 고민했다.
“내가 두 개를 먹는 것은?”
이안이 두 사람의 역할을 한다면 힘의 중심이 높게 올라감에 따라 보다 안정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위험했다. 구슬 하나를 먹는 것도 걱정이 앞서는데, 두 개를 혼자서?
“절대 안 됩니다아아!”
“그건 안 되지요오오!”
콰앙!
마법사들이 급작스럽게 분개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바닥에 널브러졌던 종이들이 휘날렸고, 이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법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구슬을 든 이안의 손목을 붙잡았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예, 절대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안 님이 두 개 다 먹으실 바에야 차라리-!”
차라리, 무엇?
마법사들의 외침에 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슨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는지 알고 있다. 이안은 마법사들의 손등을 가볍게 잡았고, 나지막이 일렀다.
“이것이 미심쩍은 것임을 잘 안다.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도가 보이지 않아.”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모두 인형술사의 손에 넘어간 듯하다. 금기의 마법을 부리는 데 제한이 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예상 가능한 최악의 수는, 그들 전원이 금기의 마법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안 혼자서는 막아낼 수 없다.
“내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그대들이 낭떠러지로 밀려나 금기의 마법을 부리는 모습을 묵인하는 것, 다른 하나는 새로운 강구책을 찾는 것. 말했듯, 전자는 내가 절대 용납하지 않아. 그러니 삼키겠다. 혹여 이것이 내게 심각한 지장을 준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그리 다르지 않을 게다.”
구슬을 먹든 안 먹든, 이안에게 주어진 미래는 똑같았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구슬을 먹는 위험일지, 아니면 홀로 금기의 마법사들을 대적하는 위험일지는 선택에 달렸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곳에 걸어보는 게 현명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래도요.”
“광산에 있는 아코렐라 대장 호출해서 성분 분석이라도 해보심이 어떻습니까? 금방 날아올 것인데요.”
“불허한다.”
“예? 어째서요?”
이안을 비롯한 마법사 전력 상당수가 칼라마트를 떠났음을 토올룬은 눈치챘다.
진도 이러한 전후 상황을 파악했겠지. 더하여, 자신의 안위 또한 위험해졌음을 말이다. 아마 지금, 아코렐라는 진의 호출을 받아 칼라마트로 향하고 있을 터. 그녀만으론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까닭은, 믿기 때문이다. 이안, 자신을 말이다.
자신의 소식만 기다리면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황제에게서, 아코렐라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안전을 위해, 황제의 곁에 남은 마법사들은 필수적으로 칼라마트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껴져.”
이안은 헤일을 돌아봤다. 그 어느 때보다 밝고 맑게 빛나는 그의 황금빛 눈동자. 이는 사특한 기운이 섞여들지 않은, 순수한 신의 힘이 틀림없다.
이걸 만든 동양의 마법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자라 부를 만한 경지에 올랐을 것이라 가늠되었다.
“그럼 차라리 제가 두 개 먹겠습니다.”
헤일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남은 구슬 하나를 마저 집더니, 이안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두 개를 먹어야 한다면, 제가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안 님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대장! 앗!”
“아니, 왜들! 뱉어요! 뱉어!”
하지만 이미 늦었다. 헤일은 망설임 없이 두 번째 구슬을 꿀꺽 삼켜버렸다. 어차피 금기의 마법을 부르겠노라 마음먹었을 때 저버린 목숨이다.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면, 기꺼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파아아앗!
헤일에게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압도적인 마력이 흘러내렸다. 당장 뱉어내라고 이리저리 흔들어대던 마법사들이 멈칫거릴 정도다. 그가 주먹을 꽉 쥐자, 손 틈으로 금빛 마력이 산화되며 사라졌다.
“헤, 헤일 대장. 괜찮으십니까?”
“…좋은데.”
“조, 좋아요? 정말이에요? 혹시 막 정신이 회까닥해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고요?”
“아니, 진짜인데. 괜찮아.”
몸 상태가 지금껏 겪었던 그 어느 때보다 최상이다.
그가 희미하게 웃음을 터트리자, 마법사들도 안도하며 작게 따라 웃었다. 미친 상사들 때문에 하루도 심장이 온전할 날이 없다.
“아코렐라의 마력증폭제 먹었을 때와 느낌이 비슷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동양의 마법사들도 수준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그 말, 아코렐라 앞에서 해주면 참으로 좋아하겠군.”
“음.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농담까지 할 여유라니. 마법사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이안도 헤일을 따라 구슬을 삼켰다.
그러자 헤일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금빛 마력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마법사들은 한데 모여서 뒷걸음질 쳤고,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두 상관을 지켜봤다.
파다다닥!
“으, 으앗!”
“종이! 종이!”
순간 상자 안에 있던 흰색 종이가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길게 펼쳐졌다.
끝도 없이 넓어진 종이는 순식간에 벽 한 면을 가득 채웠고, 이안과 헤일은 동시에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부분으로 검은 잉크가 천천히 퍼져갔다.
촤아악!
“이안 님!”
“헤일, 괜찮다. 진정해.”
가슴 아래,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다. 놀란 헤일을, 이안은 걱정하지 말라며 가볍게 다독였다.
촤악! 촥!
얇은 종이 위로 잔뜩 물 먹은 잉크가 끝없이 퍼져 흘렀다. 이안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그것이 동양의 한지와 먹이라는 걸 몰랐기에, 신기해하며 시선으로 선을 쫓았다.
“어? 속도가 느려집니다.”
선 뻗어나는 속도가 느려져 이내 멈출 것만 같았다. 이안은 바로 그 지점이, 자신의 힘을 담아내야 하는 곳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만엽(萬葉)」.
금기의 마법사를 전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이안의 몫일 것이다. 바리엘 마법사들은 그런 이안을 도와 금기의 마법사를 묶어두는 역할을 맡는 게 전략적으로 옳다.
이안이 손끝으로 만엽 마법진을 그려내자, 헤일은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임을 마찬가지 직감했다. 그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마법 두 가지를 그려 넣었다.
“아, 대장! 그걸 넣어요?”
“왜? 좀 그래?”
“아니, 그건 아닌데…….”
마법사들이 말끝을 흐렸다. 외근직인 헤일 대장의 마법은 그들에게 너무 거칠고, 파괴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검은 잉크는 헤일의 마법진까지 포함하여 종이 위에 새겨졌다.
솨아악.
그러고는 천천히, 모든 그림이 잉크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선이 지워지고, 오로지 검은색만이 가득했다.
이내 그 안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금빛.
“어!”
파아앗!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마법진이다. 이어서 서재 안쪽에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종이들이 용오름처럼 날뛰었다.
마법사들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황홀감. 마법사 한 명이 종이 한 장을 낚아채서는 마법진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촤악!
“외우려는 것보다 몸으로 익히는 게 낫다. 따라 새겨라.”
이안의 지시에 마법사들이 동시에 손을 뻗었다.
“다 같이 하나로 그리자!”
“그래, 마력을 모으는 게 낫겠어.”
“어어? 미친것들아! 여기 실내거든?”
“갑니다!”
창가에 걸터앉아 구경하던 베릭이 흠칫거리며 일어났다. 저 정신 나간 것들이 지금 새로운 마법진 보고 흥분한 거 맞지? 베릭이 그만두라고 소리쳤으나, 마법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견합(牽合)」.
쿠구궁! 쿠웅!
마법진에서 소환된 세계수가 저택 벽과 천장 등을 뚫으며 솟아났다. 가지 끝마다 달린 가시들이 몹시 날카로웠다.
마법사들은 무너지는 잔해들 속에서 정신을 번쩍 차리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베릭도 창문으로 도망쳤다.
“우, 우와-!”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마법사들은 무럭무럭 하늘 끝까지 닿을 것처럼 뻗어나는 세계수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를 멍하니 올려다보며 경탄했다. 신비하고, 경이롭다. 은은한 빛을 내재하기라도 한 듯, 세계수는 어둠 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뽐냈다.
“이게 우리가, 우리가 만든 거라고?”
“미친, 나 살면서 만엽 처음 써보는데.”
“이게, 되네.”
“마력을 한데 모으니까 상위 마법도 가능해지는구나.”
상위 마법이 가능하다는 것에 그칠 수확이 아니다. 저것이 금기의 마법사에게도 유효한 마법이라는 점. 그게 중요했다. 마법사들은 자신도 전투에서 한몫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봤다.
“아차, 이안 님! 헤일 대장! 몸은 좀 어떻습니까?”
“별다른 문제 없으세요? 아니지. 무려 이런 걸 불러냈는데 문제없을 리가 없지.”
“혹시 두 분,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씀하십시오. 여기서 두 분 없으면 사실상 모든 게 백지입니다.”
“예, 칼라마트로 돌아가셔도 좋으니까,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걱정하던 마법사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안과 헤일, 두 사람 다 희한할 정도로 온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잔해 속에서, 둘은 몸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나는 당장 느껴지는 문제가 없다. 헤일, 그대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그러면 다행인데. 뭔가 찜찜한데요.”
“네. 대가 없는 힘이 어디 있겠습니까.”
“흐음.”
이안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는 바닥에 나뒹구는 세모난 상자를 집어 들고서 나지막이 말했다.
“나부.”
“네!”
“이걸 보관하도록. 분실하지 않게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중요한 물건이죠? 제가 목숨 걸고 지키겠습니다!”
“오바는. 이안아. 저 새끼, 너 전투한 거 본 이후로 저런다? 진짜 속 보이지 않냐?”
참나, 저항하면 저항한다고 뭐라 하고, 설설 기면 설설 긴다고 뭐라 하네. 나부는 베릭에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곤, 그림자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해석이 빈 곳은 황궁으로 돌아가 조사할 것이다.”
그리하면 부작용 등을 자세히 알 수 있겠지. 지금은 그저 큰 문제가 없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안의 말에 마법사들은 뿌듯한 미소를 꾹꾹 누르더니, 동시에 우르르 세계수로 달려가 나무 기둥을 껴안았다. 마치 나무에 사는, 작은 요정들처럼 말이다.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이안 님! 금기의 마법사 놈이 오면 우리가 아주 죽을 둥 살 둥 덤벼들어서 잡아두겠습니다.”
“다구리에 장사 없는 거 아시죠? 이 새끼, 이제 죽었다, 진짜! 저희가 앞도 봐 드리고, 뒤도 봐 드릴게요. 이안 님 아프게 할 일 없도록 할게요!”
“으허어엉. 내가 만엽을, 만엽을 만들었어. 우리 엄마가 이거 봤으면 진짜 대견해 했을 건데. 크흑.”
“참나,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때깔 한번 곱다. 참 예쁘다!”
나무 겉면을 따라 빛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나무가 내뿜는 은은한 빛이 아니다. 어느덧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내 여명이 터오자, 이안은 루스웨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법사의 숲이 완전히 불탔는지, 하늘 끄트러미가 잿빛이다.
“다시 간다.”
이안은 모두에게 준비하라며 손짓했다. 금기의 마법사만 잡을 수 있다면, 루스웨나를 막아내는 건 쉬이 가능한 일이다.
여명이 터오는 하늘로, 바람을 타고 검은색 종잇조각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휘이이익!
정확히는, 바람을 탄 게 아니라 그들이 왔던 동쪽의 어느 지점으로 회귀하는 것이었지만, 이안과 마법사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남쪽, 루스웨나에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