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75
제675화. 버티 에리카
바-리엘!
신께서 품고 있는 광영의 시작이라-
비 내리면 금빛으로 물드는 가이아의 심장이라-
높게 높게 고갤 들라, 그리하면 보이리니-
저기 높은 곳의 빛이, 바리엘의 등불이라-
에리카는 황궁에서 처음 국가 불렀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놀랍도록 푸른 하늘과 백색의 구름, 완벽할 정도로 따뜻한 기온. 그리고 울음을 참느라 흔들리던 자신의 목소리…….
참으로 고된 시간이었다. 노예에 가까웠던 평민의 삶을 이겨내고 황궁조사단의 단장 자리까지, 정말 많은 고통이 그녀의 인생을 이루었다.
에리카는 절도 있게 경례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경사스러운 날이다. 울음을 대신하여, 그녀는 계속해서 바리엘을 부르짖었다.
바-리엘!
쿠구구궁! 쿠궁!
콰앙!
“수상님, 서둘러 피하십시오!”
“아니!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왕궁을 사수하라!”
“물러서지 마라! 그대들의 손에 하완의 미래가 달려 있다! 앞으로 나아가라!”
“와아아아!”
브라츠와 하완.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에리카는 바리엘 안팎을 떠돌았으나, 그녀는 선잠만 들었다 하면 조사단장 배지를 받았던 날 꿈을 꾸었다. 언젠가는 돌아가겠지. 언젠가는 빛 볼 날이 있겠지.
바라고 바란 덕분에 신께서 소원을 들어주신 것일까. 그녀는 샤티마 수상과 함께 중앙 황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희망을 얻어 귀국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은 피 묻은 가시밭이었지만, 괜찮았다. 조국의 명예가 저곳에 있었으니까.
“수상. 아무래도 병력이 부족합니다.”
“예, 바리엘 쪽에 도움을 요청해보심이…….”
“안 됩니다. 황제 폐하와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이 호의적이라고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루스웨나를 견제할 수 있다는 가치 판단 아래의 상황입니다. 세상에 대가 없는 것이 있더이까? 지금 그들을 끌어들이고 나면 나중에는 무엇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에리카는 샤티마 수상이 측근들과 회의하는 것을 항상 뒤에서 지켜봤다. 그녀는 샤티마 수상을 존경하여, 이를 즐겼다. 하완으로 넘어왔을 때 자신의 손을 잡아준 은인이기도 했고, 곁에 있으면 배우는 것이 많아 즐거웠다.
“바리엘의 마법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무리라면, 다른 쪽 마법사는 어떻겠습니까?”
“다른 쪽 마법사라 하면 어딜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루스웨나는 불가합니다. 10년 전 치욕을 겪고 나서 마법사 관리에 아주 철두철미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입장을 알기에 절대 협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샤티마 수상은 바리엘로 갔다가 황제가 돌려보내서 온 자였다. 그것 자체가, 그녀의 목숨이 황제의 손아귀에 들려 있음을 공표하는 것 아니겠나.
바리엘을 견제하려는 루스웨나 입장에서, 샤티마 수상이 반란에 성공하는 걸 반길 리 없다.
“아니요. 더 멀리, 동방 말입니다.”
“…블라스터해 너머의 그들이요?”
“예, 전해 오는 말로는 동방의 절대자라 불리는 마법사가 있다 합니다. 바리엘 마법부의 장관처럼 동방의 모든 마법사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자인데, 제자 중 한 명이 절대자의 귀한 물건을 훔쳐 도망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흥미롭다. 에리카는 정면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거렸다. 대체 어느 간 큰 놈이 마법사인 스승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단 말인가.
자신이 샤티마를 배신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에리카는 괜히 부정 탄다며,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요?”
“동방의 마법사들이 그자를 쫓아 대사막을 하나둘씩 넘고 있다 하더군요. 루스웨나로 들어간 자도 몇 있고, 여기 하완으로 들어온 자도 있습니다.”
“…진실입니까?”
“루스웨나는 확실합니다. 갑작스레 늘어난 마법사 중 절반 이상이 타국 출신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하면, 그들을 만날 방법은?”
“그게…….”
그때, 밖에서 시종 한 명이 에리카에게 눈짓했다. 잠시 일이 생겼으니 나와달라는 신호다.
설마, 왕병대가 기습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오랫동안 준비한 기습 작전의 실패? 에리카가 조심스레 밖으로 나오자마자 만난 것은-
“오호호홋! 안녕하십니까. 다르시 부인입니다.”
불쾌한 웃음을 흘리는 다르시 부인이었다.
에리카는 그 순간 이후로 뭔가 이상해졌다. 기억이 조각조각 났고, 시간은 빠르고도 느리게 흘러갔으며, 꿈속을 걷는 것처럼 온몸의 근육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
낮이 되었다가 밤이 되었고, 사람들이 기함을 내지르며 서로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건물에서 추락했으며, 어디선가 검붉은 비가 떨어졌다.
투둑. 툭.
“……!”
문득 정신 차린 에리카가 주위를 둘러봤다. 밤이다. 비가 내리는 밤. 조용했고,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나는…….
“끄윽, 끅-”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숨을 헐떡이는 자가 누구인지, 단박에 인지하지 못했다. 자신이 뜨겁고 끈적한 피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도.
쿠구궁! 콰앙!
번개가 내려치자, 일순 어둠이 걷히며 죽음을 맞이한 자의 얼굴이 보였다. 샤티마 수상이다.
에리카는 너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그대가 어찌하여 거기에 쓰러져 있는 것인가요? 자신은 또 왜 여기 있으며, 그대와 함께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인가요?
“에…리카.”
“아, 아, 안 됩니다. 안 돼…….”
“…을 보아. 알겠지.”
“안 돼, 안 된다고요! 아아아악!”
콰과광! 콰앙!
솨아아!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폭포처럼 쏟아졌고, 에리카는 바닥에 흥건한 피를 끌어모으며 절규했다.
이럴 수는 없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샤티마가 죽다니! 그녀의 죽음은 하완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가 파멸되는 것과 같거늘…!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상실감이 흥건했다.
더욱 끔찍한 건, 에리카의 세상이 다시금 일그러지고 있다는 것. 다시, 시간이 빠르고 느리게 움직이며 에리카의 세상을 잡아먹었다.
* * *
“에리카 님?”
에리카 옆에서 하완군의 진형을 살피던 부관이 놀라 멈칫거렸다. 에리카는 여전히 굳세고 용맹한 표정으로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으나, 한쪽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진 것이다. 부관의 부름에 에리카가 의아한 낯으로 돌아봤다.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참으로 희한했다. 에리카는 본인이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동방에서 들어온 화약 탓에 일어난 신체적 반응인가? 좀 독하긴 하지. 불씨와 만나 굉음을 터트릴 때마다 사방에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으니까.
“마검사는?”
“아직 안 죽은 것 같습니다!”
“지독한 새끼 같으니라고.”
에리카의 중얼거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베릭이 연기를 헤치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마법사가 아닌지라 바로 착지하여 자세를 다잡았지만 말이다.
베릭은 너덜너덜해진 옷을 툭툭 털며 코를 훌쩍였다. 지금껏 수많은 인간과 마물들을 상대하며 다방면으로 얻어맞아 봤지만, 이건 뭐랄까.
“…묘하네.”
저 화총이라는 게 참으로 묘했다.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물리적 충격으로는 거의 최대치 같은데, 거기에 마력까지 깃들어있으니…. 베릭은 전투 중이라는 것도 잊고 가만 서서 턱을 매만졌다.
“베릭!”
헤일의 호위를 받으며 하완 진영 쪽으로 접근하던 이안이 베릭을 불렀다. 위험하게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움직이라는 명령이다.
그에 베릭은 반사적으로 총총 대열을 향해 내달렸고, 이내 집중하여 검을 빼 들었다. 사그라들었던 마력 대검이 크게 솟구쳤다.
촤아아악!
“이안아아! 저거 부술까?!”
“가능하다면, 아니!”
“아니? 아니라고?”
잘못 들었나? 베릭이 멈춰 서서는 위를 올려다봤다. 이안은 두 손을 모으며 마력을 응축하고 있었다.
‘신무기다. 그것도 마법과 융합 할 수 있는. 바리엘의 미래를 새롭게 결정할 만큼 의미가 깊다.’
최대한 보존하여 앗아오는 게 일차적 목표다. 물론, 그게 힘들다면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게끔 파괴해야겠지만.
‘어떤 마법이 적절할까.’
만엽으로 묶어내는 것도 좋겠지만, 첫 번째 탄환이 불 속성이었다. 단번에 파훼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택(雨澤)」.
툭. 투둑.
마른하늘에 빗물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의아해하며 위쪽을 올려다봤지만, 여전히 하늘은 맑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라, 이게 마법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
“비, 비다!”
“살았다! 비가 내린다! 오오, 가이아의 신이시여! 제발 저 불길을 거두어 주십시오!”
“갑자기 비가? 이것도 마, 마법인가?”
활활 타오르는 갈대밭의 불길을 꺼뜨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루스웨나 병사들은 신나서 한마디씩 덧붙였다.
이에 엘더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여 입매만 찡그렸다. 마법으로 인한 불이다. 보아하니 쉬이 꺼지지 않는 듯한데, 이안 히엘로의 마법이라면 기대를 해볼 법하지 않나.
지이잉!
하지만 이안은 그들의 기대를 엿보기라도 한 것인지, 손을 움직여 비의 범위를 좁혀갔다. 화총을 중심으로.
“비, 비가 점점 거세집니다!”
“에리카 님!”
“심지를 보호하라! 천막을 쳐!”
“화총이 비에 젖지 않도록 하라!”
“불을 붙여 놓고, 꺼지지 않도록 해!”
범위를 좁히니, 그만큼 집중적으로 빗물이 쏟아졌다. 불씨와 탄약이 만나 공격을 이루는 것이라면, 애초에 그게 불가하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꺼지지 않는 마법의 불? 그렇다면 여기, 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
“서둘러!”
에리카의 외침에 병사들이 온몸을 던져 젖지 않게끔 보호했다. 더 늦기 전에 화총에 불을 붙이는 자도 있었다.
몇몇은 일사불란하게 천막을 쳐대며 비를 막으려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범위가 좁아졌고, 빗줄기는 거세졌다.
“탄환이 얼마나 남았지?”
“세 상자 남았습니다. 각 상자씩 10발, 총 30발입니다.”
아직 넉넉했다. 겨우 빗물을 틀어막은 병사들이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오자, 에리카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조준-!”
“조준!”
“발사!”
콰아앙! 쾅!
천둥과 같은 소리.
화총이 격발되자, 에리카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날 보았던 샤티마 수상의 죽음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꽈악.
다시금 날아오는 탄환에 헤일이 자세를 바로 했다.
“이안 님! 몇 번만 더 쳐내면 불능 상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주위를 정리하지.”
“예! 그럼 저는-”
쉬이이익!
한 번 쳐내 봤다고, 헤일은 자신감 있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이번에도 탄환이 팽팽하게 맞물렸다. 헤일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 것처럼 뒤를 힐끔거렸고, 대뜸 바리엘 마법사들에게 외쳤다.
“다들 피해라!”
“예?”
뭘요?
하늘에서 병사들을 조지는 건 아주 쉽고 재밌는 일이었다. 느닷없는 헤일의 경고에 마법사들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헤일이 힘을 풀며 탄환을 비껴 쳤다.
“……!”
궤가 꺾인 탄환이 그대로 루스웨나군 쪽으로 날아들었고, 마법사들은 희게 질린 채 높이 비행했다.
한편, 날아드는 탄환을 본 엘더트의 눈이 단숨에 커졌다.
“이-!”
“피해애애!”
콰아앙! 쾅!
쿠구구웅!
엄청난 폭발과 함께 루스웨나 병사들이 사방으로 휩쓸렸다. 그걸 본 베릭이 ‘오.’ 하고 감탄하더니, 하완 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나한테도! 나한테도!”
나도 저것 좀 해보게!
베릭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팔을 빙빙 돌리며 덤벼들자, 에리카는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빼 들었다.
“죽여라! 조준!”
“조, 조준!”
치이익.
조금씩 꺼져가는 심지의 불꽃. 병사들이 연신 손으로 바람을 만들어냈지만, 이미 천막까지 흠뻑 젖어 물이 들이치고 있다. 아마 예상하건대 마지막 공격이지 않을까 싶다.
“발사아아!”
콰아아앙!
에리카의 명령에, 베릭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고는 자세를 낮췄다. 이번에는 아주 엘더트 대가리에다 넘겨줘야지!
오