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8
제668화. 약점 노출
“필리아, 이것도 챙겨 가요. 저번에 보니까 로엘이가 참 잘 먹는 것 같아서 보기 좋더라고요.”
“어머, 괜찮아요. 비비안나도 구하기 어려웠다면서요. 맛보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우리는 그래도 중앙에 있으면 구할 수는 있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아참. 히엘로는 하완이랑 가까워서 오히려 구하기 쉬우려나?”
“그러면 일단 받고, 내려가서 비슷한 잼을 구하면 올려 보내줄게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다 챙겨 가요!”
비비안나는 커다란 가방 가득 잼을 쏟아 넣었다. 이국에서만 자란다는 과일들로 만든 것이다.
필리아는 연신 고맙다며 웃었고, 옷가지와 잡동사니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드디어, 히엘로로 내려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르사른 님이 정말 반가워하겠네요. 얼마 만에 만나는 건가 몰라요.”
“그러게요. 이렇게 오래 떨어질 줄 알았으면,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 건데 말이에요.”
“그래도 무사히 만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필리아, 볼의 상처가 많이 옅어졌어요.”
“아. 생각보다 잘 아물더라고요. 네르사른 님 보기 전에는 거의 지워질 것 같아요. 걱정하실 것 같아서 마음 쓰였는데.”
필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지금쯤이면 히엘로에 전서구가 도착했을 터. 네르사른이 자신의 연락을 받고서 얼마나 기뻐할지, 안 봐도 눈에 훤했다.
한편, 로엘은 창틀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비비가 다가가 아이의 옆구리에 고개를 파묻었지만, 반응이 없다.
“로엘. 너도 나랑 헤어져서 아쉽지?”
“…….”
“걱정하지 마. 방학하면 내려갈게. 우리 또 정원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놀자. 로엘도 그때 맞춰서 히엘로에 있어야 해? 대사막 가지 말고?”
“…못 가.”
“응? 어디를?”
“대사막, 못 간다고.”
로엘이 작게 중얼거렸다. 목이 잔뜩 메이는지,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아아, 작고 귀여운 내 친구. 자신과 멀어지는 걸 이렇게도 슬퍼하는구나. 비비는 로엘을 있는 힘껏 껴안았고, 평소 같았으면 반응 없던 로엘도 이번만큼은 깊이 안겼다.
“에고, 둘 다 서운한가 보네. 필리아, 우리도 안아볼까요?”
“그럴까요?”
아이들이 껴안는 걸 본 비비안나와 필리아도 웃음을 터트리며 가볍게 포옹했다. 보름 정도 후 이 시간에는 네르사른 님의 품에 안겨 있겠지. 필리아는 가슴 아래서부터 살랑살랑 올라오는 행복을 만끽하며 웃었다.
똑똑.
“계십니까, 마법부의 로만드로 님 전언입니다.”
“어머, 네네! 지금 나가요!”
그때, 문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황궁에서 사람이 온 것이다. 비비안나가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옷가지를 챙기면 될까요?”
“아니오, 그게 아니오라…….”
황궁 직원은 안타깝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지금 바리엘 동쪽, 히엘로와 메렐로프를 중심으로 전쟁이 발발한 것 같다는 정보입니다. 아마 하완국과 루스웨나의 침략으로 추측되는데요. 황궁에서는 보다 자세한 조사를 통하여 사태 파악에 나설 것인데, 필리아 부인께서도 위험하니 당분간은 중앙에 머무심이 어떨지… 로만드로 님께서 권유하셨습니다. 곧 통행금지령이 떨어질 수 있다고…….”
“아…….”
비비안나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지금 이게 무슨 자다가 번개 맞는 소리인가? 갑자기 루스웨나와 하완국이 히엘로 쪽을 침범해? 어째서?
“부인, 무슨 일이에요?”
필리아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싱그러운 미소가 여전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저기, 필리아.”
“네. 설마, 로만드로 님께 무슨 일 생기셨대요?”
도리어 로만드로를 걱정하는 필리아다.
비비안나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안의 정체를 처음 알았을 때 필리아가 충격받았던 걸 생각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인?”
“…필리아, 부디 너무 놀라지 말고, 걱정하지 말아요. 히엘로와 메렐로프 인근에서 문제가 생겼나 봐요. 요즘 가이아 정세가 너무 어지럽긴 하잖아요.”
“그게 무슨-”
“위험할 수 있으니, 로만드로 님은 필리아가 당분간 중앙에 머물길 권했어요.”
사실상 순수한 권유보다는 강제성이 있는 전언이었다. 그녀는 마법부 장관의 어머니였으니까. 황궁 주요 인사의 가족 안위를 챙기는 것 또한, 황궁의 임무였다.
비틀, 살짝 휘청인 필리아가 난간을 붙잡자, 비비안나가 비명과 함께 달려갔다.
“필리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하, 하지만-”
“필리아는 천려족과 아주 오랫동안 지냈잖아요. 나도 그들을 보아서 아는 걸요. 그들이 있는 한, 히엘로는 분명히 무사할 겁니다. 그리고 네르사른 님도요. 그분이 얼마나 강한지는 필리아가 제일 잘 알지 않나요?”
“비비안나, 나는, 나는요.”
“저도 그럴 때가 있었어요. 결혼과 임신을 막 맞이했을 때, 로만드로가 신전 복구를 위해 지진 위험 지대로 떠난 적 있고요, 저 또한 그만두기 전까지는 변경을 돌아다니며 재난 수습에 일조했어요. 우리도, 서로를 너무 걱정했지만, 보세요!”
비비안나의 말이 다급해졌다. 필리아의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무사히, 잘 돌아와서 지내고 있잖아요. 걱정은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불안한 마음을 키우지 마세요. 의외로 히엘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어요.”
“비비안나!”
“네, 괜찮아요. 쉬이.”
비비안나가 필리아를 안아주었다.
겉으로는 필리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으나, 비비안나는 ‘통행금지령’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제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히엘로 인근을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그만큼 처참하고 위험한 일이 히엘로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
비비안나는 계단 위,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로엘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로엘은 또다시 보았던 게다. 히엘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아비에게 들이닥친 위험을.
스윽.
로엘은 검지로 입을 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리아에게는 비밀로 하자는 신호다.
“…….”
비비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필리아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잔인하시다, 참으로 신께서는 필리아에게 잔인하시어. 비비안나는 말없이 계속해서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 *
“뭐?!”
콰앙!
엘더트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쳤다. 지금 무어라 한 것인가? 마법사의 숲에 불이 났다고? 다른 곳도 아닌, 그 마법사의 숲에?
“소, 송구합니다. 지금 화재 진압을 위해 드래곤을 동원하여 물을 퍼붓고 있으나 워낙 면적이 넓은지라…….”
“젠장! 대체 무엇 때문에?!”
“원인 파악은 불가하지만, 그, 금기의 마법사가 마법사의 숲 인근에 있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을 일러달라 하였으나 아직까지 대답이 없습니다.”
“이런, 쳐 죽일!”
엘더트는 초점 없는 마법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서 윽박질렀다. 이 안에 숨어 있을 토올룬 왕에게 쏟아질 분노가 가히 뜨겁다.
신하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허리를 숙였고, 엘더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토올룬의 왕! 지금 뭐 하자는 것인가! 어찌하여, 감히! 감히 마법사의 숲을 태워버려?!”
마법사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분명히 토올룬 왕이 보고 있을 터인데, 그는 쉽게 입을 떼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후, 마법사가 나지막이 변명했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베릭이라는 놈이 그리했소.”
“무어라?”
“밤중에 그자가 마법사의 숲에 침입한 것을 알고 있었는가? 당연히 몰랐겠지. 왕께서는 안전하고 안락한 왕궁에 계시었으니. 하나 나는 그 기척을 느꼈고, 그자를 따라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베릭이란 놈이 불을 낸 것이지.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진정으로, 신께 맹세하여.”
“그걸 지금 말이라고!”
엘더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볼기짝을 올려치고 싶지만, 크게 의미 없는 짓임을 알기에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나도 화재 진압에 도움을 주고 싶소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금 당장은 힘들군.”
“내가 지금 말을 잘못 들은 겐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안전하고 안락한 왕궁에 틀어박혀 이 짓거리를 하면서, 무어라?”
“하지만 정말인걸. 믿지 않으면 그대만 손해이십니다, 왕이시여. 곧 있으면 이안 히엘로와 바리엘 마법사들이 다시 들이닥칠 것인데, 그 전에 마법사들의 힘을 온전히 회복하는 게 맞는 일 아니겠나?”
“지금 당장-! 마법사의 숲을 구해라! 이는 그대에게 이르는 제안이 아니라, 루스웨나 왕으로서 명령하는 것이다!”
“아…….”
진짜 말귀 못 알아듣네. 마법사는 짜증스럽게 한숨 쉬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 방종한 작태에 엘더트는 그의 멱살을 거칠게 내치며 경고했다.
“토올룬의 왕은 잘 들어라. 루스웨나 마법사들에게 실을 꿰었다고 해서 루스웨나 전체를 꿰었다고 착각하지 마. 그쪽이 우리를 돕는 건, 결국 시선 분산을 위한 것 아닌가?”
루스웨나와 하완이 크게 흔들어주면, 중앙의 시선을 빼앗을 수 있고, 칼라마트에 가 있는 황제 또한 쉽게 토올룬 쪽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바, 모든 이해관계는 사실상 이리도 간단하고 명확했으니.
“그런데?”
마법사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게 사실이라 한들, 루스웨나가 지금 토올룬에게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있나?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핵심 전력인 마법사들은 죄다 실에 꿰였으며, 바로 앞에는 이안 히엘로까지 들이닥쳤다.
“마법사로 마법사를 쳐낼 수 있다는 사실에나 감사하시오, 엘더트 왕. 마법사를 어찌 움직일지는 내 판단에 달렸습니다.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실을 끊고 물러서지요.”
그렇게 되면, 과연 네놈이 감당할 수 있을까? 배신당한 마법사들이 정신을 차리면, 루스웨나를 어떻게 할까? 필시 태우고, 찢고, 산산이 부수며 울분을 토해낼 터. 무엇보다, 바리엘을 점령하겠다는 원대한 꿈이 절대적으로 멀어질 건 기정사실이었다.
마법사는 엘더트에게 고개를 까딱여 인사했고, 그대로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토올룬 왕과의 신호가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이봐.”
“예, 전하.”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엘더트가 중얼거렸다.
“…사냥꾼을 부르지.”
“사, 사냥꾼들 말입니까?”
“토올룬으로 보낼 것이다. 그쪽 인근으로 통하는 그림이 있겠지.”
“예예, 물론이옵니다.”
사냥꾼.
바리엘에 황궁친위대가 있다면, 루스웨나에는 노을빛에 숨어 움직이는 사냥꾼들이 있다.
엘더트의 명령에 부하들이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고, 홀로 남은 왕은 분을 삭이기 위해 술잔을 집어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잠깐.’
토올룬 왕의 태도가 비상식적으로 불손하여 일시적으로 판단이 흐려질 뻔했다.
마법사의 숲은 루스웨나의 마법사 재생을 위해 꼭 필요한 요충지. 이걸 토올룬이 알고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숲에 번진 불길을 잡는 건 마법사의 힘으로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늘을 날고 대지를 찢는 자들인데, 물을 쏟아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런데도 토올룬의 왕은 거부했다.
“…그 전에 마법사들의 힘을 온전히 회복하는 게 맞는 일 아니겠나?”
이런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엘더트는 술을 입에 머금은 채 잠시 생각했고, 이내 깨달았다. 마법사를 부림으로 인하여 토올룬 왕에게도 어떤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당장 숲에 난 불길 하나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부작용이라는 것.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