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69
제669화. 선을 넘지 못할 것이다
“아으…….”
토올룬의 왕 쿠마샤는 루스웨나와 연결이 끊어지자마자 머리를 움켜쥐며 고꾸라졌다. 바깥에 시종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왕의 안위를 묻지 못했다. 쿠마샤가 웃고 우는 소리는 그 누구도 들어선 안 될 일이기에.
쿠마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에 잡히는 인형들을 찢어발길 듯 집어던졌다.
‘젠장. 너무 아파.’
토올룬의 인형술사는 물론이고, 정령술사들을 비롯하여 기이한 힘을 지닌 자들은 모두 쿠마샤의 인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덕에 궁 깊은 곳에 앉아 세상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으나, 이토록 깊게 치고 올라오는 부작용은 처음이었다.
‘다르시 부인은 완전히 망가진 것 같고, 하아.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없는데. 마법사의 힘이 이 정도란 말인가?’
다르시 부인이 금기의 마법사를 처음 불러냈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다. 알 수 없는 중압감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흘렀으니까.
처음엔 그저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두 번째 금기의 마법 때부터는 확실해졌다.
‘일반 마법은 괜찮았어. 인형술사의 무의식에 명령을 내린 것이라 그랬겠지. 목적 달성을 위해 마법사들이 범위 내 알아서 움직였을 테니까. 하지만 금기의 마법은 달라.’
아주 가늘고 희미한 실을 타고 오르는 불길 같았다. 마법사에게서 다르시 부인에게로, 그리고 다시 토올룬의 왕인 자신에게로. 한 명씩 거칠 때마다 그 부작용이 상당 부분 희석되어 넘어왔지만, 끝내 사라지지는 않았다.
“밖에 누구 없는가?”
“예, 전하.”
“물을 가져와라. 그리고 수상에게도 연락하여 서둘러 올라오라 전해.”
“명 받들겠습니다, 전하.”
쿠마샤는 그리 이른 다음 다시 인형 더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중간에서 충격을 완화해주던 다르시 부인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금기의 마법 충격은 온전히 자신에게 쏟아질 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미 금기의 마법사가 된’ 자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다는 것.
‘이안 히엘로는 혼자서 금기의 마법사 둘을 상대하는 자다. 남은 루스웨나 마법사들을 모두 금기의 마법사로 만들지 않는 이상, 승산이 없다.’
방법을 찾는 게 좋겠다. 금기의 마법 여파를 받지 않고 루스웨나 마법사들을 금기화시키는 방법 말이다.
쿠마샤는 자신의 손과 창문으로 비치는 모습을 가만 쳐다봤다.
“잘 하면…….”
다르시 부인은 세 명째에 온몸이 녹아내렸다. 그렇다면 자신도 한 명 혹은 두 명까지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쿠마샤가 거울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얼굴을 확인했다. 흘러내리는 것 없이, 여전히 희다 못해 투명한 피부다.
똑똑.
“전하. 수상이 도착했습니다.”
“들라 하라.”
쿠마샤는 누운 채로 수상을 맞이했다. 가능하다면 일어나고 싶었지만,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였다. 수상 또한 평소와 다른 왕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금기의 마법은 확실히 다르다. 다르시 부인이 여과하지 못한 여파가 내게도 닿았어.”
“……!”
“그래서 말인데, 루스웨나 쪽은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네. 지금 남아 있는 금기의 마법사 한 명과 일반 마법사들을 모두 투입하면, 바리엘 마법사 전력을 절반 정도 깎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모두 처치하는 건 불가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안 히엘로 혼자서 금기의 마법사 둘을 상대하였거든. 남은 것은 루스웨나가 정리하도록 하고, 우리는 칼라마트 쪽에 집중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것 같다.”
“안 그래도 정령술사장 바누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상류에서 흘려보내는 독극물을 최대치로 풀었다 합니다. 이는 클리포포드뿐만이 아니라, 버고스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 하더군요.”
수상의 언질에 쿠마샤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신전에서 독물을 모두 내준 것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바누사가 대신관 마음에 들었나 보네. 깐깐한 자이거늘.”
“바누사는 사실 왕궁 안팎으로 신망이 두터운 자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가끔은 답답할 정도로 올곧아서.”
피잉.
쿠마샤는 손끝에 걸린 인형 줄 하나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바누사와 연결된 줄이었다. 그 채로 뭔가를 한참 생각하더니, 쿠마샤는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토올룬 병력을 슬슬 준비하도록. 루스웨나 상황에 맞춰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예, 전하.”
토올룬군의 지휘를 맡은 자는 불의 정령술 가문의 장남이자 수장, 아르도였다. 공교롭게도 물의 정령술사장이기도 한 바누스와 짝을 이루지 않나? 물과 불을 다루는 자 둘이 토올룬 남쪽 경계선에 배치되면, 마법사 없는 바리엘군 본대를 압박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쿠마샤는 연신 어지러운 머리를 뒤로 꺾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곧 있을 이안 히엘로와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 * *
“잔불을 자세히 확인해라! 실수하면 안 된다!”
“바람이 계속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북쪽 구역으로 물을 더 나르는 게 좋겠습니다!”
“드래곤에게 지원하겠습니다!”
“지원! 앞으로!”
루스웨나의 병사들은 해가 뜰 때까지 계속해서 화재를 진압하고자 숲을 들락날락했다. 길게 줄지어 물 양동이와 모래를 옮기고, 하늘로는 드래곤이 바삐 오가며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냈다.
“하아, 대체 언제까지…….”
“마법사들은 대체 뭐 하고 있기에 안 보입니까?”
“조용히 인마, 혼날라.”
“그렇지 않습니까? 하늘에서 손 하나만 까딱하면 진작 진압되었을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게 맞는 겁니까?”
“어허, 말이 많다. 그럴 힘 있으면 물이나 더 옮겨.”
“우욱, 잠깐만. 나 속이-”
“얼씨구, 어절씨구. 지랄.”
몇몇 병사들이 구역질을 틀어막으며 대열을 벗어나자, 동료들이 한심하게 혀를 쯧쯧거렸다. 잠도 못 자고 혹사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너무 허약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웁! 웁!”
“나, 나 좀 살려-”
속수무책으로 병사들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마법사의 숲에 스며들었던 독 기운이 불길을 만나며, 해로운 성분을 뿜어낸 탓이었다.
후발대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손짓하여 되돌아 나가라 명령했다.
“접근 금지! 접근 금지!”
마법사의 숲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마르틴은 입술을 꾹 깨문 채 분개했다. 국경을 나서지도 못하였기에 전투의 피해는 고스란히 루스웨나의 몫이 되었다. 그는 지휘봉을 크게 흔들며 병사들을 결집했다.
부우우-! 부우!
곧 있으면 왕궁에서 본대가 출정할 것이다. 루스웨나의 황금빛 대지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히엘로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이제는 국경을 넘어 진격할 차례다.
촤아악!
그때, 갈대밭 사이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단순한 바람 탓인지, 아니면 숲에서 도망쳐 온 짐승의 기척인지는 모르겠다.
마르틴은 이내, 그것이 행군으로 인한 땅 울림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어서 점점 크게 들려오는 군악대 소리. 그가 몸을 틀자, 저 멀리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부부부! 부우!
루스웨나군 본대였다.
왕이 직접 지휘하는 군대인지라, 그 규모가 상당했다. 루스웨나에서 당장 기용 가능한 자들은 모두 출전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목적지가 먼 곳이 아니기에, 보급 부대까지 최소 편성하여 전투 병력에 집중한 듯했다.
한편, 루스웨나 본대를 이끄는 왕 엘더트는 금장으로 꾸민 백마 위에서 정면을 응시한 채 천천히 구보했다.
“전하! 바리엘 것들에게 불 맛을 보여주십시오!”
“이참에 긴 악연을 끊어냅시다!”
“루스웨나, 만세! 루스웨나 만세!”
백성들이 길가로 나와 병사들을 배웅했으나, 병사들은 비장한 자세로 엄숙함을 유지했다. 한 차례의 전투로 인해 그들이 상대할 적이 얼마나 강한 자들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끼이익!
성문이 열리자, 엘더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숲에서는 회색 연기가 멎지 않았다. 싱그러웠던 마법사의 숲은 완전히 무너졌고, 그들의 비옥한 대지 역시 전투의 여파로 엉망이었다. 곳곳에는 시체와 핏자국, 그리고 널브러진 무기와 갑옷들이 즐비했다.
“진군하라.”
엘더트가 활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명령하자, 루스웨나의 깃발이 크게 흔들렸다.
이대로 쭉 내려가서 국경을 넘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히엘로령에 도착할 수 있다. 남은 마법사들을 서둘러 정리하여 그곳에 깃발을 꽂아야 했다. 바리엘 중앙군이 지원을 보내기 전에 말이다.
“와아아아!”
“가자!”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억지로 사기를 올려댔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마법사는 없다. 그리고 여기는 다른 곳도 아닌 자신들의 고향 루스웨나. 두려울 것이 무엇 있겠나?
군악단의 연주가 더더욱 크고 빠르게 울려 퍼졌고, 그들이 순조롭게 이동하던 중이었다.
사사사삭.
저 멀리, 홀연히 서 있는 한 아이. 너무 작아서 식별하기 어려웠지만, 엘더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금발에 로브를 걸친 자.
“이안 히엘로…….”
“이안 히엘로다!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이 나타났다!”
“정면에! 놈들이 다시 루스웨나를 침입했어!”
“개자식, 대체 루스웨나를 뭘로 생각하는 것인지!”
혼자인가? 다른 자들은?
하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놀라운 점은, 고작 몸집 작은 한 명의 아이일 뿐임에도 수천 명과 대적할 만큼 존재감이 엄청났다는 것.
길이 훤히 뚫려 있음에도 꽉 틀어막힌 것처럼 느껴졌고, 벽 따위 없음에도 장벽이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전하.”
“마르틴을 데려와라. 본대와 우선 합류한다.”
마법사의 숲과 그 옆에 난 길 위의 이안, 그리고 루스웨나군 본대가 대치하는 중이었다. 마르틴이 병사들을 결집하자, 좌측으로 각이 트였다.
우르르!
두 무리와 마주한 이안이 그들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고는 발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왔다.
병사들이 창을 겨눈 채로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렸다. 마법사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대로 지켜만 봐도 되는 것인가?
“엘더트. 거기 있는가.”
병사들 틈에 섞인 엘더트를, 이안은 식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깃발의 위치나 본대의 구조 등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왕이 저 어딘가에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엄하다! 감히 루스웨나 왕의 진명을 어찌 함부로 부르는가!”
“무엄하지 않다.”
맨 앞, 선봉에 선 장교가 윽박지르자, 이안이 바로 반박했다.
“마법사의 존엄을 무시하고 바리엘에 도전하는 자를 어찌하여 이웃의 왕으로 인정하고 존경하겠는가. 지금 엘더트 그대는 나에게 있어 왕이 아니다. 그저 루스웨나라는 한 무리를 이끄는, 눈먼 뱀에 가깝지.”
“불경하다!”
“불경?”
이안이 희게 웃자, 그의 발치를 기준으로 가느다란 금빛 선이 생겨났다. 이드갈이었다.
“누가 실수했던 것인지는 역사가 일러줄 터. 엘더트. 내가 너에게 남길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이것.
자신을 기준으로 쭉 뻗어난 하나의 경계.
“그대들은 여기를 지나가지 못해. 죽어서도.”
엘더트는 부하들이 전달해준 이안의 전언을 듣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건방진 자식. 감히 남의 나라에서…….
“마법사!”
엘더트가 자신의 뒤를 따르는 마법사들에게 소리쳤다. 사실, 이는 토올룬 왕을 부른 것이지만 말이다.
이에 멍하니 고개를 젖히고 있던 마법사들이 정신을 차린 것처럼 몸을 틀었다.
지이잉! 지잉!
마법사들이 금안을 번뜩이며 날아오르려는 순간-
촤아악!
이안의 좌우에서 거대한 세계수가 뻗어 올라 서로의 줄기를 강하게 옭아맸다.
놀란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고, 이내 바리엘 마법사들을 발견하여 경고했다.
“마법사다! 저, 저 거대한 나무 위에, 바리엘 마법사들이 있습니다!”
“이드갈 화살! 이드갈 창을 준비하여 대열 앞으로!”
바리엘 마법사들은 튼튼한 줄기 하나씩 잡고 서서는 거대한 루스웨나 군대를 내려다봤다. 동시에 단전 밑에서부터 끌어올리는 호흡.
잠시 후, 그들은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외쳤다.
“금기의 마법사 새끼 먼저 나와아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