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70
제670화. 첫 대면
헤일은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고 말았다. 생과 사를 가르는 전투가 눈앞에 들이닥쳤으나, 부하들의 자신감이 너무 순수하고 투명해서 보기 좋았던 게다.
반대로, 저들이 지난 전투에서 느꼈을 패배감과 무력감이 어느 정도였을지도 짐작 가능했기에 마음 또한 쓰였다.
마법사들은 다시 한번 입 맞추어 루스웨나 본군을 향해 소리쳤다.
“금기의 마법사 나오라고!”
“엘더트 너는 진짜 실수한 거다! 마법사에게 심연의 지옥이 어떤 뜻인 줄 알아? 신의 뜻을 받든 자들이 심연으로 떨어지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저, 저저 발칙한 제국 것들이!”
“어디서 감히 전하를 함부로-!”
“닥쳐! 금기의 마법사 다음은 너희니까, 짜져 있어!”
마법사들의 도발에 루스웨나 장교들이 뒷목을 빳빳하게 굳히며 혀를 차댔다.
하지만 그것뿐. 이드갈 무기를 들고 있다 한들 한낱 인간에 불과했으니. 창공에 떠서 내려다보고 있는 마법사들을 어찌 상대하겠나?
지이잉, 지잉!
“…온다.”
“……!”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동시에 날아들자, 헤일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 가까이 다가와 바리엘 마법사들과 시선을 맞췄다. 흐리멍덩하고, 감정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내면의 악의는 분명했다. 마법사들을 죽이고, 그 근본까지 말려 꺾어버리는 것.
헤일은 궐련을 입에 문 채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쳤다.
콰아앙!
‘금기의 마법사는?’
바리엘 마법사에게 덤벼든 것은 모두 일반 루스웨나 마법사들이었다. 마지막 남은 금기의 마법사가 보이지 않았다. 마법사의 숲에서 베릭과 맞섰다는 그…….
“이안 님!”
이안의 뒤로 무언가 흐릿한 형체가 나타났다. 금기의 마법사다. 비겁하게 뒤를 노리려 하다니, 헤일이 몸을 돌리려 했으나 이안의 반응이 그보다 더 빨랐다.
투욱.
이안이 마법사의 이마에 손끝을 가볍게 대고는 마력을 터트렸다. 콰앙! 광풍이 몰아쳤고, 인근의 갈대밭이 아름답게 파도쳤다.
“저, 전하!”
장교가 그 모습을 보더니 엘더트를 불렀다. 바리엘 마법사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고작 하루라는 시간만에 체력을 전부 회복한 것인가? 루스웨나 마법사들도 마력을 새로이 채웠으나, 뭔가 달랐다.
엘더트가 손짓하자, 장교들이 투구 끈을 바로 묶고는 앞으로 나아가며 소리쳤다.
“드래곤을 내와라!”
“직접 놈들을 베어버릴 것이다!”
드래곤을 타고, 흑갑옷을 입고, 이드갈 무기까지 들었다. 어느 정도 균형이 팽팽한 지금, 한시라도 빨리 지원하지 않으면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장교들이 병사들에게 진격을 외치려는 순간.
“마!”
콰아아앙!
쿠웅!
대지를 가르는 거대한 불길. 뀨였다. 그의 등에서 뛰어내린 베릭이 검으로 한쪽을 짚은 채 일어났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이어서 뜨거운 기운이 이글거렸다.
“땅에서 빌빌대는 것들은 내가 상대해주마. 드래곤에서 쳐 내려, 시발.”
“마, 마검사다!”
“돌격! 앞으로!”
뀨는 마법사들에게 날아드는 루스웨나 드래곤들에게 몸통 박치기를 해대며 접근을 막아댔다. 성난 드래곤들이 거대한 주둥이를 쩌억 벌리며 위협했지만, 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브레스를 쏟아냈다.
뀨우우우!
격전이 휘몰아치자, 엘더트가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직접 쏘아 격추시키기 위함이다.
그 신호를 읽어낸 마르틴 장관이 지휘봉을 크게 휘둘렀다.
“진격! 진격하라! 우리의 땅을 지키자!”
“와아아아! 와아!”
“바리엘을 몰아내자!”
땅을 울리며 돌격해오는 루스웨나 병사들. 이에 바리엘 마법사들은 각도를 넓게 펼치며 날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세계수의 가지들. 이들이 만들어낸 견합(牽合)의 나무는 하나이자, 하나가 아니었다. 마법사 한 명 한 명의 의지가 깃들어 있는 터라, 가지의 움직임이 보다 복합적이고 자유로웠다.
그러니까, 마법사들은 견합의 세계수를 함께 불러내어 그 가지를 자신의 무기로 삼은 것이다.
지이잉! 지잉!
퍼엉!
신비의 구슬을 먹은 이안과 헤일의 몸놀림은 평소보다 더 날래고, 부드러웠다. 몸 상태가 좋다는 것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마법사들은 안도하는 한편 심기일전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가자, 얘들아!”
“찢어져!”
반은 이안을, 반은 헤일을 돕기 위해 서로 등을 돌렸고, 이내 둘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부웅- 부우웅-!
한편, 루스웨나 마법사들을 상대로 한창 전투 중인 헤일. 마력을 담은 그의 주먹이 매섭게 휘둘러졌으나, 허공만을 가를 뿐이다. 놈들은 꽤 잘 피해댔다. 신경이 온통 ‘이안 히엘로’에게 가 있는 주제에 움직임이 날랬다.
촤아악!
그때, 등 뒤에서 수많은 가지들이 쏘아지듯 뻗어났다. 막 합류한 부하들이었다.
가지는 루스웨나 마법사들의 발목과 팔, 혹은 허리 따위를 붙잡았다.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단숨에 베어내어 도망치고자 했지만-
“……!”
얼마나 단단한지, 어떤 공격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이안과 헤일의 힘을 바탕으로 한 마법진이었다. 거기에 더해 바리엘 전체 마법사들이 합심하여 발동한 것이니, 이 가지 하나하나마다 바리엘 마법사 모두의 힘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금기의 마법사도 아닌 일반 마법사 혼자 파훼할 수 있을 리 없다.
사사삭!
촤아아악!
나뭇잎들이 거칠게 휘돌며 루스웨나 마법사들의 살갗을 이리저리 베었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질렀으나, 그 누구의 귀에도 닿지 못했다. 이미 너무 많은 소란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
드래곤들이 울부짖으며 격돌하는 굉음. 두려움과 분노, 흥분으로 점철된 병사들의 기합. 베릭의 쌍욕. 그리고 사방에서 터지는 마력의 폭발음까지.
“이안 님!”
이안을 돕기 위해 달려온 마법사들이 제각각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들과 연결된 대여섯 개의 가지가 의지를 품은 채 금기의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윽고 놈의 사지를 옭아매고 허리를 단단히 붙잡는 데 성공하자, 마법사들은 손을 떨어대며 환호했다.
“꺄아아악! 성공! 된다! 잡힌다!”
“앗싸! 이안 님, 지원하겠습니다아앍! 드디어! 저희가 이안 님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드아아!”
“너 이 새끼, 좋은 날 다 갔어! 크흑!”
“울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인마!”
“너도 울고 있잖아!”
“죽여버려어어! 너, 이…! 듣고 있지! 토올룬 왕! 우리 이제 금기의 마법사 같은 거 안 무서워어어! 흐윽!”
아무리 전장이라고는 하나 원체 시끄러운 베릭도 저 정도는 아니거늘. 제대로 된 전투에 투입된 것이 대부분 처음인지라, 마법사들은 조잘조잘 떠들어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이다. 북쪽 대마물의 습격 때나, 아기아르 전투에서 앞장서서 싸웠던 것은 주로 황궁친위대. 헤일과 같은 외근직이 아닌 마법사들은 사실상 이것이 10년 전 이후 ‘첫 전투’다.
“크흐으…….”
금기의 마법사가 손과 발을 이리저리 비틀어보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단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역시 저 미친 마검사가 마법사의 숲에 숨어들었던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
-움직여. 잘라내.
금기의 마법사를 조종하고 있던 쿠마샤가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 그는 이를 꽉 깨물었고, 그로 인해 입가로 피가 흘러내림에도 힘을 풀지 않았다. 본인의 자아가 있었더라면 불가한 반응이다.
까드득.
이가 깨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신체 기관이 부서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불쾌하고 기이한 소리와 함께, 마법사는 몸을 비틀어 속박에서 벗어났다.
“아!”
“괜찮아! 다시 잡으면 돼!”
바리엘 마법사들은 금기의 마법사를 둥글게 가둔 채 가지 줄기를 움직였다.
지금껏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바리엘의 영광에 이바지하고 있노라 여겼다. 하지만 적을 직접 상대하여 저지하고, 온몸으로 부딪치는 전투는 또 다른 희열이다.
혹 다친다 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을 남기고 가자. 설령 죽는다 해도 마법부로서 사명감을 다하고 가자. 부디 의미 있는…….
지이잉! 지잉!
그때, 금기의 마법사 눈동자가 금빛으로 빛났다. 다시금 나무 줄기들이 몰려오자 토올룬 왕이 속삭인 것이다.
-어서 처리해. 무슨 힘을 써서라도. 그렇지 않으면 아까와 같은 고통을 맛보게 될걸?
두려움이 만들어낸 반응인 게다.
그는 두 손을 넓게 펼쳐 마법진을 생성해냈다.
「만도(晩到)」.
이안과 베릭이 겪은 적 있는, 시간 계열 마법이었다. 마법진이 시계 형상으로 변하며 빛을 내려고 하자, 마법사들이 멈칫거렸다. 저건 또 뭔?
촤아악!
그런 마법사들의 앞을 가로막은 건 이안이었다. 그는 자신 역시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금기의 마법사와 대적했다.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나위(羅幃)」.
이안의 손바닥에서 길고 거대한 비단이 솟아났다. 일종의 장막이었다. 이는 빛으로부터 이안과 마법사들을 보호했고,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격리했다.
처음 보는 마법에 마법사들이 어리둥절해하자, 이안이 웃으며 가벼이 턱짓했다.
“무엇 하나? 안 가고.”
나는 그대들을 사특한 빛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니, 그대들은 바라는 대로 움직이라. 그 발걸음에 그림자가 지지 않게 하겠다.
이안의 강한 의지를 느낀 마법사들은 입을 꾹 다물더니, 이내 대답했다.
“…예! 이안 님! 맡겨만 주십시오!”
촤아악!
마법사들이 일제히 날아들자, 그 곁을 비단 장막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곧 그 위로 쏟아지는 빛무리. 이안이 생성해낸 비단에 의해 차단당해 소멸되어 버린다.
하지만 만도의 시계는 멈추지 않은 채 천천히 각도를 틀었고, 결국 빛은 바리엘 마법사들이 아닌 지상의 루스웨나군 쪽으로 가 닿았다.
“어-!”
“이, 이런!”
빛에 닿은 병사들이 도망치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법의 효과가 멈춰버리는 것이로구나! 병사들은 질겁하며 흩어졌고, 팽팽했던 대형은 일순간 무너졌다. 혼란의 확산. 장교들이 수습하려 했으나 겉잡을 수 없었다.
“진정해라! 아군 마법이다!”
“으아악! 뒤로, 물러나! 그늘 아래로 가!”
“멈추어라! 명령을 듣지 않는 자들은 군법으로 엄히-!”
“이쪽으로 또 온다!”
“이런, 미친!”
전쟁터 한복판에서 움직임이 멈춘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그것도 바로 앞, 가까운 곳에서 바리엘의 미친 마검사가 날뛰고 있는 지금 말이다!
병사들은 쉽게 통솔되지 않았고, 결국 엘더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럴 때는 왕이 위엄을 보여 병사들을 진정시키는 수밖에 없다.
꽈아아악!
엘더트가 화살을 하늘 쪽으로 고정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시위를 잡아당기며 한쪽 눈을 감았다.
이드갈 화살의 목표는 단 하나, 이안 히엘로.
피잉-!
촤아아악!
기다란 화살이 이안을 향해 올곧게 뻗어나갔다.
하지만 세계수 가지 하나가 가차 없이 쳐냈다.
저격을 알아챈 바리엘 마법사들이 손바닥을 보이며 엘더트 쪽을 노려보았다. 까부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는 듯.
지이잉! 지잉!
만도(晩到)는 확실히 무거운 마법이었다. 금기의 마법사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으니. 시계가 한 바퀴 도는 동안 빛에 닿지 않는다면, 오히려 기회다.
타앗!
이안이 비단 장막을 온몸에 두르며 금기의 마법사에게 접근했다.
사방이 눈부신 천으로 휘날리는 터라, 금기의 마법사의 시야가 제한되었다. 어디지? 어디서 오는 거지? 눈동자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물결치는 비단 천뿐.
‘패색이 짙어졌거늘, 그럼에도 다르시 부인처럼 다른 마법사들을 금기화하려는 움직임이 없어. 왜지? 아직일까, 아니면…….’
어떤 부작용 탓에 쉬이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안이 천을 헤치며 나타나자, 금기의 마법사 코 앞에 닿았다. 그는 왼손으로 놈의 얼굴을 잡고서, 오른손으로 마력을 응축했다.
“…토올룬의 왕이시여.”
…죽여버리겠다. 감히 마법사의 신성을 어지럽히고 가이아에 파멸을 가져오려는 네놈을… 찢어버리고 말겠노라.
지이잉.
소년의 폭발할 듯한 금안. 이안은 금기의 마법사 너머, 쿠마샤의 두 눈을 직시하며 물었다.
“다 했는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