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72
제672화. 마법에 대적할 힘
-[아코렐라의 클로이 영애 관찰 일지, 355번째 장>
-오늘도 아침부터 지랄 났다. 여기가 광산인지, 중앙의 사교 파티 테라스인지 모르겠다. 비정상적인 수준이었던 클로이 영애의 신체는 원상 복구되었으나,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한 심장 두근거림, 홍조, 말 더듬기, 식은땀, 긴장 따위의 정신적 반응과 관련된 부작용은 아직 그대로인 것 같다.
가능하다면 실험을 통해 자세히 관찰하고 싶지만, 하필이면 시아오시 경이 클로이 영애의 관심을 받아주는 바람에 교착상태다. 특별히 발견되는 이상 징후는 없으며, 이제는 이게 정말 부작용의 일부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
클로이 영애에게 물약을 한 번 더 먹어보라고 권하면 진짜로 죽겠지? 이안 님 돌아오시기 전해 시도해 봐야겠다.
사락.
-아참, 그리고 광산 개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클로이 영애의 도움이 없어 조금 더딜까 싶었지만, 흙과 돌이 생각보다 물러서 파내는 데 어려움이 없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마력 감응 반응이 거세지니 가슴이 세차게 뛴다. 클로이 영애가 시아오시 경을 바라볼 때 오금이 저리고 심장 아래쪽이 어지럽게 꼬이는 느낌이라 했는데, 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천재 마법사 아코렐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 지금껏 그 어떤 마법사가 사람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었단 말인가? 진실을 토해내는 실담물약이나, 기억을 지우는 물약의 경우에는…….
똑똑똑.
때아닌 인기척에 미친 듯이 움직이던 아코렐라의 펜대가 뚝 하고 멈췄다. 한창 집중력이 고조되는 중이었는데, 누가 감히!
“꺼져. 대장직 미만 보고는 거부한다.”
“예, 실례하겠습니다.”
“거부한다고, 인마!”
“황제 폐하 서신입니다만, 그렇게 전달드릴까요?”
아코렐라는 머리에 꽂아두었던 다른 펜대를 꺼내 던지려다가 멈칫거렸다. 황제 폐하라면 말이 달라지지. 크흠.
“줘봐. 무슨 일인데?”
“예, 지금 당장 광산 개발 중지하고 칼라마트로 복귀하라는 명이십니다.”
“뭐어어어-?! 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가면 알지 않을까요?”
“아니, 지금 조금만 파면 희귀 마력석들이 우물 터지듯 쏟아질 건데, 왜에? 대체 무엇 때문에?”
“모른다니까요. 대장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아무튼, 당장 철수하라 하시니 짐 정리하겠습니다.”
“잠깐만! 잠깐만!”
꿈일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 아코렐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열어봤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기절했다.
마법사는 익숙하다는 듯, 그녀의 몸뚱이를 넘어가며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번처럼 덜렁대다가 두고 가는 물건 없도록 하세요. 나중에 사람들을 보내서 광산 작업은 계속하더라도, 저희가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아서요.”
“폐하, 제게 어째서 이런 시련을…….”
“그리고 여기 주민에게 좀 재밌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마법사의 언질에 아코렐라가 비죽거리며 쳐다봤다.
궁금하시지요? 그럼 어린애처럼 그만 떼쓰고 일어나십시오. 마법사의 눈짓에, 아코렐라가 상체를 슬그머니 일으켰다.
“…뭐.”
“나이가 몇인지도 모를 노인이 이른 말입니다. 자신이 어렸을 적, 바다 건너온 마법사를 만난 적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마법사도 광산 쪽 부지에 관심을 보였다고요.”
“바다 건너라면, 어디? 블라스터해?”
“바다가 거기 말고 또 있겠습니까. 아무튼, 노인이 의아하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는데 지금 바리엘 마법사들이 이리 파대는 걸 보니 역시나 싶었답니다.”
“바리엘도 아니고, 이 척박한 버고스에 가이아 대륙 밖 마법사가 왔었다고? 확실해?”
“백발이 무성하여 자식도 못 알아보는 노인이긴 한데, 허튼소리 같진 않았습니다.”
“흐음. 블라스터해 너머라. 거기에는 여기서 발견 못 한 마력석들이 널려 있겠지? 등급 분류 기준 자체가 달라서 돌멩이 취급당하고 있을 수도…. 흐윽, 내 새끼들. 갑자기 생각하니까 눈물이 앞을 가리네.”
“그 정도면 중증입니다, 대장.”
아코렐라는 소매로 눈가를 콕콕 찍어대더니, 뭔가를 결심했다. 언젠가, 내 필시 언젠가…….
“전쟁 끝나면, 너 거기 좀 다녀와라.”
“네? 어디를요?”
“블라스터해 너머의 그 어딘가.”
“…지금 저보고 가란 말씀이십니까? 대장이 가는 게 아니고요?”
“난 바리엘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연구해야지. 고급 인력이 밖으로 유출되면 쓰나. 어우, 울었더니 힘드네. 여기 싹 정리하고 나와.”
“저도 따지고 보면 고급 인력이거든요?! 그것도 최고급-”
콰앙!
아코렐라는 시끄럽다는 듯 문을 세차게 닫으며 손을 털어댔다. 그러고는 1층 로비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향했다.
그녀와 마법사들이 거처를 두고 있는 이곳은 광산 소유 영지의 성, 아직까지는 관리가 꽤 괜찮았다. 카일라 모녀에게 모가지 쓱싹 당한 왕당파 간부가 그 주인이었던 탓에 반쯤 공중분해 된 저택이지만 말이다.
계단 중간쯤, 아코렐라는 소곤거리는 대화 소리를 들었다.
“칼라마트에서요?”
“네. 지금 두 분도 짐을 정리하심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시아 경,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사실 맨몸으로 와서 들고 갈 것도 없어요.”
로비 계단 아래, 홀린 가문의 다니트 부인과 클로이 영애 그리고 시아오시가 모여 심각한 낯으로 대화 중이었다. …이렇게 보니 조합 참 신기해.
“다들 복귀 얘기하고 있습니까?”
아코렐라가 난간 사이로 고개를 쭉 빼내며 묻자,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코렐라 대장. 마침 잘 왔습니다. 지금 소식이 들어왔어요.”
“무슨 소식요?”
“칼라마트에 주둔 중이던 마법사들 전원이 히엘로령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 공백으로 칼라마트가 토올룬에게 압박당할 수 있게 됐어요.”
“에?”
“일단 기병들로 선발대를 꾸려 북쪽으로 올려보냈다고는 하는데, 그럼에도 토올룬의 기습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남은 전력 모두 칼라마트로 복귀하여 황제 폐하 옆을 지키라는 명입니다.”
“오호. 명쾌한 상황 정리 감사하네요, 다니트 부인. 그런데요, 클로이 영애도 갑니까?”
“네? 저요?”
당연한 걸 어찌 물어요? 클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아코렐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토올룬과의 전운이 흐른다면, 칼라마트, 아니지. 버고스에 머무는 것 자체가 위험하니까요. 클로이 영애는 중앙으로 가시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지 않나 싶어서 그렇습니다.”
“…이 배신자! 바보! 아코렐라 대장, 이젠 제가 실험 가치가 없어졌다고 그러는 거죠? 나빠요!”
“아니, 저는 영애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요.”
진심으로, 마법사들이 빠진 상황에서는 그녀를 지켜줄 전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시아오시? 그는 황제의 오른팔이지 않나. 마음은 연인을 위해 바쳤다 한들, 죽음은 이미 황제의 것이었다.
클로이가 시아오시를 홱 돌아보며 눈빛으로 말려달라 일렀지만, 그는 침묵했다. 어느 정도 아코렐라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시아 경!”
“…우선 칼라마트로 갑시다. 거기서 호위할 병사를 붙여주겠습니다.”
클로이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시아와 아코렐라를 돌아봤지만 방도가 없었다. 다니트 부인은 분위기를 대충 살피며 돌아 나갔고, 시아오시도 현실을 부정하듯 자리를 피했다.
“으으.”
클로이는 계단 위쪽을 노려보더니, 상당히 매섭고 빠른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올라왔다. 그러고는 무릎 한쪽을 꿇으며 아코렐라의 멱살을 잡아 흔드는 것 아닌가.
아코렐라는 흔들리는 대로 가만히, 장난스레 웃었다.
“아코 대장!”
“네네, 왜요. 클로이 영애.”
클로이는 곧 울 것처럼 입을 꾹 다물더니, 이내 결심했다.
“제가 지금 시아오시 경과 떨어지면 진짜 힘들어서 죽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진짜 죽는 것에 비하겠습니까? 사랑, 그거 다 한때입니다. 영애.”
“…한 번 더 마실게요.”
영애의 중얼거림에 아코렐라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 뭐라고?
“한 번 더 마신다고요. 아코렐라 대장이 만들었던 그거요. 다시 제게 힘을 주세요. 걸림돌 되지 않도록, 아니, 바리엘 병사들이랑 함께 싸울게요.”
클로이가 정중하게 부탁하자, 아코렐라는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었다.
으이그, 이 천재 마법사 아코렐라! 연구 머리만 있는 게 아니라 실험체 운도 이렇게 따르는구나. 역시 될 놈은 어쩔 수 없는 게다.
“다른 거-”
“네?”
“다른 것도 괜찮겠어요? 그랬다가 시아오시 경을 향한 마음이 사라지면 어쩌려고?”
클로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망설이지는 않았다. 확신이 생긴 것이다.
“괜찮아요.”
“괜찮다는 의미는 모르겠지만, 사실 알고 싶지도 않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와봐요.”
“지금 말인가요?”
“뭐, 그럼 아껴뒀다가 나중에 저녁으로 반주하려 했어요? 결심 섰을 때 마시는 거지!”
아코렐라가 신난 몸짓으로 클로이의 손목을 잡아끌었고, 몇 걸음 끌려가던 영애도 점차 마음을 굳히고는 대장의 팔짱을 꼈다.
“앗싸! 356장 쓸 수 있겠다!”
“뭐가 356장이에요?”
“그런 게 있어요!”
쪽! 아코렐라가 클로이의 볼에 키스하며 키득거렸다. 이안 님이고 헤일 대장이고, 칼라마트에 없으면 어떠한가! 자신이 있는데! 마법부 애들 다 히엘로에서 본인 맡은 역할만 잘 하면 된다.
‘여기는 내가 지킬게. 영애랑 같이.’
크흐흐. 크흑. 꺄앙! 아코렐라는 비식비식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간이 실험실로 뛰어 들어갔다.
* * *
“하완.”
루스웨나로 몰려드는 수천의 병사들.
마법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실상 그들이 살면서 처음 만났던 하완인은 샤티마 수상이었다. 그만큼 저들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는 뜻이다. 바리엘과 붙어 있으나 동쪽 변방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지라, 마법사들에게는 토올룬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낯섦이다.
마법사 한 명이 베릭에게 고갯짓하며 소리쳤다.
“베릭! 네가 가서 몸빵 좀 쳐봐!”
“뭐래, 미쳤나 저게! 네가 해!”
“아니, 쟤들은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머릿수로 밀고 들어오려는 것인가? 마법사들에게? 저쪽 수뇌부에 인형 줄 꿰인 자가 있다더니, 진정으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했다.
마법사들이 손짓으로 앞과 뒤를 가리켰다.
“루스웨나랑 하완, 나눠서 담당하자. 각자 어디로 갈래?”
“나는 루스웨나. 엘더트 새끼 머리채 안 잡으면 화병 날 듯.”
“나도 루스웨나.”
“그럼 내가 하완 가볼게.”
“이안 님, 저희 대충 나눴는데-”
이안은 하완 쪽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내 가볍게 찡그려지는 미간.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한편, 그 시각.
철컥!
분홍빛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 올린 여성이 전방을 주시하며 고갯짓했다.
“총포, 앞으로.”
자신을 거두어준 샤티마를 제 손으로 죽이고, 의지를 잃은 채 바리엘로 돌아온 버티 에리카다.
그녀의 명령에 부하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사람 크기의 상판을 밀어 가져왔다. 핸드캐넌(Hand Cannon). 블라스터해 너머, 동쪽에서 들여온 전쟁용 화총이었다. 최근에 겨우 몇 정 들어온 게 다였으나, 내전을 통해 그 위력은 충분히 입증했다.
“밀고 들어간다.”
이미 동쪽에서는 화약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고 있었다.
바리엘의 마법사들도 역사 속 함께 살아가는 존재. 예외가 될 순 없을 테다. ‘마법에 대적할 힘’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허풍이 아님을, 에리카는 목도했으니.
“시범으로 한 발만 격발한다.”
“거리가 너무 멉니다.”
“괜찮다. 마법사들이 가까이 올 것이니.”
에리카의 중얼거림에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상자에 들어 있던 거대한 흑색 포탄이 포문에 장착됐고, 하완의 병사들은 익숙하다는 듯 귀를 틀어막았다.
에리카는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마법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듯.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