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74
제674화. 마력 탄환
필리아를 눕히고 나온 비비안나가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너무 여리고 착한 사람인데, 그녀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지 않나.
비비안나가 안쓰러워하며 이마를 문지르자, 그 시선 끝에 아이의 발이 들어왔다. 조용히 다가온 로엘이었다. 비비안나는 아이를 끌어안아 주며 속삭였다.
“로엘. 너무 걱정하지 말렴. 어머니는 막 잠드셨단다.”
“부인, 잠시만 이쪽으로.”
“응? 왜 그러니?”
로엘은 비비안나를 방문에서 떨어지게 한 다음 조심스레 뒤를 살폈다. 필리아가 들으면 안 된다는 듯이 말이다.
비비안나는 무릎을 꿇어 로엘과 시선을 마주했고,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 함께 있으면서 로엘이 자신을 이리 부른 적은 없었다. 필시 무언가 중요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 비비안나는 긴장하여 손끝까지 떨리는 기분이었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무엇을 보았어?”
로엘이 본 것? 그것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는 머뭇거리더니, 본론을 먼저 꺼냈다.
“저는 대사막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사막이라니? 천려의 땅 말이니?”
“가지 않으면 천려의 피가 세상에서 완전히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부족을 위해서, 저는 대사막으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해야 해요.”
“하지만 로엘, 지금은-”
“전쟁 중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앙에서 파악한 것보다 훨씬 치열하단 것도,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나고 있단 것도요.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이미…….”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로엘은 최대한 감정을 다스리며 말을 끝맺었다.
“…이미 별이 되셨어요. 까만 밤하늘 중 제일 밝게 빛나는.”
“……!”
비비안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거의 반사적으로 로엘을 세게 껴안으며 위로했다.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눈으로 본 것일까. 그랬다면, 세상에서 이처럼 안쓰러운 능력이 또 있을까.
“부탁드립니다, 부인. 저를 대사막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중앙에서 히엘로로 지원군을 보낼 때 함께하도록 로만드로 님께 말씀을 전달해 주세요. 이는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리엘과 대사막을 위한 것입니다.”
“아아, 로엘…. 가여운 것.”
“그리고 하나 더.”
로엘은 필리아가 잠들어 있는 방 쪽을 쳐다봤다.
“어머니는 절대로, 절대로 히엘로로 가서는 안 됩니다. 저 혼자 가야 해요.”
“혼자서? 로엘, 필리아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부인께 이리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필리아 입장에서는 남편과 두 자식 모두 히엘로에 가 있는 상황에서, 자신 혼자 중앙에 남아 안전을 영위하는 셈이다. 그걸, 그녀가 견딜 수 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로엘은 너무 어렸다. 이안과 네르사른처럼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으니, 필리아가 심히 걱정하여 반대할 것임은 안 봐도 빤한 일이다.
“가능하다면 어머니를 설득해 주시고, 불가하다면 저를 몰래라도 보내주세요. 저를 비비처럼 아끼신다면요.”
“로엘. 아무리 널 아낀다 해도, 미안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도와줄 수 없구나. 나는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 전에 필리아의 둘도 없는 친우야. 절대 그럴 순-”
“네. 분명 로엘의 어머니이시기 전에 어머니의 친우시지요. 그렇다면 더더욱 저를 홀로 보내셔야 합니다.”
“어째서? 나는-”
“히엘로로 가면, 어머니는 죽어요.”
참으로 섬찟한 목소리다. 비비안나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멈추었고, 로엘은 다시금 감정을 추슬렀다.
“어머니는 앞으로 히엘로령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게 어머니를 위한 일이에요. 비비안나 부인은 누구보다 가까운 친우이시니, 어머니의 평안을 바라시겠지요. 그리고 비비의 어머니이시니 자식이 부모를 위하는 마음 또한 헤아리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는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비비안나는 털썩 주저앉으며 로엘의 눈만 들여다봤다. 이 아름다운 녹안으로 보는 세상은 이리도 가혹하고 끔찍한 걸까.
로엘은 부디 부탁한다며, 비비안나의 손을 붙잡았다.
“어머니를 지키고 싶어요. 언젠가, 대사막의 기운이 다시 바로 선다면 그때쯤 다시 뵐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인. 부디 부탁하건대, 도와주세요.”
비비안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선 로만드로 님께 이 일을 전달하자. 황궁의 뜻과 함께하면 잘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몰라.”
비비안나가 안방으로 들어가서 겉옷을 챙겨 나오는 동안, 로엘은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그때, 비비가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와 로엘의 손을 붙잡았다.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알아챈 게다.
“로엘, 괜찮아?”
“…비비.”
로엘은 비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친구. 이제는 정말 헤어질 때가 되었어. 로엘은 비비의 볼에 키스를 남기며 인사했다.
“비비, 안녕. 잘 지내. 햇살을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어.”
“로엘…….”
작별은 길지 않았다. 준비를 마친 비비안나 부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로엘, 나가자. 황궁으로 가는 마차를 구해야겠어.”
“네. 부인.”
“어, 엄마.”
“쉿, 비비. 집 잘 지키고 있으렴. 엄마 금방 황궁 다녀올게. 무슨 일 있으면 미니에게 말하고. 알겠지?”
쪽. 비비도 딸아이의 이마에 키스를 남겼다.
두 사람이 급하게 저택을 떠난 뒤. 비비는 창문을 통해 멀어지는 마차를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마차 밖으로 조그마한 손 하나가 비죽 나와 흔들렸지만, 너무 먼 탓에 비비는 보지 못했다.
* * *
콰아아아! 콰앙!
콰앙! 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연기가 터지며 화총이 크게 흔들렸다. 이를 단단히 받치고 있던 병사들의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다.
격발된 탄환이 엄청난 속도로 이안과 헤일에게 날아들었다. 이안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 하나, 헤일의 정면으로 날아드는 것 하나. 헤일은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생성했다.
쩌어억!
“……!”
탄환이 부딪치는 순간, 헤일은 보호막 겉면이 깨졌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다시 생성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도.
쾅!
폭탄이 헤일의 코앞에서 터졌고, 그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뒤로 날아갔다.
이에 놀란 이안은 그를 따라 뒤를 돌아보다가, 자신의 옆으로 지나갔던 탄이 허공에서 터지는 걸 목도했다.
콰아앙! 쾅!
불꽃처럼 하늘을 수 놓는 불길. 마치 작고 아름다운 불꽃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이안과 헤일 그리고 마법사들은 그 불꽃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챘다.
“헤일 대장! 대장!”
“이안 님! 저거, 마력입니다!”
화약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힘. 불길은 살아 움직이듯 사방으로 뻗어나더니 다시 스스로 발화하여 터져댔다. 하나하나가 격발된 첫 탄환과 같이 강력하고 위협적이다.
콰아아앙! 쾅! 쾅!
폭발을 직격으로 맞은 헤일의 주위는 폭연으로 자욱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명중률이 떨어지는 대신, 탄의 폭발 범위와 위력이 상당하고 후속 폭발까지 존재한다. 보호막이 깨질 정도라니.’
게다가 진하게 느껴지는 마력의 흔적. 동방의 마법사들이 관여한 무기임이 틀림없었다.
‘100년 전, 초기 형태의 화총은 이러하지 않았다. 한데 어찌하여?’
이안이 알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미래다. 샤티마의 귀국처럼, 이 역시 본 역사와 엇나간 무엇인가가 만들어낸 결과일 터. 하지만 이안은 이것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당장 알아채기 힘들었다.
“커헉, 크흑!”
“헤일, 괜찮은가? 보호막으로 맞서지 말고 비스듬히 흘려보내라. 오래 지속될 공격이 아닌 듯하니.”
헤일이 연기를 헤치며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 보였는데, 다만 그의 겉옷에 옮겨붙은 불들이 조금 이상했다.
“예, 뭐. 연기가 매우니 조심하십시오. 그런데 이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확실히 평범하진 않군요.”
“마법이다. 동방 마법사의.”
불씨가 계속해서 자글거리며 파고들자, 헤일은 겉옷을 벗어 던졌다.
아래에서는 이미 루스웨나의 금빛 갈대밭 위로 연기가 자욱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폭발의 여파로 튄 불씨가 바람을 만나 점점 커졌다.
“저, 전하!”
“이것들이 진짜!”
“갈대밭이, 루스웨나의 역사와 함께한 갈대밭이 타고 있습니다아! 아이고, 아이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엘더트는 다시 목덜미가 빳빳해지는 걸 느꼈다. 토올룬도 그렇고 하완도 그렇고, 자기네 땅이 아니라고 하여 너무 거친 방식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승패와 무관하게 루스웨나가 짊어질 짐이 무거워지고 있는 게다.
클리포포드 전쟁에서 한차례 겪었던 일이지만, 그때는 루스웨나의 몫이었는지라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드래곤! 서둘러라!”
서둘러서 하완과 접촉하여 무분별한 대지 파괴는 지양하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완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으니-
“마! 이 새끼들아아아!”
지이잉! 지잉!
촤아아악!
바로, 바리엘의 마법사들.
그들은 세계수로 비행하던 드래곤들을 빠르게 낚아채어 대지로 내던졌고, 이에 깔린 수십의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갔다.
이를 망원경으로 살피던 에리카는 다시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다음 탄환을 내와라.”
“알겠습니다!”
역시 단순한 화염 속성의 탄환으로는 부족했나 보군. 병사들은 두 명씩 조를 지어 탄환을 운반했고, 이내 능숙한 솜씨로 재장전했다.
그 틈에 제일 먼저 하완 쪽 진영에 닿은 것은 베릭이었다.
“비켜어어!”
한번 휘두른 검에 병사들이 종이 인형처럼 쓸려나갔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을 겨누고 있던 화총 네 정 중 하나가 베릭 쪽으로 기울었다.
아군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어쩔 수 없다. 마검사를 잡기 위해서라면.
“조준!”
“조준-!”
“다들 길을 터라! 몸을 피해라!”
“피해라! 폭탄이 터질 것이다!”
병사들이 베릭을 피해 좌우로 갈라졌다.
순식간에 길이 트이자, 베릭의 눈에 하완군 진영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졸지에 깊고 둥근 화총 구멍과 일직선상으로 놓인 게다.
“발사!”
“발사아!”
콰아앙!
베릭을 향해 직격으로 날아드는 탄환.
베릭은 검을 쥐고서 자세를 바로 했다. 물리적인 형태만 지니고 있다면, 그게 무어든 벨 수 있지 않겠나? 날아드는 쇠구슬쯤이야 반으로 갈라버리면 될 일!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계획이었으나, 베릭은 자신 있게 검날을 세웠다.
보인다.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사람 머리 크기의 쇠구슬이. 베릭이 마력 대검을 있는 힘껏 휘두르자-
촤아악!
탄환이 반으로 갈라졌다.
“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것 봐! 아무것도 아니……?”
반으로 갈라져 베릭의 옆으로 비켜 갔던 탄환이 궤를 비이상적으로 꺾더니 다시 합쳐졌다.
그러고는 마치 다시 쏘아진 것처럼, 베릭의 뒤통수 쪽으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
퍼어어엉! 퍼엉!
흙더미가 뒤집힐 정도의 강력한 폭발. 이안과 헤일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
“베릭!”
연이어 쏘아진 새 탄환은 두 사람에게도 날아들었다. 헤일은 비행하던 것을 멈추곤 그 자리에 서서 두 주먹을 모았다.
지이잉! 지잉!
“이안 님, 엄호하겠습니다!”
「채봉(彩棒)」.
그의 손아귀에서 거대하고 넓적한 막대기가 생겨났다. 때마침 탄환이 와 닿자 이안은 아래로 기동하여 가까스로 피했고, 뒤에 있던 헤일이 이를 맞이했다.
부우웅!
쿠구우우우!
헤일이 휘두른 마력 막대기가 탄환과 충돌했다.
탄환은 튕겨 나가는 대신 멈추었다. 허공에서 팽팽하게 맞서는 두 힘. 헤일은 탄환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윽고 헤일이 기합을 넣으며 팔을 크게 휘둘렀고, 탄환은 왔던 궤를 따라 다시 하완군 쪽으로 되돌아갔다.
쉬익!
“……!”
놀란 에리카의 눈이 커졌다. 다행히도 되돌아오던 탄환은 창공에서 폭발했고, 병사들은 가까스로 넙죽 엎드려 칼바람을 피했다.
헤일은 마력 막대기를 어깨에 걸치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손맛 한번 좋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